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75
76화
-처절한 싸움 (3)
장내는 고요해졌다.
구안에게 다가가는 내게 공격을 할지 말지 고민을 하던 헌터들도, 나를 말릴지 말지 고민하던 촌장의 제자들도 모두 조용해졌다.
“A급 헌터가…. 센터의 대표 중 한 명이 한 방에….”
고요한 와중에 누군가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와아아아!!!!”
그리고 그 중얼거림을 시작으로 제자들의 비명과 같은 환호가 울렸다.
“미쳤어!! 미쳤다고!!”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야?!”
환호성을 내지르는 촌장의 제자들을 돌아보며 덤덤히 한마디를 내뱉었다.
“제가 말했죠, 할 수 있다고.”
한 마디 했을 뿐인데 제자들은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했다.
사실 나도 이렇게 한 방에 나가떨어질 줄은 몰라서 당황하던 참이었다.
나원명 때를 생각하고 힘과 체력에 나머지 스탯을 투자했는데 그 덕인 듯했다. 마법을 쓰는 구안의 몸이 상대적으로 약했던 것도 있을 테고.
아무튼 한 방에 나가떨어져 줘서 더 극적인 연출이 되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거지…?”
당장 눈앞에서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봤으니 각인이 확실히 됐을 것이다. 다시 주춤댈 것 같으면 다시 희망을 불어넣어 주면 된다.
그게 진정한 서포터의 역할이 아닌가?
“제가 확실히 서포트 해드리겠습니다. 스승님에게 배운 것을 저놈들에게 보여줍시다!”
오글거리는 말을 내뱉으며 드럼채를 들어 올렸다.
시선이 집중되니 식은땀이 흐르고 쪽팔려 죽을 것 같았지만 그들에겐 이런 오글거리는 연출이 더 효과가 좋았다.
잠깐 만난 던전의 인물에게 스승님거리며 달라붙는 녀석들이었으니까.
“워어어!!!!”
역시 효과 직빵이구만.
“하! 하등 쓸모없는 밥버러지들이!”
추환이 앞으로 나서며 목을 꺾었다. 구안이 쓰러지니 바로 기세등등해져 힘자랑을 하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수족처럼 부리는 스킨헤드의 덩치가 추환과 같은 포즈를 취하며 서 있었다.
처음 던전에서 팀을 나눌 때 대놓고 차별하며 급을 나누던 놈이었다.
구안이 리더로 행동할 때는 꼭꼭 숨어서 머리카락 한 올도 안 내비치더니 추환이 다시 대장 노릇을 하자 다시 설치는 꼴이라니.
아참, 저놈은 머리카락이 없었지?
“가자!! 이기자!! 우리의 힘으로!!”
사람들은 그들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다시 전투태세로 들어갔다.
그래, 좋은 자세야. 너희들이 배웠다던 마나 다루는 법도 좀 활용하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시 싸움은 시작되었다.
부딪히고 깨지고 앓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의지가 올라갔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게다가 적 편에 아까는 눈에 띄지 않았던 놈이 날뛰기 시작한 뒤로 판세가 더 기울었다.
하나로 질끈 묶은 머리를 휘날리며 날뛰는 A급 헌터 최길현. 초반에 스킨헤드 녀석이 극진히 모셔가던 놈이었다.
녀석의 눈에는 광기가 돌았다. 가만히 보니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먹잇감을 발견한 듯 번뜩이는 광채가 무서워 보이기까지 했다.
“오랜만에 재밌는 녀석이 나타났군!!”
자신에게 덤비는 제자들을 그저 어깨빵 한 번으로 날려 버리고 곧장 달려오고 있었다.
챙-!!
놈의 검과 드럼채와 맞부딪쳤다.
나무로 만들어진 드럼채에 흠집이 깊게 생겨났다. 나름 ‘무기’ 취급을 해준다고 해도 진짜 무기와 비교한다면 그냥 나무막대기에 불과했다.
챙, 챙, 챙-!
결국 몇 번 더 합을 나누고 나자 드럼채가 명을 달리했다.
“에휴, 돈 들어갈 데가 또 생겼네.”
한숨을 푹 쉬고 주변을 둘러봤다.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싸워주고 있었지만 역시 밀리고 있었다.
돌이킬 수 없는 수준까지 판세가 기울기 전에 버프를 날리려고 했는데 골치 아팠다.
이놈은 왜 갑자기 나를 공격하고 난리야?
그때였다.
“하앗!”
챙-
무기가 망가진 나를 보고 신애가 순간이동으로 나타났다.
나이스 타이밍!
“끼어들지 마!”
길현이 자신의 무기인 일본도를 들어 올려 신애의 허벅지를 공격했다.
하지만 그 공격은 신애에게 통하지 않았다. 날렵한 신애의 몸이 공중으로 날아올라 길현의 뒷목을 노렸다.
챙!
길현도 보통내기는 아니었는지 일본도를 뒤로 돌려 신애의 공격을 막아냈다.
“신기하군, 분명 D급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계속 그렇게 생각하고 싸우시든지!”
“큭!”
신애가 힘으로 밀어내자, 결국 무너지는 건 길현이었다.
빛의 검이 모든 특성과 스킬 효과를 배로 올려주는 효과가 있었으니 지금 그녀의 영역에 들어가 있는 길현은 아무리 날뛰어 봤자 상대가 안 됐다.
신애의 수호자의 영역이 아니었으면 상황은 옛날 옛적에 종료됐을 것이다.
그녀의 공격력, 방어력 감소 효과 덕에 사람들이 이 정도로 버틸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신애가 길현을 상대하고 있을 때 나는 방해받지 않을 곳으로 가 리코더를 꺼내 들었다.
악기 공격의 효과가 사라지는 것은 아까웠지만 드럼채가 망가졌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계속 밀리며 피를 보고 있는 촌장의 제자들을 위해 마지막 남은 버프를 사용하려 했다.
“큼큼-”
생각해 뒀던 노래가 있었다. 언젠가 써먹으려고 아껴뒀던 것인데 상황이 얼추 맞아떨어져서 다행이었다.
리코더로 불어볼까 고민도 했지만, 이 노래는 꼭 목소리로 불러야 했다. 그래야 느낌이 살았으니까.
공교롭게도 촌장의 제자들이 모두 남자라 다행이었다.
목을 가다듬고 비장하게 입을 열었다.
“이 강산은 내가 지키노라 당신의 그 충정~”
내가 선택한 노래는 바로 군가. 그중에서도 ‘푸른 소나무’였다.
다른 노래들처럼 따로 외우지 않아도 툭 치면 바로 나오는 노래. 군대를 갔다 온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노래였다.
카리스마 스탯이 높아서 그런지 내 목소리는 고함과 공격 소리가 난무하는 가운데서도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익숙한 노랫가락을 들은 촌장의 제자들이 돌아봤다.
“…하늘 보며 힘껏 흔들었던 평화의 깃발.”
그들 중 누군가가 전투를 치르고 있는 와중에 군가를 따라 불렀다.
그것이 시발점이 되어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씩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아아~ 다시 선 이 땅엔 당신 닮은 푸른 소나무~!”
어느새 다들 전염이 되어 마치 떼창이 되어 버렸다. 굳이 10대 군가를 놔두고 푸른 소나무를 선택한 이유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군가였기 때문이다.
멜로디가 정감이 가고 가장 뽕이 차오른달까.
그리고 유일하게 2절까지 외우고 있는 군가였다. 가사도 나름 지금 상황과 어울려서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2절로 들어갈 땐 웅얼거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괜찮았다. 어차피 버프를 주는 건 나였으니까.
띠링.
[나가자! 싸우자! 이기자!] [틀리지 않고 완곡 완료.] [처음으로 소규모 떼창에 성공하셨습니다. 모든 버프 효과가 40% 증가합니다. 아군 공격력이 100%(+40) 증가합니다. 대장 격 인물의 스킬 효과가 100%(+40) 증가합니다.]오, 떼창에도 효과가 붙잖아?
생각지 못한 수확이었다.
대장 격 인물은 당연히 신애일 것이다. 그럼 지금 신애가 펼치고 있는 수호자의 영역 스킬이 어마무시하게 상승하게 된다.
수호자의 영역은 들어오는 적군의 공격력과 방어력이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었고, 아군의 공격력이 100%나 올랐으니 이건 잘만 하면 이긴다.
적군에는 버프를 줄 서포터가 없는 것 같았다.
보통 평범한 던전 레이드 팀이라면 힐러는 필수고 버프를 줄 수 있는 헌터들이 몇 명 껴 있다.
하지만 놈들은 강한 팀을 꾸리겠다고 정말 극소수의 서포터들만 뽑아갔다. 그리고 그 서포터들도 전부 죽게 만들었고.
“서포터를 무시한 대가다, 이놈들아!”
낄낄대며 웃자 그 웃음소리를 들은 헌터들이 씩씩거리며 나에게로 달려왔다.
“너네는 리코더만으로 충분해.”
나름 B급 정도 되어 보이는 녀석들이었지만 긴장감이 전혀 없었다.
무려 A급을 한 방에 보내 버린 인물에게 겁 없이 덤빈다는 것에 오히려 박수를 보내고 싶을 뿐이었다.
퍽!!
“오케이, 한 명 가셨고요.”
어설프게 들이대는 두꺼운 검을 리코더로 흘려보내고 명치를 쳐서 기절시켰다.
다른 한 명은 그 틈을 노려 다리를 노렸으나 나는 녀석의 등을 밟고 가볍게 뒤로 돌아가 뒷목을 쳐서 마무리를 했다.
“한설!! 네 상대는 나다!!!”
시끄럽게 이름을 불러대는 쪽을 돌아보니 소매를 걷어붙이는 추환이 보였다.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걸어오는 녀석을 감히 상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리 버프를 받았다고 해도 전투 계열의 A급 헌터는 두렵다 이거지.
“그래, 뭐….”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짓고 있자 추환이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빡친 표정을 지었다.
“네놈의 그 묘하게 여유로운 태도가 항상 거슬렸지.”
“왜, 열 받아?”
“그럴 리가!!”
휙-!
내 도발에 땅을 박차고 날아오른 추환은 징이 무수히 박혀 있는 너클을 휘둘렀다.
얌전히 맞아줄 리가 없었다. 맞아도 피해는 없었지만 녀석의 공격에는 단 한 대도 맞아주기 싫었다.
“이걸 피하다니, 역시 평범한 E급은 아니군.”
“평범한 E급이 A급 헌터를 한 방에 보내 버리겠냐?”
뭘 깨달았다는 듯이 중얼거리고 있어. 갓난아기가 봐도 그건 알겠다.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자 추환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위구안은 허약한 마법사라 쉽게 당했지만 나는 쉽게 당하지 않는다!”
씩씩거리며 다시 너클을 휘둘러 오는 놈을 놀리는 게 재밌어 다시 한 마디를 툭 내뱉었다.
“당하긴 한다는 거네?”
“이익!! 네놈의 그런 태도가 화나는 거다!!”
언제 봤다고 태도 가지고 뭐라 하는 건지 원.
장난은 여기까지다.
나도 더 시간을 끌고 싶지 않았다. 리코더를 들어 올리며 녀석이 파고들기를 기다렸다.
“멈춰 서 있으면 뭐가 좋은 수라도 나냐!”
육중한 몸과 대비되는 재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추환이 소리쳤다.
좋은 수라면 당연히 있지.
녀석의 눈을 똑바로 바라봐줬다.
이건 처음 보는 스킬일 거다.
“차가운 눈동자.”
녀석은 눈이 마주치자마자 달려오던 모습 그대로 굳어 버렸다.
“이, 이게 무슨…!!!”
와, 진짜 너무 좋잖아.
나에게 딱 좋은 스킬이었다. 중첩효과를 가지고 있는 좋은 스킬이 있었지만 그건 상대를 맞춰야지만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추환처럼 공격력도 높고 이속도 높은 상대를 만나면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꼼짝 못 하게 만드는 스킬이 생겼으니 좋을 수밖에 없었다.
“죽이진 않을게.”
싱긋 웃으며 들어 올린 리코더 그대로 내리쳤다.
퍽!!
“크헉!! 이 새끼…!!!”
퍽!!!
“컥!! 내, 내가…!!”
퍽!!!!
“크허억…!”
털썩.
결국 3번 만에 추환은 눈을 까뒤집고 기절해 버렸다. 그렇게 열심히 소리를 치던 녀석이 조용해지니 오히려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와아!!! 박추환이 쓰러졌다!!!”
“미친…. 이게 무슨 일이야!!”
더 사람들의 시선이 몰리기 전에 추환을 내버려 두고 자리에서 벗어났다. 신애 쪽을 확인하니 쓰러져 있는 길현을 볼 수 있었다.
그래,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A급 헌터가 S급을 이길 수는 없다. 게다가 버프를 빵빵히 받은 S급을 말이다.
가장 강한 두 사람이 쓰러지자 헌터들의 기세가 완전히 꺾여 버렸다.
무기를 내려놓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우리의 승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