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83
84화
-대한대의 하프남
진화? 소미가 진화를 한다고?
순전히 어디 문제가 생긴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럼 이렇게 기운이 없는 건 왜 그러는데?”
“내 심장을 먹었으니 당연하지. 자신의 마력으로 바꾸기 위해 힘을 쓰고 있는 중인 것이다. 완전히 자신의 힘으로 만들려면 족히 한 달은 걸리겠지.”
한 달이나 걸린다고? 그럼 몸집도 한 달 동안 계속 커지는 건가?
“그냥 내버려 두면 알아서 진화를 마칠 거다.”
“그렇군, 이제 궁금증은 해결했으니 가봐.”
“설마 이걸 물어보려고 날 소환한 것이냐?”
어이없어하는 드래곤을 무시하고 소미를 데리고 가장 큰 방으로 들어갔다. 소미가 잘 진화를 마칠 수 있도록 바닥에 푹신한 요를 깔고 이불을 덮어줬다.
그러자 소미가 기분이 좋은지 색색거리며 잠에 들었다.
한동안 전투에 데리고 가지는 못할 것 같았다.
뭐, 어차피 한동안은 소미가 필요할 정도로 빡센 던전에 들어갈 계획이 없어서 상관없었다.
“또 한동안은 E급 던전 신세인가?”
한숨을 푹 쉬었다. 솔직히 이번 던전 오류 사태가 아니었으면 지완에게 달려가 등급 제한을 풀어 달라고 떼를 쓸 생각이었다.
하지만 던전 오류로 지완이 센터장 자리를 내려놓으면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
엄연히 따지고 들어가면 모두 내가 원인이었기에 딱히 누굴 원망할 수도 없었다.
“아! 잠깐, 신애 님이 이번에 재각성 검사 받으면서 S급이 됐으니까 같이 던전 돌자고 하면…!”
S급은 인원수 제한을 받지 않고, 그 인원의 등급 또한 따지지 않았기에 함께 던전을 돌기 딱 좋은 팀원이었다.
이권처럼 어떤 돌발행동을 할지 알 수 없는 인물도 아니었기에 마음 편히 던전을 돌 수 있었다.
하나 걸리는 게 있다면 던전 오류인데….
“뭐 어차피 둘이서 무사히 깨고 나오면 되는 거 아니겠어?”
이번 던전 오류를 겪고 꽤 자신감이 붙었다.
혼자 던전 오류를 깨는 것은 솔직히 자신 없었지만 신애와 함께라면 말이 달라진다.
궁합도 나쁘지 않았다. 둘 다 광역기가 없어서 조금 아쉬웠지만 나름 조합 자체는 좋았다.
이왕 생각난 김에 연락이나 해볼까?
-뚜르르.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이후….
전화를 받지 않았다. S급으로 재각성을 하고 나서 바빠졌을 거라고 생각은 했다.
혹시 몰라 함께 던전을 돌자는 문자도 남겼지만 몇 시간이 지나도 답장이 올 기색이 없었다.
설마 이제 유명해졌다고 나 몰라라 하는 건 아니겠지?
신애라면 그럴 리 없다며 부정했다. 그리고 답장은 다음 날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죄송해요, 한설 님ㅠㅠ 제가 요즘 이리저리 바빠서 던전은 한동안 못 돌 것 같아요!]기다리던 답장이었지만 내용은 반갑지 않았다.
하긴. 뉴스나 커뮤니티에서 신애의 이름이 매번 거론될 만큼 유명해졌으니 한동안 던전 도는 것은 무리일 수 있었다.
인터뷰니 길드 영입이니 해서 이리저리 불려나가느라 개인 시간도 없을 것이다.
“내가 이해해야지 뭐.”
분명 드래곤을 해치우고 퀘스트를 완수한 공은 내가 제일 컸는데 사람들의 입에서는 신애의 이야기만 오르내리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하지만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셔터세례를 받을 생각을 하니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 유명한 건 좋은 게 아니야, 악몽이지.”
던전은 글렀다 생각하며 집 청소를 하고 있을 때 독열 아저씨가 집으로 찾아왔다.
인터폰에 비친 아저씨는 나를 가르칠 생각에 신이 나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집으로 들어온 아저씨는 일을 막 마치고 바로 달려온 것인지 공사장에서 항상 보던 익숙한 옷을 입고 있었다.
“진짜 오셨네요.”
“그럼! 하루 하고 말 거면 왜 가르치겠냐! 반복이 가장 중요한 거야!”
이렇게까지 열정적으로 나오니 이왕 배우는 거, 제대로 한번 배워봐야겠다.
악보 보는 것은 곡을 연주할 때 나름 도움이 되니까.
인터넷을 뒤적이다 처음 듣는 곡을 똑같이 연주해내는 피아니스트를 본 적이 있었다.
그 정도 실력을 바라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도 음악을 듣고 간단한 멜로디 정도는 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항상 던전에서 계이름을 몰라 삑사리가 나던 게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아저씨는 그래도 교수까지 했을 정도의 전문가니 분명 도움이 될 것이었다.
“일단 저번에 했던 거 복습부터 하자.”
“바로 하프 안 하고요?”
“인마, 하프는 너 1년은 넘게 공부해야 제대로 된 곡 하나 연주할 수 있을걸? 게다가 니 목소리를 썩히는 것도 죄야!”
강경히 말하는 아저씨의 말에 어쩔 수 없이 전에 목을 풀며 노래 레슨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한참 레슨을 하고 있을 때였다.
띠동-
초인종이 울렸다. 인터폰을 확인하니 경비원이었다.
“무슨 일이세요?”
현관문을 반만 열고 말하니 곤란하다는 표정의 경비원이 허리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시끄럽다고 민원이 들어와서요. 죄송하지만 조금 조용히 해주시겠어요?”
“아.”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다. 집이 넓으니 노래를 해도 별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한 게 오산이었다.
전 집에서는 옆집 소음이 들리는 게 너무 당연한 일이었고, 혼자 노래를 부를 일이 없다 보니 이런 부분까지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조심하겠습니다.”
문을 닫고 아저씨에게 다가가자 대화를 다 듣고 있던 독열 아저씨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어휴, 노래 조금 불렀다고 민원이 들어올 줄은 몰랐네.”
하긴, 어제부터 노래뿐만이 아니라 하프를 그렇게 열심히 쳐댔으니 듣는 사람에겐 고역이었을 수도 있었다.
아저씨도 이럴 줄은 몰랐다며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지난번처럼 지인 찬스를 쓸 생각인 것 같았다.
“에고, 앞으로는 그냥 학교로 가는 게 낫겠다.”
“괜찮겠어요?”
혀를 차며 신발을 신는 아저씨를 따라나서며 물었다.
나는 상관없었다. 어디서 연습을 하든 피해볼 게 없었으니까.
하지만 아저씨는 입장이 달랐다. 아저씨를 알아보는 학생이 있기라도 한다면 다신 그 학교에 발을 못 붙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괜찮아~! 모자 쓰면 아무도 못 알아봐! 사람들은 남한테 생각보다 관심 없다.”
지하철로 이동을 하면서 수다를 떨자 금방 대학에 도착했다.
두 번째로 들어가는 곳이라 조금 더 익숙한 발걸음으로 연습실로 향했다.
“오늘은 여기다.”
음대로 가는 것은 똑같았지만 저번과 같이 좁은 연습실이 아니라 꽤 큰 공간으로 이동했다.
“이렇게 마음대로 써도 되는 거예요?”
“괜찮아. 그럼 그 좁은 연습실에서 하프 연주하게?”
지인 찬스란 좋은 거구나.
속으로 생각하며 아저씨와 다시 스파르타 레슨을 시작했다.
* * *
“야, 저기 연습실 가봤어?”
오늘도 어김없이 피아노 연습을 하러 온 갈색머리의 여학생은 자신에게 이리와 보라며 손짓하는 남학생의 말에 걸음을 멈춰 세웠다.
“무슨 일인데? 나 연습해야 해.”
“우리 하프 전공생 중에 저런 사람도 있었나?”
남학생은 어느 한 연습실 창문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바쁜 와중에도 호기심이 발동한 여학생은 동기의 말에 이끌려 같이 창문 안을 바라봤다.
“누구지? 처음 보는 사람인데?”
회색 후드티를 입고 있는 남자와 후줄근한 옷차림을 하고 안 어울리는 캡 모자를 깊이 눌러쓴 나이든 남자가 보였다.
화려하고 비싸 보이는 하프는 치지도 않고, 노래를 연습하는 모습이 언밸런스해 보이기까지 했다.
후드티를 입은 남자의 얼굴을 덥수룩한 머리카락에 가려 자세히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묘하게 지저분하게 기른 머리카락이 예술가같이 보여주는 효과가 있었다.
“누굴까?”
호기심에 눈을 못 떼고 있는 사이 후드티를 입은 남자는 일어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기교 없이 청량한 목소리가 연습실 너머로 들려왔다.
익숙한 멜로디. 애니메이션 인어공주의 OST였다.
영어 발음이나 박자 같은 부분이 완벽하진 않았지만 목소리와 잘 어울리는 선곡이었다.
화려한 기교에 익숙해져 있던 여학생은 남자의 노래가 익숙하진 않았지만 오히려 그랬기에 신선하고 듣기 좋았다.
영어 발음도 이제 들어보니 오버하며 굴리는 사람들보다 훨씬 나은 것 같기도 했다.
“와, 여자 키로 힘 안 들이고 그냥 불러 버리네.”
남학생의 감탄이 들려오자 여학생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연습을 하러왔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남자의 노래는 극찬할 정도로 잘 부른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묘한 마성이 있었다.
“나 이제 가봐야겠다. 다음 강의 얼마 안 남아서 촉박해.”
“어? 이제 하프 치려나 보다.”
몸을 돌려 자신의 본분을 다하려던 여학생은 남자가 치는 하프가 궁금해졌다.
저렇게 비싸고 좋은 하프의 주인이라면 연주도 수준급일 게 분명했다.
천상의 소리라고 불리는 하프의 연주를 놓치기 아쉬운 마음이 들어 결국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리고 여학생은 그 결정을 금방 후회하게 됐다.
“와, 초등학생이 쳐도 저것보단 잘 치겠는데.”
후드티 남자의 하프 실력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그리고 그날, 대한대학교 대나무숲에는 음대 하프남으로 익명 게시글이 여럿 올라왔다.
[음대 하프남 누구인지 아시는 분?] [하프남 노래는 잘 부르던데 하프실력은…. ㅋㅋㅋㅋ] [실력도 안 되는데 어떻게 하프 전공이지? 빽으로 들어왔나? 하프만 있으면 음대 들어올 수 있다는 썰이 진짜였나요?] [지나가던 음대생입니다. 하프 있다고 대학 못 들어옵니다.]* * *
레슨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전화가 울렸다.
요즘 따라 핸드폰 쓸 일이 많네….
전화를 받자 이제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설 군, 신혈 길드에 잠시 들려.”
이권이었다.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전화를 걸어 명령조로 말했다.
평소 같았으면 말을 돌리며 안 갔을 텐데, 이번만큼은 이권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보여 장단에 맞춰주기로 했다.
솔직히 도움만 받고 해준 건 없으니 계약 관계를 들먹이면 할 말이 없기도 했다.
그리고 나도 부탁할 것이 있었기 때문에 얌전히 신혈 길드로 향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거대한 빌딩숲에서 가장 크고 좋은 건물에 들어갔다.
통유리로 된 높은 빌딩 전체가 신혈 길드의 소유였다.
“백이권 만나러 왔는데요.”
들어가자마자 안내 데스크가 나왔다. 내부로 들어가려면 카드키를 찍고 들어가야 했기에 데스크에 용무를 말해야 했다.
“길드장님을요?”
안내 직원은 허름한 사내의 입에서 길드장의 이름이 나오니 의심스러운 듯 나를 위아래로 쳐다봤다.
긴가민가한 표정을 보니 따로 백이권이 말해 놓지 않은 모양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죄송하지만 따로 스케줄 잡혀 있는 것은 없네요. 길드장님과 약속 잡고 오신 거 맞으신가요?”
뭔가를 열심히 검색하던 직원은 최대한 밝은 미소를 지으며 질문했다.
기분 상하지 않게 대응하려 노력하는 것 같았으나 속뜻은 약속도 잡지 않고 난데없이 찾아와서 진상을 부리느냐는 의미였다.
“후, 그럼 그냥 간다고 전해주세요. 전 분명 왔었다고 전해주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