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85
86화
-선수들 (2)
와, 진짜 무데뽀네.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며 김은아의 공격을 슬쩍 피했다.
“어쭈, 피했어?!”
신이 난 녀석이 냅다 도끼를 표창 던지듯 내 쪽으로 날렸다.
“김은아! 그만해!”
태경이 은아에게 소리치며 내 앞을 막아섰다. 태경이 바닥을 발로 내리치자 흙이 올라와 방패막이가 되어줬다.
이거 자이언트 골렘을 상대할 때 봤던 스킬이랑 비슷하네.
태경이 나서줘서 몰래 꺼내뒀던 리코더는 사용할 일이 없어졌다.
“뭐야, 왜 말려? 어차피 실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알아둬야 할 거 아니야.”
언제 소환한지 모를 단도를 돌리며 은아가 못마땅하다는 듯 말했다.
“죽일 듯이 달려드니까 그런 거 아니야.”
피웅-!
팍!!
태경이 은아를 겨우 진정시키니 이번엔 구석에서 불화살이 날아왔다.
금방 눈치채고 피해 망정이지, 잘못했으면 정통으로 머리가 날아갔을 것이다.
“쳇.”
“공기태!”
화살이 날아온 쪽을 보니 공기태가 혀를 차고 아쉬워하고 있었다. 태경의 고함 소리가 크게 울렸다.
얘네랑 팀을 하라고? 길드대항전 치르기 전에 죽게 생겼는데?
“너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길드장님이 데려온 헌터다. 예의를 갖춰!”
팀의 리더 격인 태경이 지끈거리는지 이마를 부여잡고 신음을 흘렸다.
고생이 많겠군.
그나마 다행이라고 한다면 서현은 아예 이쪽에 관심조차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비교적 나이대가 어려 보이는 공기태와 김은아만 날을 세우며 공격태세였다.
“뭐 소개도 마쳤고 설명도 끝난 것 같으니 그만 가 봐도 될까요.”
나까지 이런 소리를 하니 더 이상 태경도 이 상황을 견딜 수 없는 것 같았다.
포기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난장판인 그 장소를 떠났다.
생각해 보니 이권에게 부탁할 것이 떠올랐던 나는 방화벽을 오픈하는 버튼을 누르며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야! 어디 가!!”
김은아의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이미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는 중이었다.
콰직.
엘리베이터의 틈 사이로 단도가 꽂혔다. 김은아가 날린 것이다.
엘리베이터가 닫히지 않았다면 정확히 심장에 날아와 박혔을 위치였다.
“저런 애들을 데리고 항상 1등을 해왔다고? 백이권도 대단하네.”
고개를 저으며 로비로 올라와 이권을 찾았다.
혹시 다른 층까지 뒤져야 하나 고민했는데 다행히 로비에서 다른 사람과 얘기를 나누는 이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기요. 잠깐 괜찮아요?”
이권에게 가까이 다가가 말을 걸자 차분한 인상의 안경남이 나를 돌아봤다.
“오, 이분이 그 한설 님이신가요?”
나를 아는 듯한 말투로 말하자 저절로 그쪽에 시선이 갔다.
“그렇지.”
안경을 들어 올리며 이리저리 나를 살펴보던 남자는 손을 내밀며 상큼한 미소를 날렸다.
“안녕하세요, 한설 님. 저는 백이권 님의 수행비서인 이명호입니다.”
“…한설입니다.”
오늘 인사만 몇 번 하는 거야.
조금 지친 기색을 보이며 볼일이 있었던 이권을 보고 말했다.
“혹시 괜찮은 드럼채 좀 구해줄 수 있어요?”
“그거야 어렵지 않지, 우리 계약자님께서 부탁하시는데. 그나저나 소개는 다 받았나?”
이권의 천진한 웃음을 보자 죽빵 한 대를 갈겨주고 싶다는 생각을 간신히 참았다.
참자, 드럼채 얻어야지.
“네. 다들 나사가 하나씩 빠져 있는 것 같던데요. 안경 쓴 분 빼고.”
“하하! 그럴 수도? 이렇게 빨리 그곳에서 도망쳐 나온 걸 보니 팀원들이 마음에 든 모양이네. 소개는 제대로 받았나?”
“예, 뭐. 어느 정도.”
“한설 군, 어느 정도 가지고는 안 돼.”
갑자기 이권이 웃음을 지우며 나를 내려다봤다. 위압감이 느껴지는 기운에 이놈이 또 왜 이러나 싶어 마주 올려봤다.
“내가 얼마나 열을 올리고 있는지 알고 있잖아.”
“…공기태는 불을 다룰 수 있는 궁수니 원딜이겠고, 김은아는 특이하게 무기를 소환하는 스킬이 있더라고요. 도끼나 단검 같은 무기만 사용하는 걸 보니 근딜인 것 같고, 안태경은 흙마법을 이용해서 마법사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단단한 방어막을 형성할 수 있는 걸 보니 탱커로서 자질이 있던데요. 문서현의 스킬은 못 봤지만 그 조합상 보나마나 힐러겠죠.”
한 텀 쉬고 함께 싸우게 될 팀원들의 정보를 술술 내뱉자 이권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뭘 더 바라?
팔짱을 끼며 계속하라는 듯 내 말을 기다리고 있는 이권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하아, 나를 팀원으로 낀 이유는 뭐…. 서포터의 역할도 있겠지만 안태경이 실질적으론 마법사여서 체력이 약해 완전한 탱커로서의 역할을 해줄 수 없으니 부탱커로 쓰려고 한 거겠죠. E급 서포터인데도 S급한테 맞고 멀쩡히 일어날 정도의 체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더해요?”
한숨을 푹 쉬며 주저리 나불대자 이권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살벌한 기운을 지웠다.
이렇게 귀찮게 굴 줄 알았으면 이 핑계 저 핑계대면서 거절할걸.
“와, 한설 님. 보기보다 머리가 잘 돌아가시는군요?”
옆에서 우리의 대화를 전부 듣고 있던 이명호가 박수를 치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럼 나를 어떻게 보고 있었단 건데?
이권은 스킬이나 능력이 좋다고 이렇게 심열을 기울이는 일에 함부로 선수로 투입시킬 인간이 아니었다.
S급 헌터더라도 팀의 조화가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면 뽑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나를 선수로 생각했을 때도 팀의 조화를 생각했을 것이다.
나머지 선수들의 반발심이 거셀 것이 분명한데도 나를 끼워 넣은 것은 여러모로 체력이 딸리는 선수들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근데 진짜 오해거든요? 사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네놈 공격에 멀쩡히 일어설 수 있었던 건 무적 효과 때문이란 말이야.
“정말 기대하고 있어. 그 수상할 정도로 강력한 체력이 없으면 계약한 의미도 없어지지. 안 그래?”
이권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대답을 강요했다. 손에 힘이 들어가 아팠다.
여기서 그런 만능 체력 따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하면 당장 죽일 것 같은 압박감을 뿜어냈다.
약한 게 잘못이지, 그래.
“제가 열심히 하지 않을 거라고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아서요. 길드대항전 열심히 해봅시다…!”
주먹을 쥐고 파이팅 자세를 하며 어색한 걸음으로 길드를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이제 어떡하지, 망한 것 같은데?
계약이 의미 없다는 의미는 언제든 계약을 파기하고 나를 죽일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살벌한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할 정도로 이 행사가 이권에겐 중요한 것이었다.
“그나마 스킬 중에 ‘삶과 죽음의 경계’가 있어서 다행이지.”
하지만 이권이 원하는 정도의 탱킹이 가능할지 확신할 수 없었다.
게다가 삶과 죽음의 경계는 아직 사용해 보지 않은 스킬이라 더욱 그랬다.
신혈 길드를 나와 고민에 빠졌을 때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누구시죠?”
“천존 길드에서 나왔습니다. 죄송하지만 같이 가주시겠습니까?”
신혈 다음엔 대안, 그리고 천존까지? 이젠 매화 길드도 나타날 기세인데?
오늘은 조금 지쳐서 거절하려고 몸을 돌리는데 검은 세단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차창이 내려가더니 그 안에는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중년의 남성이 나타났다.
“할 얘기가 있으니 함께 가지.”
딱 봐도 천존 길드의 길드장이라는 직감이 왔다.
저런 위압감을 내보낼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었다. 이권과 비슷한 기운을 내뿜는 것을 보니 더욱 확신이 들었다.
여기서 또 입을 잘못 놀렸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수도 있었기에 조용히 그가 말하는 대로 따랐다.
“갑자기 불러서 미안하네.”
“괜찮습니다.”
“내 이름은 진중권일세.”
“한설입니다.”
중권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분위기가 너무 어색해 숨이 막힐 것 같았지만 굳이 말을 내뱉진 않았다.
중권이 먼저 용건을 꺼낼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는 것을 선택했다.
“이번에 길드대항전이 열리는 것은 알고 있지?”
“네, 알고 있습니다.”
“방향을 보니 백이권이 이미 선수를 친 모양이고.”
“…네, 그렇습니다.”
선수들까지 인사를 마친 상황이었으니 이제 돌이킬 수 없었다.
만약 여기서 다른 길드의 선수로 들어가게 된다면 선수 정보를 유출하게 되는 것이니 이권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길드대항전이 아니더라도 다른 길드로 가는 것 자체를 용납하지 않을 녀석이었지만.
“나는 항상 늦는구만.”
씁쓸한 목소리가 생각에 잠겨 있던 정신을 깨어났다.
“다른 길드들은 언제나 정보가 빠르지.”
이번엔 중권이 깊은 생각에 빠진 것처럼 창문 밖을 바라봤다.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침묵을 지키는 그의 옆모습이 슬프게 느껴졌다.
“가장 늦은 건 아닙니다. 매화는 연락조차 안 왔는걸요?”
나름 위로랍시고 농담처럼 말했다. 중권은 내 말에 껄껄 웃으며 미소를 지었다.
“다른 사람의 기분을 맞춰줄 줄 아는 청년이군.”
천존 길드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략 회사가 경영권을 쥐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이미 늦은 걸 알면서도 자네를 부른 것은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기 때문일세.”
중권은 진지해 보이는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우리 천존 길드는 항상 다른 대형 길드들에게 뒤쳐져 왔다네. 그 가장 큰 이유는 거대 기업이 경영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지. 그들은 장사꾼들이지, 헌터가 아니야. 헌터 세계의 룰을 이해하지 못해. 그저 돈이 되는 것에만 몸을 움직일 뿐이다.”
중권은 침음을 흘렸다.
“정계와 연결이 된 대기업이기에 무언가를 시도해 보려고 해도 항상 막히고 말지. 천존의 변화를 원하지만 변화를 꾀하기엔 나는 너무 늙었어.”
진중권이 하고 싶은 얘기의 의도를 따라가려다 불길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거 말하는 뉘앙스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내 생각이 틀리기를 바라며 천진하게 웃어보였다.
“이렇게 정정해 보이시는데 늙기는요.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에 나이가 어디 있습니까?”
“허허, 그렇게 말해주니 기분은 좋구만. 젊은이가 입안의 혀처럼 굴 줄도 알고 말이야. 요즘 애들 같지 않아.”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권과는 다른 의미로 상대하기가 어려운 인물이었다.
뭔가 매순간 모든 행동을 평가받고 있는 기분이 들어 오싹해지는 기분도 들었다.
“과찬이십니다. 이번 길드대항전 선수들은 전부 지정하셨습니까?”
최대한 눈 밖에 나지 않으면서 주제를 돌리려고 노력했다.
“정하긴 했지. 그 후보 중 하나가 자네였는데 아쉽게 됐어. 자네같이 능력 있고 눈치 좋은 사내가 길드에 있으면 지금의 천존도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야.”
능구렁이 같은 할아범.
주제를 돌렸더니 곧바로 다시 능숙하게 원하는 바를 말하고 있었다.
이렇게 돌려 말하는 것을 원체 좋아하지 않아 점점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었다.
하지만 먼저 포기하고 원하는 바를 말하라고 하는 순간 그의 덫에 걸릴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끝까지 버텼다.
결국 진중권의 입에서는 피하지 못할 제안이 튀어나왔다.
“그래서 말인데, 자네가 내 후계자가 되지 않겠나?”
아니 다들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