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87
88화
-개막식 (1)
아예 그냥 ‘나 수상해요’ 광고를 하고 다녀라.
물론 팀원끼리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파악하고 있는 게 중요했다. 이권도 그러니 내가 탱커 역할을 할 거라고 알려준 것일 테지.
하지만 E급 서포터를 탱커로 세운다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되면 수상하게 여기고 뒷조사를 하는 사람들도 나올 것이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내 능력을 비밀로 하고 공성전만 열심히 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권은 나를 적극적으로 써먹을 생각인 것 같다.
나 같아도 선수로 차출한 외부 헌터를 놀게 두지는 않을 것 같지만, 이권은 내가 앞에 나서는 걸 싫어하는 걸 알고 있음에도 탱커로 잘 써먹겠다는 생각이었다.
그 심보가 괘씸했다.
“제가 탱커라고요?”
그래서 일부러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렇게 말하시던데요.”
“왜 그러셨지? 저 바드인 거 아시잖아요.”
눈을 크게 뜨고 순진한 표정을 지어 보이니 태경이 긴가민가해했다.
“아, 그러세요? 저는 이권 님이 그렇게 말씀하셔서 한설 님이 저희한테 직업 숨긴 건 줄 알았어요.”
“제가 직업 숨겨서 이득 볼 게 뭐가 있어요. 아, 혹시 던전 오류에서 살아남은 걸 보고 체력이 좋을 거라고 오해하신 건가?”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뒷머리를 긁적이는 태경을 보며 참 순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니네 길드장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 같냐?
신혈 길드 소속 헌터면서 이렇게 백이권에 대해 모른다.
“그래도 하라고 하셨으니 하시죠.”
얘 FM이구나.
결국 태경과도 모의 전투를 끝내고 나서야 지하연습실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당장 내일이 개막식이라 훈련을 빡세게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나를 제외한 나머지 팀원들은 모두 아직도 연습실에 남아 훈련을 하고 있는 거겠지.
그들에게도 이 길드대항전은 중요한 행사였으니 이해했지만, 나는 아니었다.
이렇게 빡세게 준비할 생각도 없었고 길드대항전에서 이름을 알리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오히려 반대로 알리고 싶지 않았다.
“내일이 개막식이라…. 나도 슬슬 준비해야겠네.”
천존과 신혈 두 길드의 선수로 행동하려면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었다.
“다음에 계약할 일이 있으면 길드대항전에 대한 조항도 추가해야겠어.”
한숨을 푹 쉬며 미리 예약해 뒀던 파티용품점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효원은 이번 길드대항전에 신애가 선수로 나온다는 얘기를 듣고 개막식 티켓을 끊었다.
이 티켓을 얻으려고 친구에 가족들까지 동원해서 난리를 쳤던 것을 생각하면 눈물이 날 지경이다.
“우와 저기가 경기장인가 봐!”
“대박! 진짜 크다. 그냥 섬인데?”
효원은 티켓을 구한 다른 친구들과 함께 경기장으로 향하며 그 웅장한 자태에 감탄을 했다.
길드대항전은 바다에 설치된 전용 경기장에서 실시된다.
도시에 피해가 갈 것을 우려해 길드대항전 전용 경기장을 바다에 지었다.
그 크기가 작은 도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거대한 경기장은 초승달 모양으로 되어 있었고, 섬의 주변을 거대한 벽이 둘러싸고 있었다.
인근 도시에 피해가 가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야, 너는 누구 보러왔다고 했지?”
효원은 친구의 질문에 주먹을 불끈 쥐며 외쳤다.
“신신애! 진짜 오늘만을 기다려왔다!”
“아, 이번에 S급으로 재각성한 헌터? 근데 너 백이권 보면 바로 갈아탈걸?”
“응, 아니야~”
서로가 덕질하는 헌터 얘기를 하며 메인 스타디움에 입성한 두 사람은 자신들의 자리를 찾아 착석했다.
이미 사람들은 좌석을 꽉 메우고 있었고, 특정 길드의 응원봉을 흔들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와, 완전 아이돌 응원봉 뺨치네?”
“너 몰라? 아이돌 팬덤보다 이젠 길드 팬덤 힘이 더 세.”
효원은 신세계를 경험한 듯 입을 다물지 못하고 화려한 응원봉과 플래카드를 보며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와아아-!!
개막식을 위해 TV만 틀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유명한 MC가 등장했다.
그의 주도하에 유명한 가수와 아이돌들의 축하 공연이 이어졌다.
“여러분이 목 놓아 기다린 길드 행진이 있겠습니다!”
와아아–!!!
사람들의 함성 소리에 메인 스타디움에 진동이 울렸다.
“이제 등장하나 봐!”
친구의 말을 듣고 4개로 뚫려 있는 입구에 집중했다.
대형 길드들이 각자 상징하는 색과 표식이 그려진 깃발을 들고 등장했다.
신혈 길드는 붉은색 깃발에 용이 그려진 깃발이었다.
맨 앞에 있는 사람이 그 유명한 백이권이었다.
“와, 진짜 잘생겼다. 사람이 저렇게 비현실적으로 생길 수가 있지?”
“내가 말했지? 백이권 보면 바로 갈아탈 거라고?”
“머리가 금발인 건 스킬 속성 때문에 그렇다던데. 진짜 예쁘다.”
효원은 신애에게 푹 빠지고 나서부터 자연스럽게 헌터에 대한 정보를 습득했다.
개막식 전날에는 그거로도 모자라 밤을 새가며 헌터 세계에 대한 지식을 섭렵했다.
점점 헌터 덕후가 되어가는 효원이었다.
“어? 저 사람….”
한참 신혈 길드의 등장을 구경하고 있을 때, 혼자 분위기가 다른 한 사람이 효원의 눈에 띄었다.
“마지막에 들어오는 사람도 신혈 길드 헌터인가? 처음 보는데?”
친구의 궁금증에 효원은 자세히 남자를 살펴봤다.
머리 길이가 눈을 덮고 있어 얼굴 생김새가 정확히 보이지 않았지만 어딘가 익숙한 남자였다.
“어, 저 사람 신애 님이랑 같이 있던 헌터인데?”
효원은 신애의 영상을 수백 번은 돌려봐서 알 수 있었다.
신애의 등장과 함께 옆에 있었던 후줄근한 남자. 신애만큼은 아니지만 E급 헌터가 던전 오류에서 살아 돌아왔다고 잠깐 들썩하게 만든 인물이었다.
“저기만 색이 우중충하냐. 웃기네.”
친구는 신혈 길드에서 잘못 뽑은 거 아니냐며 비웃고 있었지만 영상을 수백 번 돌려본 효원은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
‘영상보다 훨씬 나은데?’
그도 그럴 것이 효원이 본 영상에서의 한설은 거지꼴도 그런 거지꼴이 따로 없었기 때문이다.
옷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거적때기가 되어 있었고, 며칠은 안 감아 지저분한 머리에 이곳저곳 피가 묻어 기괴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지금은 값이 나가는 비싼 브랜드 옷에 멀끔히 정리된 머리였다. 훨씬 괜찮아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른 길드들도 나온다!”
친구의 관심은 어느새 다른 길드에게 돌아갔다. 작년 순위대로 길드들이 등장했기에 신혈 다음으로는 대안 길드가 나왔다.
남색의 깃발에 하얀 늑대의 그림이 그려진 깃발이었다.
“야, 니네 언니다!”
“어디!!”
효원은 친구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급히 돌렸다.
“헉!”
그리고 선수들 중 맨 처음으로 등장하는 신애의 화려한 모습을 보고 입을 틀어막았다.
‘너무 멋지잖아!’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를 하나로 높게 묶어 올린 검은 머리에 길드 상징색인 남색의 코트를 휘날리며 등장하는 모습에 효원은 기절할 것 같았다.
준비해 온 플래카드를 높이 들어 올리며 비명을 질러댔다.
대안 길드의 행진 뒤로 흰색 깃발에 분홍색 매화가 그려진 깃발을 들고 행진하는 매화 길드가 등장했다.
그리고 그런 매화 길드 뒤를 이어서 천존 길드가 등장했다.
“천존은 뭐 볼 거 있나?”
“유명한 헌터도 없잖아.”
주변에서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전체적으로 볼 때도 사람들의 응원이 조금 사그라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길드에 비해 천존이 비교적 인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볼 거 다 봤으니까 좀 앉아 있을까?”
효원의 친구마저 오래 서 있어서 다리가 아프다며 자리에 앉아 버렸다.
보라색 깃발을 들고 덤덤히 입장하는 진중권을 보며 효원은 조금 안쓰럽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4대 길드 중 하나인데 감흥이 없어도 너무 없는 거 아닌가?
“어? 근데 저건 뭐야?”
“어디? 어라, 선수 맞아?”
그때 웅성거리는 소음이 커졌다. 효원은 무슨 일인가 싶어 천존의 행렬 뒤를 쳐다봤다.
그리고 눈에 띄는 한 존재에 의해 눈동자를 크게 뜨고 말았다.
“토끼?”
* * *
“와 사람 진짜 많네.”
신혈 길드의 맨 뒷줄에 걸어가며 메인 스타디움의 관중석을 쭉 둘러봤다.
개미떼처럼 바글바글한 사람들을 보니 조금 질리는 기분이었다. 약간 속이 메스꺼운 것 같기도….
“그보다 녀석은 잘하고 있겠지?”
헛구역질을 하기 전에 관중석 보는 것을 멈추고 천존의 행렬을 바라봤다.
보라색 바탕에 독수리 그림이 그려져 있는 깃발 뒤로 눈에 띄는 한 인영을 바라봤다.
음, 아직까진 잘하고 있네.
사람들은 천존이 등장하자마자 함성을 그치고 웅성댔다.
그도 그럴 것이 맨 뒷줄에 묵묵히 걸어오고 있는 한 존재 때문이었다.
거대한 토끼탈을 뒤집어쓰고 아무렇지 않게 걸어오고 있는 녀석.
놈은 현지였다.
이번 길드대항전 동안만 내 대역으로 세우기 위해 잠시 소환을 했다.
헌터가 얼굴을 가리고 등장한 경우는 없어서 관중석이 술렁이는 것도 이해가 갔다.
보통 대항전에 참가하는 이유가 자신을 알리기 위함이 가장 큰데, 얼굴을 가리면 모두 소용없어지기 때문이었다.
“어어, 천존에서 재밌는 선수가 등장했군요…?”
MC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렸다. 행진이 끝나고 나면 선수 소개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난감했던 것이다.
아무튼. 녀석 덕분에 천존과 신혈 모두 출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현지에게 천설원이라는 가명을 지어주고 길드대항전에 참전하라고 말해 뒀다.
어차피 5차전을 모두 참가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백이권은 내가 길드대항전에 ‘참가’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니 마지막 공성전에만 참가하면 그만이었다.
천존이 원하는 것은 1등이었다. 이미 보수도 넉넉히 받아 버렸다.
“그럼 열심히 해줄 수밖에 없지.”
역시 대기업과 연결되어 있는 길드답게 보수의 액수가 남달랐다.
억 소리 나는 의뢰비를 보고 길드에 가입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흔들릴 뻔했다.
마력민감도가 높은 이권이 함께 참가하는 개막식과 폐막식 때만 신혈 길드에 있고, 나머지 실제 경기에서는 천존에서 뛸 예정이었다.
잠시 중권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하지만 1등은 약속드릴 수 없어요.’
‘왜지? 자신이 없는 건가?’
‘상대는 신혈이라고요. 백이권의 눈을 피해서 활약하는 건 하늘의 별따기예요. 대신 이번 대항전에서 어떤 길드보다 천존의 이름이 가장 많이 거론되게 하겠습니다.’
천존이 1등하는 것은 중권도 확신하지 못하는 일이었기에 그는 제안을 마지못해 받아드렸다.
일단 수상한 토끼탈로 주목을 받았으니 시작이 좋았다.
뭐, 진중권이 이런 기행을 바란 것은 절대 아니었겠지만.
대형 길드들의 행진이 끝나고 중견, 중소 길드들의 행진이 이어졌다. 정식으로 등록된 길드라면 모두 참여할 수 있었기에 어마어마한 숫자의 행진이 이어졌다.
행진이 모두 끝나자 MC가 대표 격인 4대 길드 선수들을 소개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가장 처음으로는 우리가 사랑하는 신혈 길드의 선수들입니다!”
거대한 함성과 함께 MC가 리더인 태경을 선두로 차례차례 소개했다. 거대한 전광판에 태경의 얼굴을 대문짝만 하게 등장했다.
“네! 마지막 선수는 외부 선수인데요, 무려 신혈 길드장, 백이권 씨가 직접 섭외한 선수라고 합니다!”
내 소개 시간인가.
거대한 전광판에 서현과 기태, 은아의 얼굴이 비춰지다 마지막으로 내 얼굴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크게 비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