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94
95화
-꼬리잡기 (1)
어젯밤 열심히 이곳저곳을 들쑤신 대가로 다음 날 아침, 피곤한 몸 상태로 아침을 맞이해야 했다.
다들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잠을 제대로 못 잤는지 다크서클이 내려온 녀석도 있었다.
“여러분도 A급 헌터잖아요. 뭘 그렇게 긴장하고 있어요.”
하품을 하며 타박하자 대수가 뒷목을 긁적이며 말했다.
“뭔가 우린 내놓은 자식 같은 느낌이라 될 대로 되라는 식이었어. 이렇게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경기에 임하게 될 줄은 몰라서…. 저절로 긴장이 되네.”
하긴, 커뮤니티나 사람들 반응을 봐도 천존은 4대 길드에서 내려와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세상 사람들의 반응도 이 정도인데 기운이 날 리가 없다. 반쯤은 포기하고 있었겠지.
“네가 들어오고 나서 분위기가 좋아진 것 같아. 처음에는 무시해서 미안하고…. 고맙다.”
대수가 쑥스러워하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뭐 아직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벌써 감사 인사야? 경기는 이제 시작인데.
“그런 인사는 대항전이 끝나고 하죠.”
“하하, 그렇지.”
되게 감성적이네.
대수는 민망한 듯 어색하게 웃으며 코를 긁적였다.
그런 대수의 행동에 찝찝해진 것은 이쪽이었다. 좋은 의도를 가지고 여기 있는 게 아니었기에 더욱 그랬다.
“저는 당신네 길드장과 약속했어요. 천존의 위상을 올려놓겠다고. 감사 인사 안 해도 그것에 대한 약속을 꼭 지킬 겁니다.”
돈도 받았는데 열심히 일해야지.
입을 열심히 놀리는 사이 꼬리잡기 경기가 진행되는 B구역에 도착했다.
B구역도 A구역 못지않게 넓었다.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거대한 고층 빌딩이 빽빽이 둘러싸인 빌딩숲이라는 것이었다.
“우와, 도심을 옮겨놓은 것 같네.”
선수들이 감탄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음, 자칫 잘못하면 길을 잃기 딱 좋겠네. 건물도 다 비슷하게 생겨먹어서.
B구역 입구에 선 사람들을 향해 스피커에서 MC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제 말씀드렸던 대로 꼬리잡기는 B구역에서 진행됩니다! 8시간 동안 다른 길드의 천을 빼앗으세요!”
구역에 도착하고 우리는 각 길드마다 시작 지점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나눠 받은 지도를 펼쳐보니 우리는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백화점에서 시작하게 되어 있었다.
우리는 천존의 색인 보라색 천을 각자 팔목에 동여맸다. 다들 각자 길드의 상징색의 천을 팔목에 매고 있었다.
카운트다운이 끝나기 전, 나와 천존의 선수들은 신혈 길드 쪽으로 이동했다.
“잘 부탁드려요.”
손을 내밀자 태경이 마지못해 마주잡았다. 얼굴은 억지로 웃고 있는 티가 역력했다.
다행이다, 나는 탈을 써서 표정 관리 안 해도 돼서.
태경처럼 티나게 웃을 거면 차라리 안 웃는 게 나을 것 같지만.
어제 떠오른 생각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는 신혈 길드와 동맹을 맺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제 대안 길드의 제안을 거절했기에 천존의 제안은 바로 거절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파급적인 제안을 내걸었기에 신혈도 거절하지 못했다.
“정말 어제 말했던 대로 해주시는 겁니까?”
태경은 악수를 마치고 놓으려는 내 손을 꽉 붙잡고 확답을 받아냈다.
“그럼요. 어제도 말했듯이 저희는 1등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대신 저희가 부탁한 것은 잊지 않으셨겠죠?”
“물론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걸로 되겠습니까? 그런 이상한 부탁으로 뭐가 달라진다고…?”
태경의 말에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토끼탈에 가려져 보이지는 않았겠지만 습관적으로 나온 것이었다.
“좋은 위치에 걸렸습니까?”
태경의 말에 제대로 대답하지 않고 시작 위치를 넌지시 물었다.
어차피 동맹을 맺은 거, 가까이에 위치해 있으면 좋았기 때문이다.
“아, 저희는 동쪽에 있는 회사에 걸렸습니다. 그쪽은?”
“완전 반대편이네요. 저희는 서쪽 백화점이에요.”
“행운을 빌어요. 나중에 봅시다.”
몇 마디를 더 주고받고서 우리 둘은 각자 길드로 돌아가 이동했다.
시작점에 도착하자 스피커에서 카운트다운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가 위치한 장소는 대형 백화점의 4층이었다.
아까 보니 우리와 같이 이 백화점에 배정된 길드들도 몇몇 있었다.
카운트다운이 끝나면 바로 달려가 바로 뺏어야지.
“와, 진짜 백화점을 가져다 둔 건가?”
성수가 감탄하며 백화점 내부를 슥 둘러보더니 말했다.
4층은 인테리어와 가구들을 파는 층이었는지 침대나 소파 같은 것들이 보기 좋게 놓여 있었다.
“아마 이것도 홀로그램일걸. 그 유명한 이혁일이 만든 거라던데.”
이혁일? TV에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이혁일이 누군데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대수에게 질문하자 이것도 모르냐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우리 정보를 수치로 볼 수 있게 해준 장본인이잖아. 유일하게 게임 시뮬레이터 능력을 가진 헌터! 이 사람 없었으면 헌터들 고생 많았을걸? 시스템, 불친절하잖아.”
그럼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시스템창이나 정보를 볼 수 있는 것도 다 그 사람 덕분이라는 건가?
그 사람의 능력이 얼마나 이 헌터계에 큰 영향을 끼쳤는지 모른다. 헌터 세계에서는 혁명 그 자체였을 것이다.
심지어 길드대항전에서까지 그 사람의 능력이 쓰인 거면 영향력이 대단한 인물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돈 좀 벌었겠는데? 좋겠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 보니 카운트다운이 종료됐다.
우리는 계획했던 대로 근처에 있는 낮은 등급의 길드를 찾아다녔다.
우리가 맨 처음 발견한 길드는 우리가 4층에 있는 것을 눈치챈 기세 좋은 중형 길드였다.
“크큭…. 여기 있었군, 천존!”
“오늘이야말로 대형 길드라는 타이틀을 내려놓아야 할 거다!”
다짜고짜 검을 빼들고 덤벼드는 녀석들을 보며 앞으로 나섰다.
워리어인 동우가 당황하며 내가 앞으로 나서는 것을 막으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서포터라는 인식이 머리에 박혀 있어서 말리는가 본데, 난 네 생각보다 강하다고.
허리춤에서 단도를 꺼내 들며 한꺼번에 덤벼드는 놈들의 공격을 가볍게 피했다.
생각보다 더 느리게 느껴지네. 주마등을 펼친 것도 아닌데….
여차하면 스킬을 쓸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필요 없을 것 같다.
“하앗!!”
정면 돌파하는 적의 팔목에 감겨 있는 천을 몰래 빼냈다.
스륵-
‘손목만 살짝 틀어서-’
하나 건졌고.
머리 위로 뛰어드는 놈은 더 쉬웠다.
“받아라!!”
휙-!
공격을 막는 척하며 단도로 손목에 있는 천을 잘라 버렸다.
그렇게 나풀거리며 떨어지는 천을 잡아채고 곧바로 몸을 틀어 오른쪽으로 파고드는 녀석의 팔을 잡아 꺾으며 손쉽게 나머지 천을 손에 넣었다.
“악! 내 팔!!”
그렇게 피 한 방울 보지 않고 3사람의 천을 순식간에 빼앗을 수 있었다.
맨날 나보다 강한 상대랑만 싸워서 그런가, 쉽네.
“어, 어라? 내 천!”
“내 것도 없어!”
“저 자식이!”
하하, 바보들. 해치운다는 생각만 하고 멍청하게 덤벼드니 그 꼴이 나지!
나머지는 더 간단했다. 체력이 약한 힐러와 마법사만 덩그러니 남아 있으니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빼앗을 수 있었다.
“천설원, 역시 대단하다!”
“서포터 아니지? 거짓말 친 거지!”
눈이 초롱초롱해진 팀원들이 다가왔지만 나는 그 눈빛을 무시하며 따로 챙겨온 가방에 천을 쑤셔 넣었다.
[천존 길드! 벌써 한 길드의 모든 꼬리를 빼앗았군요!]그때 스피커에서 우리의 상황을 지켜보기라도 한 듯 MC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니 곳곳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역시 여기서도 카메라는 피할 수 없는 건가?
[아! 그사이 신혈은 두 팀을 이겨 버렸습니다! 대단합니다! 꼬리의 수가 상당하겠군요~!]그냥 천 쪼가리인데 억지로 ‘꼬리’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네.
팔에 매여진 천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MC는 굴하지 않고 천 쪼가리에 이름을 붙이며 사람들에게 천이 꼬리라는 것을 인식시키고 있었다.
뭐, 꼬리든 천이든 그게 뭐가 중요해.
“저희도 슬슬 이동하죠.”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는 팀원들을 이끌고 신혈 길드와 미리 약속한 장소로 이동했다.
신혈 길드와 미리 약속한 장소는 건물 밖, 빌딩들 사이의 유일한 카페였다.
녹색 바탕에 흰 글씨였던 간판의 디자인을 떠올리며 건물 밖으로 무사히 빠져나왔다.
나오면서 3개의 길드와 더 마주쳤지만 모두 별 볼 일 없는 길드들이었다.
MC가 말하는 ‘꼬리’를 쉽게 차지할 수 있었다.
‘뭔가 그냥 대놓고 대형 길드보고 해치우라고 배치해 놓은 길드들 같은데.’
마주친 길드들 중에서는 우리가 전 경기에서 눈여겨보던 길드가 하나도 없었다.
총 참가 길드가 35개였던 것을 떠올리면 정보를 빼왔던 15개 길드들 중 한 길드 정도는 마주칠 법도 했다.
각자 시작점으로 향할 때 언뜻 봤는데 대형 길드들은 동서남북으로 누가 짠 것마냥 갈라졌었다.
이거, 랜덤이 아니라 누가 짜놓은 것 같은데?
대형 길드들이 마지막에 만나는 것이 시청률도 높이고 모양새가 좋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대놓고 위치를 조작한다고? 이래도 되는 건가?
게다가 백화점 안에 있을 때 빼고, 이후 가는 길목이 묘하게 한산했다.
“뭔가 영 사람이 나타나질 않네. 이거 나만 이상해?”
“나도 아까부터 느끼고 있었어.”
이상함을 눈치챈 것은 나만이 아니었는지 팀원들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이상함을 눈치챌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끊임없이 나오는 MC의 상황 설명이었다.
[매화 길드!! 역시 대형 길드는 뭔가 달라도 다르군요! 무시무시한 스킬입니다-! 다른 곳에서 분주히 전투를 치르고 있는 대안 길드도 만만치 않습니다! 바짝 신혈 뒤를 따라잡고 있네요!!!]대형 길드 중에 언급되지 않고 있는 유일한 길드가 천존이었다.
“이쯤 되면 의도된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네요.”
한숨을 쉬며 나지막이 말하자 다들 표정이 일그러졌다. 설마 했던 일에 쐐기를 박은 것이다.
“역시 그런가….”
“그런데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한 거야?!”
누구긴 주최 측이겠지.
“천존이 주최 측에 밉보일 만한 짓이라도 한 겁니까?”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 떠들어댔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우리 팀의 정보를 전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건 명백한 실수였다.
“아니야, 오히려 길드장님이 열심히 후원했다면 했지.”
“이거 분명 다른 대형 길드들이 벌인 짓일 거야! 그래도 우리는 대형 길드라고! 누가 감히 천존에게 덤비겠어?”
나름 일리 있는 말이었다. 대놓고 적대심을 가질 만한 단체라면 라이벌 구도에 있는 다른 대형 길드들이 가장 유력했다.
하지만 그건 아닐 가능성이 크지.
“비열한 자식들!! 어차피 우리는 꼴등인데 뭣 하러 우리한테!”
“다른 길드들은 아닐 거예요.”
“뭐? 어떻게 확신해?”
“말 그대로 우리는 꼴등이라 다른 대형 길드들이 굳이 주최 측을 포섭할 만큼의 가치는 없어요. 신혈 길드가 견제를 받는다면 모를까, 천존은 견제 대상도 아니죠.”
필터를 거치지 않고 나온 직설적인 팩트에 상처를 받은 모양이었는지 다들 표정이 굳었지만 사실이라 반박하지는 못했다.
“그럼 누구라는 건데?”
천존에게 적대심을 가진 단체라면 하나밖에 없지.
“천존의 경영권을 쥐고 있는 회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