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 put all-around bard RAW novel - Chapter 95
96화
-꼬리잡기 (2)
“뭐? 태산 말하는 거야?”
천존을 쥐고 있는 대기업 회사의 이름이 ‘태산’이었나 보다.
“태산일 리가 없어. 천존이 잘되는 건 그쪽에도 좋은 일일 텐데 왜 그런 짓을 벌이겠어?”
대수는 격하게 반응하며 절대 그럴 리 없다 확신했다.
하지만 중권과 차 안에서 긴밀한 속사정을 들은 나로선 태산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천존과 태산은 그래도 4년이란 시간 동안 함께해 왔어! 의리가 있지!”
동우가 버럭 외치며 부정했다.
너무 순진한 거 아니야?
나는 중권의 차 안에서 나눴던 대화들을 잠시 떠올렸다.
‘이번에도 성과를 내지 못하면 천존에게 두 번 다시 기회가 오지 않을 걸세.’
특히 중권이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내뱉었던 대사가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소리 같았어….
그런 말을 할 정도면 태산과 모종의 이야기가 오간 것이 분명했다.
대충 이번에 눈에 띌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면 천존이 완전히 태산에게 넘어간다는 거겠지.
“회사는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주된 목적인 단체입니다. 몇 년을 함께해 왔든 그건 그들에게 아무런 감흥 없어요.”
동우는 자신이 너무 감정에 치우친 말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얼굴을 붉히고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천존이 대항전에서 실적을 못 내면 태산에게도 안 좋은 것은 사실이잖아.”
대수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말했다.
“한설 님이 태산을 의심하는 것도 이해는 가는데, 너무 억측인 것 같아요.”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던 정환도 대수를 거들었다.
뭐, 내가 신경 쓸 일도 아니니 그냥 이쯤 할까.
어차피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이 없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천존이 해결해야 할 일이지, 당장 내가 할 일은 아니었다.
지금은 눈앞에 놓인 경기가 더 중요했다.
어차피 계획이 잘 들어맞는다면 이 판은 천존이 이길 것이었으니 태산이 무슨 함정을 파놨든 상관없었다.
“그냥 우연이겠죠.”
이렇게까지 얘기하니 나도 더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당장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한참을 걷자 높은 빌딩들 사이에 유일하게 색채가 느껴지는 카페가 등장했다.
아직 신혈 녀석들은 도착하지 않았는지 카페 안은 한산했다.
“와, 내부도 진짜 카페랑 동일하게 만들어놨네요.”
성수가 감탄하며 소파처럼 푹신한 의자에 털썩 앉았다.
가장 유명하고 인기가 많은 카페인 만큼 그 가격은 나같이 가난한 사람이 흔쾌히 부담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처럼 똑같이 구현해 놨다며 감탄할 수조차 없는 것이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생소한 곳이었으니 그다지 감흥도 없었다.
가끔 독열 아저씨가 주던 시원한 커피가 카페라는 곳의 향기를 잠시 상상해 볼 수 있는 전부였다.
“설마 안 오는 건 아니겠죠?”
“올 겁니다. 우리가 모은 꼬리를 주겠다는데 마다할 사람이 있겠어요?”
그렇다. 대안도 거절한 신혈이 우리와의 동맹은 그렇게 쉽게 받아드렸던 이유는 우리가 모은 꼬리를 전부 주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신혈 입장에서는 전혀 손해 볼 것이 없는 장사였다.
“우리가 너무 빨리 온 것 같긴 해.”
벌써 5시간이 지났는데 겨우 4팀밖에 만나지 못했다. 그것도 전부 백화점 안에서 만난 것이었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약속 장소에 빨리 도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근데 우리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걸까요?”
주변을 슥 둘러보다 주변에 카메라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불안한 목소리로 말하는 정환을 바라봤다.
누가 들어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것인지 대충 둘러봐도 길거리에조차 흔하게 널려 있었던 카메라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미디어에 노출이 많이 되는 게 천존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그래 봤자 속 빈 강정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어요. 사람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단호한 발언에 다들 꿀 먹은 벙어리처럼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들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같은 대형 길드인데 항상 주목받고 인기 많은 신혈이나 대안, 매화 길드와는 다르게 사람들은 천존에 어떤 헌터가 있는지조차 잘 몰랐다.
MC가 거의 언급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천존의 위치를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첫 번째 경기로 잠시 인기를 끈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숙소에 몰려든 것은 대부분 기자들이었고, 팬이었던 사람은 거의 없었지.
게다가 기자들도 매년 단 한 세트도 따내지 못했던 천존이 어쩌다 따낸 1차 경기에 놀라서 취재를 하러 온 것뿐이었다.
2차전에서 죽을 쓰고 중형 길드에게까지 점수에서 밀린 것을 확인하고는 귀신같이 발길을 뚝 끊어 버린 걸 보면 어지간하지….
“어, 누가 오고 있는데요?”
다들 단호한 내 말에 기가 죽어 침묵을 지키고 있었을 때 멀리서 다가오는 한 길드의 형체가 보였다.
“신혈인가?”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형체는 신혈이라고 하기엔 우락부락한 세 남정네의 형체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단 소리는 길드원들이 모두 여자라는 건데…?
“어, 신혈이 아니라 매화예요!”
젠장, 쟤네가 왜 오는 거야?!
오라는 신혈은 안 오고 엉뚱한 길드와 마주하게 생겼다.
그냥 지나쳐 가는 거였으면 좋겠지만 점점 그들의 발걸음이 카페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일단 숨어서 상황을 지켜보죠.”
“아니요, 맞서 싸우죠! 우리가 왜 숨습니까? 저희도 같은 대형 길드라고요!”
동우가 성을 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당장에라도 카페 문을 박차고 나가 싸울 기세였다.
내가 전달해 준 매화 길드의 정보는 초기화라도 된 거야?
움직임을 제한하는 스킬, 즉 CC기를 가진 헌터가 존재하는 한 우리에게 불리하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일단 우리는 그런 스킬을 가진 이가 없었고, 그것을 풀 수 있는 스킬을 가진 사람도 없었다.
기본적으로 세 대형 길드들은 CC기를 가진 헌터가 존재했다. 신혈에는 문서현이 있었고, 대안에는 신애 님이 있었다.
그리고 가장 무서운 CC기를 가진 사람은 단연코 매화의 고동색 머리, 희나였다.
그녀가 마음만 먹으면 움직임을 봉하는 것을 물론이고 생명까지 앗아갈 수 있었다.
그만큼 리스크가 크겠지만 그럼에도 위험한 스킬임에는 변함없었다.
“진정하고 잘 생각하세요. 힘의 차이가 아니라 스킬의 차이로 우리가 불리한 상황이라고요.”
최대한 어르고 달래려고 해봤지만 그들은 숨어서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선택지를 택하지 않으려 했다.
“숨는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잖아요.”
“싸우고 싶어요!”
다들 강경했다. 무기까지 꺼내 드는 것을 보니 작정을 한 것 같았다.
그사이 매화 길드가 카페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악기 공격을 사용할 수 있다면 싸워볼 만할 텐데…!
잠깐, 여기 카메라 없잖아?
“좋아요, 기습하죠. 일단 숨는 게 먼저입니다. 저번에 말했듯이 고동색 머리의 여자를 먼저 해치워야 해요, 아시겠죠?”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니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일사분란하게 흩어졌다.
끼익-
간발의 차로 카페 문이 열리고 매화 길드 녀석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와! 대박! 진짜 잘 만들어 놨잖아? 똑같다!”
“향기까지 똑같은 거 같은데?”
우리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아까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의자에 앉아보는 녀석들을 보고 안도했다.
“실제로 커피도 내릴 수 있을까요? 저 예전에 여기에서 알바한 적 있는데.”
“그렇게 말하니까 갑자기 아아 마시고 싶잖아!”
그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내가 숨어 있던 카운터 아래로 다가오는 혜진을 보면서 긴장했다.
아니 갑자기 경기 중에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사람이 어딨어?
“얘들아, 그래도 우리 경기 중이라는 거 잊지 말자?”
리더인 보라머리의 말에 혜진이 걸음을 멈췄다.
휴, 그나마 제정신인 사람이 하나쯤 있어서 다행이다….
“에이, 소리 언니~! 조금 쉬어도 될 것 같은데요. 저희가 지금 1등이잖아요.”
카운터에 팔을 걸치고 거들먹거리는 혜진 덕분에 다시 손에 땀이 나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그나저나 매화가 지금 1등이라고? 언제 대안이랑 신혈을 제치고 1등에 올랐지?
“운이 좋았지 뭐. 꼬리를 20개나 가지고 있던 팀을 만나서 전부 가져올 수 있었으니까.”
뭐야, 20개면 우리랑 똑같잖아? 우리가 진짜 사람들을 못 만나긴 했나 보네.
“그래도 긴장해. 거의 차이 없으니까.”
차라리 잘됐다. 신혈에게 우리 꼬리를 가져다주기에 양이 애매하다고 생각했다.
20개면 순식간에 순위가 바뀔 수준은 됐지만 우승을 쥐여 주겠다고 단언할 정도는 아니니까.
맞은편에 숨어 있던 성수와 눈이 마주쳤다. 방심하고 있는 지금이 기회였다.
서로 눈짓을 주고받은 뒤 성수가 맨 뒤에 있던 희나에게 달려들었다.
휙!
“하앗!!”
“뭐야! 천존?”
“꺅!!”
순식간에 희나의 뒤통수를 쳐서 기절시킨 성수는 곧바로 레이피어로 반격하는 리더, 소리와 대치하게 됐다.
성수가 튀어나옴과 동시에 숨어 있던 다른 팀원들도 나와 매화를 둘러쌓다.
나도 움직여야지. 이제껏 답답했는데.
“희나야! 이 자식!!”
카운터에서 튀어나와 인벤토리에서 이권이 선물한 드럼채를 양손에 쥐었다.
그리고 성수에게로 다가가려는 혜진의 뒤통수를 강하게 내리쳤다.
[생체 리듬 10% 분석 완료.] [공격에 성공하셨습니다! 공격력이 60%(+10) 증가합니다. 공격 시 상대의 방어력을 60%(+10) 무시합니다.]“윽!! 이 새끼들…!”
뒷머리를 잡고 고통스러워하는 혜진은 바로 자세를 잡고 소형 방패에서 칼을 빼냈다.
확실히 A급 헌터라 그런지 공격을 받아도 금방 정신을 차린다.
탱커이기도 하니 이 정도는 버틸 만하다는 거군.
“비열하게 숨어 있다가 뒤를 치다니!”
화가 난 것인지 소리의 눈빛이 차갑게 변하며 가장 체력이 부족한 힐러 정환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뭐가 비열하다는 거야? 그렇게 치면 힐러 먼저 공격하는 것도 비열한 짓이지!
어이없어하며 잠시 혜진을 두고 정환에게로 다가가 소리의 공격을 대신 받아냈다.
챙!!
윽, 저번에도 생각했지만 확실히 강력한 공격이네.
잘못하면 드럼채를 놓칠 뻔했다.
‘급하게 막으러 들어왔으니 자세가 흐트러지는 것도 당연하지만 그런 걸 배제하고서도 강하다.’
휙-!
“토끼탈…! 잘됐군, 여기서 닭꼬치로 만들어 주마!”
날카롭고 빠르게 찔러 들어오는 검을 간신히 피하며 타이밍을 쟀다.
유일하게 CC기가 없는 천존에게는 다행히 내가 있었다. 나에겐 신애의 ‘차가운 눈동자’가 있었으니까.
“너 이 자식, 감히 소리 언니한테!!”
챙-!
“네 상대는 나야.”
갑자기 소리에게 달려드는 내 모습을 보고 흥분한 혜진이 우리의 싸움에 끼려고 했지만 희나를 기절시킨 성수가 혜진의 앞을 가로막았다.
나이스, 성수.
다른 두 사람도 대수와 동우가 상대하고 있었다.
“차가운 눈동자.”
이 스킬의 단점이라고 하면 눈을 마주치고 있는 대상이 하나이기에 여러 명을 상대할 때는 불리하다는 점이었다.
그 불리한 점을 신애는 수호자의 영역을 활용한 순간이동으로 메울 수 있었지만, 나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다들 한 명씩 전담 마크해 주고 있는 상황이라면 쓰지 않기가 더 힘들었다.
“윽!! 몸이…!?”
넌 이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