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Rude RAW novel - Chapter 11
10
빛이 존재한다면 이런 얼굴일까.
처음, 위태롭고 처연한 그녀의 눈빛을 마주했을 때 그런 생각을 했었다. 꼭 까만 하늘 위에 별빛이 쏟아진 것 같은 찬연함을 눈동자에 박고, 나를 바라보며 일렁이던 그 얼굴을 오래 잊을 수가 없었다.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라. 아름답고 고아하단 말밖엔 할 수 없었던 얼굴이라.
정확히 말하자면 여자를 처음 알았던 건 그날 밤, 병원 옥상에서가 아니었다. 아마도 석상천이 징역 8년 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감 되던 그해, 처음으로 우연히 그녀의 바이올린 연주를 들었다. 나는 홀린 듯, 작게 열린 문틈 새로 신하경을 그리고 그녀의 연주를 숨죽이고 감상했다. 그 어떤 미사곡보다 성스럽고, 그 어떤 빛보다 반짝거리는 연주였다.
그렇게 나는 신하경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절대로, 나 같은 놈이 결코 범접할 수 없을 여자라고. 어딘가 신이 존재한다면 저 여자처럼 아름답고 고결한 모습일 거라고.
그러니 그날 밤, 그렇게 홀연히 내 눈앞에 떨어진 신하경을 나는 모른 체할 수가 없었던 거다.
빛을 등지고 살아왔던 내 삶에 어느 날 홀연히 정면으로 나타나 다가온 신하경은 그 자체로 이미 크고 심각한 변수였다.
해서 나는 그녀의 그 어떤 것도 예측하고 짐작할 수가 없었다. 충동적으로 내밀었던 내 손을 정말 잡을 줄도, 제발 저를 망가뜨려 달라며 내게 떼를 쓸 줄도, 이렇게 무자비하게 내 삶을 함부로 침범해 들어올 줄도, 전혀 알지 못했다.
신하경은 그렇게 예고 없이 들이닥친 소낙비처럼 매사 나를 당황케 했고, 몰아붙였고, 쉴 새 없이 휘저어 나를 나답지 않게 만들었다.
볼 때마다, 마주치는 매 순간순간 가슴이 졸아붙고 들썽거리게 만드는 여자. 잠시 잠깐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여자. 쉴 새 없이 마음을 들쑤시고, 머리를 어지럽히는 여자. 그래서 자꾸만 사람을, 나를 이상하고 낯설게 만드는 여자.
초여름의 싱그럽고 눈부신 햇살 같은. 내겐 정말로 이상하기만 한 여자.
“나, 좀, 하아….”
말을 채 잇지도 못하고 쓰러진 신하경을 들쳐 안아 차 뒷좌석에 뉘었다. 열 오른 얼굴에 쌔액 쌕, 뜨거운 숨소리가 요란했다. 갑자기 또 공황이라도 온 건가 싶어 두 뺨을 두드려 보았지만 겨우 떠올린 눈동자가 이상하리만큼 잔뜩 풀려 있었다.
익숙했다. 이런 눈빛을 잘 알았다. 소란하고 난잡하던 일터에서 이런 눈으로, 짐승처럼 뒤엉켜 아무 데서나 헐떡이는 남녀를 수도 없이 봤었으니까.
약을 먹은 것 같았다. 먹인 사람은 뻔히도 이규현일 터였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보지 못했던 상황이 눈앞에 생생히 그려지자 대번 입이 마르고 머리가 차가워졌다.
진작에 이 순하고 착해 빠진 여자를 데리고 어디로든 도망을 갔어야 옳았다. 아니라면, 정말로 감금이라도 해서 꼭꼭 숨겨 놓아야 했나. 같잖은 객기를 부리면서도 겁먹은 토끼처럼 몸을 움츠리고 떨어 대는 여자가 가엾어 그대로 두고만 봤던 내 잘못이었다. 불찰이었고, 판단 미스였다.
흐느적대며 자꾸만 땅으로 가라앉는 여자를 보고 있자니 적잖이 심사가 뒤틀렸다. 아니,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좆같았다. 치미는 감정을 제대로 제어하기 힘들 만큼.
기분 같아선 이대로 쫓아 올라가 이규현의 숨통이라도 끊어 놓아야 직성이 풀릴 성싶었으나 자꾸 내 옷자락을 움켜쥔 채 품으로 파고드는 여자 탓에 차마 그럴 여유를 부릴 수도 없었다. 더더군다나 무방비 상태의 여자를 이 꼴로 혼자 놔둘 수도, 누군가에게 맡겨 놓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엉망으로 풀어헤쳐진 드레스 아래로 드러난 가슴 위에 슈트 재킷을 툭 올려 덮고 운전석에 올랐다. 백미러에 비친 시허연 얼굴에 핸들을 바득 쥐었다.
끼이익.
바퀴 미끄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핸드폰 액정을 두드렸다. 두어 번 신호가 울리고 너머, 인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네, 이사님.
“이진수 건, 누가 맡기로 했어?”
– 네…? 아, 그거 그냥 택규 형님이 하신다고….
“내가 해. 회장님한텐 내가 직접 말할 테니까, 그런 줄 알고.”
– 네? 그런 일을 왜 직접…. 아니, 갑자기 무슨….
“갑자기 누굴 좀 죽이고 싶어져서.”
– 이사님?
“이진수 연락처 찍어 보내. 비서관이나 업무용 번호 말고 직통 번호로. 직접 통화하고 어디까지 가능할지 간 좀 볼 생각이니까.”
그대로 전화를 끊고 신경질적으로 액셀을 지르밟았다. 뒷자리에서 연방 작게 들려오는 앓는 소리와 끙끙거리는 숨소리가 거슬리다 못해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아서였다.
이진수와는 꽤 오래전부터 연이 있었다. 이진수의 첫 지역구가 석상천과 내가 있었던 은천이었던 까닭이었다.
내가 석상천 밑에 들어가기 훨씬 전부터 이미 이진수는 제 손으로 직접 하기 더럽고, 힘들고, 께름칙한 일을 석상천에게 맡겨 왔었고, 그 일의 다수는 내가 맡아 처리도 했었다. 그러므로 이진수는 나를 모를지 몰라도 나는 놈을 잘 알았다. 구제 불능의 인간 말종 이규현이 그의 아들이라는 것까지도.
신하경과 약혼을 했다는 남자가 이규현이라는 걸 알았을 때, 아니 그날 그 병실 앞에서 이규현과 맞서고 있는 신하경을 봤을 때. 그때 이미 직감을 했다. 어쩌면 꽤 평화로웠던 내 인생이 곧 급류에 휩쓸리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그리고 예감했던 그 급류가 지금 눈앞에 들이닥친 거였다. 하릴없이 마음이 바빠졌다.
탁.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축 늘어진 신하경을 다시 들쳐 안았다. 잠깐 사이, 몸이 더 뜨거워져 있었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찬물이라도 맞게 해야 하나. 발개진 뺨으로 쌕쌕대며 내 품을 파고드는 여자의 바르작거림에 긴 한숨이 샜다. 와중에 사타구니가 뻐근하게 기립하고 있어서였다.
“씨발….”
욕지거리를 짓이기며 곧장 욕실로 가 욕조에 작은 몸을 내려놓고 옆에 앉아 물을 틀었다. 차가운 온도에 놀랐는지, 내 셔츠 깃을 쥐어 당기는 손가락이 다급했다.
“열 좀 식힙시다. 꼴린 거 해결하려면 별 방법 없어.”
“흐으, 응…. 하아….”
다짜고짜 내 목에 팔을 깊이 두르고 매달리는 몸짓이 야릇했다. 허리를 비틀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허벅지 사이를 조여 대는 얼굴에 발그름한 열기가 가득했다.
“하, 강우, 씨, 나, 흐으…. 몸이, 너무, 하아, 더워요.”
입술을 파르르 떨고 안달하는 얼굴이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는 뻔했다.
그러나 아무리 이 몸에 미쳐 있다곤 해도, 약에 취해 헐떡거리는 것까지 받아 줄 마음은 없었다. 내키지 않았다. 이규현 그 새끼도 이 야릇한 얼굴을, 음란한 꼴을 봤을 걸 생각하면 도리어 열화가 일어서.
“나, 흐으으, 답답, 하아…. 흐응.”
어느새 얕게 차오른 물이 찰박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찬물에 몸을 담그고도 더운 열기를 주체 못 하겠는지, 신하경은 긴 드레스 자락을 허벅지까지 걷어 올리고 쌕쌕거리며 나를 올려다봤다.
커다란 젖가슴과 불그스름한 젖꼭지가 밖으로 다 튀어나와 있건만, 신하경은 지금 제 상태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듯했다. 얼마나 야하고 선정적인지. 위협적이리만큼 음란하고 자극적인지.
“약발이 아주 제대로네.”
짜증스럽게 욕조에 걸터앉았다. 그러곤 머리를 길게 쓸어 올리며 갑갑한 드레스를 벗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여자를 내려다봤다. 이런 단순하고 노골적인 유혹에 하릴없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 자체가 어처구니없었다.
왜 늘 이 여자에겐 이런 식으로 무너져 버리고 마는 건지.
“벗, 벗겨 줘요.”
신하경이 미간을 달싹이며 말했다.
“벗고 뭐하게.”
“흐으, 안아, 줘요. 나. 하아….”
“나, 뭐. 말을 똑바로 해.”
“하고 싶어. 흐으응.”
“뭘요.”
“하아, 하고, 싶어요. 백강우 씨, 나, 흐응.”
“뭘 하고 싶단 건데.”
“섹, 섹스. 흐으….”
기막혀 졸지에 헛웃음이 샜다. 와중에 발발 떠는 강아지처럼 귀여워 보이기까지 하는 걸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미쳐도 단단히 미쳤고, 발정이 나도 단단히 났다. 인남의 말이 옳았다.
정상이 아니다. 나도, 이 여자도.
몸이 달아 버둥대는 여자의 등 지퍼를 톡, 아래로 건드리자 하얀 드레스가 물속으로 푹 떨어져 내리고, 드레스만큼이나 뽀얀 신하경의 나신이 탐스럽게 드러났다. 돌연 바지 속 성기가 얼얼하게 부피를 키웠다. 여자가 원하는 대로 달아오른 몸 안에 내 것을 처박고 싶어졌을 만큼.
젖은 여체를 번쩍 안아 들어 세면대 옆 대리석에 올려 앉혔다. 그새를 못 견디곤 그녀는 끙끙 소리를 내며 내게로 손을 뻗어 왔다. 잠시도 떨어지기 싫단 듯이.
“하아, 얼른….”
“돌게 하네, 이 여자 정말.”
“흐으으….”
이제는 숨만 쉬어도 풍기는 야한 냄새에 눈앞이 어찔거렸다. 대체 약을 먹은 게 난지, 신하경인지 알 수 없어졌다.
“혼자 해 봐요, 그럼.”
나는 한 발짝 뒷걸음질을 치고 맞은편 장식장에 비스듬히 기대어 섰다. 내 말을 바로 알아듣지 못한 신하경이 기다란 속눈썹을 연방 파르르 떨며 나를 동그랗게 응시했다.
“혼자 해결할 줄도 알아야지. 아니면 나 없을 때 어쩌려고.”
이상한 장난기와 관음욕이 일었다. 나는 그대로 관망하듯 몸을 기대어 뒤로 젖히고 셔츠 단추 하나를 더 풀어냈다. 느긋한 척을 하긴 했어도, 내심 퍽 열이 올라서.
“내가 해 주는 것처럼 혼자서 해 봐요. 다리 벌리고, 기분 좋은 곳 찾아서 만지고, 구멍에 손가락 넣었다 뺐다.”
“하아, 강우, 씨, 흐….”
“하고 싶은 대로 해 보라고. 내 앞에서. 신하경 씨가 뭘 하고 싶은 건지 알아야 내가 원하는 걸 제대로 해 줄 거 아닙니까. 응?”
못된 심술이었고 유치한 장난이었다. 같잖은 종종걸음만 칠 뿐, 정작 나만큼 흔들리지도 않는 것 같은 신하경에게 부리는 억지이기도 했다. 아니, 실은 이 작은 여자 하나를 제대로 추스르지도 못한 나에 대한 분풀이인 건지도.
“하으….”
당황해 입술을 달싹거리는 신하경의 두 뺨이 더 보기 좋게 물들었다. 습습한 침묵이 맴돌고 나는 가만히 그녀를 응시했다. 얼마든지 기다려 주겠다는 듯이.
“…하….”
결국 치솟는 성감을 이기지 못한 신하경이 무릎을 세우고 다리를 넓게 벌렸다. 하얗게 벌어진 허벅지엔 지난밤, 내가 새겨 놓은 흔적들로 가득했다. 배꼽 아래 곧추선 성기 대가리가 욱신댔다.
“뭐해요. 쑤시라니까.”
내 재촉에, 입술을 앙다문 여자가 결심한 듯 발끝을 모았다.
젖어 붙은 팬티 천 조각을 옆으로 밀어젖히는 손길이 성말랐다. 하염없이, 애처롭게 흔들리는 동공과 달리, 벌써부터 시뻘겋게 익은 점막엔 축축한 물기가 흥건히 어려 있었다. 그저 가랑이를 벌렸을 뿐인데, 안쪽 깊숙이 고여 있던 애액이 주륵 엉덩이골을 타고 흘렀다.
그제야 내내 발정이 나 몸을 떨고 안아 달라 조르던 여자의 행동이 이해가 갔다. 더없이 음란한 광경에 고개가 모로 기울어졌다.
“하아….”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그 틈새를 가르고 한 겹 한 겹, 여린 살덩이를 들춰내듯 비비고 문질러 댔다. 절로 벌어지는 잇새에서 투명한 타액 줄기가 흘렀다. 음부를 제 손으로 비비고 만지는 것만으로도 쾌감이 느껴지는지, 그녀는 몸을 가늘게 떨며 신음했다.
나를 마주 보는, 반쯤 풀린 눈망울에 물기가 어렸다. 약 기운이 올라올 대로 올라온 것 같았다.
“흐으…. 하…. 아아.”
기어코 구멍 주위를 문지르던 손가락을 푹, 박아 넣자 시뻘건 점막이 파르르 떨리며 바뜩 오므라들었다. 가느다란 손가락 마디가 하나씩 안으로 자취를 감출 때마다 과한 욕망에 괴로워하며 몸을 떠는 여자의 신음이 더 짙어지고 있었다.
“아읏! 하….”
몇 번을 움직거리다 손가락 하나를 더 밀어 넣으려 버둥거리는 꼴이 영 어설프고 서툴기 짝이 없는데, 왜 그게 더 자극적으로 보이는 건진 또 모를 일이었다. 바지 속, 팽팽하게 발기한 성기가 갑갑하단 듯 꿈틀거렸다. 그대로 버클을 풀어내고 성기를 꺼내어 귀두를 움켜 쥐었다. 어쩐지 보고만 있으려니 내가 더 고문인 기분이라.
“아, 하으…!”
손놀림은 점점 성급하고 거칠어져 갔다. 요령도 없이 허투루 움직이기만 하는 손짓에 제대로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을 리 없었다. 아무리 쑤시고 움직거려도 간지러운 쾌감이 채워지질 않는지, 그렁그렁 물기가 차오른 눈가에 애원이 한가득 어렸다.
제발, 어떻게 좀 해 달라고.
신하경은 엉덩이를 들썩이고 나를 향해 울먹였다.
“으으, 하아!”
비뚜름히 기대 있던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그러곤 다가가 부러질 것 같은 무릎을 그러쥐고, 손가락 두 개가 빠듯하게 들어찬 구멍 속에 내 중지를 함께 푹 찔러 넣었다.
제 정점이 어딘지도 모르고, 헤매고 있는 손가락을 찾아 휘감아 찌르자 허리가 대번 튀어 올랐다. 구멍 속에서 겹쳐진 그녀의 손가락이 맥없이 미끄러지고 떨렸다.
“엉뚱한 델 쑤시고 있어요, 왜.”
“하읏! 응!”
“여기라고, 당신 느끼는 데는.”
“하아! 읏!”
“아직도 자기 보지 만질 줄도 모르고.”
“흐응! 이상, 하아…! 좋아, 아아!”
약 기운에 부풀 대로 부푼 내벽의 조임이 평소보다도 더 세게 느껴졌다. 멋대로 꿈틀거리는 점막을 긁어내듯 자극하며 찌르고 비벼 대자, 코끝에서 헐떡거리는 신음이 더 커졌다.
손가락 하나를 더 밀어 넣었다. 그녀의 손가락과 내 손가락까지, 총 네 개의 손가락을 삼켜 먹은 입구가 벌렁대고 물을 쏟아 낸다. 이미 한 차례 사정이라도 한 것처럼, 손바닥이 흥건해졌다.
“그렇게 좋아요?”
“하윽, 좋, 하아…! 아아….”
“야해 죽겠네. 봐요, 좀.”
여자의 몸을 그대로 들고 안아 거울 쪽으로 돌려 앉혔다. 거울 속에서 마주친 시선에 속눈썹을 떨면서도, 손가락을 악착같이 안으로 밀어 박고, 또 빼냈다 쑤셔 넣는 손짓이 여간 자극적이었다. 허리를 숙여 귓바퀴를 입에 물곤 애액으로 흥건한 손가락을 빼내어 바짝 솟은 젖꼭지를 돌려 비틀었다. 갈라진 신음이 더 짙어졌다.
“정숙한 아가씨가 거울 보면서 혼자 쑤시는 거, 누가 상상이나 하겠어.”
“하윽, 응….”
“도대체 뭘 얼마나 먹은 거야. 어?”
“하으, 아… 아아.”
신하경은 내가 찾아 준 정점을 연방 쑤시고 만지며 자지러질 듯 몸을 떨었다.
“아주 정신을 못 차리고 싸죠, 씨발.”
“하아! 아, 아!”
서툰 손가락 피스톤질에 속도가 붙었다. 이미 몇 번쯤 절정을 느꼈음에도 채워지지 않는 쾌감이 답답한 듯, 그녀는 울부짖듯 신음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저 목선을 따라 어깨를 깊게 빨며 그런 신하경을 지켜볼 따름이었다.
종국엔 안달이 난 그녀가 먼저 몸을 돌려 내 목에 안겨 들었다. 신하경은 척척히 젖은 가랑이를 내 아랫배에 밀착시키고 엉덩이를 흔들며 몸을 비벼 댔다. 배에 붙어 꺼떡거리는 귀두 위로 여자의 엉덩이가 찰박하게 문질러졌다. 미끄덩거리는 살결의 감촉과 미적지근한 애액의 온도가 머리를 텅 비운다.
“하으, 강우, 씨, 나, 하아, 해 줘요. 미치겠으니까…. 하….”
“어쩌죠. 콘돔이 침실에 있는데.”
벌름대는 입구를 둥글게 문지르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신하경의 눈꼬리에 그렁그렁, 애처로운 물줄기가 맺혔다.
“하, 필요 없어, 하아!”
“왜 필요가 없어. 그렇게나 꼬박꼬박 챙기더니. 그러다 내 정액 먹고 임신하면 어쩌려고요, 신하경 씨.”
“아아, 흐으, 괜찮, 하아…!”
내 목에 매달린 팔에 힘을 풀고 엉덩이를 내려 연방 내 좆을 먹겠다 애원하는 여자의 안달에도 나는 부러 느긋이 굴었다.
“쌩으로 박아?”
“아, 으응…. 그냥, 하아.”
“안에 싸 줘?”
“하윽, 싸, 줘요, 흐응, 얼른, 아흐!”
“안에 쌌다가 임신하면.”
“흐으, 괜찮, 으으으.”
“정말 괜찮아요?”
“응, 임신, 할래, 아흣!”
끙끙거리는 꼴이 귀엽기도, 안쓰럽기도 해 헛웃음이 샜다. 몸을 내려 천천히 대리석 의자 위에 걸터앉기 무섭게 엉덩이를 들썩인 신하경이 제 가랑이 사이에 내 귀두 끝을 맞춰 푹 꿰었다. 성급했다.
“아흑! 아, 읏!”
열 오른 성기가 찌릅, 소리를 내며 쭈욱 빨려 들어갔다. 뜨겁게 부풀어 있던 점막이 환희하듯 귀두를, 기둥 전체를, 뿌리까지 뽑아낼 듯 물어 조였다.
연방 몸을 떨면서도 가득 채워진 성감에 어쩔 줄 모르고 엉덩이를 들썩이고, 허리를 튕기며 성기를 먹어 치우는 여자가 기특해 뒷덜미를 길게 쓸었다. 그것마저도 자극이 됐는지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정신없이 뺨을 비볐다.
나는 그녀의 엉덩이와 허리를 단단히 받쳐 든 채 부푼 입술을 삼켰다. 한가득 고여 있던 달큼한 타액이 와락, 내 입 안으로 넘어 들었다. 몸이 완전히 겹쳐지자, 신하경은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속도를 빨리해 움직였다. 살과 살이 찰싹찰싹, 부딪치는 소리가 욕실 전체를 공명했다. 끊어질 듯 옥죄는 성기의 자극에 골이 다 울렸다.
“천천히 해요. 이러다 일 나겠어.”
입술을 떼어 내고, 땀으로 흠뻑 젖은 머리칼을 쓸어 넘겨 주며 속삭이자 그녀는 괜찮단 듯 연방 도리질을 쳤다.
“아니, 내가. 내가 안 괜찮다고.”
“난 너무, 하으, 좋아요, 하아, 아아! 아흑!”
“뭐가 얼마나 좋길래 자지를 끊어지게 씹어 먹는지 모르겠네.”
“하으, 아래가, 쌀 것…! 당신, 거, 너무, 커서 아흣! 하으응!”
“말 똑바로 하랬지. 깡패랑 떡 치면서까지 고상 떨지 말고.”
“아, 자지, 당신, 거 너무, 꽉 차서, 기분 좋아. 하아!”
완전히 초점이 흐려진 눈빛과 정욕에 취해 살풋 일그러진 미간. 눈물과 땀 그리고 타액으로 범벅이 된 여자의 얼굴이 눈앞에서 흔들리는 감각이 황홀했다.
“그래서 뭐. 어떻게 하고 싶어요?”
“하아, 더, 아흣!”
“어떻게 해 줘요, 내가.”
“안에, 하아, 강우 씨 정액, 싸 줘요, 하아…!”
자꾸만 웃음이 샜다. 나를 조르는 여자의 천박한 애원이 사랑스러워서.
나는 그녀를 다시 번쩍 안아 들고 섰다. 두두둑 솟은 성기의 핏줄이 또렷이 그녀의 내벽을 긁고 지날 때마다 예민한 점막이 차지게 조이고 감겨 붙는 느낌이 선연했다. 정액을 쥐어짜듯이, 끝까지 붙어 달려 나와 시허연 물을 뚝뚝 흘려 댄다.
그게 꼭 나를 붙잡는 것 같은, 시답잖은 착각마저 일으켰다.
“완전히 미쳤네, 신하경 씨. 응?”
“하으, 아, 아아!”
탁, 탁, 탁. 장골이 엉덩이와 허벅지를 아프게 치고 지나며 새빨간 흔적을 만드는데도 신하경은 아랑곳하지 않고 악착같이 내 목에 매달려 엉덩이를 흔들었다.
종국엔, 얕게 이는 쾌감을 더 이기지 못해 자비 없이 쾅쾅, 못질하듯 성기를 박아 넣자 여린 몸이 파르르 자지러지며 경련했다. 벌름거리며 좆을 빨아 재끼는 내벽의 열기가 지글지글 끓었다.
“더, 깊이, 더, 세게, 박고 싶은데, 씨발….”
갑갑해 욕지기가 치밀었다. 아무리 힘을 주어도 더는 들어갈 리 없는, 무식한 내 성기의 크기가 불만스러움을 넘어 짜증스럽게 느껴졌다.
뭘까, 이 여자는. 남루하고 하잘것없어 무료하게까지 느껴지던 내 세계를 매번 이렇게 뒤집고 헤집어 놓고야 만다.
“하아, 기, 깊어, 갈 것, 같, 아흣! 응!”
새빨갛게 해진 젖꼭지가 셔츠를 연방 스쳤다. 열에 달떠 어쩔 줄 모르는 그 서툰 몸짓에 도리어 사정감이 차오른다.
“후, 너무 조인다.”
그대로 그녀를 높이 들어 안은 채 목덜미에 치아를 박고 물었다. 달큼한 살냄새를 깊이 들이마시며 좁은 공간 속에 내 전부를 고집스레 욱여넣었다. 신하경의 손끝이 내 목덜미를 할퀴고 지났다.
규칙적인 마찰에 쓸려 열 오른 살덩어리가 안쪽 깊은 곳에서 미적지근한 물을 한가득 쏟아 낸다. 내 전부를 깊이 품은 여자의 몸 안에서, 모든 게 녹는 것만 같았다.
“아흐, 응!”
후드득, 발등 위로 진득한 체액들이 쏟아져 내렸다. 여전히 내 성기를 쥐어짜듯 조여 대는 그녀의 음부로부터 점성 높은 체액이 끊임없이 밀려 샜다. 그럼에도 신하경은 매달려 안긴 아이처럼, 자꾸만 내 품을 파고들며 쌔액 쌕, 울음 섞인 신음을 토해 냈다.
“으흑, 했는데…. 했는데도 이상해요, 계속, 몸이…. 하아.”
“큰일 났네, 이 아가씨.”
픽,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아랫입술을 쭉 빨아먹자, 억울하게 아래로 휜 눈꼬리가 다시금 물기를 머금는다.
“나 없었음 어쩔 뻔했어.”
“흐으윽, 몰라, 하아.”
“그러니까 앞으론 아무거나 덥석덥석 받아먹지 말고.”
“흐응….”
“그 개자식이랑도 마주치지 말고. 어?”
입술을 짓깨물고 고개를 끄덕거리는 얼굴이 꼭 아이처럼 말갛다. 기분이 이상했다. 지금 이 순간 이 여자에게 꼭 나밖에 없는 것 같아서. 하등 아무 쓸모도 없던 내가 퍽 중요한 존재나 된 것 같아서.
이상한 여자.
“나아, 하아, 하고 싶어요. 또.”
나를 보채듯 셔츠 자락을 감아쥔 손가락에 꼬옥, 힘이 들어갔다. 돌이켜 보면 계속해 내가 이 여자를 잡은 게 아니라, 이 여자가 나를 잡은 거였다. 지금처럼.
말간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다 다시금 붉은 입술을 혀로 길게 핥아 올렸다. 입 안 가득 야하고 달큼한 향이 퍼져 머리끝까지 진동했다.
여자를 높이 올려 안았다. 난잡하게 벌어져 체액을 흘리는 아랫입을 손으로 쉬지 않고 지분거리며 침실로 향했다. 아직도 질구 가득, 허옇게 고였던 정액이 음모를 타고 뚝뚝 흘렀다.
“당신 하고 싶을 때까지 해. 자지는 얼마든지 대 줄 테니까.”
그대로, 식지 않은 살덩이를 다시 푹 찔러 넣었다.
“하윽!”
작은 손이 목에 바득 감겨든다. 타박, 타박. 발을 내디딜 때마다 흔들리는 여체가 반동처럼 왔다갔다, 앞뒤로 움직였다. 장골에 치받힌 여자의 음부가 기둥에 차지게 달라붙는다. 그런데도 여자는 더더욱 필사적으로 내게 매달려 안길 따름이었다. 떨어지면 무슨 일이라도 나는 사람처럼.
아무래도 크게 착각을 했다. 큰일은 내가 난 건지도.
***
우당탕!
명패가 눈앞에 날아들었다. 가슴팍에 툭 맞고 추락한 명패가 한 번 더 날아 기어코 손등을 찢었다. 동강 난 돌덩이가 바닥으로 너절하게 나뒹굴었다. 벌어진 살갗에선 붉은 핏물이 스며 나왔다. 한 발짝 뒤를 지키고 있던 인남이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들며 다가왔으나 나는 받지 않았다.
“건방진 새끼!”
석상천이 노기 가득한 목소리를 걸근대며 다가섰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이 흉하게 구겨졌다.
“오냐오냐했더니 이제 아주 대놓고 기어올라.”
“언짢으셨다면 죄송합니다.”
“뭐, 언짢으셨으면? 이 새끼가…!”
“아무래도 걱정이 돼서 드린 말씀입니다. 이진수 말만 믿고 일 벌였다 뒤통수 맞은 인간들이 워낙에 많잖습니까.”
부연에 더 기분이 상했는지 석상천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뭐? 그놈이 나한테 공사라도 친다, 그런 소리야?”
차마 아니란 답을 하지 못했다. 작금의 상황이 누가 봐도 그런 꼴로 흘러가고 있으니까. 설득은 바라지도 않았다. 당장 석상천 결정 하나에 달린 입이 나 하나뿐이 아니란 사실이나 그저 인지시키고 싶었을 따름이었다.
“천하의 이 석상천이가 병신처럼 호구나 잡혔다. 뭐 그런 소리냐고, 이 건방진 새끼야!”
“회장님.”
급기야 책상 위 유리컵을 집어 드는 석상천을 이택규가 성의 없이 말리고 나섰다. 미동 없이 선 나를 죽일 듯 노려보는 늙은 여우의 눈초리가 매서웠다.
“너 요즘 그래서 몸 사리는 거냐? 먹고살 만큼 키워 놓으니 이젠 이게 배때기가 불러선.”
오랜 시간, 어지간해선 석상천의 말에 토를 달거나 반대 의견을 내비친 적 없긴 했다. 어차피 저당 잡혀, 덤으로 사는 인생이었으니까. 어차피 구제 불능인 내 인생 하나쯤은 어떻게 된대도 상관없었다.
다만, 의도치 않게 내게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인생들을 떠올리면 더는 참기가 어려웠다. 석상천의 작당도 작당이었지만 그 곁에 이택규가 문제였다. 며칠 전엔 하마터면 그 때문에 인남의 수하가 팔 하나를 잃을 뻔했다. 이택규의 말 한마디에 또 다른 놈 하나가 제물처럼 끌려 나가야 했던 것도 바로 오늘 아침 일이었다.
“부탁드립니다. 저희 애들 부르실 땐 저한테 먼저 말씀해 주십시오.”
애초에 석상천에게 대단한 의리와 보상을 바란 적도 없지만, 이렇듯 빨리 턱밑에 칼까지 들이밀 거라곤 예상 못 했다. 적어도 멍청한 짓을 대놓고 할 위인은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한데 오판이었다. 석상천은 늙었고, 판단력은 전보다 흐려졌다. 예의 그 총기 넘치던 모습은 오간 데도 없이, 그저 탐욕스러운 늙은이일 따름이었다.
“저희 애들? 허, 이 새끼가.”
석상천이 사납게 웃었다.
“동생 병원비만 대 주면 뭐든 하겠다고 발발 기던 놈이, 내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하던 새끼가, 배 좀 불렀다고 간이 콩알만 해져선 일 골라 가며 하고. 이젠 이사 새끼들 다 구워삶아 놨다 이거지?”
“…….”
“엊그제 이진수랑 직접 통화까지 했다며. 왜. 그 뱀 같은 놈이, 나 밀어내고 너 회장으로 앉혀 주겠다던?”
이제는 숨기지도 않고 노골적으로 내심을 드러내기로 한 건가. 아니. 그냥 더 숨길 이유가 없어졌을지도 몰랐다. 문 앞을 지키고 선 이택규의 음흉한 눈빛이 나를 비웃었다.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이미 나를 밟기로 마음먹은 인간의 귀에 무슨 말이 들릴까 싶어서.
“배은망덕한 새끼.”
사나운 욕지거리가 귀에 알알이 꽂혀 들었다.
“내 업보지. 내 손으로 늑대 새끼를 키워 놨다, 내가.”
애초에 사냥개로 키워진 종자는 결코 늑대로 살 수 없다. 사냥개로 들여져 똥개처럼 부려지다 종국엔 버림받게 될 운명. 그에 동의해 나는 13년 전 석상천의 손을 잡았다. 하니 이제 와 그 운명에 맞설 생각도, 의지도 없는 게 당연했다. 내 손으로 택한 운명이었으므로.
석상천이 어디까지 나를 내몰 작정인 건지 알 수 없었으나, 고백하자면 나는 기꺼이 내몰려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내 사람만, 내게 달린 이들의 인생까지 망치진 않겠다 약속만 해 준다면 말이었다.
지이이잉.
금세라도 깨질 것처럼 위태로운 정적을 깨고, 때마침 석상천의 핸드폰이 요란히 진동했다.
“가 보겠습니다.”
때를 틈타 짧게 묵례를 하고 돌아섰다.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 석상천을 뒤로하곤 갑갑한 공간을 단박에 걸어 나왔다.
쿵, 소리가 나며 문이 닫히기 무섭게 인남이 다시 손수건을 들이민다.
“병원, 안 가 보셔도 괜찮겠습니까?”
빠른 걸음으로 긴 복도를 따라 걸으며 손수건을 받아 쥐었다. 벌어진 살점에서 배어나는 시뻘건 핏물을 꾹 눌러 막았다.
“이규현이 마킹은.”
“특이 사항은 없습니다.”
“그럼 오늘 밤에 하자. 시간 없다.”
“오늘이요? 그전에 회장님 오해부터 푸셔야 하지 않을까요? 이진수랑 이사님 사이를 계속 이렇게 오해하시면 상황이 더 힘들어질 건데….”
“푼다고 풀릴까.”
“그래도 하는 데까진 해야….”
“너 그만 나갈래, 인남아?”
“…네?”
“그래도 이택규보단 네가 낫잖냐, 객관적으로. 회장님 엄청 반가워하시겠는데, 어때.”
“형님!”
픽, 웃음이 났다. 이사님, 이사님, 잘만 부르다가도 다급해질 땐 습관처럼 형님 소리가 나오는 걸 보면 어지간도 한 놈이긴 했다.
“정말 왜 이러십니까. 연우 생각도 하셔야죠.”
“연우는 너 있잖아.”
“…하.”
“어떻게 제 오빠보다 널 더 기다리더라. 이래서 키워 봤자 아무 소용도 없지.”
“형님, 정말….”
“지쳐서 그런다, 이젠.”
“…….”
“다 피곤해. 아등대고 버텨 봤자 뭐하냐. 못 볼 꼴이나 더 볼 거고.”
로비를 나서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도 라이터 불을 가져와 붙여 주는 인남의 얼굴에 근심이 그득했다. 덩치는 산만 한 놈이, 이럴 때 보면 세상 어린애가 따로 없었다.
“신하경 씨는 어쩌시고요.”
치이익, 소리를 내며 타는 담배를 빨아들이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돌연 인남의 입에서 나온 여자의 이름에 기분이 묘해졌다.
“이규현 일, 신하경 씨 때문에 직접 맡으신 거잖습니까.”
스물둘이었으니, 벌써 6년이나 됐던가. 문득 인남과 처음 만났던 때를 떠올렸다. 처음부터 이런 놈이었다. 겁은 없는데 순하고, 입은 무거우면서도 눈치는 또 빠르고.
“아십니까? 요즘 형님 많이 달라지신 거.”
“뭐가.”
후우. 길게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재차 물었다.
“뭐가 달라졌는데, 내가.”
“확실히 사는 데 미련이 좀 생기신 것 같습니다.”
뜻밖의 이야기에 고개를 돌려 인남을 마주했다.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언제 죽어도 상관없는 사람처럼, 아니 죽고 싶어서 안달 난 사람처럼 이러시는 거. 솔직히 보는 저희가 다 불안해 죽겠어서….”
“징징대, 지금? 죽는 게 겁나면 일 관둬야지.”
“네. 전 좀 많이 겁납니다. 이러다 정말 큰일 치를까 봐요. 형님 잘못되시면 저흰 다 어쩌라고요.”
“그래. 깡패 중에 너 같은 쫄보도 드물다. 응?”
“그거 다 신하경 씨 때문 아닙니까?”
“뭐?”
어이가 없어 코웃음을 치며 눈썹을 쓸었다.
“그냥 다 형님 하시고 싶은 대로 하시죠. 저나 애들, 언제든 준비하고 있습니다.”
“까분다, 또.”
“더 솔직히 말씀드리면 신하경 씨한테 고맙습니다, 저는. 일단 살겠단 마음이 있어야 복수든 반격이든 뭐든 할 텐데, 그동안 형님은 늘 죽을 생각만 하셨잖습니까.”
운이 좋으면 일을 하다 칼에 맞아 죽거나, 흠씬 두들겨 맞아 죽거나. 그도 아니면 어디 밤길을 걷다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선 드럼통째로 땅에 파묻혀 죽게 될 거라 생각했다. 불운하게도 아직 그럴 기회를 얻진 못했지만.
그게 인남의 눈에도, 다른 애들 눈에도 선명해 보였던 모양이었다. 내가 그 불안을 심었으니 미안하단 말이라도 해야 하건만 쉬이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워낙에 면목이 없는 까닭이었다.
인남은 늘 내가 제 은인이라며 떠들어 댔으나 실상은 지금껏 내가 놈에게 신세를 지고 살았다. 인남이 아니었다면 연우를 믿고 맡길 사람조차 없었을 테니.
“옆에서 보고 있는 제가 다 억울해서 그럽니다. 7년 동안, 큰형님 들어가 계시는 동안 조직 누가 다 정비했습니까. 동네 양아치들이 운영하던 구멍가게, 이만큼 멀끔한 회사로 키워 놓은 게 누굽니까? 이거 다 형님 성과인데, 따지고 보면 이 회사 형님이 만들어 놓은 거나 다름없는데, 인제 와서 형님이 이런 취급 당하는 게 저는 너무 어이없고 억울….”
“그러게, 인마. 억울하면 그만하라니까 왜 고집을 부리냐고.”
“형님!”
“아니고, 이사님.”
“하….”
“땅 꺼지겠다, 새끼. 헛소리 그만하고, 이따가 이규현이나 시간 맞춰 데려오라고 전해.”
담뱃불을 비벼 끄고 다시 발을 뗐다. 인남은 뭐가 그렇게 억울해 죽겠는지, 땅이 꺼져라 긴 한숨을 내쉬면서도 바짝 나를 뒤따랐다.
왜 모르랴. 다 나란 인간 하나 때문에 짊어지고 있는 것들을.
차에 오르고, 달카닥 문이 닫히기 무섭게 핸드폰이 울렸다. 액정에 뜬 이름, 신하경이란 세 글자를 한참을 바라보다 손끝으로 메시지를 클릭했다.
바빠요, 많이?
짧은 메시지 한 줄조차도 순해 빠진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종일 집에 갇혀 있느라 퍽 갑갑하긴 한 모양이었다.
우리의 일탈은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날, 그렇게 웨딩 숍에서 내 집으로 온 이후, 신하경은 지금껏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놓고 한 가출이었다. 나는 기꺼이 그녀를 유인하고 감금한 납치, 감금범이 되었고.
며칠 전엔 건물 지하 주차장의 CCTV까지 돌려 본 그녀의 어머니 이혜영이 내게 전화를 걸어 오기도 했으나 나는 뻔뻔하게 그녀를 숨긴 것을 잡아뗐다. 이혜영은 다 알면서도 전전긍긍만 했을 뿐, 다시 며칠이 지나도록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
예상했던 바였다. 내게 쳐들어와 완력으로 그녀를 끌고 갈 수도, 신민철 회장에게 털어놓고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을 테니. 결혼을 앞둔 딸이, 웬 깡패 새끼의 집으로 들어가 도망쳤다는 걸 여기저기에 떠들어 봤자 그녀에게도 하등 유리할 게 없었다.
그러니 이건 나나 신하경이나, 다 알고 하는 짓이었다. 이 아슬아슬한 일탈엔 일말의 염치도, 양심도 없었다. 그저 본능과 욕망, 복잡하면서도 선명한 감정 한 줌에 모든 걸 다 걸었을 뿐.
꼭 죽을 날이라도 받아 둔 시한부라도 된 듯이 말이었다.
– 바빠요?
아니나 다를까, 통화 버튼을 누르자 신호음이 두어 번 가기도 전에 전화를 받은 신하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많이 심심한가 보네.”
– 아, 아뇨. 난 그냥….
망설이듯 작아지는 신하경의 목소리를 듣겠다고, 핸드폰을 나도 모르게 귓가에 바짝 가져다 댔다.
– …보고 싶어서요.
하고 싶단 말이 불식간 보고 싶단 말로 바뀌었다. 심장이 무지근하게 내려앉는다. 숨도 못 쉴 만큼 몸이 부서질 때도, 숱하게 칼에 찔려 댈 때도 미동 한 번 없었던 심장이, 이 여자의 한마디에 격랑이라도 맞은 듯 요동을 쳤다. 기가 다 막혔다.
– 늦어요?
“네.”
– 얼마나?
“많이.”
– 아…. 늦는구나.
신하경이 아쉬움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끝을 흐렸다.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요.”
– 못 자요.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다는 게 이런 느낌인 건가. 내 안부를 묻고,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그 사람이 있는 곳으로,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게 이런 거였나.
– 백강우 씨 없으면.
낯선 기분이 가슴을 뒤흔들었다.
“오늘 일이 좀 많은데. 어쩌면 못 들어갈지도 모르고.”
매일 밤 품에 꼭 안겨 잠이 들면서도 내 옷자락을 놓지 못하는 그녀였다. 알지만, 그럼에도 지키지도 못할 약속 따윈 하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말했다. 기다리지 말라고.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르겠다고.
– 괜찮아요. 기다릴게요. 일 다 하고 천천히 와요.
그럼에도, 낯설게 돌아온 답에 더 말을 잃고 입술을 가만히 다물었다.
전화가 끊겼다. 회색빛 차창 너머를 한참 응시하다 무겁게 눈꺼풀을 내리감았다. 귓가에 자꾸만 신하경의 목소리가 맴돌아서였다.
– …보고 싶어서요.
자꾸만 살고 싶게 하는 목소리라. 이 같잖은 삶에 덕지덕지, 남루하고 구접스러운 미련마저 갖게 하는 목소리라.
인남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나는 난생처음 제대로 살고 싶단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새에.
***
달카닥.
시뻘겋게 녹이 슨 자물쇠가 돌아가고 축축한 지하 창고 문이 드르륵, 요란한 소리를 내며 젖혀 열렸다.
안으로 들어서자 저 멀리, 시멘트 바닥에 처박힌 채 쓰러져 있는 이규현이 눈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몰골은 처참했다. 자해라도 한 건지, 아직 손도 대지 않았는데 팔뚝이 온통 상처투성이에 금단 증상으로 덜덜 떨리는 얼굴 근육이 못 봐줄 만큼 흉측스러웠다.
인간 같지도 않은 꼴을 한 이런 놈 때문에 진창에 발을 담그려 했던 여자가 더없이 가엾었다. 갱생도, 교화도, 재활용도 안 될 이딴 쓰레기 새끼에게.
“너, 너희 뭐, 뭐야?”
가까워진 내 구둣발 소리를 들은 놈이 고개를 쳐들며 쇳소리를 냈다. 인남이 가져온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아 천천히 다리를 꼬았다. 놈이 내 얼굴을 알아볼 시간을 좀 주려는 의도였다.
“맞혀 봐.”
그냥 다 순순히 말해 주면 재미가 없지 않나.
“뭘까.”
눈썰미가 없는 건지, 아님 약에 절어 정신이 온전칠 못한 건지. 이규현은 그저 묶인 팔다리만 버둥거리며 미친개처럼 날뛸 따름이었다.
“누구냐니까? 뭐 하는 새끼들이길래, 날…!”
“기억력 꼬라지 개판이네. 매번 같은 대사도 영 질리고.”
미간을 움푹 일그러뜨리는 놈의 면전에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며 조용히 읊조렸다.
“기억 안 나나? 꽤 강렬한 첫 인사까지 했었는데, 우리.”
그제야 나를 보는 놈의 동공이 빠르게 흔들거렸다.
“너…!”
“아버님께 감금까지 당하고, 약 좀 끊은 줄 알았더니 아직 아닌가 보네. 하기야, 한 번 시작하면 관 속에 처박힐 때까지 끊기 힘든 게 뽕이긴 하지.”
“너… 너, 뭐야! 대체 너 누, 누군데 이래?”
“뭐가 그렇게 궁금해? 알면, 뭐가 달라지긴 하나.”
“이 새끼가, 내가 누군 줄 알고 함부로 이딴 짓거릴…!”
“잘 알지, 이규현 씨.”
“……!”
“이진수 정민당 대표 아드님. 답도 없는 약쟁이, 인간쓰레기 새끼.”
이규현은 어이없고 기막히다는 듯 나를 노려보며 이를 바득 물었다. 손발이 뒤로 포박돼 옴짝달싹할 수도 없는 놈을 향해 턱짓을 하자, 한 발 뒤에 서 있던 인남이 다가가 그의 손발을 풀어냈다.
“이 씨팔놈의 새끼가!”
어차피 반쯤은 정상이 아닌 놈이 있는 대로 달려들어 봤자였다. 벌떡 일어나 앉은 내게 주먹을 휘두르려던 놈의 오금이 인남의 발길질 한 번에 단번에 꺾였다. 가볍게 걷어차였을 뿐인데 허접한 몸이 시멘트 바닥을 나뒹군다.
“윽…!”
다시 몸을 일으켜 씨익 씩, 나를 노려보는 이규현의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져 있다.
“늬들, 이러는 목적이, 뭔데! 나 납치해서 돈이라도 뜯어내겠단 거야? 우리 아버지 협박해서 한몫 챙기기라도 하겠다고? 아니면, 씨팔, 누가 시켰어? 혹시 나 볼모로 우리 아버지 정치 인생 좆 되게 하려는 새끼들이…!”
“아. 본인 때문에 아버지 정치 인생 좆 되는 건 알고 있었나 봐.”
“뭐? 이 새끼가, 너 진짜 뒈지고 싶냐?”
“그러게. 내가 뒈지고 싶긴 한데, 그게 너한테는 아닌 거 같고.”
“아악!”
다시 몸을 일으켜 달려들려는 놈보다 한발 빠르게 피우던 담배를 집어 던졌다. 손등 위에 떨어진 담배를 구둣발로 뭉개듯 짓밟으며 꺼트리자 구겨진 손가락에서 우드득, 뼈 꺾이는 소리가 요란했다.
“아아악! 그, 그만! 아, 알았어! 원하는 거, 말해! 들어줄 테니까! 아악!”
자지러지듯 몸을 비틀며 애원하는 이규현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이런 놈에게 뺨을 맞고, 손목을 잡히고, 욕지기를 들으며 폭력을 감내해야 했을 그 여린 여자가 떠올라 속이 뒤틀렸다.
“원하는 거.”
“윽!”
구둣발을 떼지 않고 되레 더 무게를 실어 허리를 굽히고 앉았다. 놈은 짓밟힌 손가락이 고통스러운지 더는 악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몸을 부들부들 떨 뿐이었다.
“별거 아닌데. 손가락 좀 몇 개 부러뜨리고 이라도 몇 개 까서 약 빨 힘도 없게 만드는 거. 그거면 돼.”
“…윽…! 이 미친, 새끼…!”
“우리 이 의원님, 아들 입에 걸레를 물리고 키우셨나. 주둥이 좀 닫아라. 귀 썩겠다.”
손을 뭉개며 지르밟던 발을 떼어 내고 놈의 턱을 툭, 들어 올렸다. 뺨을 아귀로 쥐어 터뜨릴 듯 꾹 잡아 누르자 역겨운 입술이 맥없이 헤 벌어졌다.
“그러게 다 큰 아들 교육을 왜 남의 손에 맡기셔선.”
놈의 흐릿한 눈동자가 크게 부풀어 올랐다.
“아빠?”
이규현이 놀라 뭉개진 발음으로 되물었다.
“맞아, 네 아버지 의뢰. 당분간 아드님 헛짓거리 못 하게 예쁘게 뭉개 놓으라셔서.”
“윽…!”
“너 같은 새끼 아들로 키우느라 여간 고생이 많으셨나 봐, 의원님이.”
“……!”
“그러니까 좀만 참자. 아버지한테 효도하는 셈치고.”
“아아악!”
그대로 주먹을 가볍게 툭, 내리치자 놈의 치아가 깨지고 입 안 가득 핏물이 고였다. 그러고도 모자라 놈의 손목을 콱 꺾어 올렸다.
외마디 비명을 지른 이규현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한 손으로 꺾인 손목을 쥐고, 숨도 제대로 못 쉬는 이규현의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고통을 참느라 실핏줄이 죄 터진 눈알이 꼭 악마처럼 시뻘겠다.
돌연 그 역겨운 얼굴 위에 처연하게 흐느끼던 여자의 얼굴이 떠올라 겹쳐졌다. 가까스로 억누르고 있던 열화가 일었다.
그래서였다. 순전히, 그래서.
“윽…!”
불식간, 나도 모르게 놈의 멱살을 쥐고 있는 대로 손에 힘을 주어 숨통을 쥐었다. 컥컥, 거리며 숨넘어가는 소리가 고스란히 들으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고작 이 정도에 살려 달라고, 몸을 파득거리고 떨어 댈 거였으면서. 놈의 얼굴에 일말의 동정도 들지가 않았다. 그냥 이대로 목을 꺾어 버리고 싶을 만큼.
“이사님.”
뒤에서 다급히 나를 부르는 인남의 목소리가 들려왔으나 멈출 생각은 쉬이 들지 않았다. 내 손으로 이 쓰레기를 처리하고 나면, 어쩌면 신하경의 인생에도 따뜻한 빛 한 점은 들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이사님!”
후우, 긴 한숨을 내쉬며 가까스로 손에 힘을 풀어냈다. 살고 싶어진 만큼 죽이고픈 대상이 생겼다는 건 분명 좋지 않은 징조였다. 움켜쥐고 있던 목덜미를 콱 밀어 바닥에 처박았다.
“크윽…!”
숨통이 트인 이규현이 입 안 가득 고인 핏물을 토해 내며 경련을 했다.
천천히 허리를 세워 몸을 일으켰다. 누군가 건네 온 손수건으로 손에 묻은 더러운 피를 닦아 내고,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다. 입 안에 맴도는 담배 향이 더없이 씁쓸했다. 뒤틀리고 끓는 속이 좀체 사그라들지를 않고 있었다.
따질 것도 없이 원인은 신하경이었다. 오로지 그 여자 하나였다.
연기를 길게 내뿜고 고개를 돌리자 인남이 나를 퍽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섰다. 안다. 지금 내가 얼마나 어이없어 보일지. 이런 야비하고 유치한 짓을 직접 한 것도 처음이었고, 과하게 감정을 쏟는 것도 처음이라, 나조차도 낯설고 당황스러웠으니까.
“전화해, 데려가라고.”
격해진 감정을 겨우 봉인하며 발길을 돌렸다. 인남이 아니었다면 분명 그대로 놈의 숨통을 끊어 놨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랬다면, 뭐가 달라졌을까. 신하경과 내가 가진 것들이 조금이나마 등가로 여겨질 수 있었으려나.
절뚝이며 뒤따르던 진철에게 차 키를 받아 내 직접 핸들을 쥐었다. 곧바로 달카닥, 조수석 문이 열리고 인남이 고개를 내밀었다.
“타지 마. 퇴근할 거야.”
“이사님.”
“닫아.”
“모셔다드리겠습니다.”
“문 닫아.”
“운전 제가….”
“닫으라고, 새끼야.”
기어코 날 선 목소리를 내자 인남이 멈칫했다. 마지못해 문이 닫히고, 툭 소리가 나기 무섭게 액셀을 콱 눌러 밟았다.
자정이 한참이나 지난 시각.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던 신하경의 말이 귓가에 맴돌아 자꾸만 가속이 붙는다.
“…뭐예요? 나 알아요? 뭐 하는…. 누군데, 참견이에요?”
아는 척을 말았어야 했나. 처음, 그 옥상 난간 위에 위태롭게 서 있던 여자를 모르는 척 지나쳤더라면 아무 일도 없었을까. 지금까지처럼 그저 죽을 자리를 찾고, 날을 기다리며 무사 안온한 평정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을까.
“그날은, 그쪽이 날 방해한다고 생각했어요.”
맞는 말이었다. 방해하려 다가간 거였다. 그게 누구였든, 그 위험한 난간 위에서 끌어 내리고 싶었으니까. 선량하고 무고한 누군가가 내 눈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꼴을 보는 건 하루 한 번으로도 충분한 날이었으므로.
한데, 내 눈앞에 위태로이 선 여자가 신하경이란 걸 알아본 순간 나는 완전히 이성을 잃고 만 거다. 앓고 앓았던, 그리워하고 또 원하던 여자가 눈앞에 있었으니 나는 확연 제정신일 수가 없었다.
해서 여자의 손을 잡고 허튼소리를 지껄였다. 죽지 말라고. 어딘가 남아 있을지도 모를 너절한 미련 한 조각이라도 기어코 들춰내 보겠다고, 같잖은 연민과 오지랖을 부렸다.
결국 이게 그 대가였다. 온통 저답지 않은 행동과 생각들. 꼭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낯설고 불안한 시간들.
“부탁할게요. 도와줘요. 그러니까…. 제발, 어떻게든 해 줘요.”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나.
흔들릴 대로 흔들리는 마음이 생소해 무서웠다. 나를 기다리고, 내가 보고 싶다 말하는 신하경과 그런 그녀에게 동요하는 내가, 나는 점점 두려워지고 있었다.
이 동요의 의미를, 동요하는 감정의 정체를 제대로 정의할 수조차 없지만, 하나만은 확실했다. 지금, 이쯤이 멈춰야 할 타이밍이라는 것. 행여 멈추지 못한다면 영원히 멈출 수 없게 될 거라는 것도.
두려운 건 그거였다.
끼이익.
차를 세우고 한 손으로 얼굴을 덮어 내렸다. 손가락 새로 낯선 한숨이 길게 새어 나갔다.
덕지덕지, 미련 붙은 마음이 무겁고, 버겁고,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