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th King Karnak RAW novel - Chapter (183)
사령왕 카르나크-183화(183/338)
44. 우리 동네 아크 리치 (3)
데라트 시티에 위치한 카르나크의 단골 여관.
에란텔과의 회의를 파한 뒤 일행은 이곳에 짐을 풀었다.
아, 알리우스 빼고.
그는 신전으로 돌아가 신나게 깨질 운명이었다.
데라트 시티에서 제일 교세가 큰 여신교단이 하토바 교단이고, 알리우스는 이 일대를 전부 책임지는 특급 심문관이다.
그 특급 심문관이 하필 자리를 비웠을 때 이런 사달이 터진 것이다!
카르나크와 바로스가 혀를 찼다.
[쯧쯧, 알리우스도 고달프겠어.] [타이밍이 안 좋았죠, 뭐.]건너편 자기 방 침대에 기대앉은 세라티가 전언을 날렸다.
[그나저나, 진짜로 미끼가 되실 생각이에요?]벽을 통해 카르나크의 전언이 돌아왔다.
[그쪽이 일이 편해지니까.]현재 카르나크 일행은 남녀로 나뉘어 각자 방을 쓰고 있었다.
그럼에도 서로 간의 소통에 하등 지장이 없다.
마법 전언의 좋은 점이 이것이다. 사정거리 안쪽에만 있으면, 중간에 벽 같은 것이 있건 말건 얼마든지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
덕분에 세라티도 옆 침대에 라피셀을 재운 채 느긋하게 비밀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카르나크가 전언을 이었다.
[저놈들이 노리는 건 나야. 내가 미끼로 나서건 말건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고.]말로카의 움직임을 보면 에란텔이나 테오데릭도 이내 그 사실을 눈치챌 터였다.
카르나크가 몸을 사리려 해도 어차피 미끼 역할은 시키게 되어 있다는 소리다.
그럴 바엔 적극적으로 나서는 쪽이 전략을 짤 때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
[영민들도 구해야 하니까, 아무래도 내가 직접 상황을 주도하는 쪽이 편하겠지.]레번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확실히 영지민들에 관한 부분은 좀 의외였습니다.]제스트라드 남작령이 아크 리치에 의해 점령당했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상한 광경은 이런 것이었다.
태양을 가리는 짙은 먹구름과 독기를 내뿜으며 썩어 가는 대지.
시체와 해골만이 어슬렁거리는, 산 자의 흔적 따윈 남아 있지 않은 인세의 지옥도 등등.
당연히 제스트라드 영민들쯤은 진작 죽임을 당한 뒤 언데드가 되었을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막상 정찰을 해 보니 현실은 조금 달랐다.
딱히 먹구름이 끼지도, 대지가 썩지도 않았다. 영지민들 역시 대부분 생존한 상태였다.
신기할 정도로 사람들을 건드리지 않은 것이다.
이 부분이 특히 에란텔과 테오데릭을 골치 아프게 하고 있었다.
영민들이 무사한 것은 참으로 다행이지만, 도무지 상대의 속셈을 모르니 답답하다.
[역시 인질로 쓰기 위해서 일부러 살려 둔 걸까요?]레번의 의문에 바로스가 고개를 저었다.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닐걸요.]카르나크가 느긋하게 말을 받았다.
[그게 사령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주로 하는 착각인데…….]이미 두 사람은 말로카가 저런 식으로 나올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죽은 자들의 제국을 경영해 본 입장에선 별로 신기한 일도 아니다.
[언데드라고 해서 딱히 살아 있는 사람에 비해 효율이 좋은 것만도 아니거든.]*
*
*
숲을 등진 얕은 구릉 위에 세워진 우아한 2층 저택.
오랜 세월 제스트라드 남작가의 보금자리였던 이곳은 현재 사악한 외지인들에 의해 점거되어 있었다.
한 무리의 일행이 저택 안에 들어선다. 남작가의 하녀들이 고개를 숙이며 그들을 맞이한다.
“아, 안녕히 다녀오셨나요…….”
벌써 며칠째 이어지고 있는 광경임에도 하녀들의 목소리는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눈앞에서 로브를 걸친 흉측한 해골이 걸어가는 모습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익숙해지기 힘든 광경이니까.
“…….”
로브를 걸친 흉측한 해골, 아크 리치 말로카는 아무런 대꾸 없이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리치인 그에게 하녀들의 이런 시중 따윈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뒤를 따르는 사령술사들은 달랐다.
“밥! 밥은 어찌 되었나?”
“배가 고프다!”
사령술사들의 호통에 하녀장이 차분한 태도로 안내했다.
그래도 아크 리치와 달리 이들은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이었기에 비교적 적응이 된 상태였다.
“준비되어 있습니다. 식당으로 가시지요.”
검은 신의 교단에 의해 제스트라드 영지가 점령된 지도 어느덧 보름이 넘었다.
처음 저들을 마주했을 때만 해도 얼마나 절망에 빠졌던가?
대지를 걷는 시체들, 사방을 뒤덮는 사악한 어둠.
저 끔찍한 지옥의 군세 앞에서 사람들은 그저 고통 없이 죽여 주기만을 간절히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의외로 사교도들은 영지민들을 별로 건드리지 않았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부려 먹기는 열심히 부려 먹었다. 단지 요구 사항이 예상 밖의 것이었을 뿐이다.
매 끼니 귀족들이나 먹을 식사를 준비하라느니, 로브를 깨끗이 빨아 놓으라느니, 저택에 자신들이 묵을 가장 화려한 방을 마련하라느니…….
그냥 저택 관리하고 밥 해다 바치는 게 전부였다.
이건 어차피 평소에도 이들의 업무인 것이다.
요새는 카르나크가 워낙 자리를 비운 지 오래라, 자기들끼리 밥해 먹고 살던 처지였지만.
사실 당연한 이야기이긴 했다.
아무리 사령술사라 해도 좋은 밥 먹고 깨끗한 옷 입고 살고 싶겠지. 사람인데.
다만 좀 이해가 안 가는 요구 사항도 있긴 했다.
“아니, 이런!”
“로브에 풀이 덜 먹지 않았느냐?”
“깃을 더 빳빳하게 세워라!”
“에잉, 무능한 것들.”
하녀들이 보기엔 다 똑같이 생긴 검은 로브 가지고 뭔가 이런저런 불만 사항을 터트리는데, 대체 뭔 차이가 있는 건지 모르겠다.
하여튼 사악한 사령술사답지 않았다. 그냥 평범한 점령군 같았다.
영지민들을 대하는 태도 또한 마찬가지였다.
해골과 좀비 군대가 영지 곳곳을 순찰하고는 있는데 그게 전부다. 순종적인 태도만 보이면 딱히 사람들을 공격하거나 하진 않는다.
비축해 놓은 식량이며 무기, 물자들을 대거 수탈해 버려 삶이 좀 궁핍해지긴 했다. 아마도 다른 쪽 검은 신의 교단에 보내는 듯했다.
하지만 이 정도는 평범한 영지전 와중에도 얼마든지 일어나는 일인 것이다. 어쨌건 살려 두는 것이 어딘가?
심지어 어떤 면에선 인간 점령군보다 나은 점도 있었다.
자고로 전쟁이 일어나면 젊은 여성들은 가혹한 일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죄다 해골, 시체, 구울이다 보니 오히려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 것이다.
물론 제스트라드 저택을 장악한 사령술사들은 살아 있는 성인 남성이다 보니 하녀들이 두려워 떤 적도 있었다.
하지만 저들은 의외로 하녀들을 건드리지 않았다.
딱히 의롭고 명예를 알아서가 아니라, 뭔가 기묘한 자신들만의 논리가 있었다.
-어딜 감히 이교도 주제에 테스라낙의 은총을 받으려 하느냐?
-이 몸의 씨앗을 받고 싶으면 교도가 되어 스스로를 증명해야 할 것이다!
귀하신 자신들이 어찌 ‘미천한’ 하녀들에게 은혜를 내리겠냐는 식이었다.
당연히 검은 신의 교도들이 전부 저런 식으로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저들은 사교도들 중에서도 광신도였고, 그 신앙을 인정받아 고위 사령술사가 된 자들이다.
사교도치고도 사고방식이 해괴한 축인 것이다.
하녀들 입장에선 천만다행이었다.
이렇듯, 제스트라드 영지는 힘겹지만 그럭저럭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이 상황이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저택의 노집사, 타펠은 한숨을 쉬었다.
‘영주님께선 어찌 되셨는지 모르겠군.’
그는 말로카가 처음 이 저택을 점거하며 외쳤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여기가 카르나크라는 놈의 집이렷다?
오랫동안 자리를 비운 가문의 주인을 떠올리며 노집사는 여신께 기도를 올렸다.
‘알리움이시여, 부디 영주님을 보살펴 주소서.’
*
*
*
여관 벽을 사이에 둔 채 카르나크는 느긋하게 전언을 이어 갔다.
[틀림없이 언데드 병사는 효율적이야. 여러모로 말이지.]식량이 따로 필요치도 않고, 지치지도 않고, 명령에 불복종할 걱정도 없으며, 적 앞에서 주저하거나 도망칠 리도 없다.
지휘관이 명령한 대로 정확히 움직이니 어떤 의미에선 이상적인 병사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왕년의 사령왕 카르나크는 자신의 군세를 모조리 언데드로만 채웠을까?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언데드는 공짜로 움직이는 게 아니거든.]숫자가 늘어날수록 요구되는 사령력도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이게 어느 규모 이상이 되면 차라리 병사들 밥 챙겨 주는 게 더 편한 수준이 와 버려.]살아 있는 병사들은 밥 잘 먹이면 그걸로 끝이다. 지휘관의 체력을 더 빨아먹거나 하지 않는다.
[뭐, 기력을 빨아먹거나 하는 경우야 많겠지만 그건 정신적인 문제니까 넘어가고.]하지만 언데드 병사는 사령력을 수시로 챙겨 줘야 한다. 지휘관인 사령술사에게 요구하는 부분이 너무 커지는 것이다.
그래서 왕년의 카르나크는 자신의 군대를 언데드와 어둠의 마물의 이중 구조로 갖췄다.
[그리고 마물들은 살아 있으니 당연히 식량을 축내지. 그렇다면 그 식량은 어디서 조달해야 할 것 같아?]레번이 흠칫 놀라며 되물었다.
[설마 인간 병사들을?]인육을 먹일지도 모른다니, 상상하는 것만으로 끔찍해 몸서리가 쳐지는 것이다.
[뭐, 마물들이 인간을 안 잡아먹은 건 아닌데…….]카르나크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놈들이 알아서 저지르는 짓이고, 계획적으로 시키지는 않았어.]무슨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적을 잡아먹으면서 보급을 충당하라니, 세상에 그런 어리석은 명령이 어디 있냐?]실제로 적을 잡아먹을 수 있다 쳐도 보급은 보급대로 준비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군대가 금방 와해되어 버린다.
누군가는 마물들이 먹을 식량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마물들은 대부분 수렵, 채집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존재다.
[사람을 일부러 죽여서 마물에게 먹이는 것보다, 그냥 식량 생산하게 만들고 그걸로 마물들을 먹이는 게 백배 낫지.]게다가 언데드 군대라고 전혀 보급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먹고 마실 필요는 없다지만 양손에 창칼은 들려 줘야 할 것 아닌가?
던전 같은 곳에서 스켈레톤이 녹슨 칼 들고 다니는 건 그냥 오랫동안 그 자리에 쓰러져 있었기 때문이지, 딱히 녹슨 칼이 더 위력이 강해서가 아니다.
[부딪치면 금방 박살 날 텐데? 뭐, 파상풍의 위험 정도야 있을지도 모르겠다만.]언데드 군세 역시 좋은 무기를 드는 쪽이 유리하다.
즉, 누군가는 그들이 쓸 무기를 만들어 줘야 한다.
[이 또한 그냥 포로들 부려 먹는 쪽이 빠르지. 좀비나 스켈레톤에게 대장장이 일 시킬 순 없잖아.]세라티가 놀라 물었다.
[어머, 못 시켜요?]그녀가 읽었던 모험담 중엔 사악한 사령술사가 시체를 이용해 각종 노역을 시키는 내용도 있었던 것이다.
카르나크가 피식 웃었다.
[시킬 수야 있지. 연습 좀 하면 못 시키진 않아.]너무나 귀찮은 행위라는 게 문제였다.
이는 비유하자면, 꼭두각시 인형을 조작해서 대장장이 일을 시킨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왜 굳이 그러겠는가?
그냥 살아 있는 대장장이에게 의뢰하면 그만일 텐데.
[그래서, 이런 생산 쪽 영역으로 가면 언데드의 효율은 살아 있는 사람에 비해 극히 떨어져 버려.]사령왕 카르나크(邪靈王 karna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