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th King Karnak RAW novel - Chapter (281)
사령왕 카르나크-281화(281/338)
66. 빛의 권속 (6)
이미 뒤섞여 버린 밀크 티를 도로 우유와 홍차로 분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쉬운 방법은 빙빙 돌려서 원심력으로 분리하는 것이다.
이 정도의 간단한 물리 현상은 마법사들도 다들 알고 있다.
하지만 저 방식은 엄밀히 말해서 홍차와 우유로 분리하는 게 아니다.
홍차 성분과 수분, 유지방 등으로 분리하는 행위이지.
저기서 우유 부분만 따로 긁어모아 도로 섞은 뒤 되돌렸다고 주장하는 것뿐이다.
[사람한테는 그런 짓 못 하지.]인간으로 치면 뼈와 살과 피를 각자 분리했다가 도로 조립한다는 소리가 되는데, 세상은 그런 걸 사령술이라고 부른다.
게다가 도로 섞은 결과물이 과연 원상태의 우유라 할 수 있나?
그렇진 않다. 순도에서 문제가 생긴다.
사령술로 되살린 인간들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하자가 생기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밀리아를 구한다는 것은 완벽하게 섞인 우유와 홍차의 시간을 역순으로 되돌리는 행위나 마찬가지.
사령왕이었던 카르나크였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적어도 지금의 그에게는.
[그럼 저건 어떻게 하신 건데요?]세라티는 의아해했다.
카르나크는 실패했다고 하는데, 눈앞의 밀리아는 확실하게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분명히 한번 섞여 버린 홍차와 우유는 도로 분리할 수 없지.]카르나크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런데, 꼭 분리해야만 하는 건 아니잖아?]모두가 ‘밀크 티’를 ‘우유’라고만 알고 있다면 결과는 마찬가지가 아닌가?
[그래서 깃들어 있던 권능은 몽땅 날려 버리고 외모만 인간 형태로 바꿨어.]말하자면, 밀크 티를 분리하는 게 아니라 그냥 우유 통에 담고 뚜껑 꽉 닫아 버린 셈이었다.
그리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거 우유임. 누가 뭐래도 우유임.
이렇게 하면 뚜껑 열고 확인해 보기 전까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저건 그냥 ‘우유’다.
[그, 그래도 돼요?] [달리 방법이 없잖아.]물론 뚜껑이 열리면 진실도 들통난다. 그러니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
[나중에 시간 내서 밀봉 작업 따로 해야지.]옆에서 함께 듣고 있던 레번이 인상을 썼다.
그러니까 말인즉슨……
[겉모습만 인간일 뿐 실제로는 반인반마 상태라는 겁니까?] [에이, 그렇게 멋있는 건 아니고.]반인반마를 멋있다고 여기는 걸 보면 과연 카르나크가 사령술사이긴 한 것 같았다.
[그냥 영혼이 오염된 채 썩어 가고 있는 상태지.] [어쨌든 달라진 게 없단 소리잖아요!] [왜 달라진 게 없어? 라피셀을 속일 수 있잖아.]실제로 라피셀은 눈물까지 글썽이며 달려가고 있었다.
“밀리아 언니!”
쓰러진 밀리아를 부축해 호흡을 살핀다.
무사히 숨을 쉬고 있는 게 확인되었다. 심지어 딱히 부상을 입은 것 같지도 않았다.
과연 왕년의 사령왕답게, 저 예리한 라피셀의 감각을 속일 정도로 카르나크의 인체 조형술은 극의에 도달해 있었다.
완전히 속은 라피셀이 감동하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카르나크 님!”
부드럽게 웃으며 카르나크가 고개를 저었다.
“감사는 무슨. 내 동료이기도 하잖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야.”
확실히 감격하는 건 그녀뿐이었다.
어째 다른 이들은 저런 기적을 보고도 반응이 시큰둥하다. 전혀 놀란 표정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라피셀은 반성했다.
‘나만 카르나크 님을 믿지 못하고 있었구나!’
세라티가 눈을 흘기며 물었다.
[일단 넘어가긴 한 것 같네요. 그래서 이제 어쩌죠?] [어쩌긴?]카르나크의 시선이 하버트에게로 향했다.
[저놈 처리할 차례지.]***
하버트는 부들부들 떨었다.
“이, 이럴 수가…….”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미 제물이 된 자가, 이미 마(魔)에 빠진 자가 원래대로 돌아오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거늘…….’
하지만 눈앞에서 틀림없이 벌어진 일을 부인할 수도 없었다.
모든 것을 잃었다. 부하도, 계획도.
이제 그에게 남은 길은 하나뿐이었다.
마지막 사령력을 끌어 올리며 최후의 기도를 올린다.
“테스라낙이시여! 당신 곁으로 향하겠나이다!”
하버트의 전신 혈관이 부풀어 올랐다.
사령술, 피의 폭발을 시전해 자살하려는 속셈이었다.
바로스가 곧바로 오러 칼날을 날렸다.
‘그럴 줄 알았지.’
궁지에 몰린 사교도들이 자살해 대는 걸 한두 번 본 게 아니었다.
그리고 요샌 테스라낙이 이상한 술법을 사교도들에게 퍼뜨려서, 예전처럼 죽여도 카르나크가 확실하게 영혼을 수거하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현 상황에선 살려서 심문하는 쪽이 여러모로 유리하다.
다만, 피 폭발을 이용한 자살이니 턱이나 경추를 때려 기절시켜 봐야 소용없다.
제일 쉽고 빠른 길은 터지기 전에 피를 뽑아내는 것.
‘자살 못 하게 팔 하나 정도만 잘라 놔야겠다.’
문제는 이 생각을 바로스 혼자만 한 게 아니란 부분이었다.
세라티도, 레번도, 라피셀도 모두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
‘또 죽으려고 하네?’
‘말려야지.’
심지어 해법도 같았다.
‘사지 하나 잘라서.’
순식간에 네 줄기 오러가 하버트에게 향했다.
여기서 그의 불운이 터졌는데, 하필이면 노린 부위가 저마다 달랐다는 점이다.
단숨에 하버트의 두 팔과 양다리가 동강 나 허공에 나부꼈다.
“크아아아악!”
그 모습에 카르나크가 기겁하며 중얼거렸다.
“우와, 아무리 사교도라지만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니냐?”
천하의 카르나크에게 이런 소릴 들을 정도면 정말 너무한 게 맞다.
실제로 다들 당황해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왜…….”
“제가 말리려고 했는데…….”
“다들 이런 거 어색해했으니까 제가 하려고…….”
“그냥 제가 제일 가까워서…….”
오체분시된 중년 사내가 끓는 피를 사방에 뿌리며 끔찍한 비명을 터트린다.
“아악! 아아악!”
혀를 차며 카르나크가 하버트에게 다가갔다.
지은 죄가 없는 건 아닌데, 그래도 지은 죄에 비해 너무 과도한 대가를 치른 게 아닌가 싶은 광경이었다.
“어휴, 일단 지혈부터 하자.”
냉기 마법으로 절단된 사지 부위를 얼려 피를 멎게 만들었다.
극심한 고통 탓인지 하버트는 이내 혼절했다.
“어쨌든 이놈도 무사히 잡았네. 무사히라고 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상태가 워낙 안 좋으니 지금 당장 바늘 꽂고 심문할 순 없을 것 같다.
나중으로 미루고, 카르나크가 밀리아를 돌아보았다.
“난 그럼 잠시 얘 데리고 동굴 들어갔다 나올게.”
사법의 대속자로 어둠을 마저 걷어 내야 하니 의식에 방해되지 않게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며 카르나크가 엄포를 놓았다.
뭐, 엄밀히 말하면 들어와선 안 될 인간은 1명뿐이다.
그 1명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카르나크는 밀리아를 염동 마법으로 안아 들고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동굴 안쪽에서 사기와 탁기가 희미하게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라피셀이 신기한 듯 중얼거렸다.
“사법의 중개자를 구사하시는 카르나크 님은 꼭 사령술사 같단 말이야.”
그러자 그녀를 바라보며 불안한 듯 시선을 교차하는 세 사람이었다.
[꼬리가 너무 긴데요.] [슬슬 들킬 것 같은데요.] [솔직히 여태 안 들킨 게 더 신기하지 않나요, 이거?]***
차음 마법 결계가 펼쳐진 어두운 동굴 안.
카르나크는 밀리아를 땅에 내려놓았다.
잠시 후 그녀가 서서히 눈을 떴다.
힘겹게 몸을 일으켜 앉는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며 멍한 표정을 짓는다.
“……카르……나크 대장님…….”
“정신을 차렸나?”
무심한 카르나크의 질문에 밀리아가 작게 대꾸했다.
“네.”
질문이 이어졌다.
“기억은 하고 있고?”
“어느 정도는요.”
“그럼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도 알아?”
“역시나, 어느 정도는요.”
광익의 천사 상태에서 그녀의 의식이 완전히 잠든 것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 외부 상황에 대한 인식은 하고 있었다.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몽롱한 상태이긴 했지만.
차분히 카르나크를 올려다보며 그녀가 중얼거렸다.
“사령술사……셨군요?”
카르나크가 쓴웃음을 지었다.
“하긴, 이 정도로 대놓고 써 댔는데 명색이 성직자가 그걸 눈치 못 챌 리는 없겠지.”
알리우스 때와 비슷하다.
근거리에서, 직접적으로 사령술을 접하게 되면 성직자인 이상 진위를 파악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의외로 밀리아는 분노 혹은 당황의 표정을 보이지 않았다.
사령술사를 앞에 두고도 너무 태연하다. 성직자, 그것도 심문관다운 태도는 아니다.
그럴 이유가 있었다.
천사 상태에서도 의식이 남아 있던 그녀였다. 이미 경악도 분노도 당황도 끝내 버린 후인 것이다.
모든 것을 체념한 다음에야 겨우 깨어난 것이니, 딱히 더 날뛸 이유가 없지.
“신기하네요, 마법사이시면서 사령술사라니.”
무심하다기보다는 전부 포기한 듯한 어조로 그녀가 물었다.
“그래도 사교도는 아니신 거죠?”
“그래.”
“다행이네요. 사교도 손에 죽는 건 싫거든요.”
밀리아는 눈을 감았다.
심문관이기에 알 수 있었다.
이미 자신의 영혼은 오염되었다. 당장은 카르나크의 비술로 인해 인간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결코 오래갈 수 없다.
“그래도 이왕이면 고통 없이 죽여 주셨으면 하는 바람은 있군요.”
“죽고 싶은 건가?”
“죽고 싶을 리가 있겠어요?”
작은 소녀가 처연하게 웃는다.
“달리 남은 방법이 없을 뿐이죠.”
이제 그녀에게 남은 길은 둘뿐이다.
인간으로 죽든가, 마물로 살든가.
인간으로 산다는 선택지 따윈 없다.
“맞아, 선택지가 그것뿐이긴 하지.”
카르나크도 긍정했다.
“하지만 그 선택지 중 후자를 살짝 변화시킬 수는 있다.”
“네?”
“인간인 척하는 마물로 살아가는 건 가능하단 소리야. 사실 엄밀히 말하면 너, 아직 인간이긴 하거든.”
정확히는 인간인 부위가 좀 더 많이 남아 있다.
“한 70% 정도는 여전히 인간이지.”
당연히 밀리아는 기뻐하지 않았다.
이미 삼분지 일은 인간이 아니라는데 기뻐할 리가 있나.
단지 카르나크의 의도를 모르겠다.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건가요?”
“인간으로 되돌리진 못해도, 지금 상태로 계속 유지는 시켜 줄 수 있다는 거다.”
아까도 말했지만, 현재의 밀리아는 뚜껑을 대충 닫아 놓은 우유 통 상태다.
격하게 흔들면 뚜껑 터진다. 밖에서 힘줘서 돌려도 벌컥 열린다.
반대로 말하면, 뚜껑만 확실하게 밀봉하면 인간의 형태는 꾸준히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순간 밀리아의 눈동자에 빛이 돌아왔다.
‘나, 혹시 죽지 않아도 돼?’
하지만 금방 표정을 굳혔다.
“……라티엘 님을 저버릴 바엔 그분의 천국으로 향하는 길을 택하겠어요.”
카르나크가 실소를 흘렸다.
“여신을 저버리라고는 안 했는데? 신성 주문은 여전히 쓸 수 있어, 너.”
애초에 신성술 못 쓰는 밀리아는 쓸모가 없다.
카르나크 자신을 위해서도 오히려 그 능력은 반드시 유지시켜 줘야 한다.
“그, 그게 가능한가요?”
“사령술을 쓰면.”
밀리아를 바라보며 카르나크는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난 마법사이기 전에 사령술사였다. 그래서 네 영혼을 치유하는 방법도 하나밖에 몰라.”
“그, 그런…….”
밀리아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사령술사를 전문적으로 상대하는 심문관답게, 상대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짐작을 한 것이다.
과연 카르나크가 몸을 일으키며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라티엘의 종, 밀리아 테스티아드.”
섬뜩한 목소리가 밀리아의 영혼을 흔들기 시작했다.
“나의 권속이 되어라. 그러면 인간의 삶을 돌려주마.”
사령왕 카르나크(邪靈王 karna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