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th King Karnak RAW novel - Chapter (337)
사령왕 카르나크-337화(337/338)
78. 요정과 용 그리고 마물 (2)
엘레자르가 죽었으니 현존하는 대마법사는 디오그레스 콜론과 기옌 렌, 둘뿐이다.
디오그레스가 검은 신의 교단에 의탁했을 리 없으니, 대마법사 중엔 기옌 렌을 제압할 이가 없다.
그렇다면 무왕은 어떨까?
델피아드의 갤러드와 크레타스의 드렐타인이 죽었으니(드렐타인의 경우엔 좀 애매하긴 하지만), 남은 무왕은 시프라스의 벨티아와 탈레도의 바탈록.
이 중 확실하게 사교도인 건 벨티아뿐이다.
바로스가 고개를 저었다.
“벨티아가 강하긴 하지만 기옌 렌을 제압할 정도는 아니죠.”
기옌 렌을 죽인다는 조건이라면 어떻게든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몸 성히’ 제압한다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다.
“설마 바탈록마저 검은 신의 교단에?”
“제국 쪽 이야기를 들어 보면 그건 아닌 것 같아.”
바탈록의 행보를 보면 검은 신의 교단과는 연관점이 거의 없었다.
“물론 정체를 숨기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야 없겠다만, 그렇다기엔 시기와 장소가 맞질 않고.”
떠돌아다니는 벨티아와 달리 바탈록은 내내 자신의 영지를 떠나지 않았다. 모습도 자주 드러내곤 했다.
“가짜를 만들어 내세운 뒤 몰래 움직였다면요?”
“그럴 필요가 있냐? 그냥 잠깐 수행 좀 하고 오겠다고 하고 자리 비우면 되는데.”
“그건 그렇네요. 아, 그러면 혹시 죽었던 미래 레번이나 드렐타인, 엘레자르가 다시 돌아온 걸지도?”
“다 가능성은 있지만 결국은 근본적인 의문을 설명하지 못해.”
상대가 누구건 간에 대마법사 기옌 렌이 제압당할 정도면 경천동지할 전투가 벌어졌어야 정상이다.
정말 그런 일이 터졌다면 이렇게까지 조용할 순 없는 것이다.
카르나크가 인상을 썼다.
“뭔가가 있어, 내가 모르는 뭔가가.”
***
무너져 내린 거리와 잔해로 뒤덮인 광장을 거닐며 기옌 렌은 쓴웃음을 지었다.
“하루씩이나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지.”
굳건하던 국경 요새, 멘트 시타델이 잿더미로 바뀌는 데는 채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20대 중반의 사내가 기옌 렌에게 다가오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초록빛 눈동자에 진한 갈색 머리칼을 지닌 청년이었다.
“훌륭하게 처리했군요, 아직 그 몸이 어색할 텐데.”
다른 이들이 보았다면 의아해했을 것이다.
고작 20대의 나이인 주제에 수백 살을 살아온 엘프, 심지어 대마법사이기까지 한 기옌 렌에게 윗사람처럼 굴다니?
하지만 기옌 렌은 어색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대꾸한다.
“아직 잔당이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직접 행차하실 필요까진…….”
“말을 편하게 하세요.”
청년이 손사래를 쳤다.
“전 어디까지나 화신일 뿐이니까요.”
“그건 알고 있습니다만……”
허리를 펴며 기옌 렌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말투를 바꿨다.
“역시 익숙해지기 어렵구려, 테스라낙의 화신이여.”
청년이 눈을 흘겼다.
“그 이름도 되도록 입에 담지 마시고요. 불필요하게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싶지 않습니다.”
옳은 말이었다.
“그럼 어찌 칭해야 하겠소?”
“그냥 이 육체의 원래 이름을 부르시면 됩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기옌 렌이 호칭을 바꿨다.
“알겠소, 에밀 스트라우스 경.”
***
멘트 시타델의 함락 소식은 제국 황제 고드프리드 2세를 어이없게 하기에 충분했다.
“기옌 렌이 군대를 일으켜 제국을 침공했다고?”
차라리 기옌 렌이 은밀하게 소수 정예로 제도를 급습해 황제를 노린다거나 했다면 경각심을 느꼈을 것이다.
대마법사는 분명히 위협적인 존재이고 10서클의 마법에는 그 정도의 힘이 있으니까.
그런데 군대를 일으켜서 전쟁을 걸어왔다.
전쟁을 벌이면 무조건 제국의 승리다. 그만큼 제국과 베루스 연방의 국력 차이는 심각하게 크다.
왜 굳이 불리한 상황을 자초한 걸까?
신하 중 한 명이 의견을 냈다.
“기옌 렌은 지금 용족을 수하처럼 다루고 있습니다. 드래곤의 힘을 믿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드래곤의 군세가 제국을 상대할 정도로 강하다는 것인가?”
황제의 질문에 신하가 말미를 흐렸다.
“그, 그것은 저희도 아직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드래곤이 무리를 이루어 쳐들어온다?
이게 사실이라면 제국 입장에서도 만만치 않은 상황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런데, 대체 얼마나 만만찮은 것인지를 모르겠다.
“여태 이런 경우가 한 번도 없었으니 전력을 파악하기도 힘들다고 합니다.”
그렇다 해도 제국이 두려워할 정도는 아니다.
그만큼 라케아니아의 국력은 막강하다.
“감히 제국의 힘을 우습게 봐도 유분수지.”
분노한 고드프리드 2세의 명에 따라 기옌 렌을 상대할 군대가 제도로 모였다. 또한 황제는 베루스 연방에 연락을 취해 사정을 파악하게 했다.
“요정족에게 이 사태에 대해 어찌 책임을 질지 묻도록 하라.”
바로 연락이 되진 않았다.
제국이 타국과 연락할 때는 보통 마법의 힘을 빌리는데, 베루스 연방에서 그 역할을 담당하던 이들이 대륙 3대 마법학파 중 하나인 황금가지회였다.
지금 기옌 렌을 따라 제국을 침공하고 있는 바로 그 황금가지회 말이다.
그래서 디오그레스 콜론이 여명탑의 마법사를 동원해 간신히 제3의 연락망을 만들었다. 엘레자르가 없는 지금, 그가 제국 황실 마법사의 역할을 겸하고 있었다.
그렇게 간신히 베루스 연방에 마법의 전언을 보냈다.
-감히 제국에 칼을 들이댄 저의에 대해 변명할 말이 있는가?
이에 대한 베루스 연방 의회의 답변은 이것이었다.
-총수호자가 제국을 공격했단 말입니까? 대체 언제?
아예 이런 일이 벌어진 줄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드래곤 랜드 곳곳에 따로 흩어져 살다가 1년에 한두 번 있는 정기 집회 시에만 만나는 이들이다. 서로 소통 자체가 워낙 안 된다.
더구나 현 요정족의 공동 대표는 엘프의 엔 히바와 드워프의 오고무, 베루스 연방에서 가장 큰 세력을 지닌 타플 시티와 스울 마운틴의 주인이었다.
애초에 타플 시티와 스울 마운틴이 가장 세력이 큰 이유가 제국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어 가장 살 만한 곳이기 때문이다. 더더욱 정보 전달이 느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굳이 속일 이유가 없기에, 제국 외교관의 태도도 한풀 누그러졌다.
-즉, 베루스 연방은 여전히 제국을 적대하지 않는다는 의미인가?
-물론이오!
-그렇다면 저 발칙한 기옌 렌의 무도함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하라.
그러자 요정족 의회가 약한 모습을 보였다.
-물론 도의적으로 져야 하지만…….
-우리도 그렇게 하고는 싶은데…….
-제국도 알다시피, 우리와 그대들 사이에는 드래곤 랜드가 있지 않소?
애초에 라케아니아 제국이 요정족을 공격하지 못한 이유가, 중간에 드래곤 랜드가 떡 버티고 있어 함부로 군대를 동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드래곤은 자신의 영역에 다수의 인간들이 접근하면 미쳐 날뛰곤 하니까.
그리고 드래곤은 자신의 영역에 다수의 엘프나 드워프가 접근해도 똑같이 미쳐 날뛴다.
저 드래곤 랜드는 베루스 연방을 제국의 핍박으로부터 막아 주는 방어벽이면서, 동시에 베루스 연방이 서쪽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장벽이기도 하다.
-제국의 요구에 따르려면 드래곤 랜드를 지나가야 하는데, 우리의 군대에는 그럴 능력이 없소.
요정 의회의 답변에 대한 제국의 답변은 실로 차가웠다.
-그렇다면 기옌 렌 다음엔 그대들의 차례가 될 것이다.
-설마 드래곤 랜드를 넘어오겠다는 것이오? 희생이 너무 클 터인데?
-희생이랄 것도 없다. 이미 그 드래곤 랜드의 용족들이 제국을 공격하고 있음이니.
살벌한 내용을 마지막으로, 제국의 마법 전언은 끝났다.
-베루스 연방은 제국의 분노를 맛보게 되리라.
***
제국의 전언이 끝나자 요정 의회는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어, 어쩌지요?”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군.”
“그보다 대마법사께서 사교도란 게 무슨 소리인 건지…….”
베루스 연방 역시 검은 신의 교단 때문에 분위기가 흉흉해진 지 오래였다.
종말의 어둠은 국가를 가리지 않고 내린다.
당연히 엘프와 드워프 들 중에서도 타락한 자들의 숫자가 상당했다. 사교도의 수 역시 날로 늘고 있었다.
인간들에겐 요정족이 장생하는 신비한 종족인 듯 여겨지지만, 실은 오래 산다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인간은 개나 고양이보다 몇 배나 오래 살지만 그래서 어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던가? 오히려 더더욱 두려워하면 했지.
장생이니 뭐니 해 봐야 어디까지나 인간 기준일 뿐, 사람 사는 것은 어차피 거기서 거기다.
죽음을 두려워한 많은 엘프와 드워프 들이 사교단에 현혹되었다.
덕분에 기옌 렌과 황금가지회의 마법사들은 내내 연방의 내부 사정을 다스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랬던 그가 갑자기 사교도가 되었다니?
“어쩌면 좋단 말이오?”
“제국의 요구를 무시할 순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가 뭘 할 수도 없지 않소?”
“설마 드래곤 랜드를 군대로 지나가겠다는 소리는 아니겠지?”
“그래도 뭔가 성의는 보여야 하지 않겠소?”
수십 명의 엘프와 드워프 들이 한마디씩 하니 회의장 전체가 시장처럼 어수선해졌다.
분위기를 환기시킨 것은 요정족의 공동 대표 중 한 명, 엔 히바였다.
“각 도시에서 정예를 뽑아 소규모로 드래곤 랜드를 건너게 합시다.”
그냥 무시한 채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을 순 없다.
분노한 제국이 희생을 각오하고 밀고 들어오면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터.
그게 아니더라도 이는 분명 요정족의 책임이다. 손을 쓰긴 써야 한다.
“그렇군.”
“그 정도라면 용들을 흥분시키지 않고 드래곤 랜드를 건널 수 있겠어.”
다른 의원들도 찬성표를 던졌다.
그렇게 요정족의 정예들만 모아 특수 부대를 창설해 기옌 렌을 막자는 방향으로 의견이 굳혀 갈 때였다.
“결국 그렇게 결론을 내리셨습니까?”
한 엘프 의원이 안타깝다는 듯 묘한 말을 했다.
“아쉽군요, 조금은 더 숨어 있고 싶었는데.”
근처의 다른 엘프와 드워프 들이 의아해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렐타나?”
“자네 지금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건가?”
의문은 이내 풀렸다.
그 엘프의 전신으로 시꺼먼 어둠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허, 허억?”
“사교도!?”
그뿐만이 아니다. 의회 곳곳에서 지독한 사령력이 간헐천처럼 분출한다.
“맙소사! 사교도들이 의회에까지 잠입해 있었던 건가?”
다들 기겁해 무기를 꺼냈다. 하지만 사교도들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모두 죽여라.”
아름다운 요정족의 회의장이 살육의 현장이 되었다.
진한 피가 회의장 바닥을 적시고 죽음의 그림자가 짙어진다.
처절한 비명이 허공에 울려 퍼졌다.
“으아아악!”
“아아아악!”
***
기옌 렌의 소식을 종합한 뒤 카르나크는 다음 행보를 결정했다.
“일단 제국으로 간다.”
다만 라케아니아 제국군과 합류할 생각은 없었다.
“제국군이 우릴 받아 줄 리도 없고, 혹여 받아 준다 해도 딱히 우리에게 득 될 것도 없고.”
남들에게 못 보여 주는 짓을 많이 하는 그가 제국군 한복판에서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리고 어차피 카르나크의 목적은 제국의 승리라거나 검은 신의 교단을 물리치는 것이 아니다.
“기옌 렌만 빼돌리면 그만이거든.”
검은 신의 교단은 반드시 기옌 렌을 ‘몸 성히’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카르나크는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
죽인 다음 확인해도 되니까.
드렐타인의 영혼이 생각했던 대로가 아닌 탓에 사교단 관련 정보는 딱히 얻은 것이 없었다.
하지만 테스라낙이 영혼을 거두는 수법에 대한 정보는 건진 것이다.
드렐타인의 영혼을 빼돌리는 과정에서 원하던 술식 자료를 입수할 수 있었으니, 이번에 기옌 렌을 해치우게 된다면 그땐 영혼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을 터였다.
물론 이것까지 감안해서 테스라낙이 새로운 술법을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기는 하겠지만…….
“이런 것까지 전부 따지면 세상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걸?”
일단 가능할 것이라 믿고 진행해야 일이 풀리는 법이다.
그래서 현재 카르나크가 세운 작전은 이것이었다.
“양쪽 군대의 상황을 계속 살피다가, 전황에 따라 중간에 끼어들어서 기옌 렌의 뒤통수를 맛깔나게 후려치는 거지.”
338.
사령왕 카르나크(邪靈王 karna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