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th King Karnak RAW novel - Chapter (338)
사령왕 카르나크-338화(338/338)
78. 요정과 용 그리고 마물 (3)
작전이 세워졌으니 카르나크 일행은 곧바로 제국으로 향할 준비를 했다.
그중엔 아직 제대로 힘을 회복하지 못한 드렐도 있었다.
“영지에서 마저 몸 만드는 게 낫지 않을까? 아직 힘을 완전히 되찾지 못했잖아?”
카르나크의 만류에도 드렐은 요지부동이었다.
“여행하면서 마저 만들면 됩니다! 어차피 하루아침에 도착하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거의 10년을 지옥과도 같은 무의식 너머에 갇혀 있던 그였다.
미래의 드렐타인에게 복수할 기회를 결코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어차피 그자는 다시 돌아올 것 아닙니까? 카르나크 님 말씀대로라면 말이죠.”
“뭐, 그렇기는 한데…….”
테스라낙의 부하들은 이겨도 이긴 게 아니다.
분명히 데스 나이트나 다른 언데드를 이용해 돌아올 테니까.
“……라곤 했는데, 어째 아직 아무도 안 돌아왔단 말이지?”
그간 카르나크가 놓친 영혼은 제법 많다.
자질구레한 졸병들은 차치하고 굵직한 거물들만 뽑아도, 미래 레번에 갤러드에 엘레자르과 드렐타인도 있다.
“제덱스의 경우엔 이게 그냥 영혼이 흩어진 건지, 아니면 테스라낙으로 돌아간 것인지 좀 애매하지만 말이지.”
그리고 한 번 시공회귀한 영혼들은 죽은 후에도 여전히 이 시대에 속해 있다.
이는 현세 레번의 육체에서 쫓겨난 미래 레번이 에밀 스트라우스의 육체를 이용한 점에서 이미 증명되었다.
그런데 이상할 정도로 아직까지 돌아온 이가 없는 것이다.
“뭔가 따로 조건이 필요한 게 아닐까? 그 조건을 맞추기 위해 기옌 렌이 저렇게 무모하게 나선 것이고.”
***
멘트 시타델을 함락시킨 기옌 렌은 그 후로도 진군을 계속했다.
그 기세는 실로 파죽지세, 강력한 기옌 렌의 군세 앞에 제도로 향하는 동부 성채 3개가 더 함락되었다.
물론 제국도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제국의 최정예를 모아 정벌군을 꾸렸고, 시간을 벌기 위해 기옌 렌의 진군로 앞에 있는 작숨 시티에도 병력을 모았다.
파사의 여단 동부 주둔군이었다.
원래부터 검은 신의 사교도들을 상대하고 있던 이들이라 움직임도 빨랐다. 무려 5,000에 달하는 병력이 작숨 시티에 투입되었다.
하나같이 사령술에 익숙한 정예들이며, 굳건한 성벽을 바탕으로 농성까지 할 수 있다. 이 정도 전력이면 어지간한 공세에도 흔들리지 않을 터다.
공세가 어지간하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지만.
***
지평선 너머로 대량의 먼지가 솟아오른다. 이내 땅이 흔들리며 수천의 마물들이 광포한 포효와 함께 달려온다.
“크카카카카!”
“카오오오!”
오크와 트롤, 고블린과 코볼트 등 온갖 몬스터들이 광기에 물든 눈으로 성벽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화살과 돌덩이, 그리고 마법에 의해 나가떨어졌다.
“이 더러운 마물 놈들이!”
“어딜 감히 기어 올라오느냐!”
파사의 여단 동부 주둔군은 평소에도 사교도를 상대하느라 실전으로 잔뼈가 굵은 이들이었다. 이들이 지휘하는 제국군 역시 훈련 수준이 높았다.
몰려오는 마물들을 상대로도 결코 물러나지 않고 용맹하게 맞서 싸운다.
문제는 반대쪽에서 몰려오는 또 다른 군세였다.
“우어어어…….”
“으어어어…….”
수천에 달하는 시체들이 섬뜩한 신음을 흘리며 창칼을 들고 성벽으로 다가온다. 개중에는 익숙한 복장을 한 이들도 있다. 바로 그간 함락되어 죽어 간 제국군과 시민들의 시체들이다.
“저 저주받을 놈들!”
“죽은 자의 안식마저 더럽히다니!”
언데드에 익숙한 파사의 여단 오러 유저들이 앞장서 저들을 상대하려 했다. 하지만 이내 가로막혔다.
언데드 군세를 지휘하는, 회색빛 피부를 지닌 엘프와 드워프 들에 의해서.
요정족 전사들이 데스나이트가 되어 검은 투기검을 휘두르며 덤벼들고 있는 것이다.
“테스라낙 님의 이름으로!”
“이교도들에게 죽음의 축복을 내리리라!”
자그마치 서른에 가까운 요정족 데스 나이트들이 몰려온다. 파사의 여단에 속한 오러 유저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 숫자다.
“어떻게 오러 유저에 필적하는 괴물들이 저렇게 많은 거지?”
그래도 어떻게든 버텨 냈다.
원래 드워프 전사들은 괴력을 지닌 대신 지구력이 약하다. 키가 작아 사정거리도 짧다.
엘프 전사들은 빠르고 정교하게 움직일 수 있지만 체중이 낮아 위력적인 공격을 하기가 힘들다.
타고난 종족적 약점은 데스나이트가 된다고 바뀌는 것이 아니었다. 그 덕에 파사의 여단 오러 유저들도 감당할 수 있었다.
길어지는 공성전을 지켜보며 에밀 스트라우스가 혀를 찼다.
“역시 제국은 만만치 않군요.”
황금가지회의 엘프와 드워프 마법사 들도 생각보다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제국 마탑이 설치해 놓은 성벽 방어 결계에 계속 막히는 것이다.
기옌 렌이 지팡이를 고쳐 쥐며 말했다.
“내가 나서겠소.”
여기서 그가 직접 10서클 마법을 구사하면 전황을 반전시킬 수 있으리라.
에밀은 고개를 저었다.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지요.”
그리고 등 뒤로 가볍게 손짓을 했다.
“당신들이 나설 차례입니다.”
건장한 두 명의 청년, 그리고 아름다운 미녀 두 명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명대로 하겠소.”
“왕의 대리인이여.”
이들의 시선은 에밀의 손끝을 맴도는 검푸른 빛에 쏠려 있었다.
영롱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빛, 본능적으로 이들이 따라야 하는 복종의 징표였다.
4인의 남녀가 이내 모습을 바꿨다.
“크아아아아아!”
거대한 네 마리의 드래곤이 활개 치며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
성체 드래곤의 뒤를 따라 십수 마리의 아성체 드래곤도 날갯짓하며 날아올랐다.
지성이 생긴 성체 드래곤은 인류와 요정족 등 지성체로 변신하는 권능을 터득할 수 있지만 아성체의 용족에겐 아직 그런 능력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저들은 명령이 내려질 때까지 근처 땅에 내려앉아 대기하고 있었다.
스물이나 되는 드래곤이 일제히 날아오르는 광경은 실로 장관이었다. 이내 작숨 시티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병사들이 공포에 찬 비명을 터트렸다.
“드, 드래곤이다!”
“빌어먹을!”
“저게 왜 저렇게 많아!”
드래곤이 지나갈 때마다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며 어둠이 성벽 곳곳을 감쌌다. 수십 줄기의 불길이 연신 도시를 때려 댔다.
콰콰콰콰콰콰!
인간의 비명이 불길로 가득한 전장을 뒤덮었다.
“으아아아악!”
물론 작숨 시티의 방어군도 맥없이 당한 것은 아니었다. 성벽 위에서 계속해 화살과 창, 마법이 드래곤들을 노렸다.
“계속 쏴!”
“어떻게든 떨어트려야 한다!”
무릇 날아다니는 것은 격추당하기 마련.
비행 마법보다 격추 마법이 훨씬 발달한 시대다. 상대가 날아다니는 마법사나 사령술사였다면 어렵지 않게 떨어트릴 수 있었으리라.
문제는 저들이 드래곤이었다는 점이었다.
대부분의 성벽 방어 결계에는 비행 마법 카운터 매직이 걸려 있어서 함부로 날아올랐다가는 똑 떨어지기 십상이다. 그런데 이게 용마력을 사용하는 드래곤들에겐 통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직접적인 격추 마법으로 상대해야 하는데, 드래곤들은 날아다니면서도 마법에 대한 저항을 쉽게 해낸다.
원래부터 날아다니는 종족들이었으니까.
두 발로 걸어 다녀야 할 놈들이 마법이란 편법을 써서 억지로 허공을 떠다니는 것과는 자연스러움에서 차원이 다르다.
쾅! 콰쾅! 콰콰쾅!
드래곤들 주위로 연신 마법이 폭발했다. 하지만 큰 피해를 입은 놈들은 거의 없었다.
계속해 도시 상공을 선회하며 용의 숨결을 토하고 또 토해 낸다.
콰콰콰콰콰콰!
사흘 뒤, 결국 파멸이 도시 전체를 감싸 안았다.
***
함락된 작숨 시티는 현세의 지옥으로 변했다.
거리마다 마물들이 서성대고 언데드와 악령 들이 죽음의 기운을 퍼뜨린다. 골목마다 불길이 치솟고 시체가 나뒹군다.
곳곳에서 휘날리는 테스라낙의 검은 깃발 아래, 시민들의 비명이 메아리쳤다.
“으아아아악!”
“아아아악!”
사방에서 피가 흐르고 또 흘렀다. 그중에서도 특히 참혹한 상황에 처한 이들은 7여신교의 성직자들이었다.
“테스라낙의 이름으로!”
“더러운 여신의 개들을 거두어라!”
수많은 마물들이 엘프와 드워프 들의 지휘 아래 성직자 사냥에 나선다.
저들 역시 한때는 요정족의 유일신, 타알을 섬기는 신관들이었다. 하나 사령술사가 되어 사악한 힘을 다루는 지금은 성스러움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수많은 신관들이 붙잡혀 죽임을 당했다.
간신히 살아남아 포로가 된 이들도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처지.
달의 여신 알리움의 신관, 그렐다 역시 그런 신관들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운명은 다른 이들과 조금 달랐다.
이상하게 그녀만 따로 붙잡아 적들의 수장에게 끌고 왔으니까.
공포에 떨며 그렐다는 눈앞의 아름다운 엘프를 바라보았다.
‘저자가 대마법사 기옌 렌…….’
기옌 렌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찾았구려.”
옆에 서 있던 20대의 인간 청년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보니 정말 젊군요.”
“젊다 못해 어리기까지 하지요.”
두려운 와중에도 그렐다는 의아해했다.
대체 저 인간 청년은 누구이기에 대마법사도 하대하지 않는 걸까?
그때 청년이 그렐다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오른손을 들었다.
검푸른 광휘가 손끝에 맺힌다.
‘저건?’
마나도 오러도, 신성력도 사령력도 아니었다. 생전 처음 느끼는 생소한 기운이었다.
빛을 머금은 손끝으로 그렐다의 이마를 가볍게 짚었다.
단지 그것이 전부였다.
무슨 복잡한 술법 같은 걸 전개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렐다의 전신에서 검은 불길이 솟구치며 그녀를 크게 감싼다!
화르르륵!
놀란 그녀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빛을 잃었다. 공허한 시선이 허공으로 향했다.
“……아?”
그리고 잠시 후, 그녀의 눈빛이 돌아왔다. 아까와는 전혀 다른, 심원함마저 느껴지는 깊은 빛이었다.
그렐다가 엘프 대마법사를 향해 빙긋 웃었다.
“다시 만나 반갑군요, 기옌 렌.”
기옌 렌도 웃으며 그녀를 맞이했다.
“어서 오시게나, 렐피아나.”
그리고 좌우로 손짓을 했다.
“그녀에게 합당한 예우를.”
여인을 붙잡고 있던 엘프들이 곧바로 손을 떼고 정중하게 예를 표했다. 그럼에도 그렐다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이 몸은 정말 오랜만이네요.”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 몸을 일으키며 전신을 훑어본다.
“살아 있는 육신이란 게 이런 기분이었나?”
이해한다는 듯 기옌 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금방 적응이 될 걸세, 나 역시 그랬으니까.”
더 이상 그녀는 그렐다가 아니었다.
테스라낙의 사도 중 한 명, 알리움의 타락한 교황, 렐피아나였다.
렐피아나가 이번엔 인간 청년, 에밀 스트라우스를 돌아보았다.
“그대가 테스라낙 님의 화신?”
“그렇습니다.”
“정말 편하군요, 그 힘.”
예전처럼 상대를 제압한 뒤, 육체를 속박해 제단에 올려놓고, 기나긴 사령술식을 펼칠 필요가 없다.
그냥 상대와 접촉만 하면 끝이다.
“진작 썼다면 엘레자르와 드렐타인도 무사했을 텐데요?”
기옌 렌이 고개를 저었다.
“꼭 그런 것은 아니라네.”
그리고 에밀의 손끝에 맺힌 흑청광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은총(Grace)을 쓸 수 있게 된 것이니.”
에밀이 실소를 흘렸다.
“엄밀히 말하면 그들이 희생할 필요가 없긴 했지요.”
원래 계획은 시공회귀한 디오그레스 콜론이 카르나크와 싸우는 것이었다.
제국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엘레자르와 드렐타인을 소모시킬 이유는 전혀 없었으니까.
그런데 일이 꼬이는 바람에 귀중한 인재를 둘이나 잃고, 디오그레스는 강력한 적이 되어 버렸으며, 테스라낙에게로 돌아간 이들을 다시 부르기 위해 제국 침공이라는 거창한 사태까지 일으켜야 했다.
혀를 차며 에밀이 중얼거렸다.
“정말이지 사정도 모르는 주제에 신기할 정도로 이쪽 계획을 방해하고 있다니까요? 하긴, 원래 그런 자였지만.”
기옌 렌과 렐피아나가 묘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대체 그 카르나크란 자가 누구이기에…….’
‘테스라낙의 화신께서 저토록 신경을 쓰는 거지?’
하지만 감히 묻지 않았다.
-알려 하지 말지어다.
이것이 테스라낙의 절대적인 명령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