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th King Karnak RAW novel - Chapter (46)
사령왕 카르나크-46화(46/338)
#46화. 12. 종말은 열린 문 (2)
자그마치 100여 년에 걸친 이야기를 전부 떠들어 댈 순 없다. 그래서 카르나크는 대충 요약해 전생의 이야기를 세라티에게 해 주었다.
몰락한 가문의 사생아로 태어나 사령술을 익히게 된 사정.
가문을 차지하려다 사령술사임이 들통이 나 쫓기던 시절.
이후 세상을 전전하며 힘을 키우고, 그 와중에 사람들의 분노를 사 종국엔 대륙의 공적이 된 이야기.
결국 인간임을 버리고 아스트라 슈나프가 되어 세계 정복에 성공한 뒤, 잃어버린 육신을 되찾기 위해 궁리하던 일까지.
“그런 이유로 이 시대로 돌아왔다, 뭐 이런 거지.”
대충 설명을 마치며 카르나크는 눈짓을 했다.
“어때, 궁금증이 좀 풀렸나?”
세라티는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맙소사…….”
하지만 그 와중에도 조금씩 납득이 간다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군요. 과연, 그래서 그런…….”
카르나크가 도리어 당황했다.
“어라? 정말 믿는 거야?”
“설마 거짓말인가요?”
“그건 아닌데, 내가 생각해도 믿기 힘든 이야기라서 말이지.”
“솔직히 그런 걸 보여 주고 나면 믿지 않을 수도 없잖아요.”
저들이 보여 준 실력 자체가 워낙 허황된 것이었다. 저 정도 허황된 이야기가 바탕이어야 차라리 이해가 간다.
동시에 또 다른 의문도 들었다.
“그렇다는 건, 카르나크 님은 원래 불멸의 존재였다는 건가요?”
“응.”
“죽음도 질병도 고통도 없었다는 소리죠, 그거?”
“응.”
“심지어 삼라만상을 뜻대로 다룰 정도의 힘을 지녔고?”
“삼라만상의 범위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쨌건 세상 정도는 내 맘대로 주무를 수 있었지.”
“그런데…….”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세라티가 재차 물었다.
“그 모든 걸 버리고 도로 인간이 되었다고요?”
하찮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 신의 경지에 올랐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런데 고작 인간적인 감각을 못 느낀다는 이유만으로 그걸 포기했다고?
“차라리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육체를 따로 만들면 되지 않나요?”
“해 봤어. 안 되더라.”
“그럼 다른 인간에게 빙의하면…….”
“그것도 해 봤어. 안 되더라.”
“그렇다면 다른 인간에게 감각 공유 같은 걸 걸면…….”
“역시 해 봤지. 안 되더라.”
무려 수십 년이란 세월 동안 생각할 수 있는 건 다 시도해 보았다. 실패하고 실패한 끝에 남은 유일한 길이 이것이었다.
“그런데 세라티도 은근히 이쪽 수법에 대해 많이 아네? 선량한 사람들은 보통 떠올리기 힘든데, 그런 거.”
“그, 그게, 예전에 비슷한 책을 읽은 적이 있어서…….”
이것이 그녀가 카르나크의 설명을 쉽게 받아들인 이유 중 하나였다.
시간이 날 때마다 각종 모험담을 탐독하는 취미가 있었던 덕분에, 전생이니 시공 회귀니 하는 이야기도 그럭저럭 납득하는 것이다.
어쨌든 세라티는 혼란스러워했다.
누군가가 그녀에게 언데드가 되는 대신 4대 무왕조차 초월하는 궁극의 무인이 될 수 있다고 한다면 어떨까?
‘난 받아들일 것 같은데…….’
카르나크가 저 경지에 오르기까지 실로 부단한 노력과 집념, 흔들림 없는 정신력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불멸까지 손에 넣었겠지.
그런데 막상 목표에 오르고 나니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고 그걸 포기했다고?
애초에 그런 인간이면 저 지고의 경지까지 갈 수도 없지 않을까?
카르나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나도 그럴 줄 알았지.”
당시엔 진심이었다.
이까짓 살덩이 따위, 그가 꿈꾸는 궁극의 경지로 향하는 길을 가로막는 거추장스러운 장애물 정도로만 여겼다.
단 하나의 진리, 단 하나의 절대적 목표를 위해선 모든 것을 포기한다 해도 충분히 가치 있다 생각했다.
“그건 진짜 당해 보기 전엔 절대 이해 못 할걸.”
“저도 데스 나이트 된 초반엔 마냥 좋았어요. 인간일 때 불편했던 점이 죄다 사라졌으니까.”
카르나크와 바로스가 히죽 웃었다.
둘 다 버린 것에 대한 미련은 전혀 없는 표정이었다.
세라티가 조심스레 질문을 이었다.
“그래도…… 아깝진 않나요?”
평생 쌓아 올린 것을 잃고도 아쉽지 않을까? 자신보다 약했을 상대에게 밀리는 것이 분하진 않을까? 실제로 슈트라프 ‘따위’에게서 도망까지 치지 않았던가?
“왜 아깝지 않겠어?”
카르나크가 고소를 지었다.
“가능하면 둘 다 포기 안 했지. 둘 중 하나는 반드시 포기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었을 뿐.”
과거의 권능이 그리운가?
솔직히 가끔 그렇다.
약해진 현재의 자신에 불만이 없는가?
왜 없겠나? 당연히 불만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코 아스트라 슈나프로 돌아가고 싶진 않다.
“난 지옥의 왕이었어. 아무리 왕이었다 해도 내가 살고 있는 곳이 지옥이란 사실엔 변함이 없었지.”
물론 인간이 되었다 해서 천국에서 산다는 소리는 아니다.
사람들도 말하지 않나? 현세가 곧 지옥이라고.
저 말엔 카르나크도 어느 정도 동의한다.
“지옥에 단계가 있다면, 인간의 삶은 지옥 중간층 정도 되겠지.”
아스트라 슈나프가 된 삶은 지옥 최하층이었다.
“지옥 최하층의 왕으로 군림하며 세상을 발밑에 굴복시키느니, 차라리 지옥 중간층에서 적당히 안주하며 사는 게 나아.”
그가 차분한 미소를 지었다.
“둘 다 살아 본 내가 하는 말이니 정확할 거다.”
세라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왜 사령술이 금기 중의 금기인지 알 것 같다. 사령술의 궁극에 도달한 자가 내린 결론이 저것이라면.
“언데드가 될 바엔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게 나은 건가요…….”
카르나크가 눈을 치켜떴다.
“무슨 소리야? 죽을 것 같으면 언데드라도 되어야지.”
“네? 하지만 방금은…….”
“그러니까 되도록 사령술은 멀리할 거야. 하지만 당장 죽게 생겼는데 삶을 포기하라고? 그땐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지.”
“그럼 기껏 돌아온 의미가 없어지잖아요?”
“그러니까 무슨 수를 써서든 아스트라 슈나프로 돌아가야지.”
그리고 도로 시공 회귀를 한다. 그래서 또다시 인간적인 감각을 되찾는다!
“이쪽이 합리적이잖아?”
옆에서 바로스도 한마디 했다.
“그거 너무 오래 걸리지 않아요? 대륙 인구 절반은 죽여야 다시 사령왕이 되실 수 있을 텐데요.”
“한 번 해 본 짓이잖아. 예전처럼 몇 년씩 걸리진 않겠지.”
“그러네요. 납득했어요.”
태연한 두 주종의 대화에 세라티는 부르르 떨었다. 이제야 저들의 행태가 이해가 갔다.
‘아, 원래 저런 인간들이구나.’
사고방식 자체가 일반인이랑 다르다.
새삼 그녀는 각오를 다졌다.
“카르나크 님.”
“왜?”
“전 이제 당신의 기사. 그러니 제 목숨을 다 바쳐서 당신을 지키겠습니다.”
카르나크를 위해서가 아니다. 인류와 세상을 위해서다.
이 위험한 작자가 제 목숨 위태로울 경우 도대체 뭔 짓을 할지 짐작이 안 간다!
돌변한 세라티의 태도에 카르나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
어쨌거나 지켜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야 없다.
“어, 뭐, 고마워.”
대충 이야기가 마무리되었으니 일행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관도를 따라가는 카르나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세라티는 문득 생각했다.
‘그렇다면 저 인간, 늙어 죽을 때가 되면 대체 어쩔 셈이지?’
***
트리스트 시티를 출발한 지 닷새 뒤, 카르나크 일행은 제스트라드 영지에 도착했다.
“나 왔어, 타펠 영감!”
미리 전갈을 받았기에 저택의 시중인들이 마중 나와 있었다. 노집사 타펠이 환한 얼굴로 카르나크를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영주님.”
이미 소문을 통해 전해 들었다.
카르나크와 바로스가 데라트 시티에서 어떤 활약을 했는지.
수도에 마법 공부하러 간다던 놈이 생뚱맞게 데라트 시티에 몇 달씩 주저앉았다는 소식을 받았을 땐 타펠도 걱정이 많았다.
세상을 보며 견식을 높이는 것이야말로 젊음의 특권이라곤 했지만, 그렇다고 할 일도 미뤄 두고 마냥 놀라는 소린 아니었다. 한때는 어떻게 잔소리를 해야 할지 고민도 꽤 했다.
그런데 웬걸?
데라트 시티에서 대활약한 카르나크와 바로스의 명성이 무려 왕국 최북단인 제스트라드 영지까지 전해지는 것이 아닌가?
수많은 사령술사를 처리하고 왕국의 백성들을 구했으니 참으로 명예로운 일이었다. 제스트라드 가문의 위명 역시 크게 높아졌다.
기쁜 마음으로 막 타펠이 칭찬을 늘어놓으려던 차였다.
‘음?’
카르나크 뒤에 못 보던 여인이 1명 서 있었다.
탐스러운 붉은 머리칼에 시원시원한 인상, 생기가 넘쳐 보이는 미모의 여인이었다.
시골에서만 살아온 이들에겐 난생처음 보는 놀라운 미녀이기도 했다.
‘……설마?’
살짝 불안한 느낌이 들었지만 타펠은 차분하게 응대했다.
“손님이 계셨군요, 영주님. 미리 알려 주셨으면 좋았을 것을.”
“그렇지, 참?”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카르나크가 그녀를 가리켰다.
“소개하지. 세라티 알렌이다.”
젊은 놈이 여행 나갔다가 웬 미녀를 데리고 돌아왔다면 이유는 뻔하다.
모여 있던 저택의 하인, 하녀 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어머나!’
‘혹시?’
‘미래의 남작 부인이신가?’
타펠은 난처해했다.
한 지역의 영주쯤 되는 이가 자기 마음대로 아내를 들일 수는 없다. 어느 정도 격이 맞아야 한다.
하지만 알렌이란 성을 지닌 귀족은 들어 본 바가 없었다.
아니, 그 전에 워낙 흔한 성이었다. 귀족이 아니라 평민이란 의미였다.
‘허어, 이걸 어떻게 말씀드려야 하지?’
그런데 이어진 이야기가 좀 의외였다.
“그녀는 제스트라드 남작가의 새로운 기사가 되었다. 정식 서임은 추후에 할 것이니 준비해 두도록.”
“……예?”
타펠은 눈을 껌벅였다.
기사라고? 예비 마누라가 아니라?
‘아니, 왜 저런 여인을 우리 영지의 기사로?’
그녀는 분명 놀라운 미모의 소유자였다. 몸매 또한 날씬하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이는 미녀의 덕목이지 기사의 덕목은 아닌 것이다.
모름지기 칼 밥 먹고 살려면 듬직한 근육, 커다란 덩치, 강인한 인상이 기본 아니겠는가?
그러니까 지금 옆에 서 있는 저 바로스 경처럼 말이지.
“영주님, 아무리 우리 영지가 변경이라곤 하지만 아무나 기사로 삼을 수는…….”
타펠뿐 아니라 다른 이들도 당황하며 카르나크와 세라티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사람들의 반응에 바로스가 피식 웃었다.
“세라티 경의 예상대로네요.”
“자주 겪는 일이니까요.”
세라티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어중간한 놈들이나 무시당하면 화를 내지, 진정한 강자는 둔감한 법이다. 즉석에서 스스로를 증명할 수 있거든.
백문이 불여일견, 세라티가 검을 뽑았다.
발검 동작이 상당히 세련되어 다들 어느 정도 납득을 했다.
‘검 뽑는 건 멋있다.’
‘하긴, 여자가 검을 쓰려면 저 정도는 하겠지?’
‘하지만 마물을 상대로 우아한 검술은 별 쓸모없다고 들었는데.’
우우우웅!
붉은 빛이 칼날을 뒤덮었다. 동시에 가공할 기운이 모인 이들의 어깨를 짓눌렀다.
“헉!”
“꺄악!”
하인, 하녀 들이 경악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타펠의 눈동자도 격하게 흔들렸다.
아무리 검술의 문외한이라도 눈앞의 저 빛이 무엇인지 모르는 이는 없다.
“투, 투기검? 설마 오러 유저?”
제스트라드 최강으로 인정받는 바로스 경이나 데벤토르 최강의 기사였던 란돌프 경도 저 경지엔 도달하지 못했다.
가문의 모든 기사들이 다 덤벼도 감히 범접지 못할 초인의 영역이 아닌가?
카르나크가 시큰둥하게 물었다.
“아직도 그녀의 실력에 의문이 있나?”
있을 리 없었다.
그저 타펠의 표현이 조금 바뀌었을 뿐이다.
“아니, 왜 저런 분이 우리 영지에 기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