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th King Karnak RAW novel - Chapter (70)
사령왕 카르나크-70화(70/338)
#70화. 18. 심야의 사투 (2)
스산한 안개 사이로 유령 병사들이 움직인다.
섬뜩한 신음을 흘리며, 기괴한 어둠을 뿌리며 밤의 슬럼가를 미끄러진다.
“으어어어…….”
“으으으…….”
그럼에도 여전히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딱히 이곳에 사는 주민이 없어서는 아니었다.
“여신이시여…….”
“이게 대체 무슨…….”
“얘! 창문 근처로 가지 마!”
다들 집 안 깊은 곳에 숨어 벌벌 떨고 있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웬 음침한 로브 차림의 사내 두 놈이 땅바닥에 허연 안개 죽죽 깔면서 유령 군대를 잔뜩 거느린 채 살벌하게 걸어오고 있는데, 그 광경을 보고도 밖으로 나갈 마음이 들겠냐?
그 정도로 용맹한 전사의 심장을 가진 이는 애초에 이런 슬럼가에 살지도 않는다.
덕분에 케일과 올트는 아무 제지 없이 슬럼가 깊이 들어올 수 있었다.
주위를 살피며 올트가 물었다.
“저쪽은 어떻게 나올 것 같나?”
이 정도로 일을 벌였으니 사령술사라면 당연히 사태를 감지했을 터였다.
“놈의 특기가 무엇이냐에 따라 다르겠지.”
홍염단의 보고에 따르면, 로이드 왕자 측 사령술사는 악령을 부르기 앞서 좀비 무리를 내세워 압박하는 방식부터 썼다고 했다.
“일단 전형적인 술법이긴 한데…….”
미심쩍다는 듯 케일이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환각에 걸렸을 가능성이 크지?”
사령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좀비를 다루는 수법이다.
시체를 일으켜 새로운 죽음을 낳는 그 추악한 광경이야말로 사령술사의 아이덴티티 그 자체.
딱히 편견도 아닌 것이, 실제로 워낙 쉬운 술법이기도 했다.
시체를 일으켜 조종하는 건 진짜 최하급 사령술사라도 할 수 있으며, 심지어 사령술의 지식 없이 어둠의 힘만 지닌 이들이라도 간혹 ‘절실히 바라는 것’만으로 가능할 지경인 것이다.
몰라도 할 수 있고, 알면 더 편하게 할 수 있고, 힘은 별로 안 드는데 효율은 최고.
문제는 이 술법에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케일은 정확히 그 점을 짚었다.
“수도에서 그 정도 숫자의 시체를 구할 수 있었을 리가 없어.”
좀비 조작술은 있는 시체를 일으켜 움직이게 하는 것이지, 없는 시체를 만드는 수법이 아니다.
그렇다고 항상 시체를 휴대하고 다닐 수 있을 리도 만무하다.
공동묘지나 전쟁터 같은 특정 장소가 아닌 한 좀비 조작술은 크게 유용한 수단이 되질 못한다.
“아마도 실제 주특기는 악령을 다루는 강령술 쪽이겠지?”
“환각까지 덧붙인 걸 보면 그리 강한 술사는 아니야. 정면으로 붙으면 우리 상대는 아닐 터다.”
“그렇다면 어딘가에 숨어 기습을 노리겠군?”
“그게 바람직한 사령술사의 모습이긴 하지.”
히죽거리며 케일이 뒤를 돌아보았다.
시퍼런 혼령불에 휘감긴 수십의 유령 병사들을 향해 명령을 내린다.
“가라, 나의 하수인들아…….”
손짓에 따라 유령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어둠의 명에 따라 네 주인의 적을 찾아라!”
***
무수한 망령들이 밤거리를 가르며 곳곳을 누벼 간다.
애초에 영혼. 벽이나 지붕 따위로 막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벽을 뚫고 바닥에서 솟구치고 천장에서 흘러내리며 거리낌 없이 집과 집 사이를 통과해 지나간다.
직접적인 위해를 끼치는 건 아니고 그냥 살펴보며 지나칠 뿐이지만 숨어 있던 주민들에겐 실로 공포의 광경이리라.
유령 병사들이 눈앞을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은 억지로 입을 틀어막으며 벌벌 떨었다.
“……!”
“흐윽…….”
모습을 숨긴 채 거리 한편에서 상황을 살피던 세라티가 인상을 썼다.
“악랄한 놈들, 상관없는 주민들까지 휘말리게 하다니…….”
반면 바로스는 감탄하고 있었다.
“사령술사치곤 상당히 착하네요!”
“착하다고요?”
“주민들은 무시하고 지나치잖아요.”
“당연한 거 아닌가요? 주민들은 적도 아닌데, 해칠 필요가 없잖아요?”
“필요는 있죠, 사실.”
바로스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떠올랐다.
“1명 죽일 때마다 써먹을 시체가 하나씩 생기잖아요.”
“…….”
세라티는 말문을 잃었다.
저런 식으로는 아예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사령술사란 족속들은 원래 다들 그런 식인 거예요?”
바로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각해 보니 도련님만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딱히 저 사교도들이 착해서라기보다는, 아무리 나쁜 놈이라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긴 쉽지 않은 것이다.
그건 진짜 어지간히 썩어 빠진 악당이어야 떠올릴 수 있는 발상이다.
‘그런데 그 썩어 빠진 악당이 내 영혼의 주인이네. 아이고, 내 팔자야…….’
세라티의 표정에서 내심을 읽었는지 바로스가 대신 변명을 해 주었다.
“요샌 도련님도 많이 개과천선하셨잖아요.”
“개과천선해서 그 정도라는 게 문제거든요!”
그러는 동안에도 유령들은 계속 슬럼가를 파헤치고 있었다.
점점 놈들이 두 사람이 숨어 있는 곳에 가까워진다.
“슬슬 때가 됐군요.”
대걸레를 고쳐 쥐며 바로스가 눈을 빛냈다.
“계획대로 움직입시다.”
***
문득 케일이 고개를 들었다.
랜턴 속에서 푸르게 타오르던 혼령불이 일순 흔들린 탓이었다.
“망혼 하나가 당했다.”
기다리던 반응이었다.
긴장하며 올트가 물었다.
“어디지?”
“저쪽이군.”
방향을 확인한 케일이 모든 유령 병사들을 그곳으로 집결시켰다.
‘가라, 나의 하수인들아!’
그렇게 망혼들을 먼저 보낸 뒤 두 사람도 달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유령 병사들이 가득 모인 광경이 보였다.
슬럼가 건물과 건물 사이의 작은 공터였다.
도착해 보니 이미 한바탕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헙!”
짧은 기합과 함께 검은 머리의 사내가 검을 뻗어 간다.
덤벼들던 유령 병사 하나가 일격에 흩어지며 귀곡성을 터트린다.
“끼아아아악!”
소멸하는 유령 뒤로 다른 놈들이 몰려와 검을 휘둘러 댔다.
반투명한 영적 칼날이 막 사내를 노리려는 찰나, 붉은 머리의 여인이 빠르게 막아 냈다.
“흥!”
코웃음과 함께 장검이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유령의 칼날을 부수고 지나간다.
그때마다 유령들이 연신 귀곡성을 내지른다.
“아아아악!”
사방에서 몰려오는 유령 병사들을 상대하면서도 둘 다 차분하기 그지없었다.
전혀 몰리는 기색 없이, 실로 효율적인 동작만으로 영체인 유령 병사들을 연신 베어 갈 뿐이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저들의 장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어둠의 기운 때문.
상황을 살피던 케일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저들이 로이드 왕자 쪽 사령술사인가?”
올트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뭔가 좀…… 이상하군.”
일단 겉보기엔 평범한 검사 같다.
하지만 사령술사는 검은 로브 뒤집어쓰고 다녀야 한다고 누가 정해 놓은 것도 아니고, 복장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물론 케일과 올트는 검은 로브 뒤집어쓰고 있었지만 이는 온갖 사령술용 촉매를 잔뜩 챙겨 다녀야 하는 직업적 특성상 로브가 가장 편하기 때문이다.
굳이 검은색인 이유는 어둠과 죽음의 기운이 시꺼멓다 보니 그냥 색깔 맞춘 것이고.
지나치게 검술이 뛰어난 점 역시 납득할 수 있는 범주다.
사령술사 중엔 스스로를 강화해 근접전을 펼치는 무투파도 있으니까.
“어둠의 힘을 쓰고 있으니 사령술사인 것 같긴 한데…….”
단지, 굉장히 거슬리는 부분이 하나 있었다.
케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건 대체 뭐지?”
유령을 베어 가는 사내의 다른 쪽 손에 웬 대걸레가 한 자루 쥐여 있었다.
“저건 또 뭐고?”
여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아하게, 한손 검술을 열심히 피력하고 있는데 반대쪽 손에 프라이팬 하나를 덜렁 들고 있다.
올트가 눈을 깜빡였다.
“……사령술의 일종인가?”
“그, 글쎄.”
사령술이라면 뭔가 사기나 탁기가 흘러나와야 할 것 아닌가?
아무리 봐도 그냥 대걸레고, 그냥 프라이팬이었다.
심지어 저걸 무기로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들고만 있다.
그 탓에 괜히 한 손을 못 써 불리하기까지 하다.
‘도대체 왜?’
‘도저히 이해를 못 하겠군.’
그러는 동안에도 유령 병사들은 계속 쓰러지고 있었다.
둘은 황급히 정신을 차렸다. 느긋하게 구경이나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일단 저놈들부터 처리하지!”
이미 다수의 유령 병사들을 이용해 상대를 압박하고 있다. 그러니 여기서 사역마를 추가로 투입할 필요는 없다.
케일이 양팔을 펼치며 사령력을 끌어 올렸다.
“망자여, 눈을 떠 혼돈의 손을 뻗어라!”
핏빛 어둠이 넘실대며 케일을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동시에 바닥에서 섬뜩한 형상의 손들이 솟구쳤다.
무수한 지옥의 손길을 불러내는 사령결계, ‘가라앉는 망자의 늪’이었다.
‘어?’
느긋하던 바로스의 안색이 순간 굳었다.
‘이걸 펼칠 정도면 진짜 수준급인데?’
그동안 만났던 사교도들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다.
‘하긴, 일국의 왕족에게 접근할 정도면 교단 내에서도 상당히 고위급이겠지.’
뭐, 그렇다고 긴장해야 할 정도까진 아니었다.
이 역시 그에겐 충분히 익숙한 수법이었다.
‘오랜만에 스텝이나 좀 밟아 봐야겠네.’
일단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
“후우우…….”
괴상한 기합과 함께 바로스의 움직임이 변했다.
“헛! 홋! 호잇!”
좀 전까지 진중하게 중심을 잡고 검을 휘두르다가, 돌연 마치 춤을 추듯 가볍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케일과 올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엥?’
마치 아리따운 무용수 흉내를 내는 것 같달까?
우락부락한 사내놈이 망자의 손길 사이를 사뿐사뿐 이동하는데 참으로 눈 뜨고 못 볼 꼴이다.
하지만 실제로 효과가 있었다.
신기할 정도로 망자의 손길 사이로 비껴 걸어가며 다시 유령 병사들을 베어 낸다.
“끄아아아아!”
귀청 가득 울리는 처절한 귀곡성에 케일의 안색이 더욱 일그러졌다.
‘맙소사, 가라앉는 망자의 늪이 저렇게 쉽게 파해할 수 있는 거였어?’
붉은 장발의 여인, 세라티 쪽도 통하지 않긴 마찬가지였다.
“허어업!”
우렁찬 기합을 토하며 바닥을 질끈 밟아 간다. 그때마다 망자의 손길이 박살 나 흩어진다.
바로스처럼 우아하게(?) 피하는 것이 아니라 무식하게 밟아 으깨 버리는 것이다.
쾅! 쾅! 콰쾅!
올트가 혀를 찼다.
“남녀가 바뀐 듯한 광경이군…….”
곰도 맨손으로 때려잡게 생긴 놈은 스치면 다칠세라 죽어라 피하기만 하고 있는데, 톡 치면 쓰러질 것 같은 가녀린 미녀는 두더지 잡기 하듯 망자의 손을 하나하나 때려잡고 있다니?
그렇다 해도 워낙 사령결계의 범위가 광범위하다 보니 점점 밀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연신 후퇴하던 바로스와 세라티가 결국 등을 맞댔다.
‘휴우…….’
‘이제야 붙잡았나?’
막 케일과 올트가 한시름 놓으려던 차였다.
갑자기 바로스와 세라티가 똑같은 동작을 취했다.
우렁찬 기합을 터트리며 손에 쥔 대걸레와 프라이팬을 하늘 높이 던진다!
“헙!”
“타앗!”
그리고 곧바로 장검을 바닥에 꽂는다.
간헐천이라도 터진 듯 어둠이 솟구치며 거대한 파도가 되어 사방으로 퍼져 가기 시작했다.
파아아아아앗!
방대한 어둠의 파도 앞에 핏빛 늪은 깔끔히 씻겨 나갔다.
위험에서 벗어난 바로스와 세라티가 도로 허공에 손을 뻗었다. 던졌던 대걸레와 프라이팬이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손에 도로 잡혔다.
대걸레를 빙빙 돌리며 바로스가 조롱을 건넸다.
“이 정도 수법으로 우릴 어쩔 수는 없을걸.”
케일의 안색이 더욱 굳었다.
나름 자신 있던 술법이었는데 너무 쉽게 박살 나 버렸다.
특히나 문제인 점은, 놈들이 대체 무슨 짓을 했느냐다.
‘무슨 수법인지 전혀 짐작이 안 가!’
그간 배워 온 사령술의 지식을 총동원해도, 저 대걸레와 프라이팬이 대체 사령술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당황한 케일 대신 올트가 나섰다.
로브를 벗어 던지며 사령력을 끌어 올린다.
“내가 처리하지!”
팔다리에서 뿔과 촉수가 돋아나며 올트의 덩치가 3배 이상 커졌다.
“지옥의 힘이여, 내게 임해 혼돈의 권능이 되어라!”
악마의 형상이 된 그의 입에서 괴물의 포효가 터져 나왔다.
“크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