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038
1037
“근데… 여긴 어쩐 일이세요?”
지크가 베오울프에게 물었다.
“아.”
베오울프가 웃으며 대답했다.
“오늘 지크 님 대관식이 열린다고 해서요. 축하드리러 왔죠. 정말 축하드려요, 지크 님.”
“감사합니다.”
지크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베오울프의 축하 인사를 받아주었다.
하지만 그 속내는 180도 달랐다.
‘이 간악한 새끼.’
지크는 조금 전까지 신성동맹 진영에 있다가 프로아 왕국까지 기어들어 온 베오울프에게 강한 적개심을 느꼈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행동하는 베오울프가 너무나도 뻔뻔하게만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티를 낼 수도 없는 노릇.
지크는 베오울프가 내밀어 준 손을 붙잡고 일어나면서, 입을 열었다.
“그래도 이렇게 축하까지 해 주시고. 정말 감사드려요.”
“아닙니다. 당연히 축하드려야죠.”
“늘 감사해요.”
지크가 베오울프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저랑 우진이 도와주시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요, 뭐.”
“든든합니다.”
지크는 한껏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했지만, 시선은 베오울프에게로 향해 있지 않았다.
‘훔쳐 보고 싶다.’
지크는 베오울프의 허리춤을 몰래 힐끔거리면서, 저 토끼발 모양의 펜던트가 과연 일지 아닐지를 고민했다.
‘한번 확인해 볼까?’
지크는 그런 생각으로 은근슬쩍 베오울프에게 몸을 밀착시켰다.
“가시죠.”
“아, 예.”
그렇게 베오울프와 함께 대관식이 열리는 행사장으로 향하는 길.
슥, 스윽.
지크는 일부러 베오울프와 몸을 밀착시키거나, 혹은 스치면서 효과가 발동되기를 기대했다.
일단 효과가 발동되면 베오울프의 인벤토리를 살펴볼 수 있고, 또 현재 착용 중인 장비까지 싹 다 훔쳐볼 수 있기에 시도라도 해보는 것이다.
그러나….
‘아오. 안 되네.’
효과는 쉽사리 발동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 효과는 발동 확률이 상당히 낮은 편이었다.
하다쉬트 왕국의 수도에서는 인파파 속에서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수없이 몸을 스쳤기에 발동 확률이 높아 보였을 뿐, 실제로는 가뭄에 콩 나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아. 어떻게 좀 안 되나.’
지크는 베오울프를 상대로 효과를 터뜨리기 위해 조금 더 노력을 해보았다.
“지크 님, 어디 안 좋으세요?”
베오울프는 지크가 평소와는 달리 몸을 밀착시키는 듯 질척대자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 그게요.”
지크가 힘든 기색을 내비치며 말했다.
“지금 하다쉬트 왕국에서 오는 길이거든요.”
“예?”
“신성동맹 놈들 엿 좀 먹여 주고 왔죠. 비스마르크 2세한테 선물을 줬는데, 지금쯤 아주 좋아 죽을걸요? 아니지. 진짜 죽었으려나? 히히히!”
“하하, 하하하….”
베오울프가 못 말리겠다는 듯 지크에게 말했다.
“한바탕하고 오신 겁니까?”
“뭐, 그렇죠?”
지크가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사실 전 싸우지는 않았는데, 그 과정이 좀 힘들었거든요.”
“알 만하네요. 하하하.”
“그래서 좀 피곤하네요. 후우.”
“고생하셨습니다.”
그때였다.
띠링!
지크의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알림: 효과가 발동되었습니다!]지크는 알림창을 보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아싸!’
하지만 좋아하기엔 일렀다.
[알림: 효과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불행히도, 베오울프를 상대로는 효과가 발동되지 않았다.
[알림: 상대방과의 레벨 격차가 심합니다!] [알림: 마스터는 그랜드 마스터의 물건을 훔칠 수 없습니다!]그 순간.
‘이런 X발.’
지크는 정말 오래간만에 속으로 쌍욕을 내뱉었다.
어지간하면 비속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 지크였지만, 지금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이 실패한 것으로도 모자라서, 그 이유가 지크가 베오울프보다 격이 낮아서였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얘보다 급이 낮다 이거지? 아오!’
솔직히, 말이야 바른말이었다.
지크는 마스터.
베오울프는 그랜드 마스터.
지크의 급이 더 낮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선의의 경쟁자였던 베오울프의 급이 높은 것과, 쳐 죽여야 할 적인 베오울프의 급이 높은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두고 보자.’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난 지크는 이를 부득 갈면서 훗날을 기약했다.
최근 마의 구간을 탈출해 다시 레벨이 오르기 시작했기에, 빠른 시일 내에 베오울프를 따라잡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그나저나… 설마 뭔가 헛짓거리를 해 놓지는 않았겠지?’
지크는 베오울프가 테러를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을 켜고 프로아 왕궁 전체를 스캔해 보았다.
그러나 딱히 이상 징후는 보이지 않아서, 뭔가 테러가 벌어질 것 같지는 않았다.
‘하긴. 지금 여기서 뭔가를 저지르면 자기 정체가 들킬 수도 있을 테니까. 뜸을 더 들이는 거겠지. 나랑 천우진이 자길 100퍼센트 신뢰하고 목숨을 맡길 때. 바로 그때 본색을 드러내겠지.’
지크는 베오울프가 모래성이 더 높이 쌓이기를 기다린다는 걸 눈치채고는 속으로 냉랭한 미소를 지었다.
‘넌 이제 X된 거야.’
지크는 베오울프를 역이용해서 아주 빅엿을 먹여 주어야겠다고 벼르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
한편, 지크의 대관식 행사장은 크게 술렁이는 중이었다.
왜냐하면, 모든 준비는 완료되었는데 오늘의 주인공인 지크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슨 일 있는 건가요?”
브륜힐트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미켈레에게 물었다.
“폐하께서 왜 아직도 오지 않으시는 거죠?”
“그, 그게….”
미켈레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제대로 된 대답을 내어놓지 못했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미켈레조차도 지크가 어디 갔는지를 몰랐으니까.
지크는 시종장인 메타트론과 부시종장 케이오스에게 화장실을 다녀온다고 말한 다음 행방불명되었으므로, 종적을 알 길이 없었던 것이다.
“큰일이네요.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 건 아닌지….”
브륜힐트가 걱정스럽다는 듯 혼잣말했다.
한편, 대관식에 참석한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번 대관식에는 뉘르부르크 대륙 각계각층의 고위급 인사들이 참석한 상태였다.
연합군의 주축인 국가들의 군주들이 참석했음은 물론이었다.
그리고 슈트카르트 황제 역시도 참석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지각을 했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결코 하지 않을 행동이었다.
그렇다면….
“미켈레 대공.”
슈트카르트 황제가 미켈레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건가.”
“폐, 폐하. 그것이….”
미켈레는 슈트카르트 황제에게까지 지크의 행방을 추궁 당하자 거의 기절초풍하기 직전이었다.
그때, 구원투수가 나섰다.
“슈트카르트 황제라고 했나?”
메타트론이 슥 나서서 입을 열었다.
“폐하께선 볼일이 있으셔서 늦는 것일 것이다. 그러니 조금 양해를 바라지.”
“……?”
슈트카르트 황제는 웬 늙은이가 자신에게 하대를 하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폐, 폐하!”
미켈레는 그 광경을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라서, 슈트카르트 황제에게 속삭였다.
“노하지 마시옵소서. 슈트카르트 황제 폐하. 저 시종장은 사실….”
“음?”
“마계 제7구역의 지배자인 복수의 마왕 메타트론이옵니다.”
“마왕…?”
“예, 폐하. 마왕이라서 폐하께 하대를 하는 것이니, 크게 신경 쓰지 마시옵소서. 혹시나 폐하께서 분노하실까 염려가 되어 드리는 말씀이시옵니다.”
“마왕이라….”
슈트카르트 황제는 어이가 없었다.
마왕이 어떤 존재이던가?
단 하나만 강림하더라도 중간계 최강의 지적 생명체라는 드래곤들이 떼 지어 등장하게 만드는, 그야말로 재앙에 가까운 존재였다.
그런 마왕이 한낱 시종장이라니?
“도대체가….”
슈트카르트 황제는 프로아 왕국이 자신의 상상 이상으로 요상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슈트카르트 황제가 모르는 게 하나 있었다.
지금 이 자리의 서열 1위는 결코 메타트론이 아니었다.
지금 대관식 행사장에는 사부와 대마왕 바알도 참석한 상황이었다.
사부야 하나밖에 없는 제자가 꼴(?)에 황제가 된다고 하니 친히 참석해 준 거였다.
대마왕 바알은 부하 직원인 지크가 중간계에서 나름 큰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단 소식을 듣고, 오래간만에 중간계 구경도 할 겸 축하도 할 겸 해서 발걸음을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다.
“거, 제자를 아주 야무지게 키우셨구려. 감탄했소이다.”
“그저 모자란 놈일 뿐일세. 영 미덥지가 못하다네.”
“허….”
“감히 본좌를 기다리게 하다니. 요즘 그 녀석이 아주 버르장머리가 없어졌어. 아무래도 혼쭐을 좀 내 줘야겠구먼.”
사부는 바알과 대화를 나누다 말고 지크가 괘씸했는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히익?!”
바알은 사부가 주먹을 움켜쥐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사부의 저 주먹에 개박살이 났던 경험이 있는 대마왕으로서는, 그 무시무시함이 떠올라 몸서리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사부가 오래간만에 지크의 정신 교육을 해야겠다며 벼르고 있을 때였다.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지크가 죄송하단 말을 연발하며 행사장에 들어섰다.
“결국… 지각이었단 건가.”
슈트카르트 황제는 지크에게 무슨 특별한 일이 생긴 게 아니라, 단순히 지각이었다는 걸 깨닫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설마 하니 자신의 대관식에까지 지각할 정도로 칠푼이 팔푼이일 것이라고는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
대관식이 시작되기 직전.
“제자야.”
“사, 사부님!”
지크는 사부의 부름에 호다닥! 하고 뛰어갔다.
“제자야?”
“예, 사부님.”
“요즘 바쁘냐?”
사부가 지크에게 물었다.
“아, 아닙니다!”
“그럼, 안 바쁘냐?”
“예! 사부님!”
“안 바쁜데도 감히 본좌를 기다리게 한 것이냐?”
“아, 아닙니다!”
“그럼?”
사부가 히죽 웃으며 다시 물었다.
“바빴던 것이냐?”
“바, 바빴습니다!”
“오호라. 본좌를 기다리게 할 정도로 너에게 바쁜 일이 있었다, 이 말이렷다?”
“그, 그건….”
지크는 사부의 페이스에 말려들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빠져나가지 못했다.
안 바빴다고 하면, 안 바빴는데 늦었다고 맞고.
바쁘면, 무슨 일이기에 사부를 기다리게 했냐고 맞고.
어떤 대답을 하든 정신 교육을 피할 순 없었던 것이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사부님.”
지크는 한 대라도 덜 쳐 맞으려고,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부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놓는 것보다 깔끔하게 인정하고 두어 대 맞는 게 이득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뭣 하느냐?”
사부가 그런 지크에게 물었다.
“예?”
“나름, 세계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서 뭘 좀 하다가 늦었다는 것을 알고 있느니라.”
사부가 인자한 표정으로 지크에게 말했다.
“본좌의 심기가 좀 불편하기로서니, 제자 녀석이 큰일을 했다는데 설마 때리기야 하겠느냐?”
“사, 사부님?”
“그나저나 목이 칼칼한 것이, 갈증이 좀 나는구나.”
“사부님, 옆에 물이 있지 않습니까?”
“목이 마르구나, 말라.”
“……?”
“칼칼하다고 몇 번을 말했거늘.”
사부는 지크가 자신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자 눈살을 찌푸리며 슬쩍 주먹을 쥐었다.
– 이보게.
그때, 대마왕 바알이 은근슬쩍 지크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 자네 사부님의 마음을 왜 그리 몰라주는가? 그 있지 않은가? 자네가 나에게 선물해 주었던….
지크는 바알의 조언을 듣고 나서야 사부의 말뜻을 이해했다.
사부는 지각을 용서해 주는 대가로 를 원했던 것이다.
“사부님! 목이 칼칼하시다니 이거라도….”
지크가 아공간 인벤토리에서 를 얼른 꺼내 사부에게 바쳤다.
“못난 제자가 사부님께서 갈증을 느끼실까 봐 드리는 선물입니다.”
“오호라.”
사부는 지크가 를 바치자 다시 기분이 좋아졌는지, 미소를 지었다.
“사부님, 이제 노여움이 좀 풀리십니까?”
지크가 사부에게 물었다.
하지만 사부는 대꾸하지 않았다.
“으음!”
사부는 에 집중하느라 지크 따위에게는 이미 관심을 꺼버린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하하….”
그렇게 뇌물로 일생일대의 위기를 모면한 지크는 비록 지각했지만, 무사히 대관식을 진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관식에서 또 한 번의 기적이 일어났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