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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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그러니까….”
태성은 용설화의 고백에 섣불리 이렇다 할 답을 내어놓지 못했다.
이렇듯 진지하게 다가오는 이성을 만난 적도 없었고, 고백을 받아 본 것도 처음이었다.
‘설화가 생각을 많이 했구나.’
태성은 용설화의 고백에서 많은 고민, 그리고 마음 고생이 있었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더 대답을 내어놓기가 어려웠다.
“…….”
“…….”
그렇게 이어진 두 사람의 침묵.
용설화는 태성을 재촉하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태성이 답변을 내어놓기만을 기다렸다.
‘보채선 안 돼.’
용설화는 태성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왜?
그녀는 용태풍의 딸이었으니까.
용설화가 아는 프로게이머의 삶이란, 게임 외적인 부분은 거의 신경 쓰기가 힘들었다.
오직 게임, 게임, 또 게임.
하루 24시간 중 최소 12시간 이상을 오직 게임에만 몰두하는 삶인 것이다.
용설화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인 용태풍이 게임에 몰두하느라 가정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던 걸 보고 자라 왔다.
그렇지만 용설화는 용태풍에게 서운한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용태풍이 밥 한 끼 마음 놓고 먹을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바쁘면서도, 어떻게든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가정을 돌보았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널널해진 오늘날에 와서는, 과거 가족에 소홀했던 것을 보상이라도 하듯 성심성의껏 가장의 역할에 충실하기도 했고.
‘오빠가 생각하길 기다리자.’
그래서 용설화는 태성이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애타는 마음을 다스릴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용설화의 선택은 옳았다.
‘설화가 날 좋아했었구나.’
태성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고마운 일이야. 나처럼 답 없는 놈을 좋아해 주고. 과분해.’
태성은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다.
‘설화… 예쁘지. 상냥하고.’
태성이 생각하기에, 용설화는 정말이지 매력 넘치는 여성이었다.
일단 전설적인 프로게이머 용태풍의 딸이기에 집안이 빵빵하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
외모는… 두말할 것도 없이 최고.
용설화는 어지간한 여자 연예인-미모가 뛰어나다고 평가받는-보다도 예뻤다.
오죽했으면, 용설화가 게이머 생활을 그만두고 연예계로 진출하기를 바라는 대형 연예 기획사들이 줄을 섰을 지경이었다.
게다가 용설화는 성격도 모난 구석이 없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오빠한테 잘 어울리는… 여자 친구가 될 거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용설화가 자신의 강점으로 내세웠듯이, 그녀는 프로게이머의 삶을 잘 알았다.
또한, 이해할 줄도 알았다.
바로 그 점이 태성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 그런 사람은 정말로 만나기 힘든 거겠지.’
이 넓은 세상에서 자신을 깊이 이해해 주는 사람을 만날 확률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건 정말로 어려운 거였다.
괜히 수없이 많은 남녀들이 만나고, 싸우고, 화해하고, 헤어지길 무한정 반복하겠는가?
결국, 제짝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던가?
그런 점에서 보자면, 태성은 행운아였다.
호박이 넝쿨째로 굴러들어 왔다고나 할까?
용설화와 같이 집안 좋고, 성격 좋고, 아름답고, 프로게이머의 삶을 잘 알고, 또 태성을 이해해 주는 사람을 만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던 것이다.
“설화야.”
마침내 태성의 입을 열었다.
“네, 오빠.”
용설화는 태성이 입을 열었음에도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쿵쾅쿵쾅!
심장이 두방망이질을 치고 있음에도, 최대한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한 것이다.
“나를… 언제부터… 좋아했어?”
“처음 만났을 때부터요.”
“저, 정말?”
“네.”
용설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를 처음 만났던 때부터 지금까지 쭉 좋아했어요.”
“헐….”
“고민 많이 했어요. 시름시름 앓기도 했고요.”
“그랬…구나.”
태성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말했다.
“설화야.”
“네, 오빠.”
“고마워. 날 이렇게 좋아해 주고, 또 이해해 줘서.”
“제겐 너무 쉬운 일인걸요.”
“아….”
태성은 용설화의 말뜻을 충분히 알아들었다.
그래서 말했다.
“설화야.”
“네, 오빠.”
“그럼 우리….”
그 순간.
쿵쾅쿵쾅쿵쾅!!!
이어질 말을 직감했는지, 용설화의 심장이 더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당장에라도 터져 버릴 것처럼 말이다.
***
같은 시각.
태성이 현실에서 용설화와 매우 중요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뉘르부르크 대륙 어딘가.
“드디어….”
천우진은 자신의 앞에 놓인 거대한 구체를 바라보며 감회에 젖어 있었다.
대략 잠실종합운동장만 한 크기의 그 거대한 구체는, 사실 평범한 공이 아니었다.
그건 바로 과거 의 본부 바로 아래에 달려 있던 이었다.
과거 이 세계를 통찰하던 괴수 베히모스의 눈으로 만든 탐지 장비 말이다.
그리고 그 은 곧 하늘 높이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천우진.
그리고 새로운 의 대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셋, 둘, 하나. 주시자의 눈, 발사합니다.”
오퍼레이터의 외침과 함께, 대기하고 있던 대원이 레버를 당겼다.
슈우우우우우웅!
그러자 이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르더니, 이내 곧 구름을 뚫고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런 은 대기권을 지나 우주로까지 나아갔다.
게임 BNW의 무대가 되는 을 관찰하는 일종의 인공위성이 된 것이다.
그러자 천우진의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알림: 에셜론 시스템 Online!] [알림: 지금부터 인공위성 이 당신의 의지에 따라 뉘르부르크 행성을 정찰합니다!]을 인공위성으로 만들어 쏘아 올리고, 중간계에서 벌어지는 이상 징후들을 감시하는 것.
그게 바로 천우진이 구상한 새로운 의 핵심이었다.
과거 이 하늘을 나는 섬인 의 본부에 있을 때는 정찰이 너무나도 느렸다.
본부가 뉘르부르크 대륙 방방곳곳을 날아다니며 일일이 탐지를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인공위성이 된 의 탐지 범위는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게 확장되었고, 탐지 속도 역시 엄청나게 빨라졌다.
언제든 천우진이 원하는 지역을 빠르게 스캔할 수가 있게 된 것이다.
‘됐어.’
천우진은 새로운 의 탄생에 미소를 지었다.
불멸의 연금술사 아케론으로 인해 궤멸되었던 조직을 성공적으로 재건해 낸 것이다.
***
같은 시각.
“그래서.”
오스칼이 인 랙돌 4세에게 물었다.
“모른다는 겁니까? 의식이 이루어지는 장소를?”
– 그러하옵니다.
마법의 수정구 너머 랙돌 4세가 대답했다.
지크의 충실한 노예가 된 랙돌 4세는, 신성동맹의 다음 계획이 소규모 을 여는 것이란 첩보를 전해 왔다.
문제는 그 소규모 이 어디서 열릴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는 것.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서 의식이 열리는 장소가 극비에 붙여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의식을 주관하는 자가 코린트의 국왕이라는 것.
즉, 코린트의 국토 어딘가에서 의식이 거행될 예정이라는 것만이 유일한 정보였다.
“더 알 방법은 없습니까?”
– 없사옵니다.
랙돌 4세가 고개를 저었다.
– 천계의 문을 여는 의식의 경우, 매우 많은 재물이 필요하옵니다.
“재물…?”
– 인신공양이 필수적이지요.
“인신공양이라….”
오스칼은 신성동맹, 일루미나티, 그리고 천족의 행태에 그만 질려 버렸다.
산 사람을 제물로 바쳐서 강림 의식을 거행하다니….
이쯤 되면 천족이 진짜 천족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일단 알겠습니다.”
오스칼이 고개를 끄덕였다.
“특이 사항이 있으면, 또 보고할 수 있도록 하십시오.”
– 예, 각하.
그렇게 랙돌 4세의 보고가 끝난 후.
“나인테일 국장님.”
오스칼은 정보국 국장 나인테일을 불러들여서 이번 일을 의논했다.
“신성동맹이 코린트의 국토 안에서 천계의 문을 열 예정이란 첩보입니다. 정보국의 정보력을 코린트에 집중해 주십시오.”
“알겠어요.”
나인테일은 군말 없이 오스칼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물론 나인테일은 마우레키온 제국의 비밀 문건에 훨씬 더 관심이 많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나인테일 역시 신성동맹이 저지른 만행을 두 눈으로 보았다.
때문에 이 사태를 내버려 두었다간 마우레키온 제국의 비밀 문건이고 나발이고, 중간계가 멸망할 것이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았던 것이다.
“보고는 바로 바로 올릴 수 있도록 하겠어요.”
“감사합니다, 나인테일 국장님.”
“별말씀을요.”
나인테일은 그 말을 남기고 즉시 코린트 왕국에서의 정보 수집을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정보국으로서는 이제 어디서 의식이 거행되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코린트 왕국을 샅샅이 뒤져야 했기 때문이다.
***
“만나… 볼까.”
태성이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오, 오빠.”
용설화는 태성의 입에서 원하던 대답이 흘러나오자 가슴이 터질 것 같으면서도, 그만 얼어붙고 말았다.
사실 용설화도 태성의 입에서 사귀잔 말이 나오자 어쩔 줄을 몰랐다.
“설화야.”
“네, 오빠….”
“우리… 그럼 사귀자.”
“……!”
“나도 네가 좋아.”
그게 태성이 내린 결론이었다.
태성은 용설화의 진심 어린 고백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용설화를 좋아하게 되었다.
이에 고백을 받아주고, 한 번 사귀어보잔 답을 내렸던 것이다.
“저, 정말요?”
용설화가 깜짝 놀랐다는 듯 말했다.
사실 용설화는 자신이 일방적으로 짝사랑하고 있었기에, 태성이 자신을 좋아한단 말을 들을 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좋아하게 됐어, 방금.”
태성이 솔직하게 말했다.
“네 고백에서 진심을 느꼈어. 그래서 마음이 가.”
“아….”
“아직 서로 잘은 모르지만… 천천히 알아가 보자.”
태성이 다시 용설화에게 물었다.
“좋아…요….”
그러자 용설화가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어서는, 고개를 푹 떨군 채 태성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성공했어. 오빠가 내 마음을 받아줬어.’
용설화는 정말로 기뻤다.
태성이 게임에 너무 심취해 거절할 줄로만 알았는데, 이렇듯 흔쾌히 사귀잔 말을 해 주니 행복했다.
그렇게 태성과 용설화는 오늘부터, 오빠 동생이 아닌 연인으로서 1일을 하게 되었다.
용설화의 오랜 짝사랑과 많은 고민, 마음고생, 그리고 결단이, 목석과도 같았던 태성의 마음을 움직여 기적을 만들어 낸 것이다.
“오빠.”
용설화가 살포시 태성의 손등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개었다.
“앞으로 우리 예쁘게 사귀어 봐요.”
“응.”
태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연애는 처음이지만… 앞으로 노력해 볼게. 같이 좋은 시간 보내자.”
“그렇게 얘기해 줘서 고마워요, 오빠.”
“설화야….”
“태성 오빠….”
그렇게 태성과 용설화의 시선이 마주치며 불꽃을 피워 올렸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태성의 얼굴과 용설화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둘은 그 어떤 말도 없이, 그윽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점점 더 가까워져 갔다.
그런 태성과 용설화의 두 손은, 혹시 누가 떼어 놓을세라 꼭 맞잡은 상태였다.
어느덧 연인으로서의 첫 발걸음을 떼어 놓으려는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