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047
1046
그렇게 가까워진 태성과 용설화.
두 사람의 입술이 서로 맞닿아 포개어지려던 찰나.
부와아아앙!
저 멀리서 2대의 대형 SUV들이 오솔길을 따라 매우 빠른 속도로 접근해 오기 시작했다.
“헉?”
“어머?”
덕분에 태성과 용설화는 서로 하려던 것을 멈추고, 물러나야만 했다.
그 SUV들이 너무나도 빨라서, 벌서 별장 앞 주차장까지 다가왔기 때문이다.
“뭐, 뭐지?”
태성이 용설화를 돌아보며 물었다.
“누구 더 올 사람 있어?”
“아, 아뇨?”
용설화도 이게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몰랐다.
“여기 아빠 개인 별장이라서 올 사람 없는데요?”
“그래? 그럼 뭐지….”
그때였다.
“형님!”
대형 SUV의 문이 열리고, 승구가 나타나 벤치에 앉아 있던 태성을 향해 손을 휘휘 저었다.
“야! 한태성! 나 왔다!”
의 재건을 마친 천우진 역시 모습을 드러내었다.
“태성 씨! 저 왔습니다!”
대한외국놈(?)인 데이토나 역시도 태성을 향해 손을 흔들었고.
“태성 오빠.”
고스란도 나타났다.
어디 그뿐인가?
다른 SUV에서 레전드 프로게이머들인 용태풍, 한상기, 박기돈, 김한용, 김기태가 내리며 태성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 이게 뭐야.”
태성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왜 다들…?”
“형님, MT를 이렇게 급하게 소집하시면 어떡합니까?”
그때, 승구가 태성에게 말했다.
“MT? 내가?”
“예, 형님.”
“뭔 소리야?”
태성은 승구의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은 지인들에게 MT를 가자고 제안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집에서 뒹굴뒹굴 딱히 할 일 없이 있다가 우연히 용설화에게 이끌려 이곳까지 흘러들어 왔을 뿐이지 않은가?
“내가 언제 MT를 소집해?”
“예?”
승구는 태성이 그게 무슨 개소리냐는 반응을 보이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태풍 선배님이 연락하셨는데요? 형님이 MT 가자고요.”
“태풍 삼촌이…?”
승구의 말을 들은 태성이 고개를 슥 돌려 용태풍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런 태성보다 먼저 용태풍을 쏘아본 사람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용설화였다.
“아빠.”
용설화가 용태풍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가며 말했다.
“으, 으응?”
용태풍은 용설화가 매우 흉흉하고 무시무시한 기세로 다가오자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딸 용설화의 박력 넘치고 위압감 넘치는 모습에 그만 주눅이 들고 말았던 것이다.
“저랑.”
용설화가 용태풍의 팔짱을 끼고는 말했다.
“이야기 좀 해요.”
“이, 이야기?”
“네, 아빠.”
“이야기라면… 일단 다 모였으니 나중에….”
“아뇨.”
용설화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지금 해야 해요. 당. 장.”
“…….”
“가요.”
“자, 잠깐만! 설화야! 아빠가 지금은 좀….”
“오세요, 어서.”
그렇게 용태풍은 딸 용설화에게 별장 뒤판에 자리한 편백나무 숲으로 끌려 들어가고.
“하하, 하하하….”
태성은 그런 부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도통 무슨 일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어쨌거나 용태풍이 괜한 오지랖을 부린 게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
몇 시간 전.
“예? 설화가 거기 갔습니까?”
용태풍은 별장 관리인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용설화가 갑작스레 별장을 찾았단 내용의 전화 말이다.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었다는 것.
“예?! 태성이 그 녀석이랑 같이 갔단 말입니까? 거길?”
용태풍은 깜짝 놀랐다.
물론 그는 자신의 딸 용설화가 이 시대 최고의 프로게이머이자 아끼는 후배인 태성과 잘되기를 바랐다.
만약 용설화가 결혼을 하게 된다면, 태성과 잘 어울리는 한 쌍으로 맺어지면 좋겠다는 게 용태풍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막상 뭔가 사고(?)가 터질 것 같은 상황이 되자 갑자기 생각이 달라졌다.
‘우리 설화가 태성이 그 자식하고 하룻밤을 보낸다고? 그건 안 돼! 아직 너무 빨라!’
용태풍은 딸 용설화와 태성이 별장에서 단둘이 1박을 하는 걸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었다.
한 딸의 아버지로서, 아직 그 정도의 마음의 준비는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어, 어떻게 하지…?”
용태풍은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지 한참 안절부절못하며 고민하다가, 답을 내렸다.
‘아직은 안 돼! 태성이 이 늑대 같은 놈! 벌써 그렇게 되게 놔둘 순 없어!’
용태풍은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태성의 동료들에게 쫙 전화를 돌려서 자신의 별장으로 초대했다.
물론 태성이 MT를 가자고 했다며 거짓말을 하면서 말이다.
그 결과.
“서, 설화야…?”
용태풍은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아빠.”
용설화가 눈에 쌍심지를 켜고 용태풍에게 다가섰다.
“지금 저… 방해하신 거예요?”
“아, 아니! 그, 그게 아니라! 나는 우리 사랑하는 딸이랑! 즈,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그랬지! 암! 그렇고말고!”
용태풍이 손사래를 치며 변명했지만, 그런 게 먹힐 리 없었다.
“아빠 지금 그 말씀을 저더러 믿으라는 거예요? 네?”
“지, 진짜라니까?”
“아빠!!!”
용설화가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지금 하나밖에 없는 딸이! 연애 좀 하겠는데! 훼방이나 놓고! 도대체 왜 그러세요? 네?”
“서, 설화야….”
“둘이서 오붓하게 대화 좀 하면 안 돼요? 분위기 좋았는데?”
“부, 분위기가 좋았다고?!”
용태풍의 눈이 크게 떠졌다.
“설화 너 설마… 태성이 그 녀석이랑… 스ㅋ….”
“아빠!!!”
“……!”
“지금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그런 생각밖에 못 하세요? 네? 제가 뭐 태성 오빠랑! 벌써부터 그렇게 무책임한 행동을 할 거라고 생각하신 건가요?”
“하지만 남자는 다 늑대야. 태성이 그 녀석도 겉으론 순진한 척해도 사실….”
“좋아요.”
용설화가 잘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가 그렇게 나오시겠다면, 저도 방법이 있어요.”
“바, 방법…?”
“이번에 요트 하나 사셨죠? 상당히 비싼 거? 그거 한 50억쯤 하지 않아요?”
“헉?! 설화 네가 그걸 어떻게?!”
“엄마가 아시면 아주 좋아하시겠어요? 요트가 벌써 몇 대죠? 한 5대 되나요?”
수천억 대의 자산가인 용태풍은 요트를 수집하는 취미가 있었다.
문제는 그 요트 수집이 워낙에 비싼 취미였기에, 아내에게 등짝을 맞기가 딱 좋았다는 것.
만약 이번에 50억짜리 초호화 요트를 질렀다는 걸 들키기라도 하면, 최소 한 달 동안은 바가지를 긁혀야 할 터였다.
아니?
어쩌면 안방에서 쫓겨나 거실에서 자야 할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 집에서 쫓겨날지도 몰랐다.
“좋아요. 아빠가 이렇게 나오셨으니까, 저도 엄마께 진실을 말할 수밖에 없는 거겠죠.”
“설화야! 제발! 그것만은!”
용태풍은 어떻게든 용설화를 뜯어말리려 했다.
하지만 화가 머리끝까지 난 용설화는, 이미 전화기를 들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버린 뒤였다.
“엄마, 저예요. 네, 엄마. 아, 말씀드릴 게 있는데요. 사실 아빠가 이번에 50억짜리 초호화 요트를….”
“아, 안 돼!!!”
그러자 용태풍의 다급하고도 절박한 음성이 편백나무 숲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사실상의 사형 선고.
초호화 요트 구매 사실이 폭로당한 이상, 이제 용태풍은 끝장이었기 때문이다.
***
용태풍의 트롤로 인해 태성과 용설화의 로맨틱한 시간은, 졸지에 술판으로 변해 버렸다.
“승구가 좋아하는 랜덤~ 게임~! 랜더어엄~ 게임~!!!”
불청객들은 별장 거실에 자리를 펴고 술게임을 즐기며 흥청망청 고주망태가 되도록 부어라 마셔댔다.
태성과 용설화의 속은 하나도 모른 채 말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용태풍은 없었단 점이었다.
– 지금 어디에요? 여보? 당장 집에 들어와요. 당. 장.
용태풍은 하늘 같으신 와이프님의 호출을 받고 황급히 서울로 올라가 버렸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설화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정말 다 꼴 보기 싫어요, 오빠.”
“서, 설화야. 네가 참아. 하하, 하하하….”
태성은 불청객들을 쫓아내려는 용설화를 간신히 뜯어말려야만 했다.
그만큼 용설화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 컸던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 오밤중에 춘천의 펜션까지 찾아온 저 술주정뱅이들을 마냥 쫓아낼 수도 없는 것을.
그러나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했던가?
“설화야.”
“네, 언니.”
“바람 좀 쐬러 가자.”
“알겠어요.”
놀랍게도, 고스란이 바람을 쐬러 가자는 명분을 내세워 용설화를 끌고 별장 밖으로 나섰다.
“태성 오빠도 같이 가실래요?”
“나, 나도?”
“네.”
“어….”
“가요, 오빠.”
그렇게 태성과 용설화는 고스란의 손에 이끌려 별장 밖으로 나서게 되었다.
“어? 저도 잠깐 바람 좀 쐬고 싶습니다! 끅! 취한다!”
눈치 없는 승구가 벌떡 일어나더니 태성 등을 따라나섰다.
하지만 승구는 바람을 쐴 수가 없었다.
“승구 오빠.”
고스란이 승구의 귓가에 살며시 속삭였다.
“그냥 조용히 여기 계세요.”
“으응?”
“진짜 X되기 싫으시면요.”
“히익?!”
결국, 승구는 고스란의 험악한 협박에 입을 꽉 다물고는 쭈그리가 되어 구석에 처박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흠흠!”
“거 잔이 비었네!”
“한잔 받으시죠.”
상황이 그렇게 되자 나머지 주정뱅이들은 눈치껏 아무것도 모르는 척 술잔을 기울이는 척을 해 주었다.
덕분에 태성, 용설화, 고스란은 누구의 방해도 없이 별장 밖으로 나갈 수가 있게 되었다.
“그럼, 좋은 시간 보내요. 호호.”
고스란은 태성과 용설화가 단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게끔 배려해 주고는,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 주었다.
“어, 언니!”
용설화는 고스란의 그런 행동에 솔직히 좀 놀랐다.
사실 용설화는 고스란 역시 태성에게 마음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설화 너만큼은 아냐. 그리고 지금은 아무 생각 없어.”
고스란이 웃으며 말했다.
“언니….”
“잘 어울려, 두 사람.”
고스란은 그 말을 남기고 다시 별장으로 향했다.
‘정말로 좋아 보여. 예쁜 사랑했으면 좋겠어.’
별장으로 향하는 고스란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한때나마 태성을 좋아했던 고스란으로서도, 두 사람이 정말 잘 어울려 보여서 마음이 뿌듯했던 것이다.
***
고스란의 배려로 우여곡절 끝에 다시 둘만의 시간을 갖게 된 태성과 설화.
두 사람은 서로 손을 꼭 맞잡은 채 말없이 편백나무 숲을 차분하게 걸었다.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이 커플은, 그렇듯 풋풋하게 첫 발걸음을 떼고 있었다.
그러던 중.
“설화야.”
태성이 발걸음을 멈추고, 곁에서 걷던 용설화를 바라보았다.
“네, 오빠….”
그때, 태성이 아주 천천히 용설화를 안았다.
용설화는 그런 태성의 포옹을 피하지 않고, 함께 안았다.
서로를 품게 된 태성과 용설화.
스윽.
이윽고 두 사람의 입술이 서로 포개어지며, 달콤하고 감미로운 숨결이 섞여들었다.
“아.”
용설화의 입에서 환희에 찬 음성이 흘러나왔다.
도저히, 천 마디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 탄성이 되어 터져 나온 것이다.
그렇게 태성과 용설화는, 달빛이 아스라이 내려앉은 편백나무 숲에서 풋풋한 입맞춤을 나누며 관계를 발전시켜나가게 되었다.
태성의 모태솔로 인생이 비로소 끝을 맺게 된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