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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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태성과 용설화는 편백나무 숲을 거닐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빠… 그런데 괜찮으시겠어요?”
“뭐가?”
“아무리 그래도… 게임 속 세상과 현실의 나를 완벽하게 분리시키긴 어렵잖아요.”
“아.”
태성은 용설화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단번에 알아들었다.
태성은 게임 속에서 NPC인 브륜힐트와 결혼했고, 딸까지 낳은 상황이지 않던가?
이렇듯 현실에서 연애를 시작했는데, 게임 속에서 그 감정을 완벽하게 지울 수 있을까?
“그건….”
태성이 말했다.
“아까 저녁에도 말했듯이… 난 게임과 현실은 어느 정도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건 저도 동감해요.”
“하지만 완벽하게 분리하긴 불가능하겠지. 아무리 게임 속 세상이라지만, 그 안에 있는 건 결국 나란 사람이니까.”
그건 게임 BNW를 플레이하는 모든 게이머들의 고민이었다.
어떤 게이머들의 경우에는 게임에 너무 과몰입해서, NPC와의 관계 때문에 현실에서의 삶을 완전히 망쳐 버린 케이스가 상당히 많았기 때문이다.
“나도 어느 정도 죄책감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게임 때문에 현실의 나를 포기할 수 없는 거잖아.”
“그렇죠.”
“사실 그래서… 최대한 이 게임을 오래하려고 벌집 주식을 사 오고 있었어.”
“벌집 주식을요?”
“응.”
태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대주주가 되면, 언젠가 게임이 서비스를 종료하더라도 개인적으로 소장할 수 있을까 해서.”
“이 게임에 대한 애정이 그만큼 대단하시다는 증거겠죠. NPC들과의 관계도 절대 가볍게 여기시지 않고요.”
“맞아.”
태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나도 게임 속에서 브륜힐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그러시겠죠….”
“내가 안고 가야 할 문제겠지. 가상 현실 게임에서 NPC와 인간관계를 맺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니까. 언젠가 내 마음이 정리되면, 그때 브륜힐트에게 말할 날이 오겠지.”
“태성 오빠….”
“일단은 생각을 정리해 보고.”
태성은 말했다.
“천천히, 때가 되면 솔직하게 말할까 해. 숨기고 싶지는 않아. 브륜힐트가 어떻게 받아들이든, 그건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겠지. 하지만 현실의 삶도 중요하니까. 영원히 게임 속에서 살 순 없는 거니까.”
인간 한태성의 고뇌란, 그토록 깊었다.
게임 속 캐릭터와의 관계.
그리고 현실에서의 관계.
이 두 가지 문제가 서로 충돌하게 되면, 감당하기 힘든 정신적 혼란이 찾아오는 것이다.
물론 태성이 NPC와의 관계를 아예 가볍게 여겼다면 애초에 발생하지 않았을 일이겠지만 말이다.
“오빠 마음, 이해해요. 힘든 일이 있으시면, 언제든 편하게 저한테 털어놓으세요. 들어 드릴게요.”
“고마워.”
“뭘요.”
용설화가 웃으며 말했다.
“전 오빠 여자 친구인걸요.”
“고마워.”
“별말씀을요.”
용설화는 그렇게 말하더니, 태성의 손을 잡아끌었다.
“가요, 오빠.”
“응.”
태성은 그런 용설화를 뒤따라 계속해서 편백나무 숲을 산책했다.
***
다음 날 오후.
집으로 돌아온 태성은 늘 그렇듯 운동을 하고, 밥을 먹고, 약간의 낮잠을 잔 뒤에 게임에 접속했다.
[마우레키온 제국 : 팔라스 요새]눈앞에 현재 위치를 알리는 알림창이 떠오르고.
“폐하, 긴급히 보고드릴 사항이 있습니다.”
대기하고 있던 오스칼이 곧장 지크에게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어이구.”
지크는 뭔가 일이 또 터졌음을 직감하고는, 푹 한숨부터 내쉬었다.
이놈의 게임 속 세상은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어서, 잠시만 자리를 비워도 뭔가 사건 사고가 끊이지를 않는 것이다.
“무슨 일입니까, 오스칼 경.”
“예, 폐하.”
오스칼이 보고했다.
“현재 신성동맹이 소규모 천계의 문을 열기 위해서 의식을 준비하고 있단 보고가 들어왔사옵니다.”
“쩝.”
지크가 알 만하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하긴. 그것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죠.”
“예, 폐하.”
“쥐새끼가 전해 온 정보는 있나요?”
지크가 말하는 쥐새끼란 당연히 랙돌 4세를 뜻했다.
“의식이 거행될 장소는 대략적으로나마 나왔습니다만, 정확한 위치는 모르옵니다. 현재 정보국 요원들이 총동원된 상황입니다. 하지만 정보 수집이 쉽지가 않다고 합니다.”
“큰일이네요.”
지크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은 소규모가 열린다 할지라도 적들에게는 엄청난 전력이 되어 줄 터였다.
즉, 열리기 전에 미리 원천 봉쇄를 하는 게 최선의 방법인 것이다.
그리고….
‘설마 대천사의 강림을 준비하는 건 아니겠지?’
지크는 대천사의 온전한 강림이 이루어질 게 두려웠다.
지크 본인도 을 사용해 봐서 잘 알았다.
대천사는 마왕과 동급의 힘을 지닌 존재라서, 단 한 명만 강림하더라도 전쟁의 판도를 180도 뒤바꾸어 버리는 게 가능했다.
어디 그뿐인가?
지크의 경우에는 특정 조건, 그러니까 영혼 에너지를 5,000 이상 모은 상태에서 조건부로 강해졌다.
또한, 육체의 부담이 상당해서 사용 후에는 전투 불능 상태가 되어 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나 온전히 강림한 대천사의 경우 24시간 내내 강했다.
그 능력의 공백이 없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크로서도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의식이 벌어지는 장소를 알아내야겠네요.”
“예, 폐하.”
“일단 알겠습니다.”
지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즉시 발걸음을 옮겨 통신실로 향했다.
그리고는 의 본부에 통신을 걸었다.
– 어? 웬일이냐?
공교롭게도, 때마침 천우진은 의 본부에 있다가 지크가 건 통신을 받았다.
“야, 너 이번에 위성 쏴 올렸다면서? 베히모스의 눈?”
천우진은 어젯밤 술자리에서 태성에게 의 재건에 대한 내용을 말해 주었던 것이다.
– 그랬지.
“지금 위성 쓸 수 있냐?”
– 못 쓰는 걸 쐈겠냐? 당연히 쓸 수 있지.
“그럼 써 줘.”
– 무슨 일인데?
“신성동맹이….”
지크가 천우진에게 사정을 말했다.
– 오케이.
천우진은 지크의 요청을 즉시 수락했다.
의 설립 목적은 평소 게으름을 부리는 드래곤들 대신에 중간계의 평화를 지켜내는 것.
그런 의 지휘관인 천우진이 신성동맹과 싸우는 지크의 요청을 거절할 리 없었다.
– 잠깐만 기다려.
“얼마나?”
– 한 네 시간쯤?
“그렇게 오래 걸린다고? 인공위성인데?”
– 야, 이.
천우진이 눈을 부라렸다.
– 그래도 강대국 하나의 국토를 다 들여다보는 건데, 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거냐?
“그, 그런가?”
– 어이구. 아주, 현실 감각이란 게 없어요. 현실 감각이.
“…….”
– 조용히 기다려.
“아, 알겠다.”
지크는 자신이 부탁하는 입장이었기에, 천우진에게 투덜대지 않았다.
그로부터 약 다섯 시간 후.
– 찾았다.
천우진이 다시 통신을 걸어와 지크에게 말해 주었다.
“어딘데?”
– 코린트 북부에 아도르란 도시가 있어. 인구는 120만 명 정도?
“크진 않네.”
– 어. 근데 그 도시에 신성동맹군이 30만이나 들어가 있어. 타락 천사들도 엄청나게 몰려 있고.
“제대로 찾았네.”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성동맹이 소규모 을 열 때면, 늘 그렇듯 인신공양을 벌이곤 했다.
지적 생명체를 죽여 얻은 영혼 에너지를 활용하여 을 강제로 여는 것이다.
“고맙다.”
– 고만긴 뭘.
천우진이 어깨를 으쓱했다.
– 앞으로도 계속 도와줄게.
“어떻게?”
– 위성으로 신성동맹군의 병력 이동을 계속 알려 주면 되지.
“오오!”
지크는 천우진의 말에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적의 병력 이동을 훤히 들여다보는 게 가능하다?
그건 곧 맵핵이나 다름이 없었다.
상대방을 손바닥 위에 놓고 가지고 놀 수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힘 대 힘으로 한판 붙는 상황에서는 큰 효용이 없겠지만, 어쨌거나 정보적인 측면에서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한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 너희 정보국으로 열두 시간마다 자료 보낼게. 특이 사항 있으면 실시간으로 알려 주고.
“땡큐.”
– 우리도 지켜보다가 끼어들 수 있으면 도와줄게.
“알겠다.”
– 그래, 수고.
***
지크는 천우진으로부터 정보를 받은 즉시 회의를 소집했다.
“의식은 코린트 왕국 북부에 있는 도시, 아도르에서 거행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아도르라….”
오스칼이 지도를 바라보며 근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도르는 신성동맹 깊숙한 곳에 있어서 어떻게 침투할 방법이 마땅치가 않았다.
소수라면 가능하겠지만, 대규모 병력을 침투시키는 건 불가능해 보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를 통해 후방으로 침투를 노리기도 뭣한 게, 현재 아도르 시에는 무려 30만 명이나 되는 신성동맹군들이 득실득실 모여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타락 천사들 역시 엄청나게 많이 주둔 중이었다.
이건 제아무리 지크라 할지라도 감히 침투해 볼 엄두가 나지를 않았던 것이다.
“이거 답이 없겠는데요? 휴우.”
지크 역시 그 사실을 알았기에, 한숨을 푹 내쉴 수밖에 없었다.
“신의 지팡이라도 써야 하나….”
지크는 의 액티브 스킬인 을 사용할까 고민도 해보았다.
의 위력은 핵폭탄이나 마찬가지라서, 코린트 시 전체를 날려 버리는 게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오죽 했으면 최초의 블랙 드래곤이자 고대의 악신(惡神)인 잉카서스마저도 부활하는 중에 을 맞고 죽어버렸을까.
그러나….
‘이거 방어 마법진이 없다는 보장도 없고.’
막상 쿨타임 1년짜리 핵폭탄인 을 사용했다가 적들의 방어막에 그 위력이 상쇄된다면, 안 쓰느니만 못했다.
1년의 쿨타임을 기다려 온 게 헛수고가 되는 것이다.
‘이거 어떡하지….’
지크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폐하.”
한센이 입을 열었다.
“소인이 한 말씀 올려도 되겠사옵니까?”
“아, 한센 대위. 말씀하시죠.”
지크는 지능캐(?)인 한센에게 흔쾌히 발언권을 허락했다.
한센은 특별한 이능이 있기보다는 전략에 대해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영웅 유닛.
그의 발언은 들어볼 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폐하, 상륙 작전을 통해 아도르를 공략하시는 게 어떻겠사옵니까?”
“상륙 작전이요?”
“여기, 이곳을 보시옵소서.”
한센이 아도르 북부를 가리켰다.
“100킬로미터 거리에 북해가 있사옵니다.”
“그렇죠?”
“잘 아시다시피 아군 해군력은 최강이옵니다. 그러니 먼저 적의 해군 기지를 공략하시고, 대규모 병력을 상륙시키신 다음 아도르를 직접 공략해 보시는 건 어떻겠사옵니까?”
“아?”
“아도르는 주변에 딱히 성이라 할 만한 것이 없어서, 공성전을 치를 필요도 없사옵니다. 그러니 공략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고, 퇴각도 순조로울 것 같사옵니다.”
지크는 한센의 말을 듣고 지도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 결과.
‘어? 이거 해볼 만한데?’
한센이 제안한 전략은 상당히 훌륭했다.
물론 적의 해군 기지부터 아도르 북부까지의 거리가 거의 100킬로미터에 달하는 산악 지형이라서, 행군이 쉽지는 않을 터였다.
그러나 쥐도 새도 모르게 해군 기지를 점령한다고 가정하면, 적들이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아도르를 공격하는 게 가능했다.
‘그럼 신의 지팡이는 아껴두자.’
지크는 그런 생각으로, 한센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강행군이 되겠지만,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좋습니다, 한센 대위.”
지크가 웃으며 한센을 돌아보았다.
“한센 대위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상륙 작전을 통해 아도르를 공략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성은이 망극하고, 또 망극하옵니다! 폐하!”
한센은 지크가 자신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주자 넙죽 엎드려 절까지 했다.
“자자. 일어나시고.”
지크는 그런 한센을 손수 일으켜 주고는, 좌중을 슥 돌아보았다.
“그럼 지금부터 상륙 작전에 아도르 공략에 대한 회의를 진행해 보죠.”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