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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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크는 즉시 천우진과 함께 마우레키온 제국의 소도시 앙겔라로 향했다.
천우진의 워프는 매우 빨랐다.
의 에너지 자원을 이용하는 이 워프는, 그 어떤 준비 동작이나 딜레이 없이 먼 거리를 즉시 이동하는 게 가능했다.
“와우.”
지크는 눈 깜짝할 사이에 풍경이 바뀐 걸 보고 혀를 내둘렀다.
이런 식의 워프는 사부, 혹은 드래곤 로드 게오르그나 가능했기 때문이다.
물론 천우진은 아주 오래전부터 소리 소문도 없이 불쑥 나타나곤 했으므로, 딱히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도착한 앙겔라는, 이미 살아 있는 지옥이었다.
멀리 하늘 높은 곳에서 보니, 앙겔라에는 붉은 선들이 마치 거미줄처럼 퍼져 있었다.
도시 곳곳에 설치된 제단에서 인신공양이 벌어졌고, 그로 인해 흘러나온 피가 도시 바닥을 온통 붉게 물들여 놓았기 때문이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양의 피가 흘렀는지….
그뿐만이 아니었다.
“으아악!”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악!”
이 먼 곳까지도 제물로 바쳐진 사람들의 비탄과 절규가 들려올 지경이었다.
“진짜 정신병 걸리겠네.”
지크는 눈을 질끈 감으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건 솔직한 심정이었다.
본래 세상살이란 게, 좋은 것만 보고 살아도 부족한 거였다.
괜히, 삶은 고통이란 말이 있겠는가?
그만큼 인생이란 건 험난한 여정이라서, 99퍼센트의 고통과 1퍼센트의 행복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질 않은가?
그런데 이렇듯 끔찍하고 참혹한 광경을 자주 보게 되니, 정말로 정신병에 걸릴 것만 같았다.
PTSD.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한 정신질환 말이다.
실제로, 가상 현실 게임을 즐기던 중에 목격한 끔찍한 광경으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게이머들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
아무리 현실이 아니고, 연출된 장면이라 할지라도 시각적인 자극으로 인한 충격을 아예 안 받을 순 없는 것이다.
그건 지크 역시 마찬가지였다.
평소엔 아무렇지 않게 전장을 누비다가도, 가끔 이런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정신이 피폐해지는 기분이었던 것이다.
“더러운 꼴 좀 그만 보고 살아야지, 어휴.”
지크는 그렇게 투덜거리고는 천우진과 함께 앙겔라를 향해 비행했다.
그러면서 천우진한테 말했다.
“넌 나서지 마.”
“응?”
천우진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끔뻑였다.
“왜? 니가 아무리 세도, 나도 그랜드 마스터인데?”
천우진의 말은 사실이었다.
사실 평상시의 강함으로 따지자면, 그랜드 마스터인 천우진이 마스터인 지크보다 더욱 강했다.
지크에게 이라는 희대의 조커 스킬이 있어서 그렇지.
“너 약하단 게 아니고.”
지크가 고개를 저었다.
“나 퍼지면, 누가 구할 건데?”
“아.”
천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크는 스킬 사용 후 전투 불능에 빠질 게 분명했다.
를 착용한 지금은 기절까진 안 하겠지만, 그래도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남지 않으리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즉, 천우진은 지크가 퍼졌을 때를 대비해 탈출조 역할을 해 주어야만 했던 것이다.
“믿고 간다.”
지크는 그렇게 말하고는, 속도를 더 높였다.
“자식.”
천우진은 멀어지는 지크를 바라보며 피식 웃고는, 적당히 떨어진 거리에서 비행하며 대기했다.
***
그렇게 지크가 앙겔라를 향해 날아가던 중.
“멈춰라.”
“더 이상 갈 순 없을 것이다.”
“그놈이로군.”
최상급 타락 천사 세 명이 지크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건 엄청난 전력이었다.
그랜드 마스터 등급 이상의 강함을 지닌 존재가 무려 셋이었으니, 왕국 하나를 세우고도 남을 만한 무력이었다.
하지만 지크는 그런 최상급 타락 천사들 앞에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나이젤러스를 만났을 때는 영혼 에너지도 없고 스킬을 쓰기에도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몸을 사려서는 안 될 상황이니만큼, 전력을 다해야 했다.
그렇다면, 지크가 최상급 타락 천사들을 두려워 할 이유 같은 건 없었다.
왜?
변신하면 그만이었으니까.
휘이이이이이!
시커먼 기류가 지크를 둘러싸며 휘몰아쳤다.
다음 순간.
“피라미들은 꺼져라.”
마왕으로 변신한 지크가 시퍼런 귀화(鬼火)가 번뜩이는 두 눈을 빛내며 최상급 타락 천사들을 향해 를 휘둘렀다.
“으악!”
“으아아아악!”
“커헉!”
최상급 타락 천사들은 그런 지크에게 상대조차 되지 않았다.
지크가 휘두르는 와 감히 무기를 마주칠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만큼 마왕과 최상급 타락 천사의 격차는 엄청났다.
마왕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같은 등급의 힘을 지닌 존재인 대천사밖엔 답이 없었던 것이다.
“이, 이런 빌어먹을! 형제들이여! 놈을 공격하라! 죽이란 말이다!”
최상급 타락 천사들은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안 되겠다고 판단했는지, 앙겔라 곳곳에 흩어져 있던 다른 타락 천사들을 불러들였다.
그 숫자가 수천여 명.
놀랍게도, 앙겔라에 투입된 타락 천사들의 숫자는 아도르에 투입된 것보다 수십 배는 더 많았던 것이다.
그렇단 말은?
‘이건 일반적인 천계의 문이 아니다.’
지크의 눈치는 매우 빨랐다.
지금 이곳 앙겔라에 있는 이 결코 타락 천사들이나 추가로 소환해 내기 위한 게 아니라는 걸 간파해 냈다.
‘대천사야.’
지크는 그 사실을 파악하자마자 곧바로 과 스킬을 동시에 전개했다.
그러자 지크를 중심으로 적들의 방어력과 항마력을 불태워 버리는 불꽃이 피어오르고, 곳곳에서 지옥의 망자들이 나타나 타락 천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게 전투의 시작이었다.
“다 꺼져.”
지크가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타락 천사들을 향해 를 쭉 내밀었다.
우웅!!!
뒤이어 이 타락 천사들을 덮쳤다.
그로부터 셋, 둘, 하나.
“……!”
“……!”
“……!”
수백여 명의 타락 천사들이 일거에 미립자의 형태로 분해되어 하나둘 흩어졌다.
마왕 상태의 지크가 사용하는 은 그야말로 적들을 소멸시켜 버렸던 것이다.
“귀찮으니까 따라오지 마라. 뒈지기 싫으면.”
그렇게 길을 뚫어 낸 지크는, 타락 천사들이 소멸하면서 발생한 틈을 파고들어서 저 멀리 보이는 황금색 문을 향해 날아갔다.
잔챙이들을 상대하기보다는 부터 파괴하고 보겠단 생각이었다.
***
부터 파괴하겠단 지크의 계획은, 그리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뭐야!’
지크는 황금색 그물이 자신의 머리 위를 덮쳐오는 걸 보고 황급히 회피기동을 시전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어어?’
덮쳐오는 황금색 그물이 얼마나 컸는지, 하늘 전체를 뒤덮고도 남았던 것이다.
그 황금색 그물의 정체는 타락 천사들이 휘두른 밧줄들이었다.
촤락! 촤라락!
촤라라락!
수천여 명의 타락 천사들은 각자 황금색 밧줄을 휘두르며 그물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지크를 잡기 위해서, 다 같이 힘을 합치기로 한 것이다.
‘벤다.’
지크는 즉시 를 도(刀)의 형태로 바꾸었다.
그런 뒤 도제 베텔규스의 비기인 스킬로 덮쳐오는 그물을 베어 버렸다.
그런데.
“……!”
스킬은 그물을 베어 내지 못했다.
“이게 말이 돼…?”
지크는 마왕 상태인 자신이 타락 천사들이 친 그물을 베지 못했다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왕의 힘이 얼마나 강한데, 이깟 그물 하나 베어 내지 못하다니….
하지만 지크는 몰랐다.
지금 자신을 덮친 이 그물이 과거 천족과 마족이 치열하게 전쟁을 벌이던 시대에 개발된, 매우 특수한 결계라는 걸.
이른바 이란 이름의 이 황금색 결계는, 바로 마왕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였다.
그러니 지크가 힘을 못 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크윽!”
지크는 자신을 옭아맨 그물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지만, 헛수고였다.
꽈아아아아악!
그럴 때마다 그물은 더더욱 지크의 몸을 조이며, 엄청나게 강한 압박을 가해왔다.
“이, 이런 미친! 크으으윽!”
지크는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쏟아 내면서, 그물을 뿌리쳐 보았지만 뭔가 되는 건 없었다.
그러는 사이.
스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
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안 돼!’
지크는 이 열리는 걸 막기 위해서, 나이젤러스를 상대할 때와 똑같은 방법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속박을 당하는 바람에 몸을 움직일 수가 없으니, 손을 쓰지 않아도 되는 를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촤락! 촤라락!
그렇게 생성된 수만 개의 빛의 검들.
화륵, 화르륵!
시퍼런 귀화(鬼火)를 머금은 그 빛의 검들은,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으며 휘몰아쳤다.
“으, 으아아아아아악!”
“커헉!”
“크아아아아!”
“으으으으으으윽!”
지크를 로 속박했던 타락 천사들은 의 칼날 폭풍에 갈려 나가며, 처참한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다.
‘지금!’
지크는 이 느슨해진 틈을 타서, 재빨리 속박에서 벗어났다.
밧줄을 붙들고 있던 타락 천사들이 죽은 덕분에, 빠져나갈 빈틈이 생겼던 것이다.
‘무시하고.’
지크는 그물에서 벗어나자마자 을 향해 최고 속도로 비행했다.
“잡아라!”
“어떻게든 막아라!”
타락 천사들이 뒤를 쫓았지만, 지크를 잡을 수는 없었다.
지크가 날아가는 속도가 워낙 빨라서, 그 궤적조차 따라가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파괴해야 돼.’
지크는 이 가까워지자마자 를 움켜쥐고 스킬을 장전했다.
그러고는 을 향해 있는 힘껏 내던졌다.
거리가 너무 멀었기에 스킬을 이용한 원거리 파괴를 노렸던 것이다.
쒜에에에에엑!!!
그렇게 날아간 .
‘제발.’
지크는 부푼 기대를 한껏 안고 가 을 파괴하기만을 염원했다.
하지만 그런 지크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쩌어억!
이 열리고.
덥석!
그 안에서 뻗어 나온 팔이 이 실린 의 자루를 움켜쥐었던 것이다.
“……!”
기어코 이 열렸단 걸 깨달은 지크의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다.
최대한 빠르게 오긴 했지만, 결국엔 늦어버렸던 것이다.
그 결과.
[알림: 퀘스트를 클리어하는 데 실패하셨습니다!]지크는 천우진이 준 +10레벨짜리 퀘스트 클리어에 실패하고 말았다.
퀘스트를 시작할 때부터 너무 늦은 상황이었기에,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이다.
“아….”
지크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오고.
스윽.
누군가 를 움켜쥔 채 을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지크는 저 을 통해 빠져나오는 존재가 대천사라는 걸 본능적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찌릿찌릿!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고,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로 강렬한 존재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등장한 대천사.
놀랍게도, 그는 검은 날개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
현재 모든 천족들은 타락으로 인해 하급 천사든 최상위 천사든 할 것 없이 날개가 검게 물들어 있었는데, 그는 아직도 열 장의 날개가 새하얬던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