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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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지크는 곧장 뭍으로 향하지는 않았다.
지크에게는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촤락! 촤라락!
지크는 우선 를 휘둘러 대왕오징어를 처치했다.
그런 뒤 샤키로를 돌아보았다.
“사부님?”
“말해라.”
“저거 좀 배에 매달아서 끌고 가 주실 수 있겠습니까?”
“대왕오징어의 사체를?”
“예.”
“어째서인가?”
“그야 당연히….”
지크가 대답했다.
“팔아야죠?”
“으음?”
“저렇게 큰 대왕오징어가 어디 흔합니까? 가까운 수산시장에 내다 팔면 돈 진짜 많이 벌걸요?”
“…….”
“마침 촉수들도 떠오르네요.”
지크가 수면 위로 두둥실 떠오른 8개의 촉수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다리 하나만 내다 팔아도 황금이 킬로그램 단위로 나올 텐데, 아까워서 어떻게 버리고 갑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만….”
샤키로는 지크가 돈을 밝히는 모습에 아주 기가 질려 버린 듯했다.
이쯤 되면 돈을 좀 안 밝힐 만도 한데, 지크는 처음부터 끝까지 꾸준히 돈에 집착했다.
적어도 돈에 관해서는 초심을 잃을 줄을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샤키로는 지크가 다음에 한 행동을 보고, 더더욱 경악했다.
“야.”
지크가 알비온에게 말했다.
“내가 지금은 바빠서 니 썰 들어 줄 시간이 없거든?”
– 으응…?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일단은 놔줄게.”
– 고마워.
“대신.”
지크가 덧붙였다.
“뱃속에 든 건 토해 내고 가. 하나도 남김없이.”
– 그, 그게 뭔 소리야?
“니 토.”
지크가 아공간 인벤토리에서 용연향을 꺼내 보여 주었다.
“이거 되게 비싸다고.”
– 그거야….
“내놓고 가라고.”
지크가 으르렁거렸다.
“살려서 보내 주는데, 합의금 정도는 줘야지?”
– 합의금?
“니가 우리 애들 죽였잖아! 그러니까 합의금은 줘야 할 거 아냐! 그래야 내가 유족들한테 위로금도 전달하고? 어? 장례도 치러 주고? 그러지!”
당연한 말이겠지만, 바다괴수들에게 유족들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있다고 한들 알 게 뭐란 말인가?
– …….
알비온은 지크의 말이 돈, 그러니까 용연향을 뜯어내기 위한 개소리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굳이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지는 않았다.
괜히 심기를 거슬렀다가 지크의 마음이 바뀌기라도 하면, 꼼짝없이 수산시장에 진열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니까 토해 내고 가라.”
– 아, 알겠어.
결국, 알비온은 지크의 강요를 이기지 못하고 뱃속에 든 용연향을 한껏 토해 내야만 했다.
문제는 그것으로는 지크가 만족하지 못했단 점이었다.
“더.”
– 더?
“이거 먹고 떨어지란 거냐?”
– 아니, 토하는 것도 한계가….
“억지로라도 토해야지? 그럼?”
– …….
“용연향 개수가 많아야 할 거야?”
– 아, 알겠어.
알비온은 지크의 협박에 헛구역질까지 해 대며 억지로 용연향을 토해 내었다.
– 우웨에에에엑!
하지만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어휴. 이거 잘 토하지도 못하네. 야, 내가 도와줄게.”
– 뭐?
“딱 대.”
지크의 주먹이 알비온의 명치를 가격했다.
– 커헉!
알비온은 지크의 펀치에 실린 그 엄청난 파괴력에 순간 숨을 쉬지 못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3초 뒤.
– 우웨에에에에에에에에엑-!!!
알비온은 거의 영혼까지 뱉어낼 기세로,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을 토해 내고 말았다.
안 그래도 거듭된 구토로 인해 위가 잔뜩 놀라 있던 상황에서, 아주 강한 충격이 가해지니 속이 완전히 뒤집혀 버린 것이다.
“캬! 많다, 많아!”
지크는 알비온이 괴로워하든 말든 용연향을 줍느라 여념이 없었다.
조금 전까지 위에 들어 있던 덩어리이니만큼, 악취가 매우 심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어이구. 이게 다 얼마치야.”
지크는 돈이 되는 물건이라면 악취가 나든 향기가 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다.
“돈에 한이라도 맺힌 건가….”
샤키로는 그런 지크의 모습을 바라보며 완전히 기가 질려 버려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
그 후 지크는 샤키로에게 대왕오징어의 사체 처리를 맡긴 후 프로아 제국으로 복귀했다.
그런 뒤 병실에서 사경을 헤매던 미카엘에게 날개를 달아 주었다.
스으으!
그러자 날개가 환한 빛을 뿜어내며 미카엘에게 스며들었다.
“…여긴.”
이윽고 미카엘이 눈을 떴다.
“미카엘 씨, 괜찮으세요?”
지크가 물었다.
“좀… 어지럽습니다.”
“그래도 깨어나셨네요. 다행입니다.”
“제가 어떻게 살아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카엘이 혼란스럽다는 듯 말했다.
“지금의 저로서는 안식의 낫에 담긴 힘에 저항하기가 힘든데….”
“제가 날개를 하나 더 찾아왔거든요.”
“아?”
“회복되셔서 다행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크윽!”
“미카엘 씨!”
지크가 황급히 미카엘을 부축했다.
미카엘이 지크에게 고맙단 인사를 하려다가 그만 쓰러질 뻔했던 것이다.
“억지로 몸을 일으키지 마세요. 무리하면 상태가 더 안 좋아 집니다.”
“죄, 죄송합니다.”
미카엘이 지크에게 사과했다.
“도움이 되어 드리지 못하고, 이렇게 짐만….”
“에이.”
지크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씀 마세요. 그때 미카엘 씨가 도와주시지 않으셨으면, 다 죽었을 겁니다.”
“하지만….”
“일단 쉬세요.”
지크가 미카엘을 도로 침대에 눕혀 주었다.
“죽을 위기에서 벗어나신 거지, 몸 상태가 정상은 아니시잖아요.”
“솔직히….”
미카엘이 대답했다.
“눈을 뜨고 있는 것조차 버겁습니다.”
“그렇겠죠.”
“하지만 이렇게 누워 있을 순 없습니다. 제라키엘을 막아야 합니다. 본래 그런 아이가 아닌데, 도대체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행동을 저지르는지….”
“아, 그거요. 왜 그러냐면….”
지크가 미카엘에게 제라키엘의 기억을 본 이야기를 해 주었다.
제라키엘이 연인과 안타까운 이별을 한 뒤, 필멸자들의 삶을 무가치하다고 여기게 된 계기 말이다.
“아.”
미카엘은 지크로부터 그 얘기를 전해 듣고, 알 만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당시에… 제라키엘이 중간계를 자주 드나들던 때가 있었습니다.”
“기억하시네요?”
“우리 불멸자들에게 기억이란 결코 잊히지 않는… 낙인과 같은 것입니다. 잊고 싶어도 잊을 수가 없지요.”
“아, 그래요?”
“드래곤들도 비슷합니다만, 그들은 태생적으로 게을러서 굳이 과거의 일을 떠올리지는 않는 편입니다. 하지만 우리 천족들은 다릅니다. 또, 드래곤들보다 훨씬 더 영생에 가까운 존재입니다.”
“그렇군요.”
“제라키엘은 대천사들 중에서도 유독 마음씨가 여린 녀석입니다. 그런 녀석이 큰 충격을 받았으니, 오랜 시간 동안 홀로 고민하다가 잘못된 사상을 품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흐음.”
“이틀만 시간을 주십시오.”
미카일이 지크에게 부탁했다.
“그동안 꼭 회복해서, 다시 제라키엘과 싸워 보겠습니다.”
“괜찮으시겠어요?”
“비록 실각한 상태이지만, 저는 전직 대천사장입니다. 이틀이면 충분히 회복 가능합니다.”
“알겠습니다.”
지크는 일단 미카엘을 믿고, 이틀만 참아보기로 했다.
‘그래, 나도 시간이 필요해.’
어차피 지크도 어느 정도의 시간적 여유가 필요했다.
마지막 변신 이후로 에 필요한 영혼 에너지를 다 소모해 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의 사용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어디 가서 깽판이라도 좀 치고 와야지.’
지크는 이틀 안에 영혼 에너지를 모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미카엘의 병실을 떠났다.
***
병실을 나선 지크가 향한 곳은 브륜힐트가 있는 곳이었다.
최근 지크는 브륜힐트에게 거의 신경을 써 주지 못했다.
신성동맹이 자꾸만 을 열려고 음모를 꾸미는 바람에, 지크는 그걸 막으러 다니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만 했다.
그래서 브륜힐트와 베르단디를 잘 챙길 수가 없었다.
챙기고 싶어도 지크가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만 벌어지니, 얼굴 한 번을 보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오늘 오전만큼은 가장 노릇에 집중해야지.’
그래서 지크는 어지간히 큰일이 벌어져도 절대 움직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때로는 천재지변이 일어나더라도 가족들 곁을 지켜야 할 때가 있는 법이었고, 지크에게는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던 것이다.
“오셨어요, 여보.”
브륜힐트는 언제나처럼 지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미안해요.”
지크는 그런 브륜힐트에게 진심으로 미안했다.
명색이 남편인데, 일주일에 얼굴 한 번 보는 것조차 어려우니 면목이 없었던 것이다.
“전 괜찮아요.”
하지만 브륜힐트는 개의치 않는 듯했다.
“당신이 무슨 일을 하시는지 아는데, 제가 어떻게 서운해할 수 있겠어요. 이렇게 시간을 내 주시는 것만 해도 너무 감사한걸요.”
“여보….”
“사랑해요.”
브륜힐트가 오래간만에 지크에게 안겨 왔다.
‘정말 사랑스러워.’
지크는 그런 브륜힐트를 꼭 안아 주었다.
지금 이 순간.
게이머 한태성은 없었다.
현실에서 용설화와의 연애?
그건 아예 기억나지 않았고, 또 기억해서도 안 되었다.
이 순간에는 오직 지크프리트 폰 프로아만 있어야 했다.
게임에 접속해 있을 땐 게임 속 인물에 철저히 몰입한다.
단, 현실에서는 현실에 집중한다.
가상 현실 세계와 현실 간의 괴리로 인해 미쳐 버리지 않으려면, 이렇듯 철저한 분리가 필수적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현실을 잊고, 가상 현실에만 집착하는 진짜 사이버 망령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크는 현실을 잊은 채 게임 속 캐릭터인 지크프리트 폰 프로아에만 집중했고, 꽤 잘 해내고 있었다.
가상 현실 게임이 보편화된 시대를 살아가는 프로게이머로서, 멘탈 관리적인 측면에서 성숙해진 것이다.
***
같은 시각.
게임 BNW의 개발사이자 유통사인 의 본사에서는 모니터링이 한참이었다.
사실 의 주요 임무는 게임 속 세상을 관찰하는 거였다.
BNW는 애초에 개발 당시부터 운영자들이 게임에 절대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게끔 설계되었고, 모든 것이 인공지능의 알고리즘대로 흘러가도록 운영되었다.
그래서 이 하는 일이라고는 그저 주요 인물들에게 전담팀을 붙여서 관찰하거나, 혹은 게임의 메인 시나리오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체크하는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게임이 워낙 방대하기도 하고, 또 주요 인물들이 많아서 으로서는 거의 만 단위가 넘는 모니터링 요원들을 고용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의 본사에는 게임 모니터링실이 50개가 넘었고, 각 모티너링실은 육각형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게 이 회사의 이름이 인 이유였다.
의 핵심 부서인 의 내부.
‘정말 벌집 같군.’
부회장 오펜하이머는 거대한 스크린을 통해 각 모니터링실들을 한눈에 들여다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늘 그렇긴 했지만, 오늘따라 모니터링실들이 비춰지는 모습이 진짜 벌집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하나의 집단 지성인가?’
오펜하이머의 뇌리에 그런 생각이 스칠 무렵이었다.
“부회장님.”
모니터링팀 전체를 총괄하는 임원이 오펜하이머에게 보고했다.
“뭔가 특이 사항이 생긴 것 같습니다.”
“특이 사항…?”
오펜하이머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되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게임에는 딱히 특이 사항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게임 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 사고들이 인공지능 알고리즘과 게이머들로 인해 벌어지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과물들이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특이 사항이라고까지 말하는 거지?”
“그게….”
임원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NPC들이 현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다니는 것 같습니다.”
“……!”
순간 오펜하이머의 얼굴이 서릿발처럼 얼어붙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