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070
1069
“컥!”
“커허억!”
신성동맹군들은 지크가 뿜어낸 방사능 가스 앞에 1~2초도 채 버티지 못하고 죽어 갔다.
독 저항력이 높은 이들도 1분 이상 버티기가 쉽지 않은 것이 방사능 가스였다.
그런데 평범한 기사들, 병사들, 그리고 훈련병들이라면 오죽하겠는가?
굳이 초록색 가스에 닿을 필요도 없었다.
뿜어지는 방사능 에너지가 워낙에 강력해서, 평범한 병사들은 초록색 가스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즉사를 면치 못했다.
즉, 지크는 양민 학살에 있어서 그 누구보다 뛰어난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 결과.
[알림: 영혼을 흡수하셨습니다!] [알림: 영혼을 흡수하셨습니다!](중략)
[알림: 영혼을 흡수하셨습니다!]지크는 죽인 적들의 영혼을 탐욕스럽게 흡수하며, 영혼 에너지를 채워 갔다.
이곳 신병훈련소에서 영혼 에너지를 모으기란 너무나도 쉬웠다.
적들은 허수아비나 다름없었고, 지크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했다.
그저 기계적으로 죽이기만 하면 영혼 에너지를 모을 수 있었으니, 솔직히 개꿀이었다.
하지만 지크의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이게 진짜 내 모습인가.’
지크는 영혼 에너지를 수집하면서도 고민했다.
‘마왕의 힘은 우연찮게 얻은 거야. 그냥 운이 좋았던 거고, 실력도 아니고 진짜 내 힘도 아냐. 잠시 끌어다 쓰고 있는 것뿐이지.’
지크는 최근 스킬에 너무나도 의존하고 있는 자신의 신세가 그리 달갑지 않았다.
물론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과 같은 성장 속도로는 천족들을 상대하는 게 불가능했다.
최상급 타락 천사 하나도 상대하기가 힘든데, 대천사라면 두말하면 입 아팠다.
부득이하게 스킬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더 강해져야 하는데. 이런 조건부 스킬에 의존해선 안 돼.’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난 절망군주지 마왕이 아니야. 내 스스로의 힘으로 마왕의 힘을 뛰어넘어야 해.’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의존하는 것이었지만, 지크는 그것조차도 싫었다.
지크가 원하는 건 평소에도 스킬을 쓴 것처럼 강해지는 거였다.
디버프 마스터의 상위 클래스인 절망군주로서 천족들과 당당히 맞설 수 있는 경지를 원하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금은 악귀의 형상 세트가 부작용을 막아 주고 있지만, 이것도 한계가 올 거야. 양날의 검이야. 이 스킬은 언젠가 날 갉아먹을 거다. 이런 시한폭탄을 언제까지고 붙들고 있을 순 없는 거야.’
지크는 스킬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다시 한번 경각심을 바로 세웠다.
“뀨! 주인 놈아!”
햄찌는 지크가 이 대학살의 현장에서도 상념에 잠겨 있는 걸 보고 의아해 했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는 거냐! 뀨우!”
“더 강해져야겠다는 생각?”
“뀨우?”
“내가 힘에 끌려 다녀선 안 돼. 내가 힘을 지배해야지.”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냐! 뀨우우!”
“그런 게 있어, 인마.”
지크는 햄찌를 향해 피식 웃고는, 다시 학살에 집중했다.
[알림: 영혼을 흡수하셨습니다!] [알림: 영혼을 흡수하셨습니다!](중략)
[알림: 영혼을 흡수하셨습니다!]죽음의 대천사 제라키엘과 2차전을 치르려거든 을 오래 유지해야 했기에, 일단은 영혼 에너지를 최대한 많이 흡수해 두는 게 중요했기 때문이다.
***
다음 날 오후.
“몸 상태는 괜찮으세요?”
어젯밤 신성동맹군의 훈련소를 개박살을 낸 지크는, 곧장 미카엘의 병실을 찾았다.
“이제 괜찮습니다.”
미카엘은 불과 이틀 사이에 꽤 많이 회복되어 있었다.
하지만 완전한 회복은 아니었다.
[추락천사 미카엘]•생명력 : ■■■■■■■□□□
미카엘은 생명력이 100퍼센트가 아니라 70퍼센트밖에 차올라 있지 않았다.
“아직 버거울 거 같은데, 괜찮으시겠어요?”
“지크 님이 날개 하나를 더 찾아 주신 덕분에, 지금은 그때보다 더 강해진 상태입니다. 제 컨디션이 아니라도, 그때와는 다를 겁니다.”
“그럼 됐고요.”
“게다가 안식의 낫에 베여도 두세 번 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정도인가요?”
“제가 대천사장이었을 시절에는, 안식의 낫에 수백 번 베여도 죽지 않았을 겁니다.”
“좋습니다.”
지크는 미카엘의 말을 굉장히 긍정적으로 보았다.
‘필요하다면 육참골단도 가능해.’
지크는 최악의 경우 미카엘을 몸빵 세우고, 제라키엘의 숨통을 끊어 놓을 생각까지 했다.
미카엘이 안식의 낫에 두세 번 정도 베여도 거뜬하다고 하니, 필요하다면 그런 극단적인 전술까지도 쓸 각오를 했던 것이다.
“그럼, 갈까요?”
“예, 지크 님.”
“뀨! 가자!”
그렇게 지크는 햄찌, 미카엘과 함께 죽음의 대천사 제라키엘을 처치하기 위해 워프 게이트에 올랐다.
“참.”
워프 게이트에 오르기 직전.
“햄찌야.”
지크가 햄찌를 돌아보았다.
“뀨?”
“너 빨리 그랭구아르 사관님 좀 데려와.”
“뀨? 그랭구아르를 왜 데려오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빨리 데려와 줘.”
“뀨! 알겠다!”
지크는 이번 여정에 인 그랭구아르를 데려가기로 했다.
‘언데드들에게 특화된 노래가 있었던 것 같아. 진혼가라고 했던가?’
제라키엘은 혼자가 아니라, 수천만 명의 망령들을 데리고 다니는 일인군단이었다.
그런 제라키엘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망령들을 제어할 카드가 필요했고, 지크는 그 카드로 그랭구아르를 선택했던 것이다.
한편, 지크에게 또 한 번의 일격을 맞은 신성동맹은 발칵 뒤집어져 있었다.
신병훈련소가 박살이 난 것으로도 모자라 앞으로 전쟁에 투입해야 할 신병들 중 수만 명이 몰살당했기 때문이다.
그건 신성동맹에도 엄청난 부담이었다.
지금까지는 타락 천사들과 군대를 앞세워 백성들을 억압하고 통제하고 있었지만, 슬슬 그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한 상황이었다.
안 그래도 민심이 슬슬 안 좋아지는 상황에서, 전쟁에서는 연전연패까지 해대니 내부 사정이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번에 훈련소까지 털리면서, 죽은 신병들의 유가족들이 신성동맹에 반기를 들고 난까지 일으키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건 매우 심각한 현상이었다.
본래 유가족들은 적국인 연합군을 증오해야 정상이었는데, 이번엔 아니었다.
아군이어야 할 유가족들이 연합군이 아닌 신성동맹을 적대시하게 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군 병력 관리를 개판으로 해서 늘 개죽음만 당하게 만드는데 유가족들로서는 적인 연합군보다 아군인 신성동맹을 더더욱 증오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민간인들이 난리를 쳐 봐야 뭐 얼마나 무섭겠느냐마는, 이런 사태가 계속되면 신성동맹은 더는 전쟁을 수행하는 게 불가능해질 터였다.
또한, 신성동맹이 백성들을 제물로 바쳐서 타락 천사들을 소환한다는 음모론-사실이었지만-이 퍼지면서 민심은 더더욱 흉흉해져 있기도 했다.
그리고 그 유언비어는 프로아 제국의 정보국, 그러니까 나인테일과 첩보 요원들이 고의적으로 퍼뜨린 거였다.
신성동맹으로서는 그 사실을 꿈에도 몰랐지만 말이다.
그렇게 상황이 악화일로로 치달아 가는 가운데.
“회의를 개최한다.”
비밀 결사인 일루미나티의 마스터는 상황을 지켜보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고 판단했는지 긴급히 회의를 소집했다.
계속 이렇게 당하기만 했다가는 천족들의 힘을 등에 업고도 연합군에게 패배하는 그림이 그려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
그렇게 시작된 일루미나티의 긴급회의.
“천상에서 지령이 내려왔다.”
여느 때처럼 장막 뒤에 자리한 마스터가 간부들에게 오늘 긴급회의의 주요 안건을 말했다.
“어떤 지령이 내려온 겁니까?”
일루미나티의 한 간부가 물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일루미나티의 간부들은 모두 가면과 망토로 스스로를 가리고 있었기에 누가 누구인지를 특정하는 게 불가능했다.
목소리와 말투 역시 마법에 걸린 가면이 자동으로 변조해 주었기에, 그들의 정체를 아는 건 오직 마스터밖에 없었다.
“대천사장님을 강림시킬 그릇을 확보하라는 지령이다.”
마스터의 그 말이 떨어지던 순간.
“……!”
“……!”
“……!”
일루미나티의 간부들은 마치 감전이라도 된 듯 몸을 부르르 떨면서 전율했다.
대천사장 루시퍼.
만약 그가 강림하기만 한다면, 이 전쟁은 무조건 신성동맹의 승리로 돌아가게 되어 있었다.
아니, 그건 단순히 전쟁에서 승리하는 게 아니었다.
대천사장인 루시퍼가 강림하는데, 전쟁 따위가 뭐 대수란 말인가?
중간계의 패권이 신성동맹에게로 넘어가는 건 시간문제일 텐데.
“저희가 뭘 어떻게 하면 됩니까?”
다른 간부가 마스터에게 물었다.
“그릇이 될 후보는 이미 찾아 놓았다.”
마스터가 대답했다.
“베르단디. 지크프리트 폰 프로아의 딸. 하이엘프인 그 아이가 대천사장님의 그릇이 될 것이다.”
“오오!”
“하지만 그 아이는 프로아 제국의 수도인 프로이센의 황궁에 있으니, 납치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이다. 그러니 우리는….”
마스터가 잠시 생각을 하더니 말했다.
“우리의 힘을 총동원해서 그 아이를 납치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알겠는가?”
“예! 마스터!”
간부들이 이구동성으로 소리쳐 대답했다.
그렇게 천족들의 중간계 강림을 그 목표로 하는 비밀 결사인 일루미나티는, 대천사장 루시퍼의 강림을 위해 지크의 딸 베르단디를 납치하기로 결의했다.
***
비슷한 시각.
제라키엘은 마우레키온 제국의 대도시 부테롤에서 대학살을 저지르고 있었다.
물론 제라키엘은 직접적인 학살에 가담하지는 않았다.
학살은 오직 망령들의 몫이었다.
그들은 산 자들을 공격해서 죽음을 전염시킴으로써, 제라키엘의 명령을 수행해 내었다.
제라키엘은 그저 수천만의 망령들로 이루어진 군단을 이끌고 도시에서 도시로 순회 공연을 펼치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언젠가는 저들 모두가 날 알아주겠지.”
제라키엘은 죽음을 퍼뜨리고 있는 망령들을 바라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저 망령들이 언젠가는 자신의 뜻을 알아줄 것이라고, 삶의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어서 고맙다고 말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다들 무서워도 조금만 참아.”
학살의 현장을 바라보는 제라키엘의 입가에는 그윽한 미소마저 내걸려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 아아- 아아아아아아- 아- 아아아아아아-!
어디선가 레퀴엠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매우 특수한 파장으로 이루어진 그 레퀴엠은 망령들의 움직임을 눈에 띄게 무력화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뭐야…?”
제라키엘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눈살을 찌푸렸다.
“뭐지 이 노래는…?”
바로 그때.
“진혼가.”
어느새 슥 하고 나타난 지크가 제라키엘의 말을 받았다.
“진혼가…?”
“죽은 자들의 넋을 달래는 노래지.”
지크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랭구아르를 데려온 건 매우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랭구아르는 비록 일대일에서는 딱히 큰 전투력을 기대할 수 없었지만, 이런 방면에서는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을 기적을 만들어 내곤 했다.
그가 부르는 진혼가에 수천만 명의 망령들이 무력화되었으니, 가히 기적적인 능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이다.
“너 또 왔네.”
제라키엘이 불쾌하다는 듯 지크를 향해 말했다.
“그렇게 빨리 죽고 싶은 거야? 하긴. 1분 1초라도 빨리 죽는 게 낫지.”
“그건 니 생각이고.”
지크가 냉소를 지으며 를 뽑아들었다.
“제라키엘. 이제 그만해라.”
그와 동시에 미카엘도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져 내려서 제라키엘의 앞을 가로막았다.
“용케도 살아 있네, 형? 날개도 하나 늘었고.”
제라키엘이 미카엘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다고 형이 날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10장의 날개도 없으면서?”
“그건 해봐야 아는 거다.”
“형은 항상 긍정적이네.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제라키엘이 을 뽑아들면서 말했다.
“하지만 그 긍정적인 모습도 오늘로 끝이야. 이번엔 살려두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말하는 제라키엘의 두 눈은 짙은 보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