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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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네아.”
제라키엘은 지크로부터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이름이 튀어나오자 넋이 반쯤 나간 듯 멍하니 그 이름을 되뇌었다.
“아는 이름인가? 큭.”
지크는 제라키엘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을 목적으로, 일부러 히죽 웃으며 빈정거렸다.
“오래전에 헤어진 첫사랑 이름이 루네아?”
“네가.”
제라키엘이 시퍼렇게 물든 보라색 눈동자로 지크를 노려보며 물었다.
“그 이름을… 어떻게 아는 거지?”
“글쎄.”
지크가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어떻게 알았을까? 왜? 니 일기장이라도 훔쳐봤을까 봐?”
“어떻게 알았냐니까.”
하지만 지크는 제라키엘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제라키엘의 속을 더더욱 긁어놓았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지크의 입에서 루네아의 임종 당시 제라키엘이 했던 말이 흘러나왔다.
“네가… 네가 너무 보고 싶을 거야.”
“…….”
“울고불고 질질 짜고. 으이구. 명색이 대천사란 놈이 아주 가관이더라? 사내새끼가 그렇게 울면 되겠냐? 너 인마, 고추 떨어져.”
당연한 말이겠지만, 지크의 말은 다분히 도발을 위한 인신공격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영영 이별하는 상황에서 슬프지 않을 남녀가 어디 있겠는가?
슬픈 건 슬픈 거였고, 사나이라고 해서 눈물을 흘리지 말란 법도 없었다.
운다고 중요 부위가 떨어지는 것도 결코 아니라는 것을 지크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듯 저질 흑색선전이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야 제라키엘이 분노할 테고, 빈틈을 보일 테니까.
실제로, 그런 지크의 작전은 매우 큰 효과를 내었다.
“이 X발.”
제라키엘이 입에서 쌍욕을 내뱉었다.
“물었지. 어떻게 알았냐고.”
“꿈에서 봤던가?”
지크가 어깨를 으쓱했다.
“알고 싶으면 500골드.”
“이 새끼가….”
“쯧쯧.”
지크가 제라키엘을 향해 혀를 찼다.
“이 찌질한 새끼. 이거 완전 애새끼였네. 지 애인 하나 죽었다고, 엄한 사람들 삶을 다 무가치한 걸로 취급해? 이 이기적인 새끼야. 이 세상 돌아가는 게 니가 생각하는 거랑 다르면, 그게 잘못된 세상이냐?”
이번엔 진심이었다.
지크는 제라키엘을 진짜 찌질하다고 생각했다.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낸 애인을 추모하고 그리워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슬픔과 혼란에 빠져서, 멀쩡히 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빼앗을 권리가 생기는 건 아니었다.
지크가 보기에, 제라키엘이 가진 사상은 전형적인 중2병 증상에 불과했다.
속칭 애새끼들이나 할 법한 아주 무책임하면서도 속 좁은 행동인 것이다.
“니 애새끼 같은 생각으로는, 이 세상이 고통으로 가득 차 있겠지만.”
지크가 제라키엘에게 쏘아붙였다.
“세상살이가 아무리 힘들고 X같아도, 가끔 X나 행복한 일이 있는 거다.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단 얘기도 못 들어봤냐? 다 그렇게 사는 거야. 너는 X도 모르겠지만.”
“…말 다했냐?”
“아직 다 못 했는데?”
지크가 고개를 저었다.
“니 그 X신 같은 생각이 맞다 치자. 이 세상이 고통으로 가득 차 있고, 죽음만이 유일한 안식이라는 게 진리라고.”
“그래서?”
“그렇다고 해서 니가 남들 삶을 니 X대로 끝장낼 권리가 있냐? 니가 무슨 자격으로? 네깟 게 뭔데 남의 인생을 쥐락펴락 끝장내고 말고 하냐고. 삶이 고통스러워서 정 죽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직접 선택해야 하는 거 아니냐?”
지크는 제라키엘을 놀리다 말고 진심으로 분노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저 찌질이가 중2병에 걸려서 멀쩡한 사람들을 학살하는 게 너무나도 꼴사나워 보였던 것이다.
“내가 널 보고 있으면 어떤 생각이 드는 줄 아냐? 창조주도 반쯤 나사 빠진 작자란 생각이 든다. 왜 그런 생각이 드는 줄 아냐? 너 같은 애새끼한테 그런 큰 힘을 준 것 자체가 실수거든.”
“넌 절대로 곱게 죽이지 않을 거다.”
제라키엘은 진심으로 분노했는지 을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두 개 하나의 세트로 이루어진 곡선형의 쌍검을 꺼내들었다.
“지크님.”
그때, 미카엘이 황급히 지크에게 다가와 말했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왜요?”
“제라키엘의 주 무기는 낫이 아니라 저 쌍검입니다.”
“예?!”
“저 쌍검을 든 제라키엘은 정말 강합니다.”
“미친? 더 강하다고요?”
지크는 왠지 자신이 실수했을지도 모른단 생각을 했다.
개사기 그 자체인 을 든 제라키엘도 상대하기가 버거웠는데, 그보다 더 강하다니?
그럼, 애초에 승산이 없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게 게임이냐. 아오.”
지크가 분통을 터뜨렸다.
더 강한 제라키엘?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사람마다 주특기가 다 다른 법.
지크나 샤키로처럼 어떤 무기를 들든 전투력의 편차가 거의 없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었다.
그게 마왕이나 대천사라 할지라도 잘 다루고, 또 익숙한 무기가 있는 것이다.
제라키엘의 경우 낫이 아닌 쌍검이었고.
“수천, 아니 수만 조각으로 회를 떠줄게.”
제라키엘의 입에서 소름 끼치는 위협이 흘러나옴과 동시에, 세찬 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휘이이이이이이이!
지크 일행을 모조리 찢어발길 것 같은 어마어마한 칼바람 말이다.
***
미카엘의 경고는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을 놓고 쌍검을 든 제라키엘의 전투력은 가히 엄청났다.
‘이런 미친!’
지크는 제라키엘의 맹공에 오직 방어밖에 할 수가 없었다.
챙! 채앵! 챙! 챙! 챙!
와 제라키엘의 쌍검이 연신 맞부딪혔고, 그에 따라 빈틈이 드러나는 건 오히려 지크 쪽이었다.
그만큼 제라키엘의 기세가 매섭고, 기술 또한 정교해서 지크조차도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처럼 싸워야 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형도 그냥 뒈져.”
제라키엘은 지크를 공격하다가, 순간 표적을 바꾸어 미카엘의 빈틈을 귀신같이 찌르고 들어갔다.
촤락! 촤라락!
제라키엘의 쌍검이 십자가의 궤적을 그리고.
푸화악!
미카엘의 가슴팍에서 일순간 시뻘건 피가 확! 하고 뿜어져 나왔다.
치명타.
단 한 번의 실수로 전투 불능의 피해를 입은 것이다.
“크악!”
그렇게 미카엘이 떨어져 나가고.
“꺼져라.”
제라키엘은 지크를 밀어내고는, 곧장 햄찌를 향해 쌍검을 휘둘렀다.
“어딜.”
햄찌는 정령의 힘으로 이루어진 방패를 만들어 내 그 공격을 막았지만, 헛수고였다.
휘이이이이이이이이!
검풍.
세차게 불어닥친 칼바람은, 방패를 산산조각으로 잘라 버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햄찌에게까지 데미지를 입혔다.
“으아아악!”
햄찌는 제라키엘의 칼바람에 휘말려서, 온몸에 거미줄과 같은 상처를 입고 피투성이가 되어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상반신 전체를 난도질당했던 것이다.
그렇게 미카엘과 햄찌가 전투 불능이 되어 쓰러지고, 남은 건 오직 지크와 채형석뿐이었다.
“야. 태성아.”
채형석이 지크에게 넌지시 말을 걸었다.
“이번엔 너도 안 될 거 같은데?”
“닥쳐.”
지크가 입가에 흐르는 피를 슥 닦으며 채형석에게 쏘아붙였다.
하지만 그런 지크의 상황은 별로 좋지 못했다.
[알림: 스킬의 지속 시간이 2분 31초 남았습니다!] [알림: 2분 30초 남았습니다!] [알림: 2분 29초 남았습니다!]어느새 시간이 꽤 흘러서, 곧 변신이 풀릴 예정이었다.
대략 2분 안에 제라키엘을 끝장내지 못한다면, 그땐 지크 본인뿐 아니라 동료들 전체가 몰살당할 위기였던 것이다.
‘채형석을 중심으로. 방심을 유도해 보자.’
그때였다.
“야, 한태성.”
채형석이 말했다.
“스펙 후달리잖아?”
“그래서?”
“방법이 있긴 한데, 해볼래?”
“뭔데?”
“악마의 버프를 받아.”
“……!”
“효과는 지금보다 두 배는 더 강해질 거다. 단….”
“후유증이 심각할 거라고?”
“한 일주일은 드러누워서 아무것도 못 할걸? 죽을 수도 있고.”
채형석이 가진 비장의 카드인 란 그만큼 무시무시한 거였다.
양날의 검, 그 자체.
평범한 게이머들의 경우 한 번을 받으면, 전투가 끝나는 즉시 즉사를 면치 못할 정도였다.
기적적으로 강해지긴 하지만, 그만큼 후유증이 엄청났던 것이다.
그러나….
“걸어.”
지크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지금의 지크에게 내일은 없었다.
오늘만 산다.
그게 지크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후유증이고 나발이고, 일단 이기고 봐야 했던 것이다.
“괜찮겠냐?”
“그냥 걸으라고.”
“어휴, 독한 새끼.”
채형석은 지크의 망설임 없는 결정에 혀를 내두르고는 즉시 를 발동했다.
[알림: 공격력이 폭발적으로 강해집니다!] [알림: 방어력이 폭발적으로 강해집니다!] [알림: 항마력이 폭발적으로 강해집니다!](중략)
[알림: 이동 속도가 폭발적으로 빨라집니다!] [알림: 공격 속도가 폭발적으로 빨라집니다!] [알림: 캐스팅 속도가 폭발적으로 빨라집니다!]지크는 눈앞에 떠오르는 알림창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스펙을 확인했다.
채형석으로부터 를 받은 덕분인지, 스펙은 엄청나게 강해져 있었다.
으득!
지크는 이를 악물고 다시 제라키엘과 마주했다.
이판사판.
까지 받았으니, 이제 끝장을 보려는 것이다.
***
지크는 에 힘입어 제라키엘과 대등한 싸움을 펼쳤다.
퍽! 퍼억!
는 디버프에 걸린 제라키엘에게 연신 유효타를 성공시키며, 이 죽음의 대천사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이 새끼가!”
제라키엘 역시 쌍검을 휘둘러 지크를 피투성이로 만들면서,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님을 증명해 내었다.
하지만 그 팽팽하던 힘의 균형은 점차 지크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지크가 가진 그 강력한 디버프에 까지 더해지니, 제라키엘조차 압도할 힘을 낼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루네아 예쁘더라?”
지크가 제라키엘을 몰아붙이다가 툭 한마디를 던졌다.
“그 하늘색 머리칼이….”
“닥쳐! 이 개새끼야!!!”
제라키엘은 수세에 몰리던 도중 지크로부터 루네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그만 이성을 잃고 버럭 소리쳤다.
루네아는 제라키엘이 가진 가장 아픈 기억이자 그리운 사람이었으며, 창세기부터 지금까지 유일한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지크는 제라키엘이 평정심을 잃고 움직임이 투박해진 틈을 아주 정확하게 찌르고 들어갔다.
콰앙!
와 가 동시에 걸린 가 제라키엘의 머리통을 내리찍었다.
펑! 퍼엉!
그러자 대폭발이 일어나 제라키엘을 걸레짝으로 만들었다.
강력한 폭발과 함께 스플래시 데미지를 퍼뜨리는 와 순간 폭딜을 자랑하는 가 동시에 퍼부어지니, 제아무리 제라키엘일지라도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더!’
지크는 즉시 스킬을 펼쳐서 제라키엘을 얼렸다.
우웅!
제라키엘의 날개가 빛을 뿜으며 를 반사시키려 했지만, 어림없는 일이었다.
‘한 번은 당해도 두 번은 안 당해.’
지크는 타이밍을 노렸다가 을 사용했다.
우웅!
뒤이어 적의 스킬 발동과 에너지 자원의 흐름을 방해하는 강력한 방해 전파가 뿜어져 나와 를 반사시키려던 제라키엘의 수를 무효화시켰다.
번쩍!
그렇게 제라키엘은 를 고스란히 뒤집어썼고,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죽음의 대천사 : 제라키엘]•생명력 : ■■■■■□□□□□
그런 제라키엘의 남은 생명력은 50퍼센트.
‘끝낸다.’
지크는 얼어붙은 제라키엘을 즉시 로 초대했다.
절망군주가 지배하는 절대적 영역인 에서 이 길고 길었던 진흙탕 싸움을 완전히 끝장내려는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