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083
1082
‘그것’은 여태 지크가 본 인간형 몬스터들 중 가장 거대했다.
키가 300미터가 넘는 거인이었으니, 성체 드래곤조차 맨손으로 때려잡을 수 있을 것 같을 정도였다.
“뭐, 뭔 놈의 거인이… 저렇게 크죠?”
지크가 놀라서 물었다.
“저건….”
미카엘이 대답했다.
“창세기에 아버지께서 가장 먼저 창조한 피조물입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프로토게노아.”
미카엘이 말했다.
“고대의 언어로 일하는 자들이란 뜻입니다.”
“저 거인이… 프로토게노아 종족이란 말씀이신가요?”
“그렇습니다.”
미카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은 아버지께서 세계를 창조하신 뒤 최초로 만들어 낸 피조물들입니다.”
“최초…?”
“저들은 우리 천족들이나 마족들보다 먼저 태어났습니다.”
“헉?”
“저들은 아버지를 도와 미완성이던 세계를 완성시켰다고 들었습니다.”
“아니.”
지크가 의문을 표시했다.
“그런 고등한 종족이 왜 이런 지하에 있죠? 이 뜨거운 곳에?”
“그건….”
미카엘이 대답했다.
“저들이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씻을 수 없는 죄…?”
“저들은 세계를 완성한 이후 한동안은 중간계에 머물며 지적 생명체들을 관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요?”
“어느 날. 저들에게 불손한 생각이 깃들었습니다. 그 불손한 생각이란… 아버지에 대한 반란이었습니다.”
“와우.”
지크는 미카엘의 말을 듣고 혀를 내둘렀다.
대상이 다른 누구도 아니고, 무려 창조주에게 반란을 일으키다니?
당시의 프로토게노아 종족들의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고밖엔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요?”
“결과는 뻔했습니다.”
미카엘이 어깨를 으쓱했다.
“저들의 반란은 실패했습니다.”
“그야 그렇겠죠.”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프로토게노아 종족을 멸하시고, 저희 천족들과 마족들을 창조하셨지요.”
“아….”
“저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저조차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아버지께서 저들을 멸종시켰다고 추측만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프로토게노아 종족을 여기에서 보게 될 줄은….”
“멸한 게 아니라 여기에 처박아 버린 건가?”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러지 않고서야 저 프로토게노아가 이곳에 있다는 게 설명이 되지 않으니까요.”
“벌을 준 거 같네요.”
지크가 창조주의 의도를 유추해 보았다.
“그냥 죽일 수도 있지만, 이런 지하에 영원히 처박혀 있어라? 그런 생각이 아니었을까요?”
“동감합니다.”
미카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죽음보다 무서운 형벌이겠지요. 억겁의 시간 동안 이런 곳에서 생존해 있어야 한다는 건….”
“아. 그럼.”
지크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벼룩들의 먹이라는 게….”
그때였다.
휙! 휘익!
저 멀리 들이 프로토게노아 종족을 향해 점프하기 시작했다.
벼룩답게, 키가 300미터가 넘는 프로토게노아 종족에게 들러붙는 게 가능했던 것이다.
쿵쾅쿵쾅!
프로토게노아 종족은 불벼룩들이 들러붙자 간지럽다는 듯 몸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우르르르르!
그러자 지축이 뒤흔들리며 조금 전처럼 지진이 난 것 같은 현상이 발생했다.
엄청난 키와 몸무게를 지닌 프로토게노아 종족의 몸부림이 지진을 일으킬 정도로 막강했기 때문이다.
“쉽지 않겠는데요?”
지크가 미카엘을 돌아보았다.
“하필 저런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곳에 날개가 있다니….”
“어쩌겠습니까.”
미카엘도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이곳에 프로토게노아 종족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지만, 밟혀 죽지 않으려거든 조용히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어우야. 밟히면 뼈도 못 추리죠. 쥐포가 될 게 뻔하니까. 일단 날개나 찾죠. 저런 괴물들이랑 싸워서 얻을 것도 없을 것 같네요. 어느 방향이죠?”
“저쪽입니다.”
미카엘이 프로토게노아 종족이 몸부림을 치고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가 보죠.”
지크는 그런 미카엘의 안내를 따라 날개를 찾아 이동했다.
***
그 후 지크 일행은 들과 싸우는 한편, 프로토게노아 종족을 피해 움직였다.
그러다 보니 이동 속도가 느렸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들이야 그리 상대하기 어렵지 않아서, 빨리 빨리 쓸어버리고 이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프로토게노아 종족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는 조심히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물론 프로토게노아 종족에게 있어 지크 일행은 개미 새끼보다 작아서 잘 보이지 않겠지만, 일단 걸렸다 하면 아주 골치 아픈 상황이 벌어질 게 뻔했던 것이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날개를 찾아 이동하던 중.
[알림: 화속성 에너지를 흡수하셨습니다!] [알림: 화속성 저항력이 올랐습니다!] [알림: 퀘스트의 진행률이 44.1%에 도달했습니다!]지크는 계속해서 을 섭취하다가 자신의 몸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걸 깨달았다.
우선 하나도 덥지가 않았다.
“헥헥! 헥헥헥!”
털짐승인 햄찌는 이미 스펀지가 되어 탈진하기 직전이었고.
“후우.”
“좀 덥습니다.”
샤키로와 미카엘도 땀범벅이었다.
하지만 지크는 달랐다.
줄줄 흐르던 땀?
이제는 멈춘 지 오래였다.
화속성 저항력이 증가하다 보니 더위를 느끼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어?’
지크는 마나홀 안에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화속성 에너지가 을 섭취해서 얻은 화속성 에너지와 섞이고 있는 걸 느꼈다.
마나홀에 붉은색 고리가 하나 더 생성된 느낌이라고나 할까?
‘되나?’
지크는 심심풀이로 손가락을 튕겨 보았다.
화르르르르르!
그러자 지크의 손끝에서 시뻘건 불길이 치솟아 오르며 활활 타올랐다.
‘오?’
의 냉기 에너지에 이어서 이제는 화속성 에너지까지 확실히 갖추게 된 것이다.
물론 아직은 가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좋네.’
지크는 확실히 자신이 강해지는 걸 느끼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피워 올렸다.
“다시 가나?”
그때, 샤키로가 지크에게 물었다.
충분한 휴식을 취했으니 이제 다시 이동할 것이냐고 묻는 거였다.
“가야죠.”
지크가 몸을 일으킬 때였다.
“뀨! 주인 놈아! 저길 봐라!”
햄찌가 저 멀리 지크 일행이 지나왔던 방향을 가리켰다.
“또 뭔데 그래?”
“뀨! 놈들이 나타났다!”
“놈들?”
지크는 햄찌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았다.
“이런 X발.”
그러고는 무심결에 욕을 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저 멀리서 엄청나게 많은 숫자의 타락 천사들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자식들이 왜 여길…?”
지크는 의아했지만, 일단 일행들과 함께 몸을 숨겼다.
지금 저 많은 숫자의 타락 천사들에게 발각 당했다간 일행이 전멸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휴우.”
다행스럽게도, 타락 천사들은 지크 일행이 숨어 있는 곳을 지나쳐 저 멀리 멀리 사라져 버렸다.
지크 일행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니.”
지크가 인상을 와락 구겼다.
“도대체 쟤들이 왜 여기까지 온 거죠?”
“제 날개를 찾아온 거 아니겠습니까?”
미카엘이 그럴싸한 추측을 내놓았다.
실제로, 타락 천사들이 미카엘을 뒤쫓아 날개를 찾는 여정을 방해한 적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냄새를 맡은 건가요?”
“그러지 않겠습니까? 그러지 않고서야 저들이 이곳까지 올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젠장.”
지크가 이를 부득 갈았다.
“우리도 빨리 쫓아가죠.”
“그래야겠습니다.”
“저 끈질긴….”
그때였다.
“잠깐.”
지크가 불현듯 뇌리를 스치는 생각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쟤네 왜 저렇게 대놓고 날죠?”
“예?”
“저거 봐요.”
지크가 타락 천사들이 날아가는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프로토게노아 종족도 날파리 같은 것들이 떼 지어 지나가는데, 딱히 관심 없는 것 같고요.”
지크의 말 그대로였다.
근처를 걷던 프로토게노아 종족은 타락 천사들이 까마득히 무리지어 비행하는 걸 보고도 아무런 감흥이 없는 듯 무관심해 보였다.
“저 프로토게노아 종족이 우릴 보고도 저런 반응을 보일까요?”
“확신할 순 없지만….”
미카엘이 대답했다.
“뭔가 적대적이지 않겠습니까?”
“그렇죠?”
지크가 눈을 가늘게 떴다.
“뭔가 냄새가 나요.”
“어떤…?”
“만약 천족들과 프로토게노아 종족이 연합을 했다면?”
그 순간.
“……!”
미카엘의 얼굴이 서릿발처럼 얼어붙었다.
정말 그런 것이라면, 아주 큰일이었다.
프로토게노아 종족이 천족들의 도움을 받아 중간계를 침공한다면, 어떻게 막을 방법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일단 빨리 쫓아가 봅시다. 너무 수상해요. 그리고 놈들이 뭔가 음모를 꾸미는 거라면….”
지크가 눈을 빛냈다.
“고춧가루를 뿌려 줘야죠. 아주 팍팍.”
지크는 천족들이 음모를 꾸미도록 놔둘 생각이 없었다.
***
그 후 지크 일행은 최대한 빠른 속도로 타락 천사들을 뒤쫓았다.
그러는 사이.
“최초로 탄생하신 분들을 뵙습니다.”
최상급 타락 천사 가르엘은 프로토게노아 종족의 지도자 세 명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프로토게노아 종족의 지도자들은 키가 400미터에 이르는 초거대 거인들이었으며, 과거 창세기 시절 창조주의 명을 받들어 세계를 만들어 낸 장본인이기도 했다.
즉, 거의 신에 근접한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은 반란의 대가를 치르느라 창세기 시절 가지고 있던 권능들을 모조리 잃어버린, 그저 이 깊고 깊은 지하에 영원히 갇혀 살아야 하는 대역죄인들일 뿐이었지만 말이다.
“천족이라. 아버지께서 만들어 낸 두 번째 피조물들이란 건가?”
프로토게노아 종족 세 명의 지도자들 가운데서도 가장 우두머리격인 아이테르가 가르엘에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아이테르시여.”
“우릴 찾아온 이유가 무엇인가. 아버지께서 보내신 겐가?”
아이테르가 약간의 기대감을 품은 채 가르엘에게 물었다.
창세기 이후 억겁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으니, 이제는 창조주가 자신들을 용서해 주려는 걸지도 모른단 생각을 한 것이다.
“아버지께서 보내신 게 아닙니다.”
“뭐라? 그럼 우릴 찾아온 이유가 뭔가?”
“사실은….”
가르엘은 아이테르에게 그간 있었던 일, 그러니까 갑자기 창조주가 자취를 감추었단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리고 현재 천족들이 중간계 침공을 추진 중이라는 이야기도 해 주었다.
“이런 빌어먹을!!!”
전후사정을 전해 들은 아이테르의 입에서 분노에 찬 외침에 터져 나왔다.
그 외침이 얼마나 크고 쩌렁쩌렁했느냐 하면, 이곳 지하 세계 전체가 진동했을 지경이었다.
키가 400미터짜리 초대형 거인이 소리를 내지르니, 평범한 사람 같았으면 고막이 파열되고 심장마비로 즉사했을 게 분명했다.
오죽했으면 최상급 타락 천사인 가르엘마저 인상을 와락 일그러뜨린 채 고통스러워했을 정도였다.
물론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우리를 이런 지하에 가둬두고 무책임하게…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개 같은 창조주 같으니….”
“아무튼, 상황은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릴 찾아온 이유가 뭔가?”
아이테르가 가르엘에게 다시 물었다.
“루시퍼 대천사장께서는 여러분들을 이곳에서 꺼내 드리고 싶어 하십니다.”
“뭣이?!”
아이테르의 눈이 크게 떠졌다.
프로토게노아 종족은 지난 수십만 년 동안 이곳 지하 세계에서 탈출할 수 있단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왜?
프로토게노아 종족에게는 비행 능력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곳에서 꺼내 주고 싶단 이야기를 들으니, 어쩌면 밖으로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단 희망이 생겼던 것이다.
“그, 그게 정말인가? 우릴 이곳에서 꺼내 줄 수 있어?”
“물론입니다.”
가르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천족들이 여러분들을 매달고 지상으로 올라가겠습니다.”
“오오!”
아이테르는 가르엘의 말을 듣고 어린아이처럼 동요했다.
만약 이곳에서 탈출할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고 싶은 심정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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