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087
1086
게임 속 세상.
그러니까, 중간계에서 이란 미들네임은 황족을 뜻했다.
그리고 가 현 마우레키온 제국의 황가(皇家)를 가리킨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구걸지존의 본명이 라면?
현 마우레키온 제국 황가의 일원이란 얘기밖에 되지 않았다.
슈트카르트 황제와 혈연인 것이다.
“마, 말도 안 돼!”
지크가 소스라치게 놀라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그만큼 구걸지존의 정체가 충격적이라서, 이러한 반응밖에는 보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구걸지존 어르신이… 사실 마우레키온 제국의 황족이셨다고요?!”
“그렇다.”
샤키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요.”
“사실이다.”
“그럼 슈트카르트 황제와 혈연관계라는 겁니까?”
“피가 섞이긴 했겠지.”
샤키로가 지크의 물음에 대답했다.
“슈트카르트 황제는 선황의 서자로, 본래 황위 계승 서열과는 무관했던 자다.”
“그럼 구걸지존 어르신은요?”
“선황의 이복형제다.”
“……!”
“선황이 황위에 오를 당시 피의 숙청을 피해 도망쳤고, 평생을 숨어 살아야 했던 거다. 그리고….”
샤키로가 덧붙였다.
“선황이 폐위된 후에는… 새로운 황제, 그러니까 지금의 슈트카르트 황제의 눈을 피해 정체를 숨기고 살아야만 했지.”
“왜죠?”
지크가 눈살을 찌푸렸다.
“선황이 죽었으면….”
“황위 계승 서열은 슈트카르트 황제보다 구걸지존이 더 높다.”
“아!”
“슈트카르트 황제에게는, 선황의 이복형제들은 모두 정적이다.”
“하지만 슈트카르트 황제가 굳이 구걸지존 어르신까지 제거할 필요가 있을까요? 세력도 없고, 딱히 지지하는….”
“지크.”
샤키로가 고개를 저었다.
“잘 알지 않나? 권력은 비정한 것이다. 구걸지존이 조용히 살려고 해도, 슈트카르트 황제에게 반하는 무리들이 그를 부추기고 세력을 이루었을 것이다.”
“그건… 그렇죠.”
“잊었나? 불과 얼마 전에 벌어졌던 마우레키온 제국의 내전 또한 살아남은 황자와 슈트카르트 황제 사이에 벌어진 황위쟁탈전이 아니었나?”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구걸지존은 한평생 정체를 숨긴 채 그런 더러운 몰골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 제국의 눈과 귀는 곳곳에 있으니, 함부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낼 수가 없었다.”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그랬기에 그 고귀한 혈통과 실력을 지니고도 평생을 더러운 몰골의 부랑자로 살아야 했던 것이다.”
“어르신….”
지크는 허무하게 떠나 버린 구걸지존을 떠올리며 씁쓸해했다.
그런 슬픈 인생이라니?
어쩐지 위장이 필요치 않은 프로아 제국 내에서도 계속해서 더러운 몰골을 유지하더라니, 그런 속사정이 있을 줄이야….
“받아라.”
샤키로가 지크에게 두루마리 양피지 하나를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구걸지존의 유언장이다.”
“이걸 왜 저에게….”
“구걸지존은 프로아 제국의 영웅으로써 죽었다. 그러니 황제인 네가 그 유언장을 읽어 보는 게 좋지 않겠나.”
샤키로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구걸지존에게는 일가친척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이 없었다.
그나마 있는 일가친척은 무시무시한 정적들로서, 유언장을 맡길 만한 상대들이 아니었다.
만약 슈트카르트 황제가 구걸지존의 정체를 안다면, 지크조차 위험해질 수 있었다.
지크와 구걸지존의 친분이 슈트카르트 황제에게는 역모의 불씨로 비추어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제가 받겠습니다.”
지크는 우선 샤키로로부터 구걸지존의 유언장을 건네받았다.
[알림: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그런데 구걸지존의 유언장은 결코 평범한 유언장 같은 게 아닌 모양이었다.
[구걸지존의 유언장]구걸지존이 살아생전 작성해 샤키로에게 맡겨 두었던 유언장.
뭔가 엄청난 비밀을 담고 있는 것 같다.
•타입 : 문서(유언장)
•등급 : 레전더리
•내구도 : 1/1
•주의 사항 : 이 유언장이 외부로 흘러나가서는 안 됩니다.
‘이게 아이템이라고?’
지크는 뭔가 의아했지만, 일단 유언장을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읽어보기로 했다.
***
지크는 샤키로로부터 구걸지존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은 뒤 미카엘과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크 님.”
미카엘이 지크에게 말했다.
“말씀하시죠.”
“전해 드릴 소식이 있습니다.”
“뭐죠?”
“사실은….”
미카엘이 지크에게 대마왕 바알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바알이 지크를 후계자로 점찍어 둔 뒤 천계로 난입해서 대천사장 루시퍼와 일대일 대결을 펼칠 것이란 이야기 말이다.
“헉?!”
지크는 그 이야기를 듣고 역시나 소스라치게 놀랐다.
대마왕 바알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바알 어르신이 정말 그럴 작정이시라고요?!”
“그렇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건 너무 무모한 행동 아닙니까?”
“바알 씨로서도 달리 방법을 떠올리지 못하신 것이겠지요. 마족으로서는 천족들의 강림을 막을 방법이 마땅치 않고, 가만히 있다가는 말라 죽을 테니 부득이한 결정이었겠지요. 사심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대마왕이 천계로 쳐들어가 대천사장을 쳐 죽인다?
그건 정말이지 위대한 업적이었다.
천계, 중간계, 마계를 통틀어 영원불멸의 전설로 남을 만한 일인 것이다.
실패한다고 해도 바알 개인이 손해 볼 건 없었다.
왜?
혈혈단신 천계로 쳐들어간 대마왕이라는 타이틀 하나만으로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마왕으로 기억될 테니까.
게다가 루시퍼도 이긴다 한들 무사하리란 보장이 없었다.
대마왕 바알과의 일대일 대결이라면, 루시퍼로서도 치명상을 입을 각오쯤은 해야만 했던 것이다.
“기왕 그런 결정을 내리셨다면….”
지크가 미카엘의 말을 듣고 입을 열었다.
“이기셨으면 좋겠네요. 그럼 이 모든 사태가 한 방에 깔끔히 정리될 테니까요.”
“물론 그러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요. 하지만 루시퍼를 만만히 봐선 안 됩니다. 형의 입장에서 봐도 루시퍼는 정말이지 무서운 동생입니다. 루시퍼는 창세기 이후부터 쭉 천계의 2인자 자리를 지켜왔고, 이제는 대천사장이 된 상태입니다. 솔직히, 저는 바알 씨의 승률을 그리 높게 보지 않습니다. 7대3. 바알 씨의 승률은 30퍼센트 정도입니다.”
전직 대천사장 미카엘의 의견이었으니, 꽤 신빙성 있는 전망이었다.
“무운을 비는 수밖에요.”
지크는 바알이 불리하단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승패를 비관적으로 바라보지는 않았다.
사실 고만고만한 강자들 간의 싸움은 누가 30퍼센트고 누가 70퍼센트인 게 그리 중요하지는 않았다.
상대방을 확실하게 보내 버릴 수 있는 공격력을 보유하고 있기에, 어떠한 결과가 벌어지더라도 놀랄 게 없었다.
“아무튼, 바알 씨는 지크 님이 후계자가 되어 마계를 이끌어 주시기를 바라십니다.”
“글쎄요.”
지크가 어깨를 으쓱했다.
“어차피 메타트론 그 자식이 있으니까, 그건 걱정할 거 없을 것 같네요.”
“예, 뭐. 중요한 건 중간계와 마계의 연합이니, 지크 님과 메타트론 님이 잘해 주시기만 한다면 문제는 없겠지요.”
“일단 알겠습니다.”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알의 뒤를 이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기는 했지만, 만일의 사태가 벌어진다면 그때는 부득이하게 후계자 노릇을 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
같은 시각.
채형석은 메르세데스 공방에서 주문 제작을 맡겨 놓은 방어구 세트를 찾았다.
채형석의 템 세팅이 메르세데스 공방의 스타일과 제일 궁합이 잘 맞았기 때문이다.
“여기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채형석은 아이템 값을 치르고 공방을 나섰다.
그러고는 전장으로 합류하기 위해 워프 게이트로 발걸음을 돌렸다.
최근 채형석은 매우 바빴다.
광역 버프 능력을 가진 채형석은, 연합군의 핵심 전력으로써 크고 작은 전투에 참여하느라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국이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지크의 부름에 출장(?)까지 가야 했으니, 좀처럼 쉴 틈이란 게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요 며칠 동안은 전투가 벌어지지 않아서, 지금처럼 짬을 내어 쇼핑을 하는 게 가능했다.
‘일단 복귀해서 별 특이 사항 없으면 로그아웃하고 운동 가야지. 오늘은 대흉근 운동 하는 날이니까.’
최근 채형석은 운동에 깊이 빠져 있었다.
지크에게 트레이닝을 받다 보니 어느새 채형석도 헬창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건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었다.
과거에는 사치와 향락이 사생활의 전부였다면, 요즘은 운동이었으니까.
‘프로틴도 챙겨 먹어야….’
바로 그때였다.
“채형석.”
후드가 달린 로브를 푹 눌러쓴 정체불명의 괴한이 채형석의 뒤로 슥 접근해 왔다.
“뭐야.”
채형석은 번개처럼 몸을 돌렸지만, 괴한은 더 빨랐다.
오히려 채형석의 뒤로 한 번 더 돌아가서 등 뒤로 이동하는, 엄청나게 빠른 이동 속도를 자랑했던 것이다.
‘이 새끼 봐라?’
채형석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런 엄청난 이동 속도라면 보통내기가 아닐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서로 쓸데없이 힘 빼지 말지, 채형석.”
“너 뭐 하는 새낀데.”
채형석이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물었다.
“글쎄? 니 구세주?”
“구세주…?”
“내가 솔깃한 제안 하나를 할게.”
“그게 뭔데?”
“우리 조직이 프로아 황궁에 난입하는 걸 도와.”
괴한이 채형석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럼 널 구해 주지.”
“날 어떻게 구해 준다는 거지?”
“너, 한태성의 노예잖아.”
“누가 누구 노예라는 거지?”
“그럼 아닌가?”
괴한이 살짝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되물었다.
“한태성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신세인 걸로 아는데? 근데 노예가 아니다? 적성에 맞는 모양이지? 남 따까리 노릇이나 하는 게?”
“뭐 이 새끼야?”
채형석이 화가 나 발끈했다.
“사실이잖아.”
괴한이 채형석을 더 자극했다.
“한때는 얼마든지 짓밟을 수 있었던 버러지한테 번번이 엿을 먹더니, 이제는 노예가 되어서 시키는 대로 하는 주제에.”
“이 X발놈이….”
“화가 나긴 하냐? 그럼 상황을 벗어날 생각을 하는 게 정상 아냐?”
“뭐?”
“말했을 텐데. 그 상황을 벗어나게 해 주겠다고. 우릴 프로아 황궁에 잠입시켜 주면, 한태성과 맺은 노예의 계약을 무효화시켜 줄게.”
“그, 그건….”
채형석은 순간 괴한의 속삭임에 흔들렸다.
사실 채형석이라고 지크의 노예이고 싶겠는가?
다 일이 꼬이고 꼬여서 이런 신세가 된 건데.
“한태성을 다시 짓밟을 힘도 줄게.”
“힘?”
“대천사 가브리엘의 그릇이 되도록 도와주겠어. 그럼 한태성이 마왕으로 변신해도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거다.”
엄청난 제안이었다.
다른 무엇도 아닌 대천사의 힘이라니?
누구나가 혹할 만한, 그야말로 악마의 유혹이었다.
“한태성에게 복수라….”
채형석이 그 말을 곱씹었다.
확실히, 괴한의 제안은 매우 매력적이었다.
대천사의 정도의 힘을 갖는다는 건 게이머들 중에서도 지크 외에는 누구도 이룩하지 못한 일이었기에, 사실 호박이 넝쿨째로 굴러들어온 격이었던 것이다.
만약 채형석이 그 힘을 얻어서 지크를 몰락시키는 데 성공한다면, 완벽히 재기하는 게 가능했다.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게 결코 불가능이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대천사 가브리엘이라면, 현재 천계 서열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존재!
그 그릇이 된다는 건 지크를 이길 가장 확실한 조커 카드를 손에 쥐는 셈이기도 했다.
“너한테는 손해 볼 게 없을 제안일 거다.”
괴한이 다시 속삭였다.
“넌 한태성에게 복수할 힘을 얻고, 우린 프로아 황궁으로 쳐들어가는 거지.”
“그건 어렵지 않은데… 너 도대체 정체가 뭐냐?”
채형석이 물었다.
“우린….”
괴한이 대답했다.
“비밀결사 일루미나티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