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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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캬.”
지크는 프로아 제국의 정보력에 감탄했다.
하기야, 정보력이 형편없으면 그게 더 이상했다.
프로아 제국은 자체적인 정보국뿐 아니라 도둑 길드, 그리고 부랑자 길드와 연계해서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그뿐인가?
이제는 신흥 종교 중 가장 큰 세력을 구가하고 있는 의 신도들, 그리고 성기사들이 이런저런 정보들을 보내오기도 했다.
즉,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루트가 엄청나게 다양했던 것이다.
“역시 본국의 정보력이 보통이 아니에요?”
“그럼요.”
나인테일이 그걸 말이라고 하냐는 듯 대답했다.
“낮말은 본국의 정보원이 듣고, 밤말도 본국의 정보원이 듣죠. 단언컨대, 본국의 정보력은 마우레키온 제국과도 견줄 만해요.”
“오오오!”
“아무튼, 올라온 보고를 대략적으로 요약해 드리자면….”
나인테일이 서류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일루미나티에서 채형석 장군에게 접근했어요.”
“뭐라고?”
“신성동맹군이 본국의 수도로 쳐들어와서 베르단디 황녀 마마를 납치하는 걸 도와달라는 요청이었어요.”
“아? 그래서? 형석이가 뭐래? 제안을 받아들였어?”
지크가 궁금해 물었다.
“받았어요.”
나인테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채형석 장군은 착수금으로 상당한 액수의 수표를 받았어요. 그리고 일이 끝나면 대천사 가브리엘의 그릇이 될 기회를 약속받기도 했고요.”
“어이구.”
지크가 혀를 내둘렀다.
“그건 인정이지.”
지크가 생각하기에도 일루미나티가 채형석에게 한 제안이 너무나도 매력적이어서, 도저히 거부하기가 힘들 것 같았던 것이다.
“흠.”
지크가 흥미롭다는 듯 중얼거렸다.
“우리 형석이가 날 배신할 때가 되긴 했지.”
“기분 안 나쁘세요?”
나인테일이 지크에게 물었다.
“기껏 용서해 주시고, 거두어 주셨던 채형석 장군이 폐하를 배신하는 게?”
“뭐, 기분 나쁠 순 있지.”
지크가 어깨를 으쓱했다.
“근데 저 정도 제안이면… 솔직히 부모님을 팔아먹을 사람도 줄을 섰을걸?”
“하긴.”
나인테일이 지크의 의견에 동의했다.
“확실히 거절하기 힘든 제안이긴 하죠. 성공하면 인생 대역전극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요.”
“맞아.”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정도 제안이면 형석이가 넘어갔다고 해도 탓할 수 없지. 좀 괘씸하긴 해도?”
“그래서 이해하시는 건가요?”
“딱히 이해랄 것까진 없고.”
지크가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오래간만이라서.”
“네?”
“형석이를 합법적으로 괴롭힐 구실이 생긴 거잖아.”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형석이가 날 배신하면, 난 형석이를 응징할 수 있잖아.”
“그렇죠?”
“안 그래도 몇 달 동안 형석이를 못 괴롭혀서 욕구 불만이었거든.”
“맙소사.”
나인테일이 못 말린다는 듯 안면을 감싸고 괴로워했다.
‘그거 완전 싸이코잖아요!!!’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순 없었지만, 나인테일이 바라보는 지크는 그랬다.
채형석에게 배신감을 느껴 분노하는 게 아니라, 합법적으로 괴롭힐 구실이 생겼다고 즐거워할 줄이야….
“…주인 놈이 어련하겠냐.”
햄찌는 이젠 지쳤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자던 낮잠을 계속 잤다.
지크가 채형석을 괴롭히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라서, 이제는 별 신경도 쓰이질 않았던 것이다.
지크의 변태적인 취미(?)에 동참하고 싶은 생각이 없기도 했고.
***
그날 밤.
“룰루랄라♬”
지크는 채형석을 괴롭힐 생각에 즐거워했다.
이번 일은 정말이지 즐거웠다.
신성동맹과 일루미나티, 그리고 채형석의 뒤통수를 동시에 후려갈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채형석을 합법적으로 괴롭힌다?
꿩 먹고 알 먹고 도랑치고 가재를 잡는단 말이 딱 어울렸다.
“하앍…!!!”
오래간만에 채형석을 괴롭힌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찌릿찌릿 흥분이 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런 지크의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자냐?”
갑자기 채형석이 지크의 막사로 불쑥 찾아왔기 때문이다.
“히익?!”
지크는 안 그래도 행복회로를 돌리던 중에 채형석이 찾아오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와, 왔냐! 어서 와라! 하하! 하하하!”
“뭐야.”
채형석은 지크가 뭔가 못된 일을 꾸미던 사람처럼 어색한 반응을 보이자 뭔가 미심쩍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너 뭐 숨기는 거 있냐?”
“내가?!”
지크가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되물었다.
“에이~ 그럴 리가~.”
“숨기는 거 있는 거 같은데.”
“아냐~ 없어~”
“그래?”
“내가 너한테 숨길 게 뭐가 있냐? 뭐 얼마나 아쉬운 게 있다고.”
“그건 그렇지.”
채형석은 지크의 말에 수긍하고는, 입을 열었다.
“야, 한태성.”
“으응?”
“나 스카웃 제의를 받았다.”
“그, 그게 뭔 소리야?”
“이거.”
채형석이 콘솔창을 띄워 지크에게 영상을 보여주었다.
– 그 자식 마누라는 내가 가지면 안 되냐?
– 마누라? 황후 브륜힐트를 말하는 건가?”
– 그래.
– 마누라는 왜?
– 왜겠어? 큭! 큭큭큭!
영상은 채형석과 일루미나티의 괴한이 나누었던 대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뭐, 뭐야?!”
지크가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뭐긴 뭐야.”
채형석이 어깨를 으쓱였다.
“일루미나티가 나한테 접근해 와서, 적당히 맞장구쳐 준 거지.”
“맞장구…?”
“솔직히 널 배신할 수도 있겠지. 근데 하루 이틀이냐? 너한테 역으로 당하는 게? 나도 이제 지겹다. 너랑 또 싸우는 건… 어휴!”
채형석이 상상하기도 싫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며 도리질을 쳤다.
“나 못 하겠다. 내가 널 배신하는 데 성공해도, 니가 평생 쫓아다니면서 나 괴롭힐 텐데. X발. 그거 또 못하겠어. X나 괴로워, 그거.”
채형석은 지난 2년 동안 지크에게 당한 게 진절머리가 났는지, 아예 전의를 상실해 버린 모양이었다.
“그리고 나도 사람새끼야.”
“으응?”
“니가 날 용서해 주고 재기하는 걸 도와주기까지 했는데, 여기서 배신하면 짐승만도 못한 거겠지. 아무튼 그래서. 너한테 이실직고하는 거다. 그러니까….”
“쳇.”
지크가 입을 삐죽였다.
“아깝다.”
“뭐가 아까운데?”
“너 합법적으로 괴롭힐 구실 생겨서 좋아하고 있었는데.”
“그게 무슨 말이냐?”
채형석이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아니.”
지크가 대답했다.
“난 니가 배신할지도 모른단 보고를 받고 좋아하고 있었거든.”
“뭐?!”
“감시한 건 아니고. 그냥 그런 보고가 올라왔어. 그래서 좋아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자발적으로 와서 솔직하게 말해 주면 난 어떡하라고?”
“어떡하긴 뭘 어떡해?”
“형석아.”
지크가 채형석의 손을 붙들고 간절하게 말했다.
“너 그냥….”
“……?”
“배신해 주면 안 되냐?”
“배신을… 해 달라고?”
“그래야 내가 널 합법적으로 괴롭혀서 욕구 불만을 해결할 수 있….”
“야 이 미친 새끼야!”
채형석이 버럭 소리치며 지크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다 하다 배신을 해달란 소리까지 듣게 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
그로부터 며칠 후.
천족들의 중간계 강림을 목표로 삼는 비밀 결사인 일루미나티는 프로아 제국의 수도 프로이센 근처로 워프했다.
그런 일루미나티의 병력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 전력은 엄청났다.
최상급 타락 천사 셋.
상급 타락 천사 50명.
그리고 중급 타락 천사가 1,000명.
이만하면 어지간한 강대국의 수도를 쑥대밭으로 만들고도 남을 만한 전력이었던 것이다.
“네가 채형석인가.”
최상급 타락 천사인 가르뮈우스가 기다리고 있던 채형석에게 물었다.
“그렇다.”
채형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채형석이고, 너희들을 안내할 사람이다.”
“좋다. 우릴 안내하라.”
가르뮈우스는 타락 천사들을 이끌고 형석이우스를 따라 프로아 황궁으로 향했다.
“이쪽으로.”
채형석은 그런 타락 천사들을 작은 터널 같은 곳으로 안내했다.
“여긴 어디지?”
가르뮈우스가 채형석에게 물었다.
“과거에 쓰던 하수도라는데, 지금은 쓰지 않아. 몰래 잠입하기에 안성맞춤이더라고.”
“그렇군.”
가르뮈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일단 가자.”
그렇게 가르뮈우스와 천족들은 계속 채형석을 따라 프로아 황궁으로 향했다.
그러던 중.
“후우.”
채형석이 돌연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와 결합하더니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 뭐하는 거지?”
가르뮈우스가 그런 채형석을 향해 인상을 찌푸렸다.
잘 가다가 갑자기 멈춘 채형석의 행동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빨리 안내해라.”
하지만 채형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 뭐 하는 거냐! 빨리 우릴….”
바로 그때였다.
화르르르!
좁은 하수도 안에 시뻘건 불길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크으으윽!”
“아아악!”
상급 타락 천사들과 중급 타락 천사들은 그 불길의 뜨거움을 이기지 못하고 괴로워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번쩍!
새하얀 섬광이 번뜩이며 상급 타락 천사들과 중급 타락 천사들을 꽁꽁 얼렸다.
“……!”
“……!”
“……!”
가르뮈우스를 포함한 세 명의 최상급 타락 천사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상황은 이미 손쓸 수 없이 최악으로 치달은 상태였다.
쩍, 쩌억!
갑자기 하수도 바닥이 균열을 일으키는가 싶더니, 시뻘건 용암이 콸콸 솟구쳐 올라 얼어붙어 있던 상급 타락 천사들과 중급 타락 천사들을 집어삼켰던 것이다.
“크아아아악!”
“아악! 사, 살려 줘! 형제들이여! 으아아아악!”
상급 타락 천사들과 중급 타락 천사들은 용암의 열기에 의해 한 줌 재가 되어 흩어져 버렸다.
의 광역기인 이 좁은 하수도 안에서 전개되니, 그 위력은 가공할 만한 수준이었다.
“이게 무슨 짓거리냐!”
가르뮈우스가 채형석을 향해 소리쳤다.
“응. 통수.”
채형석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토, 통수?”
“니들 뒤통수 맞은 거라고, 이 병신들아.”
“이런 개 같은 새끼가!”
가르뮈우스가 채형석을 향해 버럭 소리치며 검을 휘둘렀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팅!
와 결합해 생체토템이 된 채형석은 생명체가 아닌 중립 오브젝트 판정을 받았기에, 그 어떤 공격에도 데미지를 입지 않는 무적 상태였다.
“이, 이 무슨!”
가르뮈우스는 채형석에게 공격이 먹히지 않자 무척이나 당황했다.
그러나 당황할 시간조차 없었다.
– 죽어라! 형제여!
– 타올라라, 나의 적이여.
용암에 의해 녹아내렸던 상급 타락 천사들과 중급 타락 천사들이 화속성 언데드 몬스터로 변해서 최상급 타락 천사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
“이… 이이…!!!”
가르뮈우스는 채형석에게 속아 함정에 빠진 걸 깨닫고 분노에 치를 떨었다.
저벅저벅!
그때, 지크가 어둠 속을 빠져나와 슥 하고 모습을 드러내었다.
“노옴! 감히 우리를 속이다니!”
가르뮈우스가 지크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이야. 최상급은 최상급이네. 이 지옥에서 멀쩡한 걸 보면.”
지크가 가르뮈우스를 포함한 3명의 최상급 타락 천사들을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와 와 콤보에도 타 죽지 않고 버티는 걸 보면, 확실히 어나더 레벨이긴 했다.
“죽여 버리겠다.”
가르뮈우스와 최상급 타락 천사 둘은 보기 좋게 뒤통수를 맞은 상황임에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왜?
자신 있었으니까.
그랜드 마스터 이상의 전투력을 지닌 최상급 타락 천사 셋이라면, 지크 하나쯤 찜 쪄 먹는 건 일도 아니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런 최상급 타락 천사들의 상대는 지크가 아니었다.
“니들 상대는 내가 아냐.”
지크가 슬쩍 뒷걸음질을 치면서 히죽 웃었다.
“니들이 무서워서 도망가는 거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고. 니들 죽이는 거, 얼마든지 할 수 있어.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뿐이야. 내가 요즘 몸이 좀 안 좋거든.”
스킬을 쓴다면 최상급 타락 천사 셋쯤은 한 끼 식사거리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마나홀에 금이 간 이상 이런 잔챙이(?)들을 상대로 위험 부담을 감수할 순 없었다.
그래서 지크는 자연스럽게 전투에서 빠졌다.
그리고….
“오래간만이다, 가르뮈우스.”
미카엘이 지크를 대신해 슥 나섰다.
“미, 미카엘!”
“동족의 배신자!”
“어느새 날개를 9장이나…!”
최상급 타락 천사들은 미카엘의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미카엘이 어느새 날개를 9장이나 되찾은 걸 보고 그만 두려움에 질려 버렸던 것이다.
나인테일이 어깨를 으쓱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