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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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렐을 군의관에게 맡겨놓은 지크는 곧바로 군단 사령부로 향해 오버로크 중장을 만났다.
“어서 오게, 지크 중령! 그래, 임무는….”
“워프 게이트 좀 준비해 주십시오.”
“음? 워프 게이트?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인가?”
“카렐 소령이 위독합니다.”
“뭐?! 카렐 소령이 위독하다고? 탈출 작전이 쉽지 않았던….”
“그게 아닙니다.”
“으음?”
“내부에 쥐새끼가 있었습니다.”
지크가 표철주가 저질렀던 짓거리를 오버로크 중장에게 말해주었다.
“뭣이?!”
오버로크 중장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감히 아군을 습격해 살해하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자네까지? 허! 아무리 모험가라지만 명색이 군복을 입은 군인이 그 무슨 비열한!!”
“한둘이겠습니까.”
지크가 냉소를 지었다.
“하루 이틀 일도 아니지 말입니다.”
“내 당장 추살령을 내리도록 하겠네. 정말이지 참을 수가 없군! 이건 단순히 군법을 어긴 게 아니야! 우리 왕국에 대한 모독일세! 어딜 감히 그런 비열한 범죄를!! 지크 중령, 걱정 말게. 우리 왕국의 징벌 기사단이….”
징벌 기사단이란 범죄를 저지른 모험가들을 응징하기 위해 뉘르부르크 대륙 각국에서 운용하고 있는 전담반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처음부터 그걸 생각 못 했겠습니까? 감수하고 저지른 일일 텐데요. 아마 크게 해 먹고 대륙 반대편으로 튀려고 했을 겁니다.”
“크흠….”
“내버려 두시면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알겠네. 그래도 추살령을 내려놓긴 할 테니 너무 신경 쓰지 말게. 허. 그나저나 카렐 소령이 그렇게 위독한가?”
“숨만 붙여 놓는 게 전부랍니다.”
“그렇담 정말이지 큰일이 아닌가? 카렐 소령은 내 눈여겨보고 있던 장교인데! 내 당장 왕국의 고위급 의사에게….”
“아닙니다.”
지크가 고개를 저었다.
“카렐을 살리는 건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쿤룬산까지 가는 워프 게이트랑 비행선만 좀 준비해 주시면 됩니다.”
“그, 그게 무슨 말인가? 쿤룬산이라니? 도대체 왜 거기에 가려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거긴 너무 멀어! 도착하기도 전에 카렐 소령이 죽고 말 걸세!”
“가야 합니다. 그래야 카렐이 삽니다.”
오버로크 중장의 염려 섞인 만류에도 불구하고, 지크는 단호하기만 했다.
‘사부님이라면 카렐을 살릴 수 있을 거다.’
지크가 생각하기에 군의관조차 가망이 없다는 카렐을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사부만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흐음. 자네가 그렇게 말하는 데에는 필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터, 내 자네가 쿤룬산까지 빠르고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주겠네. 카렐 소령은 본국에도 매우 소중한 인재이니 말일세.”
“감사합니다.”
“허허. 자네는 역시 놀라워.”
“예?”
“보통 모험가들은 우리가 죽어도 굳이 살리려는 노력 같은 걸 하지 않더란 말이지. 내가 느끼기에, 많은 모험가들이 마치 우리를 사람이 아닌 존재인 것처럼 여기는 것 같단 생각이 들거든.”
오버로크 중장의 말은 많은 플레이어들이 NPC들을 단순히 AI로만 대하는 태도를 꼬집고 있었다.
“저 역시 마찬가지일지도 모르지만, 카렐은 아닙니다. 녀석은 제 제자나 마찬가지입니다. 녀석의 아버님께도 과분한 신세를 진 적이 있고요. 제가 꼭 챙겨야 하는 몇 안 되는 사람입니다.”
“허허. 이런 정 많은 사람 같으니. 알겠네. 내 꼭 카렐 소령이 기사회생하기를 기도하지.”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 크립티드는 뭔가?”
오버로크 중장이 화제를 돌렸다.
“처음 보는 개체인데….”
“군락어미라고 합니다.”
“군락어미?”
“이 녀석은….”
지크가 오버로크 중장에게 군락어미의 존재를 말해주며 ‘메모라이즈 모노클’을 넘겨주었다.
“역시 그랬어! 크립티드들에게도 지휘관이 있었던 게야! 어쩐지 최근 놈들의 전략, 전술적 움직임이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정도로 발전했다 싶었지! 그런데 어떻게 놈을 생포해올 생각까지 했는가? 임무는 단순 정보 수집이었을 텐데?”
“이 녀석을 잘만 이용하면 크립티드들의 지휘 체계에 혼선을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 그런 방법이…!!”
“해봐야 아는 것이겠지만, 일단 가둬 놓고 연구를 해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생체 실험이라든지, 혹은 생체 실험이라든지, 아니면 생체 실험이라든지….”
“오오! 아주 좋은 생각일세! 자네의 생각대로만 된다면 어쩌면 이 기나긴 소모전을 끝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먼!”
“부디 그러기를 바랍니다.”
“고생했네, 아주 고생했어! 역시 자네야! 껄껄껄껄!!”
오버로크 중장은 오래간만에 제대로 웃어 보였다.
한 나라의 장성으로서 어쩌면 이 기나긴 전쟁을 끝낼 실마리를 찾았기에 몇 년 만에 진정한 의미에서의 웃음을 터뜨릴 수 있었던 것이다.
“자네를 믿은 보람이 있구먼. 이번 대규모 교란 작전에서 희생된 장병들의 목숨이 의미 없는 것이 아니게 되었어.”
“부디 그러길 빕니다.”
그러자 지크의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알림 : 퀘스트를 클리어하셨습니다!]뒤이어 오버로크 중장이 지크에게 10만 골드짜리 수표(특수한 금속으로 만든 지폐)와 아이템을 넘겨주었다.
“자, 받게. 보상일세.”
“감사합니다.”
“쿤룬산까지 가는 워프 게이트는 내 금방 준비해줄 터이니, 카렐 소령의 응급조치가 끝날 때까지 좀 기다려 주게나.”
“예, 그래야겠지요.”
“허허. 부디 카렐 소령이 살아났으면 좋겠구먼. 이대로 죽기엔 너무 아까운 인재야. 부디 살아나서 젊음을 활짝 꽃피울 수 있기를 바라네.”
“카렐이 그렇게 마음에 드십니까?”
솔직히, 지크는 오버로크 중장이 왜 카렐을 아끼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크립티드 대군락에 잠입해 있느라 카렐이 어떠한 활약을 선보였는지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일세. 최근에 본 젊은 장교들 가운데서는 단연코 발군이더군. 아직 젊은 걸 생각해 보면,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네.”
“하하. 걱정 마십시오. 제가 녀석을 꼭 살려 놓겠습니다. 저 역시 녀석이 죽는 걸 바라지 않으니까요.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살펴 가게나. 내 준비되면 자네를 부르겠네.”
지크는 은근히 뿌듯함을 느끼며, 오버로크 중장의 막사를 나섰다.
***
하지만 카렐의 숨을 붙여 놓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어렵겠습니다. 냉동이라도 시키지 않는 이상….”
군의관 에런 대위가 지크에게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출혈이 너무 심해서 내부 장기가 괴사하고 있습니다. 썩어들어가는 건 포션으로도 어떻게 할 수가 없는….”
“방법이 없습니까?”
“매우 유능한 수속성 능력자가 괴사를 막을 만큼만 내부 장기를 얼려 준다면… 하지만 그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과한 냉기는 오히려 내부 장기를 얼려 버릴 테니 말입니다. 수속성 에너지를 그 정도까지 세밀하게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자를 찾기란….”
“섭외해보죠.”
지크가 그렇게 말했다.
“이곳에서 활동하는 모험가가 한두 명도 아니고.”
“그런 능력자를 찾아만 주신다면, 카렐 소령은 생명을 연장할 수 있을 겁니다.”
“시간이 얼마나 있습니까?”
“여섯 시간. 그 이상은 무리입니다.”
“기다려요. 곧 찾아올 테니까.”
그렇게 말한 지크는 곧바로 오버로크 중장을 다시 찾아 도움을 청했다.
“내 당연히 도와야지!”
오버로크 중장은 지크의 부탁을 받고 군단 전체에 공문을 보내고, 또 방송을 함으로써 고위급 수속성 능력자를 수소문했다.
물론 이 세상에 공짜는 없었으므로 포상금을 내걸어야 했지만, 그건 부대의 예산에서 해결했기에 지크의 지출은 없었다.
“지크 중령. 고위급 수속성 능력자를 찾아 의무실로 보냈네. 어서 가 보게나.”
“감사합니다.”
다행스럽게도, 때마침 군단 내부에 고위급 수속성 능력자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래, 넌 여기서 죽으면 안 되지. 쫌만 버텨라. 사부님께 가기만 하면 넌 살 수 있어.’
지크는 한달음에 의무실로 달려가 고위급 수속성 능력자를 만났다.
그런데.
“어?”
고위급 수속성 능력자의 낯이 익었다.
‘고스란 님?’
섭외된 고위급 수속성 능력자는 다름 아닌 고스란이었다.
***
고스란.
지크가 소호카 유적지에서 활동했을 당시 그의 매니저를 자처하며 친분을 쌓았던 여성 유저.
당시 클래스는 로 수속성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마법사였다.
[고스란]•존재 구분 : 모험가(플레이어)
•레벨 : 189
•종족 : 인간
•클래스 : 프로즌 메이지
•소속 : 6군단 제2대대(B급 크립티드 서식지 복무)
•계급 : 상사
•칭호 : 냉기의 주인 / 전장의 지배자 : 무(武)
을 통해 본 고스란은 꽤 많이 성장해 있었다.
원래부터 지크보다 레벨이 더 높았긴 했지만 말이다.
‘고스란 님이 여긴 어쩐 일로? 레벨은 언제 저렇게 올리신 거지?’
지크는 고스란을 알아보았지만, 그렇다고 아는 체를 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메타모포시스 마스크를 통해 정체를 숨기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쉽지 않은 작업이 될 것 같은데….”
그렇게 혼잣말한 고스란이 양손에 수속성 에너지를 집중시켜 카렐에게 주입하기 시작했다.
스으으!
고스란의 손으로부터 냉기가 뿜어져 나와 카렐의 몸 안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30분 후.
“끝났어요. 휴우.”
고스란이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닦아내며 말했다.
캐릭터가 땀을 흘릴 정도라는 건 실제 플레이어 역시 수속성 에너지를 컨트롤하느라 엄청난 집중력을 쏟았다는 증거였다.
“조금만 힘을 더 주면 얼어 버릴 것 같고. 그렇다고 너무 안 주면 하나마나고. 이건 정말 쉽지 않은 작업이었어요. 어쨌든 성공은 했어요. 당분간은 내부 장기가 괴사할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될 거예요.”
“고생하셨습니다.”
“당연히 고생했죠, 지크 님.”
지크는 ‘지크 님’이라는 고스란의 말에 순간 움찔했지만, 이내 곧 평정심을 되찾고 처음 만나는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말했다.
“덕분에 제 동생 같은 녀석이 살았네요. 고맙습니다.”
“뭘요. 당연히 도와야죠. 지크 님 일인데요.”
“…음?”
“모를 줄 알았어요? 다른 사람들은 속여도 저는 못 속여요, 지크 님. 아니. 지, 크, 프, 리, 트, 님.”
“헉?”
“오래간만이에요.”
도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고스란이 지크를 귀신같이 알아보고는 악수를 청했다.
“어, 어떻게 아셨어요?”
“다 방법이 있죠.”
“어떻게? 아이템? 아니면 스킬?”
“그건 영업상 비밀이라서 말씀드릴 수가 없네요. 헤에~!”
“하하….”
“저는요. 지크 님이 어디서 뭘 하시는지 다 알 수가 있어요.”
“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어디에나 있거든요.”
“에이, 설마.”
“진짜예요. 늘 지크 님 가까이에 있었던걸요.”
“농담도 잘하시네요.”
“진짠데….”
“…….”
“그나저나 저한테까지 정체를 숨기실 생각이셨던 건가요? 어떻게 시치미를 뚝 떼시고 마치 처음 보는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그러실 수가 있어요? 섭섭해요.”
“저는 적이 많으니까요.”
지크는 당황하지 않고 솔직히 대답했다.
고스란을 모른 척한 건 미안했지만, 그럴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기에 나온 반응이었다.
“그건 알죠. 하지만 저는 적이 아니잖아요.”
“여긴 눈과 귀가 많으니까.”
“그래요? 그러면….”
고스란이 잠시 고민을 하는 듯하더니 말했다.
“우리 잠깐 으슥한 곳으로 갈까요?”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