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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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할 수는 없겠나.”
미카엘이 최상급 타락 천사들에게 말했다.
“이제라도 폭주를 멈춘다면….”
하지만 늘 그렇듯이, 타락 천사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다.
이미 천족의 본질을 잃은 타락 천사들은, 미카엘을 동족의 배신자로 여길 뿐이었다.
설득 따위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던 것이다.
“…나를 용서하지 마라. 나의 형제들이여.”
결국, 미카엘은 마음을 독하게 먹고 최상급 타락 천사 셋을 향해 덤벼들었다.
“아이고.”
지크는 그런 미카엘의 애잔한 모습을 지켜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동족을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만 하는 저 입장이 얼마나 참담한지는 경험해본 사람만이 알 터였다.
“으악!”
“크아아아아아악!”
“동족의 배신자 새ㄲ… 큭!”
최상급 타락 천사들이 미카엘의 손에 쓰러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미 대천사의 힘을 회복한 미카엘에게 최상급 타락 천사들 따위는 식후 간식거리도 되지 않았던 것이다.
[알림: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알림: 경험치가 올랐습니다!](중략)
[알림: 경험치가 올랐습니다!]지크는 미카엘이 버스(?)를 태워준 덕분에 최상급 타락 천사 셋을 처치한 것에 대한 경험치를 날로 먹었다.
[알림: 축하드립니다!] [알림: 레벨이 올랐습니다!] [알림: 441레벨 달성!]조금 전에 상급 타락 천사들과 중급 타락 천사들을 처치한 경험치와 이번에 최상급 타락 천사들을 처치한 경험치가 합쳐진 덕분에 레벨업을 했다.
‘이제 8레벨 남았다.’
지크는 인 449레벨까지 얼마 남지 않자 주먹을 불끈 쥐고 의지를 불태웠다.
“끝났습니다.”
미카엘이 지크에게 다가와 말했다.
“고생하셨습니다.”
“별말씀을.”
“아닙니다. 부탁드리고 싶지는 않았는데, 제가 직접 상대하기 힘든 적들이라서….”
지크가 굳이 미카엘을 부른 이유는, 현재 최상급 타락 천사들을 상대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지크는 미카엘을 부르기 싫었다.
동족들을 자기 손으로 죽여야 하는 미카엘의 입장을 알았기에, 민폐를 끼치자니 미안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지크는 스킬을 반쯤 봉인해놓고 있는지라 최상급 타락 천사를 상대하기가 힘들었다.
한 명이야 목숨을 걸고 싸운다면 어떻게든 되겠지만, 둘 이상이라면 지크가 절대로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크는 부득이하게 미카엘을 불렀다.
왜?
대천사의 힘을 되찾은 미카엘은 최상급 타락 천사들을 손쉽게 처치하는 게 가능했으니까.
“괜찮습니다. 언제든 필요하시다면 불러만 주십시오.”
미카엘이 지크에게 말했다.
“하하하….”
지크는 괜히 미안해서 뒤통수를 벅벅 긁다가 채형석을 돌아보았다.
“야, 너도 수고했다.”
“수고는 무슨. 나야 돈 챙겨서 좋지.”
채형석은 이미 일루미나티로부터 착수금을 날름 받아 챙긴 뒤라서, 충분한 이득을 본 상황이었다.
거기에 더해 지크가 충성심(?)을 유지한 것에 대한 상으로 보너스까지 두둑하게 챙겨주었으니, 채형석으로서는 나름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 이거 뭐야?”
그때, 채형석이 자신의 머리 위를 가리키며 눈살을 찌푸렸다.
[통린이]이제 갓 배신에 입문한 자에게 주어지는 칭호.
처음으로 뒤통수를 쳤을 때 획득하는 칭호이다.
•타입 : 칭호
•등급 : 일반
•주의사항 : 이 칭호는 명예롭지 못합니다.
채형석도 지크의 뒤를 이어서 통수에 관련된 칭호를 획득하게 되었던 것이다.
***
한편, 대마왕 바알은 마계 제0구역에서 천계로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대천사장 루시퍼….”
대마왕 바알은 천계로 통하는 워프 게이트를 바라보면서, 곧 다가올 싸움을 떠올렸다.
이제 며칠 후면 대마왕 바알이 직접 천계로 쳐들어가서 루시퍼의 목을 딸 예정이었으므로, 그 전에 마음가짐을 다잡으면서 평정심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내 반드시 루시퍼를 꺾고 중간계, 천계, 마계를 통틀어 최강자의 칭호를 얻으리라.”
바알은 창세기 이후 가장 위대한 강자로 기억될 것을 꿈꾸며 의지를 다잡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바알이 최강이자 무적인 건 아니었다.
바알은 지크의 사부를 이길 수 없다는 것쯤은 알았다.
하지만 지크의 사부는 이미 인과율의 법칙에서 벗어난 존재라서, 위대한 업적 같은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그래서 바알은 루시퍼만 이긴다면, 실질적으로 최강자의 칭호를 거머쥘 수가 있었다.
마족들에게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마왕으로서 영원히 기억될 테고 말이다.
“아무래도 안 되겠군.”
바알은 곧 완성될 워프 게이트를 바라보다가 슬쩍 발걸음을 돌렸다.
그런 바알이 향한 곳은 중간계로 향하는 워프 게이트였다.
‘어르신께 조언을 좀 구해야겠군.’
바알은 루시퍼와의 일전을 앞두고 지크의 사부인 데우스에게 조언을 좀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데우스는 무적의 힘을 손에 넣은 강자이니, 조언을 구한다면 루시퍼를 확실하게 이길 방법 하나쯤은 알려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데우스는 그런 존재였다.
대마왕인 바알조차도 무[武]에 대하여 조언을 구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스승이었다.
‘어르신이라면 뭔가 확실한 필살기 하나쯤을 가르쳐주실….’
바로 그때였다.
파직, 파지직!
천계로 향하는 워프 게이트가 별안간 스파크를 피워 올리며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
바알은 중간계로 가려다가 천계로 향하는 워프 게이트가 이상 징후를 보이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직 채 완성되지 않은 워프 게이트가 저절로 작동하다니,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슨 상황인가.”
바알이 워프 게이트 작업에 매달려있던 마족 마법사들에게 물었다.
“폐하, 갑자기 워프 게이트가 저절로 작동하고 있사옵니다.”
“이건 저희도 모르옵니다! 워프 게이트를 잘못 만든 건 아니옵니다. 그러나….”
마족 마법사들조차 어째서 천계로 향하는 워프 게이트가 저절로 작동하는지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는 듯했다.
“이 무슨….”
바알이 눈살을 찌푸릴 때였다.
파직, 파지지직!
번쩍!
갑자기 천계로 향하는 워프 게이트가 폭주하면서, 한 줄기 섬광을 뿜어내었다.
“크윽!”
그 섬광이 어찌나 강력했던지, 대마왕인 바알조차도 양팔로 얼굴을 가리고 오만상을 찌푸려야만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그때.
저벅, 저벅!
누군가 천계로 향하는 워프 게이트에서 빠져 나오기 시작했다.
“……!”
바알은 그런 워프 게이트를 바라보며 경악했다.
천계로 향하는 워프 게이트를 빠져 나오고 있는 존재에게는 검은색 날개가 무려 12장이나 달려 있었다.
“대천사장… 루시퍼!”
바알은 루시퍼가 워프 게이트를 통해 이곳 마계 제0구역의 마왕성에 나타나자 기절초풍하기 직전이었다.
“대마왕 바알.”
비로소 마계에 강림한 루시퍼가 바알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어, 어떻게….”
바알은 너무나도 놀라서 무어라 말을 잇질 못했다.
천계를 습격해서 루시퍼의 목을 친다는 게 바알의 계획이었건만, 정반대가 되어버릴 줄이야….
“곰곰이 생각해봤지.”
루시퍼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천계와 중간계와 마계를 장악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누구일지. 그래서 내린 결론이 뭔 줄 아나?”
“그, 그건….”
“대마왕만 제거하면, 날 막을 자가 없을 것 같더군.”
루시퍼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무기인 창을 움켜쥐었다.
“그래서 결정했다. 마계를 기습해 대마왕을 제거하기로.”
알고 보니 루시퍼도 바알과 같은 생각을 했던 게 분명했다.
그게 아니고서야 루시퍼가 이렇듯 직접 마계에 강림할 리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계로 가는 워프 게이트를 열기로 했지. 그런데 주파수가 서로 맞아 떨어졌는지, 마계로 오는 워프 게이트가 저절로 열리더군.”
“그랬군.”
바알이 비릿한 미소를 흘렸다.
“그래서 제 발로 온 것인가? 이 마계에?”
“못 올 이유라도 있나?”
루시퍼가 피식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대마왕 바알이여. 넌 나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창세기에 태어나 지금껏 살아온 나다. 최하급 마족 출신의 대마왕 따위와는 격이 다르지.”
“흐흐!”
바알은 그런 루시퍼의 발언에 기분 나빠 하기는커녕, 오히려 즐거워했다.
“내 앞에서 그런 말을 지껄였던 놈들이 어떻게 된 줄 아나, 루시퍼? 모조리 죽었다. 내 손에 말이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바알은 최하급 마족으로 태어나 대마왕까지 올라간, 그야말로 자수성가형 대마왕이었다.
숱한 멸시와 차별을 힘으로 쳐부수면서 이 자리까지 올라온 바알이었으니, 루시퍼의 말이 가소롭게 느껴지는 건 당연했다.
“큭.”
루시퍼가 바알의 말을 듣고 웃었다.
“천박한 마족 나부랭이가 하늘 높은 줄 모르는군.”
“뭐라?”
“진정한 힘의 차이가 뭔지 느껴보도록.”
그와 동시에 루시퍼가 가진 12장의 날개가 촤라락! 하고 펼쳐졌다.
“죽어라, 천민.”
루시퍼가 날개를 펼친 채 바알을 향해 덤벼들었다.
“오라! 타락한 대천사장이여!”
바알 역시 자신의 마검을 꺼내어 덮쳐오는 루시퍼에게 맞섰다.
대마왕 바알 대 대천사장 루시퍼.
그렇게 천계, 중간계, 그리고 마계를 통틀어 최강자의 반열에 든 존재들의 싸움은 어느 날 갑작스레 시작되었다.
***
지크는 베르단디를 납치하려던 신성동맹군의 음모를 저지하고, 곧장 연합군 진영으로 복귀했다.
“우리의 다음 행동은 뭡니까?”
지크가 한센에게 물었다.
“예, 폐하. 보급로를 안정화하는 게 급선무입니다.”
한센이 냉큼 대답했다.
“현재 우리 군은 신성동맹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온 상황입니다.”
“그렇죠.”
“하지만 그에 따라 보급로가 길어졌다는 단점 또한 떠안게 되었습니다.”
“보급 중요하죠.”
지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 먹고, 좋은 장비 입어야 잘 싸우는 거니까요.”
“예, 폐하.”
“그래서 뭘 하면 되는 거죠?”
“보급로를 안정화시키려면 점령지들을 완벽하게 장악해야 합니다. 또한, 주요 보급로의 방어를 강화해야 합니다.”
“음!”
“신성동맹군도 그 사실을 알기에, 소규모 병력을 운용해 우리 군의 보급로를 들쑤시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니 지금부터는 대규모 전면전보다는, 속도를 줄이고 적들의 게릴라 공격을 방어하는 게 우선입니다.”
“좋은 의견이네요.”
지크는 한센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그럼, 그렇게 하세요.”
“예, 폐하.”
“그럼.”
지크가 다시 한센에게 물었다.
“적들이 가진 최대 약점이 뭡니까?”
“으음!”
한센은 그런 지크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건 매우 어려운 질문이었다.
현재 신성동맹군에게는 이렇다 할 약점이라는 게 없었다.
신성동맹군의 병력은 여전히 많았고, 타락 천사들이 언제든 추가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현재는 신성동맹군이 방어하는 입장인지라, 딱히 찌르고 들어갈 만한 구석도 없었다.
하지만 바늘구멍 하나 들어가지 않는, 철옹성이라 할 만한 군대는 없는 법.
“정보국에서 올라온 보고에 의하면….”
한센이 입을 열었다.
“현재 신성동맹군의 보급 80퍼센트를 미들랜드 상단이 공급하고 있다고 합니다.”
“미들랜드 상단요?”
“예, 폐하.”
한센이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미들랜드 상단은 수백 년 전부터 곡물, 육류, 그리고 주류를 전문적으로 유통해오던 초거대 상단입니다.”
“아?”
“현재 미들랜드 상단은 신성동맹과 정식으로 계약을 맺고, 보급품을 독점적으로 공급하고 있습니다.”
“그럼….”
지크가 말했다.
“미들랜드 상단이 운영하는 창고를 조지면, 신성동맹군 입장에서는 장기적으로 엄청 곤란해지겠네요?”
“그렇습니다, 폐하.”
“그럼 미들랜드 상단의 식량창고에 불을 질러보죠.”
“예?!”
한센이 깜짝 놀랐다.
그게 가능하다면 더없이 좋기는 했다.
그러나 신성동맹의 영토 깊숙한 곳에 자리한 식량창고들에 불을 지른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닐 터였다.
신성동맹과 미들랜드 상단이 바보도 아니고, 식량창고들에 대한 경비가 삼엄하리라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였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