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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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혹시 몰카냐?”
지크가 케이오스에게 물었다.
농담 같은 게 아니었다.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지크는 정말로 케이오스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바알이 천계로 쳐들어갔다가 아깝게 패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면, 이런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을 거였다.
그런데 대천사장인 루시퍼가 오히려 마계로 쳐들어왔고, 바알이 패배해 죽었다는 건 도무지 믿기가 힘들었다.
“몰카 같은 게 아닙니다! 진짜로 대마왕 폐하께서 대천사장 루시퍼에게 패배하시고 서거하셨습니다!”
“미친….”
“루시퍼는 대마왕 폐하를 죽이고, 곧 마계를 침공해올 것이라는 예고를 남기고 다시 천계로 돌아갔습니다. 그 덕분에 지금 마계는 비상사태입니다. 모든 마왕이 이 사태에 매우 놀랐고, 마계 전체가 혼란에 빠졌습니다!”
“아.”
지크는 일이 생각보다 잘 풀리지 않아 길게 탄식했다.
기껏 미들랜드 상단의 식량창고들을 박살내서 신성동맹과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았는데, 믿었던 바알이 루시퍼에게 죽임을 당할 줄이야….
“그래서 어떻게 됐어?”
“현재 마계는 제1구역의 마왕인 벨리알을 중심으로 마계 회의를 소집한 상황입니다.”
“아….”
바로 그때였다.
우웅!
지크의 목에 걸려 있던 가 강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띠링!
뒤이어 지크의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알림: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메시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오늘 밤 마계 회의를 소집한다.
모든 마왕은 마계 제0구역 마황성으로 집결하라.
벨리알이 마계 회의를 소집했다더니, 지크도 참석해야하는 모양이었다.
지크 역시 마계를 지배하는 군주인 마왕 중 하나였기에, 마계 회의에 참석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알림: 4시간 11분 후 마계로 강제 귀환합니다!] [알림: 강제 귀환까지 앞으로 4시간 11분 21초!] [알림: 4시간 11분 20초!]심지어 선택권은 없고, 무조건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듯했다.
“하필 이럴 때….”
지크는 시기가 너무 안 좋다고 생각했다.
안 그래도 신성동맹군의 총공격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지크가 자리를 비운다는 건 매우 치명적이었다.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지크가 빠진다면, 연합군의 인명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리라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가 아니던가?
‘그렇다고 안 갈 수도 없고….’
문제는 마계 회의에 강제적으로 참석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래, 그냥 회의니까. 금방 다녀오지 뭐.’
지크는 마계 회의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거로 판단하고, 일단 마계에 가보기로 했다.
지크는 중간계의 황제인 동시에 마계의 마왕이기도 했으므로, 이 사태를 나 몰라라 외면할 수 없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
그날 밤.
지크는 햄찌, 채형석, 그리고 케이오스와 함께 마계로 향했다.
지크는 마계로 가기 전 한센에게 연합군을 잘 이끌어줄 것을 부탁했다.
“잘 부탁해요.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테지만, 혹시 무슨 일이 벌어지면 제가 돌아올 때까지 잘 버텨만 주세요.”
“예, 폐하.”
한센이 고개를 조아렸다.
“목숨을 걸고 폐하의 군대를 지켜내겠습니다.”
“믿음직스럽네요.”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가자.”
지크가 동료들을 돌아보았다.
우웅!
그렇게 마계의 문이 열리고.
‘별일 없었으면.’
지크는 제발 마계 회의가 순조롭게 넘어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발걸음을 떼었다.
“오셨습니까!”
마계에 도착한 지크를 가장 먼저 반겨 준 사람은 역시나 메타트론이었다.
“이야.”
지크는 그런 메타트론의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
‘얘가 그 찐따 같던 메타트론이 맞나?’
어느덧 당당히 마왕이 된 메타트론은 예전과 같은 찌질함이 엿보이지 않았다.
걸음걸이에는 자신감이 넘쳤고, 자태는 위풍당당했으며, 표정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이제는 진짜 마왕을 보는 것 같았다.
“너 진짜 멋있어졌다?”
“예?”
메타트론이 눈을 끔뻑였다.
“저 말씀이십니까?”
“그래, 너.”
“가, 감사합니다!”
메타트론은 마왕답지 않게 지크가 칭찬을 해주자 어쩔 줄을 몰랐다.
하기야, 프로아 왕궁에서는 시종장 노릇을 하면서 지크에게 늘 얻어맞기만 했던 메타트론이었다.
그런데 이렇듯 지크가 칭찬까지 해주자 좋아하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나저나….”
지크가 말했다.
“지금 상황은 어때?”
“그것이….”
메타트론이 난감하다는 듯 말했다.
“대마왕 쟁탈전이 벌어질 것 같습니다.”
“뭐?!”
지크가 깜짝 놀랐다.
“아니! 지금 다 같이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국에, 대마왕 쟁탈전이 벌어질 거 같다고?!”
“예….”
메타트론이 피곤하다는 듯 대답했다.
“마왕들은 다가올 위기보다 눈앞의 권력에 더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미친놈들이.”
“그게 저희 마족의 종족적인 특성인지라….”
“그래, 마족이 괜히 마족이겠냐.”
지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대마왕 바알이 대천사장 루시퍼에게 패배해 죽었다.
그리고 천족들이 중간계를 넘어 곧 마계로까지 쳐들어올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똘똘 뭉쳐도 모자랄 판국에 대마왕 쟁탈전을 벌인다?
미친 짓이었다.
전력을 보존해서 병사 하나라도 아껴야할 판국인데, 서로 싸우면 어쩌자는 말인가?
정신을 차리지 못해도 유분수지, 아주 싹 다 불러다 줄빠따를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막아야 합니다.”
메타트론이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지 않으면 마계는 전쟁터로 바뀔 테고, 엄청난 전력 손실이 발생할 게 분명합니다. 지금의 마계는 안 그래도 약해져 있는데, 전쟁이라도 벌어지면 더 약해질 겁니다.”
“알아.”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알 폐하께서 천계 침공을 계획하신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어. 만약 중간계가 무너지면, 마계는 천족들의 침공을 버틸 수 없으니까. 그래서 혼자 총대를 짊어지신 거야. 대천사장인 루시퍼라도 처치하시려고 한 거지.”
“그, 그런 일이….”
“일이 이렇게 엎어질 줄은 나도 몰랐어. 휴우.”
지크의 입에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럴 만했다.
사건 하나를 해결하면 다른 사건이 터지고.
그 사건을 해결하면, 또 다른 사건이 터지고.
아주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일단 마계 회의나 가보자.”
“예, 폐하.”
“다들 여기 있어.”
지크가 햄찌와 채형석에게 말했다.
마계 회의의 회의장에는 오직 마왕들만이 참석할 수 있었기에, 햄찌와 채형석은 함께 갈 수 없었다.
***
같은 시각.
“형제여, 괜찮은가.”
대천사 가브리엘이 루시퍼에게 물었다.
루시퍼는 천계 정중앙에 자리한 성지[聖地]인 에 들어가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대마왕 바알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그를 죽이기는 했지만 루시퍼 역시 멀쩡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물론.”
루시퍼가 대답했다.
“나는 괜찮다, 형제여.”
루시퍼는 평온해 보였다.
“곧 회복할 테니, 아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행이다.”
“몇 달 안에 다 회복….”
그때였다.
“크윽!”
루시퍼가 별안간 가슴팍을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했다.
그런 루시퍼의 가슴팍은 검게 물들어 있었다.
바알의 공격에 스며들어 있던 어둠의 마력이 아직 생생하게 남아있었던 것이다.
“형제여!”
가브리엘이 황급히 루시퍼를 향해 다가갔다.
“그만.”
루시퍼가 한 손을 들어 가브리엘을 제지했다.
“별것 아니다.”
“하, 하지만….”
“대마왕과의 싸움이었다. 나로서도 피해가 아주 없을 순 없었다. 약간의 후유증이 남은 것이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형제여….”
“우리 형제자매들에게 알려라. 내가, 이 루시퍼가 마계로 쳐들어가 대마왕 바알을 처치했다고.”
현명한 판단이었다.
천족과 마족은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관계.
그런데 대천사장인 루시퍼가 대마왕 바알을 처단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 천족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 높아지리라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반대로, 마족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질 테고.
“바알이 없으니 마족들은 스스로 자멸할 것이다.”
루시퍼는 마족들이 대마왕 쟁탈전을 벌일 것까지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니 우리의 현실적인 목표는 중간계를 장악하는 것이다.”
“잘 알고 있다, 형제여.”
가브리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곧 직접 강림해서 네 그릇이 될 아이를 납치할 생각이다. 그러니 그때까지는 회복에 집중해라.”
“그러지.”
루시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릇이 될 아이인 베르단디 납치에 실패했다는 보고를 듣긴 했지만, 분노하지 않은 이유는 상황이 그리 좋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바알과의 싸움에서 부상을 입었으니, 지금 당장 강림이 가능하다고 해도 부담스러웠다.
“푹 쉬고, 잘 회복해라. 형제여. 나는 형제자매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러 가겠다.”
“그렇게 하라.”
루시퍼는 가브리엘을 보내고 두 눈을 감았다.
욱신욱신!
대마왕 바알에게 입은 상처들에게 엄청난 통증이 밀려왔지만, 루시퍼의 입에서는 신음 하나 흘러나오지 않았다.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참아내는 것이다.
“대마왕 바알… 최하급 마족으로 태어나 그런 힘을 가지고 있었을 줄이야….”
루시퍼는 바알과의 최후의 순간을 떠올렸다.
오싹!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도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그때 바알의 공격을 한 끗 차이로 피하지 못했더라면, 드러눕는 건 오히려 루시퍼 본인이 되었을 게 분명했던 것이다.
***
대마왕이 지배하는 마계 제0구역에서 열린 마계 회의.
지크는 같은 마왕인 메타트론과 함께 그 회의에 참석했고, 다른 마왕들과 만나게 되었다.
현재 마계에는 총 11명의 마왕이 있었다.
본래 마왕은 13명이지만, 지크가 기만의 마왕 단탈리온과 탐욕의 마왕 시돈을 처치해서 마왕 두 자리가 현재 공석이었기 때문이다.
“지크프리트 폰 프로아 마왕 전하와 메타트론 마왕 전하께서 입장하십니다.”
회의장 문이 열리고, 지크는 메타트론과 함께 회의실에 들어섰다.
그런데 회의실에 들어서자마자 사건이 벌어졌다.
“잠깐!”
분노의 마왕 아스모단이 지크를 바라보며 으르렁거렸다.
“천박한 놈이!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아스모단은 마족 순혈주의자로, 지크를 인정하지 않았다.
인간 주제에 운 좋게 마왕이 된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마왕들은 인간을 그저 영혼을 공급하는 가축 그 이상도 이하로도 생각하지 않았으니, 지크를 같은 마왕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 건 당연했다.
물론 마왕들마다 의견이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말이다.
“썩 꺼져라! 이 천한….”
그 순간이었다.
콰직!
지크의 손아귀가 아스모단의 머리통을 움켜쥐었다.
다음 순간.
쾅! 콰앙! 쾅! 쾅! 콰앙!
지크가 아스모단의 머리통을 테이블 위에 연신 처박았다.
“커헉! 컥!”
아스모단은 지크의 기습적인 공격에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테이블에 처박히는 굴욕을 당해야만 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스릉!
지크는 를 도[刀]의 형태로 바꾸어 아스모단의 뒷덜미를 짓누르는 기염을 토했다.
“야.”
지크가 아스모단에게 으르렁거리며 물었다.
“뒈질래?”
“크, 크윽!”
“모가지 한번 시원하게 썰어줘?”
그런 지크의 입가에는 정말이지 섬뜩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
“……!”
“……!”
마왕들은 그런 지크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설마 하니 분노의 마왕 아스모단을 저런 식으로 다루는 자가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