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093
1092
지크는 다른 마왕들이 놀라든 말든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다.
대신 분노의 마왕 아스모단의 뒷덜미를 누른 를 더욱 세게 내리찍었다.
주르륵!
그러자 아스모단의 뒷덜미로부터 피가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썰어, 말아.”
“크으윽!”
“묻잖아. 모가지 썰어 주냐고.”
그런 지크의 모습은 무척이나 험악했다.
아무리 마왕이라도 그렇지, 산 채로 목을 슥슥 썰어버리겠다니….
‘저 새끼 완전 사이코잖아?’
‘미, 미친놈!’
‘웬 인간 따위가 마왕이 되었다더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군.’
마왕들은 지크의 무지막지함에 내심 혀를 내둘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지막으로 묻는다.”
지크가 아스모단에게 최후통첩을 날렸다.
“썰어, 말아.”
“…….”
“대답 안 해?”
아스모단은 지크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살고는 싶은데, 살려달라고 말하자니 자존심이 상했다.
“대답을 안 한다라… 오케이. 그럼 뒈지고 싶단 걸로 간주한다. 자, 딱 대.”
“자, 잠깐!”
아스모단이 다급히 소리쳤다.
“내, 내가….”
“내가 뭐.”
“경ㅅ….”
“뭐?”
“경소ㄹ….”
“잘 안 들려. 뭐라고?”
“경솔…했다.”
결국, 아스모단은 생존을 선택했다.
이렇게 산 채로 목이 썰려 나가 죽느니, 자존심이 박살나더라도 생존을 선택했던 것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경고하는데.”
지크가 아스모단의 귓가에 속삭였다.
“내 앞에서 출신 성분을 문제 삼거나, 천민 운운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땐 진짜 산 채로 모가지를 썰어줄 테니까. 단탈리온이랑 시돈이 어떻게 됐는지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
“…….”
“대답해라.”
“아, 알겠다.”
아스모단이 지크의 윽박지름을 이기지 못하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그래야지.”
지크가 만족스럽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아스모단을 일으켜 주었다.
그런 뒤 아스모단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어 주더니, 뺨을 기분 나쁘게 두어 번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잘하자?”
“그, 그래….”
“새끼, 쫄긴.”
그렇게 아스모단의 분노조절장애(?)를 치료해준 지크는, 한번 피식 웃어준 뒤 자기 자리로 가 앉았다.
그런 지크의 모습은 마왕들에게 매우 충격적이었다.
또한, 누군가를 떠올리게끔 했다.
‘바, 바알?’
‘맙소사. 죽은 대마왕과 똑같군.’
마왕들은 조금 전 지크의 모습에서 죽은 대마왕 바알의 그림자를 발견했다.
바알은 최하급 마족 출신으로서, 자신의 비루한 출신 성분을 트집 잡고 얕잡아보던 이들을 이런 식으로 박살 내주곤 했었던 것이다.
실제로, 바알 역시 지크에게서 자신의 과거를 보기도 했었고.
어쨌거나, 그럼으로써 지크는 마왕들에게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를 확실하게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자신이 결코 만만한 마왕이 아니고, 잘못 건드렸다가는 큰일 날 수도 있는 위험인물이며, 수틀리면 그 어떤 끔찍한 짓도 서슴없이 저지를 수 있는 사이코라는 것을 말이다.
***
그렇게 지크와 메타트론의 파격적인 등장 이후 시작된 마계 회의.
“인상 깊군.”
잠자코 있던 벨리알이 흥미롭다는 듯 지크를 바라보았다.
“난 증오의 마왕 벨리알이다. 새로운 마왕 지크프리트 폰 프로아여.”
“반갑습니다.”
지크가 벨리알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선배 마왕에 대한 예의를 최소한으로 표시한 것이다.
“나 역시.”
벨리알이 고개를 끄덕였다.
“혜성처럼 나타난 신입 마왕이라더니, 명불허전이야.”
“별말씀을.”
“앞으로 잘 부탁한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벨리알이 덧붙였다.
“앞으로는 이런 자리에서 함부로 경거망동하지는 않았으면 좋겠군.”
“예?”
“때와 장소를 가려라.”
“그거야….”
지크가 싸늘한 미소를 피워 올리며 대답했다.
“상대가 때와 장소를 가리면, 저도 그러죠.”
“뭐라…?”
“쟤가 먼저 X같이 굴었는데, 제가 참아야 합니까?”
“지금 내게 말대꾸하는 건가?”
벨리알의 눈에 시퍼런 귀화가 피어올랐다.
‘어우야. 얘는 진짜네.’
지크는 그런 벨리알이 진정한 강자라는 걸 체감했다.
눈빛에서 뿜어지는 기세가 예사롭지 않아, 잔챙이 마왕은 아니란 생각이 확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위축될 순 없는 법.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먼저 시비를 걸어오면, 안 참습니다. 벨리알 님 같으면 참으실 겁니까?”
“그거야….”
“설마 선배가 말하는데 따박따박 말대꾸나 한다면서 꼰대 같은 말씀을 하시지는 않으시겠죠.”
지크가 벨리알의 신경을 확 긁어놓았다.
부글부글!
벨리알은 그런 지크의 말에 속에서 열불이 났지만, 그렇다고 깽판을 치지는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크의 논리를 어떻게 반박할 구석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크의 곁에는 메타트론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기에, 벨리알로서도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일대일이라면 모르되, 지크와 메타트론 둘을 상대하는 건 제아무리 마계의 2인자라 할지라도 버거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냥.”
벨리알이 슬쩍 말을 돌렸다.
“괜한 소란은 피해달라는 당부였는데,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군.”
“그런 의도라면 저도 참고 정도는 하지요.”
벨리알은 단 한마디도 지지 않는 지크가 너무나도 얄미웠지만, 꾹 참았다.
괜히 말다툼을 벌여봤자 본전도 찾지 못할 테고, 결국에는 분노가 폭발해 패싸움이 벌어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벨리알은 일단 분노를 억누르고, 회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이유는… 다들 잘 알다시피 대마왕 폐하의 서거와 관련해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우선, 회의에 앞서 대마왕 폐하의 유언장을 공개하도록 하겠다.”
벨리알은 그렇게 말하고는 검은색 오브를 테이블 정중앙에 올려놓았다.
우웅!
그러자 오브가 진동하며 빛을 내뿜는가 싶더니, 뒤이어 대마왕 바알의 환영이 나타났다.
바알의 유언장은 문서 형태가 아닌, 환영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영상 메시지였던 것이다.
– 다들 모인 모양이로군.
바알의 환영이 회의실에 모인 마왕들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 이렇게 모인 걸 보면, 내가 루시퍼의 손에 죽은 모양이지?
환영은 바알이 살아생전 녹화해놓은 것 같았지만, 알고 보니 아니었다.
– 쯧쯧. 거, 또 성질머리 못 참고 나댔다가 누구한테 참교육이라도 당한 모양이로구먼.
바알의 환영이 아스모단을 향해 말했다.
“폐, 폐하!”
– 그러게 성질 좀 죽이고 깝치지 말라고 일렀거늘. 하여간 그놈의 분노조절장애는 강자만 만나면 잘 치료가 되더군?
“…….”
– 보아하니 네 녀석이 치료를 해준 모양이구나.
바알의 환영이 지크를 돌아보며 말했다.
“예, 어르신.”
지크가 살짝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 끌끌! 참 마음에 든단 말씀이야. 인간 출신 주제에 마왕보다 더 마왕 같으니.
“아닌데요.”
지크가 강하게 부정했다.
“제가 무슨 마왕보다 더 마왕 같습니까? 저 이래봬도 인간 출신입니다. 사악한 마족들이랑은 근본이 다르단 말입니다. 사람을 뭐로 보고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제 인성이 뭐가 어때서요?”
그 순간.
‘맞는 말 같은데….’
‘팩트 아닌가?’
마왕들은 지크의 말에 전혀, 단 1도 공감하지 못했다.
제3자들이 보기에, 지크는 사이코인데다가 인성파탄자라서 마왕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크의 출신 성분에 대해 불만이던 마왕들조차 그 인성만큼은 인정할 정도였으니….
– 끌끌! 발끈하기는!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란 말도 모르나?
“모르는데요?”
– 이 자식이 어르신이 말씀하시는데 꼬박꼬박 말대꾸하는 거 보소?
“한 대 때리기라도 하시게요?”
– 그건 불가능하지. 보다시피 지금의 나는 환영일 뿐이니까.
“그럼 그냥 넘어가시죠.”
지크가 시큰둥하게 쏘아붙였다.
– 녀석하고는.
바알은 그런 지크를 귀엽다는 듯 바라보더니, 고개를 돌려 마왕들을 돌아보았다.
– 네 녀석들이 여기 모인 이유는 당연히 대마왕 쟁탈전 때문이겠지?
“예, 폐하.”
그러자 벨리알이 냉큼 대답했다.
‘흐흐흐! 드디어 기회가 오는군!’
벨리알은 자신이 바알의 뒤를 이어 대마왕이 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현재 마계 서열 2위이자 죽어버린 바알을 빼면 가장 강력한 마왕인 벨리알로서는 충분히 군침을 흘릴 만한 상황이었다.
– 끌끌! 그래서 생각을 해두었다네.
바알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 내가 뒈져버렸으니 대마왕 쟁탈전이 벌어질 테고, 그럼 마계가 또다시 쑥대밭이 될 거 아닌가? 그러면 마계 전체의 전력이 크게 약화될 테니, 내 대마왕으로서 그 꼴은 볼 수가 없었단 말일세.
“그래서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뭡니까?”
벨리알이 바알에게 물었다.
– 내 후계자를 뽑을 방법을 미리 생각해두었다네.
“으음!”
– 전쟁 없이 오직 마왕들끼리만 자웅을 겨루는 것이지.
“예, 폐하. 현명하신 말씀이십니다.”
벨리알이 바알의 의견에 동의한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하긴. 어차피 다 내 것이 될 텐데, 전력 손실이 일어나면 안 되지.’
벨리알은 자신이 대마왕에 등극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으므로,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마계를 소유하긴 싫었다.
그건 누구나가 마찬가지였다.
다 쓰러져 가는 오두막에서 왕 노릇을 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대마왕 쟁탈전이 벌어지면, 대마왕에 등극한 마왕은 이겨도 이긴 게 아닌 게 되어버릴 가능성이 컸다.
대마왕에 오르더라도 평생을 마계 재건하느라 낑낑거려야 할 게 뻔했던 것이다.
– 다들 어떤가?
바알이 마왕들에게 물었다.
“뭐… 동의해요.”
“동의합니다.”
“어쩔 수 없지요.”
벨리알을 뺀 나머지 10명의 마왕들 역시 바알의 의견에 동의를 표시했다.
– 좋네.
바알이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럼 아주 간단하게, 여기 모인 마왕들 전부 악의 미로로 가게.
“악의 미로 말씀이십니까?”
벨리알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란 마계 제0구역에 자리한 거대한 지하 미로로, 역사상 공략에 성공한 이가 몇 없다고 알려져 있었다.
– 그렇다네.
바알이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 악의 미로 중심부에 내 신물과 힘의 일부를 가져다 두었지. 그러니 악의 미로의 중심부에 가장 먼저 도달하는 마왕이 내 뒤를 이어 대마왕이 되는 걸세.
“하, 하지만!”
벨리알이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입을 열었다.
“마계 역사상 악의 미로의 중심부까지 도달한 이가 몇이나 된다고 그러십니까!”
– 그래서 없나?
“예?”
– 자네도 잘 알다시피, 나도 젊은 시절에 거길 가 봤는데? 별거 아냐. 그냥 대충 들어가서 개고생만 X나 하면 된다네.
“아니!”
벨리알은 어이가 없었다.
바알의 제안이 터무니없는 정도를 넘어서서, 순 억지였기 때문이다.
“그거야 폐하시니까 가능하신 거잖습니까! 지금 장난하십니까? 예? 마계 역사상 악의 미로를 공략하는 데 성공한 마족이 고작 둘밖에 안 되는데!”
– 허!
바알이 혀를 내둘렀다.
– 아니, 그럼. 대마왕이 되겠다는 자가 고작 그 정도 용기와 배짱도 없어?
“그게 아니질 않습니까! 가능한 걸 말씀하셔야 수긍을 하지요!”
– 그래서 불가능한가?
“예?”
– 불가능은 아니잖나? 내가 해봤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건 너무 억지….”
바로 그때였다.
“악의 미로가 어딥니까?”
지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물었다.
– 어디긴. 그냥 아무 마족이나 붙잡고 물어보게. 모르는 이가 없을 테니.
바알이 대답했다.
“그래요? 야, 가자.”
그러자 지크가 메타트론에게 툭 내던지듯 말하고는, 회의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폐, 폐하!”
메타트론이 그런 지크의 뒤를 허겁지겁 뒤쫓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