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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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은 마왕이다. 방심하지 말자.’
지크는 몽마왕 담피레스를 처치했단 것에 기고만장하지 않았다.
담피레스는 무투파가 아닌, 강력한 군중제어 기술을 구사하는 유틸형 마왕이었다.
일대일 전투에서 약한 건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다른 마왕들은 달랐다.
그들에게는 각자의 장기가 있었고, 또한 마왕다운 강력함이 있었다.
그런 마왕들을 손쉽게 이긴다는 건 오만한 생각이었다.
물론 지크는 강력한 마왕이긴 했다.
지크와 메타트론은 각각 단탈리온, 그리고 시돈을 나누어 먹었기에 다른 마왕들보다 강했다.
그러나 방심은 언제나 화를 부르는 법.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지크는 마왕 사냥에 나섬에 있어 절대 방심하지 않고, 신중하게 움직였다.
그러던 중.
‘적!’
지크는 붉은색 점 하나가 가까워지는 걸 보고 황급히 몸을 숨겼다.
그 붉은색 점은 고통의 마왕 아브락사스였다.
아브락사스는 황금색 긴 튜닉을 입은 채 이곳 를 천천히 걷고 있었다.
드르륵!
그때, 왼쪽 벽이 갑자기 쭉 밀려나기 시작했다.
함정이 발동된 것이다.
“캬아아악!”
“캭! 캬아아아악!”
뒤이어 왼쪽 벽 안쪽에서 고대의 마수들이 뛰쳐나와 아브락사스를 향해 덤벼들었다.
“어리석은 짐승들 같으니.”
아브락사스는 무시무시한 고대의 마수들이 덤벼옴에도 불구하고,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대신에 손바닥을 앞으로 뻗어 붉은색 빛을 내뿜었다.
“캭! 캬아아아아아악!”
“캬아악! 캬아아아아악!”
그러자 붉은색 빛에 노출된 고대의 마수들이 마치 농약 맞은 메뚜기들 마냥 바들바들 떨면서 고통스러워하더니, 이내 곧 축 늘어져 움직이지 않았다.
붉은색 빛을 쪼이고 고통스러워하다가 죽어버린 것이다.
‘뭐야?’
지크는 숨어서 이 광경을 지켜보다가 아브락사스가 고레벨 몬스터인 고대 마수들을 죽여 버리는 걸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저 고대 마수들은 지크조차도 빠르게 정리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고레벨이었다.
그런데 아브락사스는 그런 고대 마수들은 곧장 무력화시킨 뒤 불과 10초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죽여버렸다.
만약 저 붉은색 빛을 쬐였다간, 제아무리 지크라도 고통스러워하다가 끔살을 당할 게 분명해 보였다.
물론 지크는 고통에 대한 저항력이 엄청나서 남들보다야 훨씬 더 잘 버티겠지만 말이다.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 좀 더 지켜보자.’
지크는 섣부르게 아브락사스를 공격하지 않고, 일단 몰래 숨어서 뒤따라가 보기로 했다.
어차피 지크는 란 훌륭한 은신 아이템이 있어서, 아브락사스에게 들킬 염려는 없었다.
‘전투 스타일을 어느 정도 파악한 후에 기습하는 거다.’
지크가 그 생각을 하면서 기회를 엿볼 때였다.
띠링!
미니맵에 새로운 붉은 점이 떠올랐다.
‘어?’
지크는 파괴의 마왕 데카론이 아브락사스가 있는 지점으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걸 발견했다.
‘설마 저 둘이 싸우나?’
지크가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
“죽어라.”
데카론이 어둠 속을 뚫고 나와서 아브락사스에게 덤벼들었다.
고통의 마왕 아브락사스.
그리고 파괴의 마왕 데카론.
두 마왕이 이곳 안에서 일대일 대결을 펼치게 된 것이다.
***
지크는 근처에 숨어서 아브락사스와 데카론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그건 중요한 일이었다.
어차피 를 나가서도 계속 부딪힐 상대들인데, 미리 전투 스타일을 파악해놓는 건 필수적이었다.
그런 지크가 보기에, 아브락사스는 일종의 배틀 메이지 같았다.
캐스팅 시간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마법을 즉각적으로 발동하면서, 육탄전에도 능했다.
단점이라면 스킬이 대부분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면서 무력화시키고, 데미지는 천천히 들어가는 형식이었단 점이었다.
군중제어와 지속딜은 훌륭한데, 폭딜은 약했다.
반대로, 데카론은 무식하기 짝이 없는 똥파워를 앞세운 무투파 마왕이었다.
단, 엄청난 공격력을 자랑하는 대신에 적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기술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이동기와 군중제어기 없는 뚜벅이 딜러였다.
그래서 아브락사스와 데카론의 대결은, 서로의 장단점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싸움이었다.
그래서일까?
아브락사스와 데카론은 서로를 향해 이렇다 할 치명타를 입히지 못하고, 점점 지쳐 갔다.
두 마왕의 생명력이 20퍼센트 미만으로 떨어질 때까지도 승부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지크에게는 매우 좋은 기회였다.
‘개꿀!’
지크는 아브락사스와 데카론이 지칠 대로 지쳐서 걸레짝이 된 것을 보고 매우 좋아했다.
어부지리.
서로 싸우고 있던 아브락사스와 데카론을 습격해서 둘 모두를 잡는, 일타쌍피를 이룩할 기회였다.
‘조금만 더.’
지크는 아브락사스와 데카론의 생명력이 15퍼센트 정도로 떨어질 때까지 좀 더 기다렸다.
그렇게 약 5분 정도가 더 흘렀을 무렵.
‘지금!’
지크는 즉시 은신을 풀고 아브락사스와 데카론을 습격했다.
“……!”
“……!”
아브락사스와 데카론은 지크의 갑작스러운 난입에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어떻게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왜?
지크가 너무 빨랐으니까.
‘베고.’
지크가 아브락사스를 향해 를 휘둘렀다.
촤락! 촤라락!
뒤이어 도제 베텔규스의 비기인 가 터져 나오며 아브락사스를 열십자 형태로 베었다.
‘다음!’
지크는 곧장 몸을 돌려 데카론을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스킬 네 방을 모두 작렬시킨 뒤 를 단검의 형태로 바꾸어 데카론의 복부를 찔렀다.
그 후 을 사용해 데카론의 내부에 강력한 쇼크웨이브를 흘려 넣었다.
“크,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악!”
뒤이어 데카론이 비명을 지르는가 싶더니, 이내 곧 환한 빛에 휩싸여 사라져버렸다.
에 맞은 아브락사스 역시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두 마왕 모두 지크의 기습을 받고 생명력이 떨어져 제0구역으로 강제로 귀환되었다.
[알림: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알림: 경험치가 올랐습니다!]지크의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알림: 레벨이 올랐습니다!] [알림: 443레벨 달성!] [알림: 444레벨 달성!]그렇게 지크는 두 명의 마왕을 추가로 처치해서 2레벨을 더 올리게 되었다.
‘진짜 개꿀이다! 꿀!’
지크는 레벨을 손쉽게 올리는 데 성공하자 매우 기뻐했다.
하지만 얻은 건 비단 레벨뿐만이 아니었다.
[알림: 축하드립니다!] [알림: 새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새롭게 획득한 칭호는 다음과 같았다.
[★마왕 사냥꾼★]마왕을 여러 차례 처치하는 데 성공한 자에게 주어지는 영광스러운 칭호.
역사상 획득한 이가 한 손가락에 꼽을 만큼 칭호이므로, 자부심을 품어도 좋다.
•타입 : 칭호
•등급 : 신화
•효과 :
– 마왕을 상대로 데미지 50% 추가
– 마왕으로부터 받는 데미지 50% 감소
– 마왕으로부터 받는 군중제어 기술의 효과 70% 감소
•참고 : 이 칭호를 소유한 자는 마왕을 더욱 쉽게 제압할 수 있습니다!
지크는 칭호를 얻어서 마왕들의 천적이 되었다.
이 칭호를 가진 이상, 앞으로 마왕들은 다 지크의 밥이었다.
마왕들은 지크를 상대할 때 데미지를 50퍼센트 더 받고, 주는 데미지는 50퍼센트가 감소하니 매우 불공평한 싸움을 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개꿀개꿀~!”
지크는 칭호를 획득하자 기분이 너무 좋아서 날아갈 것만 같았다.
안 그래도 레벨업을 위해 마왕들을 사냥 중이었는데 을 얻었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성이 거의 없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냥 대충 싸워도 어떤 마왕이든 때려잡는 게 가능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시험해보자.’
지크는 즉시 다른 마왕을 찾아 이동했다.
효과를 시험하기 위해서, 나머지 마왕들에게 정면대결을 걸어보려는 것이다.
***
한편, 연합군과 신성동맹군은 몇날 며칠 동안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총사령관 각하! 더는 갈 수 없습니다! 짧게라도 휴식을 주어야 합니다!”
부관이 델데로스 총사령관에게 간곡한 어조로 청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신성동맹군은 정상이 아니었다.
이틀 동안 단 한숨도 자지 않은 채 무수면 행군을 하느라 모든 장병이 지칠 대로 지쳐있는 상황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육체적인 피로는 어디까지나 시작에 불과했다.
털썩, 털썩!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기절하는 인원들이 대거 발생하고.
“어, 엄마? 엄마가 여기 왜 있어?”
행군 도중 고향에 있을 어머니를 본다거나.
“우리 저기서 술 한잔하고 가자.”
전장에는 있지도 않은 주점을 보고, 전우들에게 술을 마시자고 한다거나.
거의 3일 밤낮을 단 한숨도 자지 못해서 그런지, 신성동맹군 장병들의 정신적인 피로와 졸림은 한계를 이미 훌쩍 넘어서 있었던 것이다.
물론 정말 강인한 장병들이라면 1주일 정도는 안 자고 버티는 게 가능하긴 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기사들 중에서도 최정예들이나 가능한 것이지, 절대다수가 징집병인 신성동맹군 장병들 모두가 그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0.1퍼센트의 타고난 강인함과 정신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말도 안 되는 강행군이었다.
“5시간의 휴식을… 명령한다.”
결국, 델데로스 총사령관은 그 이상 고집을 부리지 못하고 장병들을 쉬게끔 해주었다.
움직일 수 있어야 더 가라고 명령을 내릴 텐데, 이동할 수 없는 지경까지 되어버렸으니 어쩔 수 없이 휴식 시간을 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 저놈들도 사람인 이상 쉬어야겠지. 놈들보다 단 1시간만이라도 적게 쉬면 되는 거다.’
델데로스 총사령관은 그런 생각으로, 의자에 몸을 뉘었다.
델데로스 총사령관 역시 단 한숨도 자지 않았기에, 장병들과 마찬가지로 눈을 좀 붙이려는 것이다.
그렇게 얼마나 잤을까?
“총사령관 각하!”
“무슨 일인가!”
델데로스 총사령관은 부관의 다급한 깨움에 벌떡 일어났다.
“적 포탄 낙하 상황입니다!”
“뭣이?!”
“그레이트 위저드인 데시마토 공작의 마법 폭격이 퍼부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프로아 제국의 신형 자주포가 엄청나게 긴 사거리를 이용해 아군 진영에 포탄을 퍼붓고 있습니다!”
“이런 젠장!”
델데로스 총사령관은 보고를 받고 황급히 창가로 향했다.
“아….”
하늘 위에서 본 신성동맹군 진영은 참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
펑! 펑펑! 퍼엉! 펑! 펑펑펑! 펑!
강행군 뒤에 꿀 같은 휴식을 취하고 있던 신성동맹군 진영에 무차별적인 마법, 그리고 포탄 폭격이 퍼부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델데로스 총사령관을 더욱 놀라게 했던 건 이런 기습적인 폭격이 아니었다.
‘제아무리 그레이트 위저드라 할지라도 저런 대규모 마법 폭격을 가하려면 사전에 마법진을 그리고 긴 시간 동안 주문을 외워야 할 텐데… 최소 몇 시간 동안은 작전 지역 근처에서 머무르면서 마법 폭격을 준비했다? 이건….’
답은 하나였다.
‘연합군은… 우리 군이 여기서 휴식을 취할 것이라는 걸 미리 알고 있었단 이야기다. 내가, 이 델데로스가. 화전민 출신 따위에게 또 간파당했다는 건가?’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고, 사실이기도 했다.
그러나 델데로스 총사령관은 그것까지는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다하다 이제는 언제 휴식을 취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몇 시간 전에 간파당할 줄이야….
‘내가 하는 생각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다는 건가?’
델데로스 총사령관은 을 느꼈다.
얼굴도 모르는 한센이 자신의 머리 꼭대기 위에 있으며, 무슨 짓을 해도 뛰어넘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한계를 느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