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110
1109
“……!”
“……!”
“……!”
마왕들은 지크의 제안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빈집을 턴다?
그 말은, 천족이 중간계에 강림한 사이 천계를 초토화해 버리자는 소리였다.
“물론 이건 최악의 시나리오.”
지크가 마왕들에게 설명했다.
“일단은 천족의 중간계 침공을 최대한 막아 볼 생각이긴 해. 실제로 중간계에서 노력하고 있고. 근데, 만약에 천족들이 중간계 강림에 성공하면 그땐 정말 큰 일이야. 그러니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준비하자고.”
“그 준비가 천계 침공이란 겁니까?”
“그래.”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알 폐하께서 천계로 쳐들어갈 때 사용하려던 워프 게이트 있지? 그거 쓰면 되잖아.”
“흠!”
벨리알이 잠시 생각을 해보더니 입을 열었다.
“좋은 생각 같습니다.”
“그래?”
“그 워프 게이트를 타고 우리 마족들이 천계를 초토화하는 건 매우 통쾌한 일이겠지요.”
“그치.”
“그리고 천계 침공에 성공하면, 우리 마족들이 중간계로 가는 것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으응? 정말?”
“마계에서 중간계로 가는 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이미 열린 천계의 문을 통해 천계에서 중간계로 가는 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어? 그러네?”
“만약 그렇게 되면….”
“중간계와 마계.”
지크는 벨리알의 생각을 정확히 꿰뚫어 보면서 말했다.
“이 두 세력이 힘을 합쳐서 천족과 일전을 벌인다.”
“예, 맞습니다.”
“그럼 충분히 해볼 만할 거야.”
지크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각개격파를 당하면 쓸리겠지만, 중간계와 마계가 연합하면 어느 정도 싸움이 될 테니까.”
“그렇습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게 그거야. 중간계도 살고, 마계도 살려면 좋든 싫든 이번만큼은 서로 연합해야 해.”
“동의합니다.”
벨리알은 지크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의했고, 그건 매우 현명한 판단이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마족들조차 멸봉을 당할 판국이었으니, 중간계와 연합하는 게 뭐가 대수란 말인가?
일단 살아남아야 나중에 중간계를 정복하든지 할 텐데.
“그러니까 워프 게이트를 열고, 대기해. 그리고 중간계에 천족이 강림했단 소식이 들리면, 바로 워프 게이트를 타고 가는 거야. 그다음엔 천계를 초토화해 버리는 거지.”
“오오!”
지크의 그 말에 마왕들은 자기도 모르게 전율하며 몸을 부르르! 하고 떨었다.
천계를 초토화시킨다!
이건 모든 마족이 꿈에도 그리는, 약간 종족의 오랜 염원 같은 거였다.
창세기 이후에 천족과 마족이 숱하게 격돌했지만, 실제로 각자의 본진을 초토화시킨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은 전대 대마왕이었던 바알이 대천사장인 루시퍼에게 패배해 사망한, 정말이지 충격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던가?
마족들의 사기가 바닥을 친 것은 물론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시국에 천계를 침공해 초토화시킨다?
마족들에게 있어 이보다 더 구미가 당기는 제안은 없었다.
“아무튼, 상황이 그러니까.”
지크가 벨리알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벨리알.”
“예, 폐하.”
“총사령관을 맡아.”
“……!”
“천계 초토화 작전의 선봉에 벨리알 네가 서는 거다.”
“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렇게 지크는 벨리알에게 천계 초토화 작전의 선봉장을 맡김으로써, 충성심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비록 대마왕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천계 초토화 작전을 이끈 총사령관으로서 역사서에 기록된다는 사실은 벨리알로서도 충분히 만족할 만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메타트론.”
“예, 폐하.”
“부사령관.”
“망극하옵니다.”
메타트론은 총사령관 자리를 얻지 못한 게 조금은 서운했지만, 지크의 마음을 이해하고 너그러이 부사령관의 직위를 받아들였다.
지크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마왕은커녕, 동생 바로크에게 개죽음이나 당했을 메타트론이었다.
그런 그거 이렇듯 마계 서열 3위의 강력한 마왕이 되고, 천계 초토화 작전의 부사령관으로 참전하게 된 것만 해도 감지덕지했다.
‘아버지! 제가 천계 초토화 작전의 부사령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메타트론은 죽은 이그나토를 떠올리며 감격에 겨워했다.
물론 진짜 실행될 작전일지 아닐지는 아직 알 수가 없었지만 말이다.
***
지크는 마족들에게 천계 초토화 작전을 준비시켜 놓은 후 곧장 중간계로 귀환했다.
그런데.
“뭐, 뭐야!”
지크는 신성동맹의 수도 펠릭스 앞에 도착하자마자 화들짝 놀랐다.
웅성웅성-
펠릭스 앞에는 그야말로 엄청난 숫자의, 수백만 명이나 되는 게이머들이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지크의 방송을 보거나, 혹은 뉴스 기사를 통해 소식을 접한 게이머들이 모인 것이다.
“아….”
지크는 이렇게 많은 게이머가 흔쾌히 달려와 준 것을 보고 순간 울컥했다.
수많은 게이머 역시 지크와 마찬가지로 게임 BNW를 매우 사랑하고, 잃기 싫어한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게임을 지켜내기 위해 이렇듯 만사를 제쳐놓고 모여든 것이고.
‘그래, 다 같은 마음이겠지.’
지크는 살짝 찡해진 코끝을 슥 문지르고는, 베르단디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현재 베르단디는 펠릭스 주변에 쳐진 결계에 손을 올려놓고, 연금술을 사용해 열심히 결계를 해제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곁에는 브륜힐트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오셨어요, 여보.”
“네, 여보.”
“가셨던 일은요?”
“마계 일은 잘 마무리했어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준비도 시켜놓았고요.”
“고생 많으셨어요.”
“근데….”
지크가 베르단디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지금 많이 바쁜가 봐요?”
“입을 열 수가 없다고 해요.”
브륜힐트가 물수건으로 입을 꽉 다문 채 결계를 해제하고 있는 베르단디의 이마를 닦아주었다.
“우리 아이가 아주 열심히 하고 있어요. 세계를 지켜내기 위해서요.”
“우리 딸다워요.”
지크가 베르단디의 등을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베르단디야. 아빠는 네가 자랑스럽단다.”
베르단디는 결계를 해제하는 중이라 입을 열어 대단은 하지 못했지만, 아빠인 지크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 아바마마! 걱정마세요! 제가 빨리 결계를 풀어서 세계를 지키는 데 이바지할게요!
베르단디가 텔레파시를 보내왔다.
– 정말 고마워, 우리 착하고 예쁜 딸.
지크도 텔레파시를 통해 베르단디에게 마음을 전했다.
‘이렇게 예쁜 아이를… 잃을 순 없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천족에 의해 이 세계가 멸망해버리면, 사랑하는 베르단디를 두 번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생각 말이다.
‘이 행복… 지켜야 하는데.’
문제는 중간계와 마계가 연합한다고 해도, 천족을 이기기가 정말이지 어렵단 점이었다.
게다가 대천사장 루시퍼는 매우 강력해서, 전대의 대마왕인 바알을 일대일 대결에서 이긴 강자였다.
반대로 지크는 어떠한가?
지크도 대마왕의 힘을 지니긴 했지만, 대천사장인 루시퍼를 이기기는 힘들었다.
당장 마나 홀에 금이 가서 대마왕인 상태를 오래 유지하기가 불가능할뿐더러, 루시퍼는 지크가 온전한 상태라도 해도 상대하기 힘든 괴물 중의 괴물이었다.
오죽했으면, 전직 대천사장이었던 미카엘마저도 루시퍼에게 패배해서 실각했을까.
‘힘이… 필요해. 루시퍼를 상대할 절대적 강함이.’
그 힘을 얻을 방법은 오직 하나였다.
‘결국… 그 방법밖에 없는 건가.’
지크의 뇌리에 퀘스트가 스쳤다.
퀘스트 클리어에 실패하면?
그땐 진짜 모든 걸 잃는 셈이었다.
하지만 퀘스트 클리어에 성공한다면?
천족의 침공에 맞서 세계를 지켜내는 게 가능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현재 지크는 매우 불안정한 상태이므로, 이대로라면 천족들 침공을 막아낸다고 하더라도 시한부 인생을 살아야 했다.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 를 이루지 못하면, 언제든 마나 홀이 부서져서 폐인이 될 터였다.
굳이 천족의 침공이 아니더라도, 지크는 반드시 퀘스트 를 클리어해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해야 해. 무서워도 어쩔 수 없어. 마나 홀만 깨지지 않았을 뿐이지, 어차피 벼랑 끝이야. 이대로 몸 사리면서 살아 봤자 무슨 의미겠어.’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용기가 나기 시작했다.
‘그래, 내가 그간 구른 게 얼만데 설마 평타 한 대를 못 때릴까. 아무리 사부님이라고 해도 나의 평타를 모두 피하실 수는 없어.’
생각은 거기까지.
“여보.”
지크가 브륜힐트를 돌아보았다.
“네, 여보.”
“저 잠깐 다녀올게요.”
“어디 가세요?”
“수련이요.”
“갑자기 수련이라뇨?”
“벽을 넘어야 해요. 이대로는 안 돼요.”
지크는 그렇게 말한 후 브륜힐트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사랑해요.”
“여보.”
브륜힐트는 지크의 말에서 뭔가 불안감을 느낀 듯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왜 갑자기 다시 못 볼 사람처럼 말씀하세요?”
“그런 거 아니에요.”
지크는 브륜힐트의 빠른 눈치에 내심 놀라면서, 미소를 지었다.
“수련이 짧지만 힘들 거라서 그래요.”
“정말요?”
“물론이죠.”
지크가 웃으며 발걸음을 돌렸다.
“금방 다녀올게요. 그리고….”
지크가 베르단디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말했다.
– 사랑해, 우리 착하고 예쁜 딸.
– 저도 사랑해요! 아바마마!
– 그래, 착하지. 아빠 다녀올게.
– 네에!
그렇게 지크는 브륜힐트와 베르단디에게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인사를 남긴 후 프로아 제국의 황궁으로 향했다.
***
다시 프로아 황궁.
“뀨우. 주인 놈아. 진짜 괜찮겠냐.”
햄찌가 지크에게 걱정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주인 놈 진짜로 죽으면 어떡하냐? 햄찌 주인 놈 다시 못 보는 거 싫다. 뀨우.”
“죽긴 누가 죽어. 킁.”
지크가 콧방귀를 뀌며 대답했다.
“나 안 죽어.”
“뀨우. 사부님이 보통 사람이냐. 주인놈 진짜 죽을 수도 있다.”
“안 죽는다니까.”
지크가 햄찌에게 으르렁거렸다.
“그리고 누군 좋아서 목숨을 걸겠냐? 어차피 나 지금 완전 걸레짝이야. 너덜너덜하다고.”
“뀨우?”
“굳이 천족 때문이 아니라도, 마나 홀이 거의 못 쓰게 돼서 무리하면 바로 폐인 신세야. 어차피 이겨내야 할 시련이라고.”
“뀨… 그런 그렇지만….”
“걱정하지 마라.”
지크가 웃으며 햄찌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설마 진짜 단 한 대도 못 때리겠냐? 운으로라도 한 대 때리겠지.”
“뀨우. 그래도 걱정된다, 주인 놈아. 뀨.”
“다 잘 될 거다. 나 믿어, 인마.”
“뀨! 알겠다! 주인 놈아! 꼭 통과해야 한다! 뀨우!”
“당연하지.”
지크는 햄찌에게 씩 웃어 보인 후 사부가 있는 호숫가를 향해 나아갔다.
‘할 수 있어.’
지크는 자기 스스로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내가 그간 쌓아 올린 경험을 믿는 거다. 이만큼 컸는데, 사부님 한 대 못 때리는 건 말이 안 돼. 그럼 진짜 나가 죽어도 싼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꽤나 자신감이 올라갔다.
처음 에서 퀘스트의 내용을 보았을 때는 덜컥 겁을 집어먹었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인간 한태성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할 시련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진 것이다.
성큼성큼!
그렇게 자신감에 가득 찬 발걸음으로 도착한 호숫가.
“왔느냐.”
여전히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던 사부가 지크를 향해 넌지시 말을 걸어왔다.
“사부님을 뵙습니다.”
“발걸음 소리가 꽤나 듣기 좋더구나. 마음을 달리 먹은 모양이로고.”
사부는 지크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도 마음가짐의 변화를 감지한 모양이었다.
“예, 사부님. 도전해볼 용기가 생겼습니다.”
“좋구나.”
사부가 서서히 몸을 일으키더니 지크를 돌아보았다.
“그럼… 시험을 시작하겠느냐?”
그 순간.
욱신!
지크는 심장을 조여오는 압력에 자기도 모르게 주저앉을 뻔했다.
“크, 크으윽!”
사부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무형의 에너지가 너무나도 강력해서, 숨이 턱 막혀왔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