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128
1127
“슈트카르트 황제가? 나를?”
지크가 스스로를 가리키며 미켈레에게 물었다.
“내가 경계 대상 1위라고?”
“예, 폐하.”
“왜?”
“폐하.”
미켈레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이건 아주 간단한 문제입니다. 폐하께서는 매우 영민한 군주이십니다. 왜 모르십니까? 생각을 한번 해보십시오.”
“음.”
“폐하께서 지니신 지략이라면, 충분히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소신은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미켈레는 지크를 높게 평가하고, 인정했기에 굳이 그 답을 알려주지 않았다.
‘뭐지? 왜 슈트카르트 황제가 나를 경계해?’
지크는 미켈레가 답을 알려주지 않자 고민해보았다.
‘굳이 나를? 왜?’
그렇게 약 10분 정도 흘렀을 무렵.
“설마.”
지크가 입을 열었다.
“내 인기랑 인지도가 너무 높아서?”
“역시 정확히 맞추셨습니다.”
미켈레가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뉘르부르크 대륙, 그러니까 중간계에서 폐하보다 인지도 높고 인기가 좋은 군주는 단언컨대 존재하지 않습니다.”
미켈레의 말은 사실이었다.
현재 지크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다 못해 신격화까지 진행되는 중이었다.
기존에 지크가 교조이자 교주인 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중간계에 신은 사실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크만은, 살아 있는 신이나 다름없었다.
다른 교단의 신들은 늘 침묵하거나, 혹은 매우 소극적인 도움만을 주었다.
하지만 지크는 달랐다.
지크는 볼 수 있는 신이었고, 늘 곁에 있었다.
게다가 지크가 직접 나타나서 도움을 주지 못하더라도, 열심히 기도를 올리다 보면 어디선가 교단의 성기사들이 나타나 민원을 해결해주곤 했다.
어디 그뿐인가?
지크는 천족들의 침공으로부터 세계를 구원함으로써 세계대전을 끝낸 불세출의 영웅, 아니 성웅(聖雄)이었다.
무력 또한 대륙 최강이라고 평가받고 있었으며, 그간 이룩한 업적들 역시 엄청나게 드높았다.
그리고 세력.
현재 프로아 제국은 마우레키온 제국 다음가는 최강대국이었다.
그간 이런저런 사건들로 인해 기존 강대국들이 무너지고, 끝끝내 까지 박살 나면서 프로아 제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은 마우레키온 제국에 버금가는 거대한 세력이 되었다.
그렇기에 현재 마우레키온 제국이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폐하.”
미켈레가 지크에게 말했다.
“폐하의 인기는 비단 연합군뿐만 아니라 저 마우레키온 제국까지 널리 퍼져 있습니다. 온 세상의 민심이 폐하께 향해 있는 상황입니다.”
“음.”
“이런 상황이니, 슈트카르트 황제로서는 당연히 폐하를 경계할 수밖에 없습니다. 폐하, 마우레키온 제국의 역사는 피로 쌓아 올리고, 또 유지해온 것입니다. 하지만 폐하는 어떻습니까? 민심을 등에 업고 제국을 세우셨습니다. 무력을 앞세워 군림해온 권력. 그리고 민심을 등에 업은 권력. 어떤 것이 더 강하겠습니까?”
“그야 당연히….”
지크가 대답했다.
“민심을 등에 업은 권력이 더 무섭지. 게다가 적당한 무력까지 받쳐주면, 그보다 무서운 게 없지.”
“그렇습니다.”
미켈레가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코랄 행성 원정이 아니었다면, 마우레키온 제국은 전쟁을 일으켜 우리를 쳤을 겁니다.”
“에이, 설마.”
“설마가 아닙니다.”
미켈레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무릇 마우레키온 제국의 황제란 그런 존재입니다. 제국의 안위와 황제 스스로의 권력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이든 짓밟는 것 말입니다.”
“그런가….”
“폐하, 이럴 때일수록 마우레키온 제국에 납작 엎드리셔야 합니다. 의심을 피하셔야 합니다. 본국도 전쟁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재정비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니, 마우레키온 제국과 갈등을 일으켜서는 안 됩니다.”
“쩝….”
“마우레키온 제국으로서도 지금의 폐하를 쉽사리 건드릴 수 없을 테니, 동맹을 더욱 굳건히 하면서 관계를 돈독하게 유지하려 할 겁니다. 아마 아이린 황녀와 폐하를 결혼시키려 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미켈레가 잠시 생각을 하더니 말했다.
“슈트카르트 황제가 폐하께 의형제를 제안할 겁니다.”
“뭐?!”
“그게 아니라면 제 목을 치셔도 좋습니다.”
미켈레가 호언장담했다.
“일단 가보십시오.”
“그래.”
지크는 순순히 미켈레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얘가 자기 목을 내놓았던 경우는 없었어. 그만큼 상황을 심각하게 판단한다는 뜻이겠지. 슈트카르트 황제가 나를 경계한다라… 그래, 그럴 수 있지. 권력이란 그런 거니까.’
비록 게임 속 세상이었지만, 지크는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왕좌에 있으면서 권력의 비정함과 잔혹함을 몸소 느꼈다.
그래서 미켈레의 말을 허투루 넘기지 않고, 일단은 슈트카르트 황제를 만나보기로 했다.
신하의 조언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았던 것이다.
***
지크는 즉시 마우레키온 제국으로 가 슈트카르트 황제를 만났다.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황제 드옵니다.”
시종장의 목소리와 함께 마우레키온 제국 어전(御殿)의 문이 열렸다.
지크는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옥좌에 앉아 있는 슈트카르트 황제를 향해 나아갔다.
어전에 깔린 붉은색 융단은 매우 특이했다.
마치 피의 강을 걷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도대체 무엇으로, 또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정말 피가 흥건한 바닥을 걷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융단이었다.
‘마우레키온 제국의 역사를 뜻하는 건가?’
지크는 어전 입구에서부터 슈트카르트 황제의 옥좌 앞까지 길게 깔려 있는 융단을 밟고 나아가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피로 쌓아 올린 역사라더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왔나.”
어전에 홀로 있던 슈트카르트 황제는, 지크가 다가오자 입을 열었다.
“신 지크프리트 폰 프로아가 존엄하신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지크가 슈트카르트 황제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깊이 조아렸다.
비록 황위에 올랐다지만, 지크는 여전히 슈트카르트 황제의 신하이며 프로아 제국은 제후국이라는 걸 드러내 보인 것이다.
“지크프리트 폰 프로아.”
슈트카르트 황제가 지크에게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을 건넸다.
“예, 폐하.”
“그대가 천족들의 침공으로부터 우리 세계를 구해내는 데 성공했다고 들었다. 참으로 수고가 많았다. 그대는 진정한 영웅이요, 구원자로구나.”
“망극하옵니다.”
지크는 슈트카르트 황제의 극찬에 더더욱 고개를 조아렸다.
“살자고 발버둥 치다 보니, 운 좋게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대는 늘 겸손하군.”
“제 혼자만의 힘이 아니었습니다. 모두가 힘을 합쳐 막아낸 것 아니겠습니까?”
“훌륭해.”
슈트카르트 황제가 옥좌에서 일어나 지크가 있는 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지크프리트 폰 프로아.”
“예, 폐하.”
“짐은 마우레키온 제국의 황제로서, 그대의 위대한 업적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대가 아니었으면 우리 세계는 멸망했을 터, 내 어떻게 그대의 공로를 치하해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다.”
“결국 이것 역시 황제 폐하의 은덕 아니겠습니까?”
지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짐의 은덕이라?”
“폐하께서 한낱 천한 모험가에 불과하던 소신에게 영토를 하사하시고, 왕위에 책봉해주셨습니다. 그 결과 소신이 성장해 활약할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으니, 폐하의 덕이겠지요.”
“지크프리트 폰 프로아.”
“예, 폐하.”
“그대는 언제나 짐을 즐겁게 하는군.”
“예…?”
“그대와 같은 불세출의 영웅이 이렇듯 겸손하고, 또 짐을 떠받들어주니 기분이 좋아서 하는 말이다.”
“망극하옵니다.”
“일어나라.”
놀랍게도, 슈트카르트 황제가 지크를 손수 일으켜주었다.
“그대의 공이 이토록 크니, 짐이 직접 연회를 열어 축하를 해주도록 하겠다.”
“폐, 폐하.”
“가자.”
“예?”
“오늘은 그대와 함께 술로 밤을 지새우고 싶구나.”
그렇게 지크는 슈트카르트 황제가 열어준 연회에 참석해 술잔을 기울이게 되었다.
‘아. 나 그냥 로그아웃하고 쉬고 싶은데.’
지크는 강제 회식(?)에 참여하게 되어 속으로 울상을 지었지만,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았다.
우선은 슈트카르트 황제와의 관계를 돈독히 다지는 게 중요했기에, 예의상 장단을 맞춰주는 수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
그날 밤.
지크는 슈트카르트 황제, 그리고 마우레키온 제국의 대소신료들과 함께 성대한 연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연회는 화기애애했다.
지크가 천족들의 침공으로부터 중간계를 지켜낸 기념으로 벌어진 연회이니만큼, 분위기 자체가 좋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지크는 연회에서 슈트카르트 황제와 술잔을 기울이면서, 그간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런 일이 있었나? 하하!”
슈트카르트 황제는 지크가 해준 이야기를 듣고 놀라워하기도 하고, 즐거워하기도 했다.
지크는 어지간한 기밀이 아니라면, 슈트카르트 황제에게 사실 그대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왜?
솔직한 모습을 보이고 싶었으니까.
나인테일이 평가하길, 마우레키온 제국의 정보력은 프로아 제국 이상이라고 했다.
중간계 곳곳에 마우레키온 제국의 눈과 귀가 있으니, 괜히 거짓말을 해보았자 슈트카르트 황제의 심기를 거스르는 꼴밖엔 되지 않았다.
그래서 지크는 차라리 솔직하게 다 이야기를 해주는 것을 선택했고, 슈트카르트 황제는 매우 즐거운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 지크프리트 폰 프로아.”
연회가 어느 정도 무르익었을 무렵.
“그대가 황후를 지극히 사랑한단 이야기는 들었다.”
“민망하옵니다.”
“그래서 든 생각인데… 그대에게 짐의 매부가 되란 이야기는 더는 할 수 없을 것 같더군.”
“예?”
“그대가 황후 브륜힐트를 그렇듯 사랑하니, 어찌 후궁을 들이라 말할 수 있겠나? 게다가 내 여동생 아이린은 제국의 황녀이지, 후궁이 되는 건 이치에 맞지도 않아.”
“지당하신 말씀이시옵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는데….”
슈트카르트 황제는 그렇게 말하더니, 좌중을 돌아보았다.
“모두 들어라.”
“예, 폐하.”
그러자 연회에 참석했던 모든 이들이 일제히 하던 걸 멈추고, 슈트카르트 황제를 바라보았다.
“짐은 여기 지크프리트 폰 프로아 황제의 위대한 업적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또한, 앞으로 본국과 프로아 제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유지하고 짐과 여기 지크프리트 폰 프로아 황제와의 우정을 위해 의형제를 제안하는 바이다.”
그 말이 끝나던 순간.
‘지, 진짜네?’
지크는 미켈레의 말이 100퍼센트 사실로 드러나자 솔직히 놀랐다.
중간계 절대 권력자이자 존엄 그 자체인 슈트카르트 황제가 설마하니 지크에게 의형제를 제안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평소 그 권위를 생각하면, 이건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었다.
술렁술렁!
그 증거로, 지금 마우레키온 제국의 대소신료들 역시 상당히 충격을 받은 눈치였다.
“어떤가, 지크프리트 폰 프로아.”
슈트카르트 황제가 지크를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짐과 의형제의 연을 맺겠나?”
“어, 어찌….”
지크는 몸 둘 바를 몰라서, 자리에서 일어나 황급히 슈트카르트 황제에게 엎드려 절했다.
“비록 피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짐은 그대와 의로써 맺어진 형제가 되고 싶다.”
“아, 아니 될 일입니다!”
“짐과 형제가 되기 싫은가?”
“제가 어찌 감히 존엄하신 황제 폐하와 의형제가 될 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저 제후국의 왕일 뿐이고, 폐하의 신하에 불과합니다. 그런 제가 어떻게 폐하와 형제의 연을….”
“지크프리트 폰 프로아.”
“예, 폐하.”
“짐을 형님이라고 불러 봐라.”
“……!”
“설마 짐의 청을 거절하지는 않을 테지.”
슈트카르트 황제는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어떻게든 지크를 의형제로서, 동생 삼겠단 의지를 아주 강하게 드러내 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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