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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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저는 폐하의 신하로 남을….”
“형님이라고 불러 봐라.”
“망극하옵니다. 제가 어찌….”
“어서.”
“아닙니다. 저는 그런 불경을 저지를 수가 없….”
“내 청을 거절하는 건가?”
“폐하…!”
“난 그대를 의형제 삼고 싶다고 했다, 지크프리트 폰 프로아.”
슈트카르트 황제가 재차 제안했다.
“짐에게는 형제자매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아. 피붙이라고는 아이린만이 유일하다.”
“예, 알고 있습니다.”
“그걸 알면서도 짐의 의제가 되어주기 싫은가?”
“그, 그게 아니오라….”
지크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당황했다.
‘아니! 일가친척은 본인 손으로 다 죽여 놓고서! 그럼 나도 죽이려는 거 아니냐고!’
슈트카르트 황제는 마우레키온 가문, 그러니까 황족의 피를 가진 모든 이들을 말살한 무시무시한 군주였다.
지크에게 아무리 잘해준다고 한들, 그 본질은 냉혹한 권력자인 것이다.
“짐이 간곡하게 부탁, 아니 애원해야 들어줄 생각인가? 지크프리트 폰 프로아?”
슈트카르트 황제가 다시금 지크에게 말했다.
“어떻게 해야 그대가 나를 의형으로….”
“하, 하겠습니다.”
지크는 더 이상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슈트카르트 황제의 청을 들어주기로 했다.
“정말인가?”
“예, 폐하.”
“그럼 형님이라고 불러보겠나?”
“혀, 형님….”
지크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폐하.”
“음?”
“혀, 형님 폐하.”
그렇게 지크는 슈트카르트 황제를 형님도 아니고, 그렇다고 폐하도 아닌 라고 어중간하게 부르게 되었다.
“형님 폐하라. 참신한 호칭이군.”
슈트카르트 황제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아. 마음에 들어.”
“망극하옵니다.”
“그럼 이제 짐에게도 든든한 의제가 생긴 거라고 이해해도 되겠나?”
“비록 피를 나눈 형제는 아니지만, 형님 폐하께서는 제 의형이십니다.”
“좋군.”
슈트카르트 황제가 좌중을 돌아보았다.
“보았나? 이제 여기 있는 지크프리트 폰 프로아는, 짐의 의제가 되었다. 우리는 비록 피를 나눈 형제는 아니지만, 그보다 더욱 돈독한 사이가 될 것이다.”
“감축 드리옵니다! 폐하!”
그러자 마우레키온 제국의 대소 신료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지, 진짜 슈트카르트 황제와 의형제의 연을 맺게 될 줄이야….’
지크는 속으로 엄청나게 놀라면서, 나름의 생각을 펼쳐보았다.
‘이걸 정치공학적으로 계산하면… 내가 민심을 한 몸에 얻은 영웅이니까… 슈트카르트 황제는 그 형님이 되는 거잖아? 잠깐. 이거 노림수 아냐?’
생각해 보니 그랬다.
이제 슈트카르트 황제는, 그 불세출의 영웅인 지크프리트 폰 프로아가 형님으로 모시는 존재가 되었다.
정치적인 입지가 더더욱 강해진 것이다.
반대로, 지크의 경우엔 별반 달라진 게 없었다.
사실 지크의 입장에서, 슈트카르트 황제와 의형제든 아니든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느새 성장한 지크의 명성이나 인지도를 떠올려 보면, 이제 지크에게는 굳이 슈트카르트 황제의 후광이 필요치 않았다.
즉, 이 의형제는 오직 슈트카르트 황제의 평판만 드높여줄 뿐이었다.
‘미켈레의 말이 옳았어.’
지크는 생각을 정리하며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어쩌면 진짜 날 경계하고 있을지도 몰라.’
지크는 권력의 비정함을 알기에, 슈트카르트 황제를 경계하기로 했다.
마냥 좋은 사람 같아 보여도, 결국엔 대륙 최고의 권력자인지라 언제 그 비정함과 잔혹함을 드러낼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
연회가 끝나갈 무렵.
“지크 아우.”
슈트카르트 황제가 지크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술잔을 내밀었다.
그런 슈트카르트 황제의 얼굴은 취기로 인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예, 형님 폐하.”
“그대가 있어 짐은 더없이 든든하다. 고맙다, 천족들의 침공으로부터 우리 세계를 지켜주어서.”
“아닙니다.”
지크가 고개를 저었다.
“형님 폐하께서는 코랄 종족으로부터 세계를 구원하시기 위해 전쟁을 치르고 계십니다. 저 역시 형님 폐하께 감사합니다. 형님 폐하께서 코랄 종족의 침공을 저지해주시지 않으셨더라면, 제가 어떻게 천족들의 중간계 침공을 막을 수 있었겠습니까?”
“하하! 그런가?”
“형님 폐하 덕분입니다.”
“아우는 정말 겸손하군.”
슈트카르트 황제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대는 정말이지….”
그때.
“폐하.”
나이델베르크 공작이 슬쩍 다가와 슈트카르트 황제의 귓가에 무어라 속삭였다.
하지만 지크는 그 속삭임을 다 들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지크의 청각은 엄청나게 예민해서 아주 작은 속삭임조차 매우 생생하게 엿듣는 게 가능했기 때문이다.
“코랄 행성에서 급히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상륙 작전에 실패했다는 보고입니다. 드래곤 5마리가 전사하고, 드래곤 로드도 중상을 입었다고 합니다. 비밀 작전에 나섰던 도제와 치천존도 행방불명되었다고 합니다.”
“…술이 확 깨는군.”
슈트카르트 황제는 그렇게 대답하더니,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만 연회를 마치겠다. 다들 돌아가 쉬도록.”
슈트카르트 황제가 지크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그의 얼굴에는 취기 따위 사라진 지 오래였다.
코랄 행성에서 올라온 안 좋은 보고를 듣고, 단숨에 취기를 날려버리고 정신을 차린 것이다.
“함께 가겠나?”
슈트카르트 황제가 지크에게 물었다.
“예, 형님 폐하.”
지크는 순순히 슈트카르트 황제의 말을 따랐다.
지크도 코랄 행성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매우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리를 옮긴 후.
“코랄 행성의 주요 시설물들과 전략 병기는 드래곤들의 대활약으로 대부분 파괴된 상황이옵니다. 물론 드래곤들 역시 큰 피해를 입어 전투 불능이 되긴 했사옵니다만, 그래도 상황은 긍정적이옵니다. 단, 이번 상륙 작전이 실패한 건 뼈아픈 피해이긴 하옵니다.”
나이델베르크 공작이 슈트카르트 황제에게 보고했다.
“그렇군. 그래서 전투의 전망은 어찌 되나?”
“앞으로는 보병 위주의 백병전이 주로 펼쳐질 것 같사옵니다.”
“백병전이라….”
“문제는 코랄 종족의 전투력이옵니다. 아시다시피, 코랄 종족은 평범한 병사 하나가 최상급 기사에 버금가는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사옵니까?”
“강자가 필요하다?”
“예, 폐하.”
“어렵게 됐군.”
지크가 곰곰이 얘기를 들어보니, 코랄 행성 원정이 그리 신통치 않은 모양이었다.
“실례지만….”
지크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치천존, 도제 어르신이 행방불명되었다는 게 사실입니까?”
“그렇다고 하는군.”
슈트카르트 황제가 보고서를 읽으며 지크의 질문에 대답해주었다.
“그들이 있어 코랄 원정이 순조로웠는데, 큰일이야.”
“그럼….”
지크가 잠깐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제가 가봐도 되겠습니까?”
“아우가?”
슈트카르트 황제가 다소 놀랍다는 듯 말했다.
“아우는 전후처리와 내정에 힘써야 할 텐데?”
“하지만 치천존 어르신과 도제 어르신은 제 스승님이나 다름없는 분들입니다. 그분들이 실종되었다는데, 가만히 있을 순 없습니다.”
“하지만 그대는 제국의 황제가 아닌가.”
“괜찮습니다.”
지크가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전 모험가라 불사의 존재이기도 하고, 마침 코랄 행성이 궁금했던 참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저를 코랄 행성으로 보내주신다면, 두 어르신을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아우가 그렇게 말해주니, 짐으로서는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그와 동시에 퀘스트창이 떠올랐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코랄 행성에서 작전 수행 중 행방불명된 치천존과 도제를 찾아보자.
•타입 : 타임어택 퀘스트
•진행률 : 0% (0/2)
•남은 시간 : 240시간
•보상 : SS등급 초월의 돌
•주의 사항 : 이 퀘스트는 너무 늦으면 클리어할 수 없으므로, 서둘러야 합니다.
“아우가 코랄 행성으로 가서 두 행방불명된 영웅들을 찾아주고, 도움을 좀 줄 수 있겠나? 내 그럼 보상은 톡톡히 하겠다.”
슈트카르트 황제가 지크에게 제안했다.
‘개꿀!’
지크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은 사용하는 즉시 20레벨이 오르는, 엄청나게 가치가 높은 물건이었다.
지크의 다음 목표는 500레벨을 찍고 의 상위 클래스, 그러니까 3차 전직을 이루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레벨 업이 절실한 상황이었으니 은 매우 좋은 보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슈트카르트 황제가 자신의 아공간 인벤토리를 열더니, 레몬빛깔 액체가 든 플라스크를 지크에게 내밀었다.
“받아라. 아우에게 주는 선물이다.”
“이게… 무엇입니까?”
“보면 알 것이다.”
“망극하옵니다.”
지크는 을 이용해서 슈트카르트 황제가 건넨 플라스크에 대해 알아보았다.
[초특급 성장 자극제]성장에 도움을 주특 자극제.
이 자극제를 섭취하면, 매우 빠른 성장을 이룰 수 있다.
•타입 : 소모품 (포션)
•등급 : 레전더리
•효과 :
– 240시간 동안 경험치 +35%
“헉!”
지크는 를 받아들고 화들짝 놀랐다.
경험치가 무려 35퍼센트나 오른다는 건, 그만큼 빠르게 레벨 업을 이룩할 수 있단 의미였다.
를 빨고 코랄 행성으로 가서 사냥을 한다면, 단기간에 폭 렙을 이루는 것도 불가능은 아닐 터.
‘그래, 어차피 아직 중간계는 잠잠하니까. 전후처리는 맡겨두고 코랄 행성에 다녀오자.’
지크는 그렇게 마음을 먹고는, 슈트카르트 황제를 향해 넙죽 엎드려 절했다.
“형님 폐하의 성은에 망극, 또 망극하옵니다!”
***
지크가 게임 속에서 슈트카르트 황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무렵이었다.
[생] BNW 시즌2메인에 뜬 한 개의 생방송은, 순식간에 게이머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 방송은 게임 BNW의 공식이 아닌, 한 개인이 운영하는 채널에서 송출한 거였다.
그리고 그 채널의 주인은 대한민국 게임 역사상 최악의 문제아이자 탕아이며, 또한 악마의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 이름은 이건.
10여 년 전부터 대한민국 게임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고 할 수 있는 인물로서, 그간 저질러 온 악행들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물론 게임 속에서 악행을 저질러 보았자 얼마나 심하겠느냐마는, 이건은 그 클래스가 달랐다.
대리 게임, 사기, 던전 통제, 버그 악용, 타 게이머 비방 및 모독 및 조롱 등 어지간한 게이머라면 하나만 저질러도 논란이 될 행위들을 숱하게 자행해온 게 이건이란 사람이었다.
그런 이건의 행적 중 가장 화룡점정을 찍은 사건은 따로 있었다.
3년 전.
이건은 AOS게임인 의 프로게이머가 되어서, 방송 경기에 데뷔하게 되었다.
1년 동안 꾸준한 이미지 세탁을 통해 어렵사리 프로게이머로 데뷔할 기회를 얻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건은 데뷔전이 벌어지던 날 당일 대회에 불참하고, 개인 방송을 틀어놓은 채 낮잠을 자는 기행을 선보였다.
그런 대참사를 일으키고 나서 한다는 말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X밥들이랑 게임하기 싫어서 그냥 안 나갔어. 어차피 나가 봤자 내가 다 박살 낼 텐데, 그거 진짜 X노잼이잖아. 그냥 X밥들은 X밥들끼리 놀라고 해. 나 어차피 돈 X나 많이 벌어서, 프로게이머 같은 거 안 해도 잘 먹고 잘살아.]덕분에 한국 프로게임계는 난리가 났고, 협회에서 나서 이건을 영구 제명시키고 나서야 겨우 진정되었을 정도였다.
그런 이건이 게임 BNW의 시즌2란 제목으로 개인 방송을 진행했으니, 시청자들이 몰리는 건 당연지사였다.
“다들 오랜만이지. 내가 그때 사건 이후에 방송을 한 3년 쉬었지? 그동안 뭐 했냐고? 뭐하긴. BNW했지.”
이건이 시청자들의 채팅에 대답해주었다.
“내 닉? 니들 다 알잖아? 설마 몰라? 나는 무슨 게임을 하든 X나 잘해. 뭘 해도 랭킹 10위권에 드는 게 당연한 거 아냐? 아. 그래서 내 닉이 뭐냐고? 뭐긴 뭐야.”
이건이 씩 웃으며 말했다.
“베오울프지.”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