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142
1141
태성은 로그아웃하고 일단 잠을 청했다.
데이토나가 걱정되긴 했지만, 너무나도 피곤해서 잠을 좀 자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얼른 가봐야지.’
잠에서 깬 태성은 운동도 건너뛰고, 간단한 아침 식사를 마친 후 데이토나가 사는 곳으로 향했다.
데이토나는 한남동에 자리한 고급빌라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도련님.”
데이토나의 집 앞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경호실장이 태성을 맞이해주었다.
경호실장이 데이토나의 집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어젯밤.
“걱정되니까 좀 지켜봐 주실래요?”
– 예, 도련님.
태성은 경호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데이토나의 집 근처에서 대기하란 지시를 내렸었다.
데이토나가 아멜리아를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할지도 몰라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게임 때문에 사람이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냐며 비웃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알고 보면 실제로 그런 사람이 꽤 많았다.
때문에 게임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는 더 이상 가볍게 넘길 만한 일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문제라고 봐야 했다.
가상 현실 게임이 보편화되면서, 게임에 과몰입한 게이머들이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정신과 치료를 받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가상 현실 산업의 부작용이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매우 극단적인 국가들의 경우 가상 현실 게임을 아예 플레이하지 못하도록 법적으로 규제하는 경우까지 있었으니, 데이토나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고 해도 결코 이상할 일이 없었던 것이다.
“좀 어땠나요?”
“예, 도련님.”
경호실장이 태성의 물음에 대답했다.
“조용합니다.”
“그래요? 혹시 큰일이 나지는 않았겠죠?”
“아닙니다.”
경호실장이 고개를 저었다.
“혹시나 해서 경찰서에 신고해 집 안 상황을 확인하게 했으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휴.”
태성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정말 다행이네요.”
“하지만 집에 들어갔다 온 경찰관 말로는 상태가 좋아 보이지는 않는답니다.”
“으음.”
“정신과 치료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받는 게 좋죠.”
태성은 게이머의 정신과 치료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입장이었다.
태성 스스로도 게임 과몰입으로 인한 정신병을 걱정한 적이 있었기에, 적극적인 치료에 찬성했던 것이다.
“이거 문제는 문제네요. 게임 시간을 좀 규제하든. 아니면 게이머들의 심리 상담이나 정신과 치료를 국가에서 장려하고 지원하든. 뭔가 방법이 필요하긴 해요.”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네.”
태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요즘 사람들 가상 현실 게임에 너무 심하게 빠져 살잖아요. 이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빠져드는 거라서, 스스로가 과몰입하는지도 잘 몰라요. 그러다 나중엔 가상 현실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에 괴로워하고요.”
“하긴.”
경호실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적인 문제는 스스로가 잘 인지하기 힘들기도 합니다.”
“네?”
“제 주변에도 정신적 스트레스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도련님.”
“실장님 주변에도 게이머가 많은가 봐요?”
“그건 아닙니다.”
경호실장이 고개를 저었다.
“제 경우엔….”
“……?”
“전쟁으로 인한 게 큽니다.”
“아.”
태성은 그제야 경호실장의 말을 이해했다.
경호실장은 전직 특수 부대 출신의 엘리트 군인이었고, 여러 차례의 파병 경력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사설 경호 업체 근무를 통해 여러 분쟁 지역을 돌아다니며 실전을 경험한 사람이었다.
그만큼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실전 상황을 많이 겪었을 테니, 함께 싸웠던 동료들 중에서 PTSD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 역시 꽤 많을 게 분명했다.
“역시 사람은 정신이 건강해야 하나 봐요.”
“그렇습니다, 도련님.”
“나중에 기회가 되면 게임 산업이나 게이머들 복지 관련해서도 일해보고 싶네요.”
“좋은 생각 같습니다.”
“물론….”
태성이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게이머 생활은 은퇴하고 나서요.”
***
“데이토나 씨, 데이토나 씨.”
태성이 한참을 불러보았지만, 데이토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벨을 아무리 눌러도 묵묵부답이었고, 문 안쪽에서는 인기척이 조금도 들리지 않았다.
‘이거 경찰 불러야 하나? 아니야. 그러면 너무 늦어. 문을 부숴볼까?’
태성은 불안감에 문을 부술 생각까지 했다.
왜냐하면, 벌써 30분째 벨을 눌러 보았지만 데이토나가 문을 열어주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됩니다. 연결된 후에는 통화료가 부과됩니다.
게다가 전화기는 꺼져 있어서, 어떻게 연락할 방법도 없었다.
‘어떡하지? 진짜 부숴?’
태성의 뇌리에 그 생각이 스칠 무렵.
“…태성 씨.”
문이 열리고, 초췌한 몰골의 데이토나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윽!’
태성은 데이토나로부터 훅! 하고 풍겨져 나오는 술 냄새에 그만 기절할 뻔했다.
위스키 특유의 진한 향이 너무 심하게 나서, 냄새만으로도 취해버릴 것 같았다.
‘도대체 얼마나 마신 거야?’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문제는 데이토나가 도저히 취한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았단 거였다.
“데이토나 씨. 들어가도 돼요?”
“예….”
“얼마나 마신 겁니까? 도대체?”
“글쎄요.”
데이토나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얼마나 마셨는지 기억도 안 나네요.”
“…….”
“이상한 게….”
데이토나가 서글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가 않아요.”
“데이토나 씨….”
“취하고 싶은데, 정신이 너무 멀쩡해요. 그리고… 여기가, 너무 아픕니다. 여기가.”
데이토나가 자신의 가슴팍을 부서져라 쾅쾅! 치면서 말했다.
“데이토나 씨!”
“이제 전 어쩌면 좋을까요. 그냥 괴로워요.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그냥 괴롭기만 합니다.”
“일단은….”
“헉, 허억!”
갑자기 데이토나가 마치 질식사할 것 같은 사람처럼 숨을 헐떡이며 고통스러워했다.
그러더니 이내 곧 가슴팍을 움켜쥐고 쓰러졌다.
“도련님!”
경호실장이 재빨리 나섰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한 공황 발작 같습니다.”
“공황 발작요?”
“예, 도련님. 거기에 술도 너무 많이 마셔서 탈수 증세도 좀 보이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병원으로 옮겨야 할 것 같습니다. 내버려 두면 극단적인 선택보다 과음으로 먼저 죽을 거 같습니다.”
“병원으로 옮기죠.”
그렇게 태성은 불과 이틀 만에 폐인이 되어버린 데이토나를 데리고 가까운 병원으로 향했다.
‘사람을 이 꼴로 만들어?’
데이토나의 몰골을 본 태성은 더더욱 분노했다.
‘이 인간 같지도 않은 새끼.’
태성은 이건을 당장에라도 잡아 죽이고 싶었다.
이건은 지금 이 순간에도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악행을 저지르는 중이었다.
그는 자신의 지튜브 채널에 아멜리아를 죽이고 저택을 불태우는 영상을 올리기까지 했다.
데이토나가 2차적인 정신적 데미지를 받든 말든 상관없이, 조회 수를 빨아먹고, 그걸로 돈까지 벌고 있었던 것이다.
[천벌] 혁명의 첫 발걸음. (Feat. 한태성 친구 애인 죽이기)아주 자극적인 썸네일과 함께 말이다.
이쯤 되면 게이머들 중에서도 순수한 악[惡] 그 자체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는 수준이었다.
‘그래, 오늘부터 전쟁이다. 내가 너, 꼭 파멸시켜 줄게.’
태성은 이건을 결코 용서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하며, 분노를 조용히 삼켰다.
***
그날 밤.
“다들 잘 있었냐. 올라간 영상은 잘들 봤고?”
이건은 자신의 개인 방송을 켰다.
“천벌 시리즈 말야. 앞으로도 쭉 계속될 거야. 누구든 상관없어. 이 혁명은 X나 무자비해서, 한태성이랑 알고 지내는 모든 놈들을 박살 낼 거야. 그러니까 니들도 한태성이랑 가까이 지내지 마. 천벌 시리즈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으면.”
이건은 태성과 그 동료들에게 가하는 테러를 라고 불렀다.
이건이 하늘을 대신해 태성과 그 일당들에게 징벌을 가한다는 컨셉이라고나 할까?
– [GEN Kim] 미쳤네 ㄷㄷ
– [우리가 바로우주] 피도 눈물도 없누;;;
– [쑈통령TV] 돌아왔구나! 이건잌ㅋㅋㅋㅋㅋㅋ
– [Al Pacino] 캬!
– [전격z] 한태성 부랄 쪼그라들었을 듯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건의 추종자들은 그런 그의 악마적 카리스마에 전율하며, 진정한 악마의 귀환에 환호했다.
‘큭큭.’
이건은 채팅창을 바라보며 내심 흡족해 했다.
‘그래, 이게 인간의 본성이지. 불문율? X까라 그래. 힘이 있으면 그걸 마음껏 휘두르고 싶은 게 인간이라고. 죽이고, 빼앗고, 불태우고 싶은 거. 큭큭큭.’
이건은 게이머들이 가진 어두운 욕망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이건이 생각하기에, 게임 BNW는 게이머들의 자유도가 너무 없었다.
물론 진짜로 자유도가 없는 건 아니었다.
단지 국가가 NPC들 위주로 이루어져 있어서 그 세력이 워낙에 거대했기에, 게이머들이 함부로 날뛰지 못하는 것일 뿐.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1년 전까지의 이야기에 불과했다.
그간 게이머들은 엄청난 속도로 강해졌지만, NPC들의 성장 속도는 느렸다.
게이머들의 직관적인 성장 시스템이 서서히 그 진가를 발휘하면서, 게이머와 NPC들 간의 파워 밸런스가 서서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또한, 뉘르부르크 대륙에 큰 전쟁이 연속으로 벌어지면서 기존의 강대국들이 망해버린 것 또한 그 이유 중에 하나였다.
과거에는 NPC들이 국가의 힘을 앞세워 게이머들이 날뛰지 못하도록 통제했는데, 지금은 그게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게이머들이 NPC들을 마음껏 죽여도 큰 부담이 없는 세상이 왔고, 교활한 이건은 그 점을 매우 잘 파악하고 있었다.
바야흐로 혼란의 시대였다.
이건과 같은 무법자가 마음껏 날뛸 수 있는 세상이 온 것이다.
“얘들아.”
이건이 입을 열었다.
“이제 게임 속 권력 구도가 바뀔 거야. 무슨 말이냐고? 간단해. 우리 게이머들이 가진 힘이 NPC들을 서서히 압도하고 있잖아? X같은 인공 지능 새끼들보다 우리가 더 강하다고, 이제.”
그런 이건의 말에 한 시청자가 물었다.
– [남조선 공주]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임???
그걸 본 이건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고? 하. 이 새끼 X나 멍청하네. 너 블랙이야. 말귀 X나 못 알아먹으니까.”
이건은 그 질문을 한 게이머를 블랙 리스트에 추가해버리고는, 자신의 생각을 시청자들에게 말했다.
“그간 우리 게이머들은 NPC들에게 지배당해왔지. 근데 웃기지 않아? 우리가 왜 인공 지능한테 지배당해야 돼? NPC들은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 지능에 불과한데. 우리 인간이 인공 지능을 지배하는 게 정상 아냐?”
“곧 게이머들이 NPC들을 지배하는 세상이 올 거야. 우린 점점 더 강해지고 있고, 그 같잖은 NPC들은 우리 성장 속도를 못 따라오니까. 그럼 우리 게이머들이 NPC들을 지배하고, 노예처럼 부려 먹는 세상이 오는 거지. 이거야말로 정의 아니냐? 난 그런 세상을 만들 거야.”
“한태성, NPC들의 편에 선 앞잡이 새끼를 처단하고, 게이머들의 세상을 만들 거라고.”
이건은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그런 메시지를 전달한 후 태성을 떠올렸다.
‘큭큭큭. 이럼 시즌 2가 조금 늦게 열려도 꽤 재밌겠지. NPC들을 학살하는 재미도 쏠쏠할 테니까. 넌 당연히 NPC들의 편에 서겠지? 한태성? 큭큭큭!’
이건은 자신이 짠 프레임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고, 앞으로의 나날들이 기대되었다.
태성을 천천히 무너뜨리고, 결국엔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뜨릴 생각에 벌써부터 희열을 느끼는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