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170
1169
지크는 마우레키온 제국의 사령부에 도착해서 전략 회의를 진행했다.
상황은 매우 좋았다.
“폐하, 전쟁이 끝나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한센이 지크에게 브리핑했다.
“강한 모험가들 수십만 명이 입대해준 덕분에, 우리 군의 전력이 엄청나게 강해졌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우리가 딱히 할 건 없겠네요?”
“예, 폐하.”
한센이 고개를 조아렸다.
“폐하의 침투 작전이 실패하긴 했습니다만, 우리 군의 전력이 엄청나게 강합니다. 그러니 딱히 신경 쓰실 게 없을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회의, 이만 마치겠습니다.”
지크가 회의실을 돌아보았다.
“다들 각자 맡은 바 임무에 집중해주세요. 저는 대기하고 있다가 중요한 전투가 있으면 바로 참여하겠습니다. 토착종 사냥이나 좀 해야겠네요.”
지크는 그렇게 말하고는 사령부를 떠나 코랄 행성의 토착종들을 사냥하는 것처럼 스스로를 위장했다.
이곳은 마우레키온 제국군의 사령부.
사방팔방이 적이었고, 사방팔방에 정보국 요원이 지크를 지켜보고 있을 게 뻔했다.
그러니 토착종 사냥을 핑계로 사령부를 떠나 코랄 종족 진영으로 가려는 것이다.
그렇게 지크는 사령부를 떠나 코랄 종족 진영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서 민드리우스로 변신했다.
그런 뒤 막시무스 집정관을 만났다.
“맙소사. 그, 그런 일이….”
막시무스 집정관은 마우레키온 제국이 드래곤들을 멸종시켰단 이야기를 전해 듣고 엄청나게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하기야, 막시무스의 입장에선 드래곤들이 최후의 보루였으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드래곤들이 진실을 알고 마우레키온 제국을 응징해줌으로써 전쟁이 끝날 줄 알았건만….
“저도 곤란하게 됐습니다.”
지크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마우레키온 제국이 저를 감시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저 역시 끝내는 제거하려는 게 분명합니다.”
“허어!”
막시무스가 기가 찬다는 듯 말했다.
“그놈들은 의리란 게 없소? 최소한의 신뢰도 없는 게요? 어찌 그리도 비열하단 말이오? 비록 우리에겐 적이지만 그대가 마우레키온 제국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해주었으며, 얼마나 많이 세상을 구했소이까? 영웅으로 대접하고 떠받들어도 모자랄 판국에!”
“그게 문제인지도 모르죠.”
지크가 냉랭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가 너무 커버린 거.”
“으음?”
“제 입으로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현재 대륙의 민심은 저에게 쏠려 있습니다. 우리 세계의 지적생명체들은 저를 세상을 구원한 구원자로 여기고, 존경합니다.”
지크의 말은 사실이었다.
현재 뉘르부르크 대륙에서 제일 잘나가는 종교라면 단연코 였다.
게다가 지크는 세상을 여러 차례 구원한 성웅(聖雄)으로서 신적인 존재로까지 떠받들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마우레키온 제국 내에서도 지크의 인기가 슈트카르트 황제보다 몇 배는 더 높을 지경이었다.
그런 지크가 프로아 제국이라는 신흥강국을 통치하고 있기까지 하니, 마우레키온 제국이 부담스러워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당장에야 사이가 좋을지 몰라도, 앞으로 수십 년 후에는 마우레키온 제국과 마찰을 빚을 터.
마우레키온 제국의 입장에서, 지크와 프로아 제국은 잠재적 주적이었던 것이다.
“물론 지금은 제게 쏠린 인심이 워낙에 튼튼해서, 저를 쉽게 제거하려고 들지는 못할 겁니다.”
지크가 말했다.
“그랬다간 우리 세계의 절반 이상이 들고 일어날 테니, 마우레키온 제국의 입장에서도 저를 섣불리 건드리는 건 부담되는 일일 겁니다.”
“아직 시간이 있다는 말로 들리는구려.”
“그렇습니다.”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우레키온 제국이 본색을 드러내기 전에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막시무스가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폐하를 한번 만나보시겠소이까?”
“……!”
“우리 종족의 중요한 결정권은 모두 폐하께 있소이다. 그러니 폐하를 뵙고 이야기를 한번 나눠보시는 건 어떻소이까.”
“좋습니다.”
지크는 코랄 황제를 한번 만나보기로 했다.
이렇게 된 이상 코랄 종족과 연합하여 마우레키온 제국에 대항하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
한편, 나인테일은 시녀로 위장해 마우레키온 제국의 황궁에 침투해 있는 상태였다.
사실 마우레키온 제국의 황궁에 침투하는 건 너무나도 위험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무릅쓴 것은, 그만큼 마우레키온 제국의 비밀 문건에 대한 내용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안 돼. 여기선 정보를 얻어낼 수 없어.’
하지만 나인테일은 황궁의 철통같은 보안 때문에 어떠한 성과도 얻어내지 못했고, 이만 포기하고 프로아 제국으로 복귀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
나인테일은 돌아가던 중 이건이 나이델베르크와 황궁 내부로 들어가는 걸 보게 되었다.
‘저 인간이 여기 왜 있어?!’
나인테일은 이건, 그러니까 베오울프가 어째서 마우레키온 제국의 황궁에 있는지 의아했다.
이건은 지크의 적이었기에, 마우레키온 제국에 있어서는 안 되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있다?
‘뭔가 음모가 있어.’
나인테일은 은근슬쩍 이건과 나이델베르크가 들어간 회담 장소로 침투해, 둘의 대화를 엿들었다.
때마침 다과를 대접해야 할 시녀가 필요해서, 나인테일은 큰 부담 없이 그들의 대화 내용을 엿들을 수 있었다.
그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드래곤들은 모두 처치했어. 놓친 개체가 한두 마리쯤은 있을 수 있지만, 거의 멸종이나 다름없으니 안심해.”
“고생했소.”
“고생은 무슨. 내 입장에선 지크프리트 폰 프로아의 강력한 조력자들을 없애고 보상까지 받으니 좋기만 한데.”
“그건 본국도 마찬가지요. 이제 드래곤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니 속이 다 시원하구려.”
“그나저나 날 보자고 한 이유가 뭐지? 우리 거래는 끝났을 텐데?”
“의뢰가 또 있소.”
“뭔데?”
“지크프리트 폰 프로아의 평판을 좀 깎아내려 주시오.”
“그거야 나도 바라는 바긴 하지.”
이건이 히죽 웃었다.
“내가 어떻게 해주면 되지?”
“일단 그대의 추종자들을 이용해서 대륙 곳곳에서 사고를 좀 쳐주시오.”
“그야 쉽지.”
“그리고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로 위장해서 범죄를 좀 저질러주면 되오. 극악무도한 범죄일수록 더 좋소.”
“오? 그거 재밌겠는데?”
이건은 상상만 해도 즐거운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지크프리트 폰 프로아의 좋은 이미지를 좀 깨달란 건가?”
“그렇소.”
“그렇게 하지.”
“보상은 만족할 것이오.”
“그거야 알아서 하고.”
이건은 마우레키온 제국으로부터 딱히 기대하는 게 없는 듯했다.
사실 지크를 괴롭힐 수만 있다면, 판만 깔아줘도 무보수로 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좋소. 그럼 그렇게 하는 거요.”
“물론.”
이건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뭔가 생각이 났다는 듯 나이델베르크에게 물었다.
“하나만 물어봐도 되나?”
“얼마든지 물어보시오.”
“내가 세계를 멸망시키려고 했던 적이 있는 걸 알면서 나와 같이 일하는 건 무슨 이유에서지?”
“그야….”
나이델베르크가 대답했다.
“적의 적은 나의 친구란 말도 있지 않소.”
“아?”
“우리 입장에서, 지크프리트 폰 프로아는 너무나도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었소. 그러니 그대의 손을 빌릴 수밖에.”
“적의 적은 나의 친구다. 좋은 말이지.”
이건이 씩 웃었다.
“좋아. 마음에 들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 누구와도 손을 잡을 줄 아는 당신들의 그 태도.”
“칭찬으로 듣겠소.”
“그럼 칭찬이지.”
이건은 그렇게 말하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며칠 내로 흉흉한 소문이 퍼질 테니까, 그렇게 알아.”
“잘 부탁하오.”
“아무렴.”
그렇게 회담이 마무리되고.
‘미쳤어. 마우레키온 제국… 결국 본국까지 집어삼킬 생각이야.’
나인테일은 이 사실을 지크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서둘러 마우레키온 제국의 황궁을 빠져나왔다.
***
코랄 황제를 만나기로 한 지크는, 눈과 귀가 가려진 채 어딘가로 보내졌다.
코랄 황제의 위치는 극비 중의 극비였으므로, 제아무리 막시무스가 지크를 신뢰한다고 한들 그 위치를 알려줄 순 없었기 때문이다.
“뀨! 주인 놈아! 그럼 이제 우리 코랄 종족과 편 먹는 거냐! 뀨우!”
“가능하면.”
지크가 대답했다.
“코랄 종족까지 무너지면 마우레키온 제국을 막을 방법이 없어지니까.”
“뀨우?”
“생각만 해도 이가 갈리네.”
지크가 정말로 이를 부득 갈면서 말했다.
“이젠 게오르그 어르신까지 죽이다니. 진짜 개 같은 새끼들.”
“뀨우….”
“복수해줄 거야. 마우레키온 제국? 전 국토를 폐허로 만들어줄 거야. 세계 최강대국? 웃기지 말라고 해. 식민지로 삼아서, 대를 이어 노예 생활을 하게 만들어줄 거야.”
그만큼 지크의 분노는 대단했다.
치가 떨리도록 큰 배신감과 뼛속 깊은 원한이 합쳐지니, 평소의 지크라면 결코 입에 담지도 않을 무시무시한 말을 내뱉은 것이다.
그만큼 지크의 분노는 대단했다.
“돌아가면 마족들을 중간계로 강림시킬 방법을 찾아볼 거야.”
“뀨, 뀨우?!”
“대마왕의 힘을 중간계에서 다시 쓸 방법도 찾아볼 거고.”
“주, 주인 놈아 많이 화났냐. 뀨우!”
“응.”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난 놈들을 박살 낼 거야. 이번 일에 가담한 놈들, 단 한 명도 살려두지 않을 거고.”
그러는 사이 마차가 멈춰 섰다.
“제 손을 잡고 따라오십시오.”
코랄 기사가 마차 문을 열고 지크에게 손을 내밀었다.
“필요 없습니다.”
“……?”
“눈 좀 가렸다고 못 걷나요.”
지크는 그렇게 말하고는 마차에서 내려 성큼성큼 걸었다.
그런 지크의 발걸음은 거침없었고, 휘청거리거나 넘어지는 일은 없었다.
이미 지크는 심안(心眼)의 경지에 올라서, 눈이 안 보여도 사물을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정확히는 시스템이 적외선 화면처럼 주변 지형지물을 표시해주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
“…….”
“…….”
코랄 종족의 기사들은 그런 지크의 모습을 바라보고 할 말을 잃어버렸다.
눈을 가린 사람이 저렇듯 자유자재로 몸을 가누는 게 놀라웠기 때문이었다.
눈을 가리는 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 같기도 했고.
어쨌거나, 약 10분 정도를 걸었을 무렵이었다.
지크는 안대를 벗고 비로소 코랄 종족의 신적인 존재인 코랄 황제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코랄 황제는 까마득히 높은 옥좌에 앉아 지크를 내려다보았다.
“지크프리트 폰 프로아라고 합니다.”
지크는 나름 예를 갖추어 코랄 황제에게 인사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한쪽 무릎을 꿇는다거나 하는 과한 예의를 갖추지는 않았다.
왜?
지크의 신분 또한 결코 코랄 황제에게 꿇리지 않았으니까.
중간계의 황제에다 마계를 다스리는 대마왕인 지크가 외계 종족인 코랄의 황제에게 고개를 숙일 순 없지 않겠는가?
그런 지크의 속을 알았기 때문일까?
저벅저벅.
코랄 황제가 드높은 옥좌에서 내려와 계단을 타고 천천히 지크가 있는 쪽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음. 예의를 아는 사람이네. 하긴. 다른 세계의 황제가 왔는데 자기 옥좌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있는 건 예의가 아니지.’
지크는 코랄 황제가 자신과 마주 보고 살짝 고개를 숙일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엄청난 착각이었다.
코랄 황제는 단순히 고개를 숙인다거나, 혹은 악수를 청하지 않았다.
“만나서 반갑….”
지크가 코랄 황제에게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할 때였다.
스윽.
코랄 황제가 지크의 발치에 납작 엎드렸다.
그리고….
슥.
지크의 신발에 자신의 입을 맞추었다.
“……!”
지크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코랄 종족과 인간의 예법이 아무리 다르지만, 이건 아니었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코랄 종족도 상대방에게 넙죽 엎드려 발에 입을 맞춘다는 건 스스로를 엄청나게 낮춘단 의미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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