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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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랄 황제가 지크의 흙 묻은 신발에 입을 맞추는 광경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
“……!”
“……!”
모두가 놀랐다.
“폐, 폐하! 어찌!”
“폐하아아아!”
코랄 황제의 왼팔과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아크메인과 막시무스의 입에서는 경악에 찬 비명이 터져 나왔다.
지크 역시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끽해야 악수 정도를 기대했는데, 이런 과한 예우를 받자니 민망함이 이를 데가 없었다.
“아, 아니! 저기요! 왜 이러세요!”
지크가 황급히 코랄 황제를 일으켜 세웠다.
“저기요! 황제님! 일어나세요! 좀!”
하지만 코랄 황제는 지크의 앞에 바짝 엎드린 채 일어나지 않았다.
“구원자이시여.”
코랄 황제가 지크에게 말했다.
“코랄 종족의 황제가 구원자께 인사 올립니다.”
“예에?!”
“구원자께서는 저희 종족을 구원해주실 유일한 희망이십니다. 절 받으소서.”
“아, 아니. 이러지 마시고. 일단 좀 일어나시죠.”
지크는 반강제로 코랄 황제를 일으켜 세웠다.
“도대체 저한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은 모르겠는데, 이러지 마시죠.”
“구원자이시여.”
코랄 황제가 지크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당신은 저희 종족 전체를 구원하실 분입니다. 그런 분께 예를 갖추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예? 제가요?”
“구원자이시여. 말씀을 드리자면 긴 이야기입니다.”
“…….”
“모시겠습니다.”
코랄 황제는 그렇게 말하고는 지크를 어전이 아닌 다른 곳으로 안내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지크는 솔직히 좀 혼란스러웠다.
다짜고짜 뜬금없이 구원자라고 부르면서 이렇듯 극진한 예우를 해주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뀨. 주인 놈아. 또 구원자 됐냐.”
햄찌가 지크의 귓가에 속삭였다.
“주인 놈 맨날 뭘 그렇게 구하고 다니냐. 뀨우.”
“시끄러워, 인마.”
지크가 햄찌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지금 이 시국에 농담이 나오냐? 머리 아파 죽겠다고.”
“뀨우?!”
“나라고 남 좋은 일 하는 게 좋겠냐? 아오.”
지크는 마우레키온 제국에게 통수를 맞은 게 어지간히도 분한지, 계속해서 씩씩거렸다.
하기야 마우레키온 제국에게 속아 천족들의 중간계 침공을 거의 홀로 막아내다시피 하고, 이제는 코랄 행성에서까지 용병 노릇을 하고 있었으니 화가 날 법도 했다.
마우레키온 제국은 뒤에서 자기들 배나 불리고, 지크를 뒤통수칠 생각까지 하고 있었으니 치가 떨리는 건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일단 이야기나 들어보자.’
그렇게 코랄 황제와 대화를 나누게 된 지크.
“죄송한데, 왜 저를 구원자라고 부르시죠? 저 그런 거 아닌데요.”
“구원자이십니다.”
코랄 황제가 미소를 지었다.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우리 오늘 초면 아닙니까?”
지크가 황당해하면서 말했다.
“언제 봤다고 그런 말씀을….”
“저는.”
코랄 황제가 웃으며 대답했다.
“미래를 볼 수 있습니다.”
“……!”
“제가 본 미래에서는… 구원자께서 우리 종족 전체를 구원하셨습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저 사악한 침략자들을 저지할 수 있는 건 오직 구원자님뿐입니다.”
“잘못 봐도 한참을 잘못 보신 거 같은데요.”
“아닙니다.”
코랄 황제가 고개를 저었다.
“구원자께서는 저희 종족을 구원해주실 것입니다.”
“저도 서로 협력해야 하는 입장이라 코랄 종족이 망하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구원자라고 콕 찍어 말하시면….”
“제가 그렇게 만들어드릴 것입니다.”
“으음?”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코랄 황제의 입가에는 알 듯 모를 듯 굉장히 미묘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
한편, 프로아 왕국으로 귀환한 나인테일은 이 사실을 미켈레에게 알리고 논의에 나섰다.
지크가 코랄 행성에 있어서 부재중이니만큼, 결정권은 미켈레에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국.”
미켈레는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단 생각에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마우레키온 제국은 예로부터 경쟁자를 그냥 내버려 둔 적이 없었습니다.”
“알죠, 잘 알죠.”
나인테일은 전 세계를 무대로 귀중품들을 훔쳐 온 대도(大盜)이자 괴도였기에, 역사에 대해 잘 알았다.
예술품에 대해 공부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역사도 알게 되었으므로, 나인테일이 가진 역사적 지식은 어지간한 역사학자들보다 뛰어났다.
“전 늘 그게 걱정이었습니다. 본국이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불안했습니다. 언제 마우레키온 제국의 검이 우릴 향해 뻗쳐올지 모르니까요.”
“동감해요.”
“폐하께도 늘 경고했었고, 폐하 역시 제 조언을 무시하지 않으셨습니다. 마우레키온 제국에게 납작 엎드리고, 슈트카르트 황제와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쓰셨습니다. 하지만….”
미켈레가 숨을 한 번 고르고는 말을 이었다.
“이미 마우레키온 제국은 본국을 무너뜨릴 계획을 세워둔 것 같습니다. 본국은 그간 마우레키온 제국이 꿈꾸는 대륙통일의 마지막 걸림돌이니 말입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요? 대륙통일….”
나인테일이 이해하기 힘들다는 듯 말했다.
“어차피 마우레키온 제국 입장에서도 본국을 제거하려면 꽤 큰 희생을 치러야 할 텐데요.”
“그야….”
미켈레가 대답했다.
“시간이 더 지나면 더욱 큰 희생을 치러야 할 것 아닙니까?”
“아.”
“마우레키온 제국의 입장에서는 미래를 위해서라도 빠르게 본국을 제거하고, 대륙을 통일하고 싶어 할 게 분명합니다.”
“싸움은 피할 수 없겠네요.”
“다만 늦출 수는 있습니다. 폐하께선 마우레키온 제국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운 거물이 되셨습니다. 당장 공격하기엔 부담스러운 게 사실입니다.”
“그럼 어떻게 될까요?”
“입수하신 정보대로, 우선 폐하께 향해 있는 민심을 떨어뜨리기 위해 공작을 펼칠 겁니다. 또한, 천천히 본국을 칠 준비를 하겠지요. 코랄 행성을 정복한 직후에 말입니다.”
“큰일이네요. 시간이 얼마 없어요.”
“우선 폐하께 보고를 드리고, 대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더불어… 본국에 주둔 중인 마우레키온 제국의 군대를 경계해야 합니다.”
현재 프로아 제국에는 아이린 황녀가 지휘하는 마우레키온 제국의 1개 군단이 주둔하고 있었다.
처음엔 프로아 제국을 보호해준다는 명목으로 주둔시킨 것이었지만, 위협이 사라진 지금까지도 철수를 하고 있지 않았다.
“아이린 황녀는 폐하께 호감이 있지만, 슈트카르트 황제의 명령을 거스르지는 못한 겁니다. 그러니 마우레키온 제국의 군대를 예의주시하면서, 폐하의 말씀을 기다려야겠습니다.”
“그래요.”
나인테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대화가 끝난 후.
“피가… 마를 날이 없구나.”
홀로 남겨진 미켈레는 씁쓸히 중얼거리며, 허탈해 했다.
산 넘어 산.
이제는 마우레키온 제국과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니,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
“구원자이시여.”
코랄 황제가 지크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어떤… 방법이죠?”
“우선 저를 죽이십시오.”
“예?”
지크는 제 귀를 의심했다.
명색이 한 종족, 한 행성을 다스리는 황제라는 자가 처음 만나는 외계인—코랄 종족의 입장에서는—에게 다짜고짜 죽여 달라니?
“혹시… 미치셨어요?”
지크가 눈살을 찌푸리며 코랄 황제에게 말했다.
“아니, 정신이 아프시면 정신과에 가셔야….”
“구원자이시여.”
코랄 황제가 고개를 저었다.
“저는 미치지 않았습니다. 단지 구원자께서 저를 죽이셔야 저희 종족 전체가 살 수 있기에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어째서요?”
지크가 기가 막혀서 물었다.
“제가 당신을 죽이는 게 당신네 종족이 사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죠?”
“저를 죽여 제 목을 가지고 침략자들에게로 가십시오.”
“……?”
“그리고 그들의 신뢰와 지지를 얻으십시오.”
“뭐, 뭐라고요?”
“침략자들의 칼날은 결국 구원자께도 향할 것이라는 거,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코랄 황제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구원자께서 저를 처치하시는 모습을 보이시고, 불멸의 전쟁영웅으로서 민심을 얻으신다면 그들도 구원자님을 당장 어쩌지는 못할 것입니다.”
“시간을… 벌라는 말씀이신가요?”
지크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코랄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저희 코랄 종족은 저 침략자들의 지배 아래서 숨을 고르겠습니다.”
“그리고요?”
“때가 되면.”
코랄 황제가 말했다.
“이 행성 어딘가에 잠들어 있는 고대 코랄인들을 깨워 침략자들을 물리칠 것입니다.”
“고대 코랄인이요?”
“그들은 저희 코랄 종족의 조상이며, 다른 세계의 침략자들이 우리 행성에 쳐들어왔을 때를 대비해 안배된 절대적 존재들입니다.”
“음!”
“그들이 깨어나면, 침략자들을 우리 행성에서 몰아내고도 남을 겁니다.”
“그럼 그 뒤엔….”
“구원자님의 힘. 그리고 우리 고대 코랄인들의 힘. 두 힘을 합친다면, 저들을 충분히 물리칠 수 있을 것입니다.”
코랄 황제는 나름의 계획이 있는 것 같았다.
“어차피 저는 과도한 강제 개화의 사용으로 수명이 그리 오래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 그렇군요.”
“그러니 일단 저를 죽이시고, 제 아들을 데리고 침략자들에게 가 볼모로 바치십시오.”
코랄 황제가 확신에 차 말했다.
“침략자들 사이에서 전쟁영웅이 되신 후, 시간이 좀 지나 고대 코랄인들을 깨워주신다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차라리 코랄 종족이 더 버텨주는 게 낫지 않을까요?”
지크가 반론을 제기했다.
“이대로 이곳이 식민 지배를 당하면, 마우레키온 제국 쪽에 여유가 생깁니다. 그럼 제가 위험해져요.”
“버티고야 싶지요. 하지만 우리 종족은 더욱 큰 희생을 치러야 할 겁니다.”
“으음.”
“더 이상의 전쟁은 무의미합니다. 납작 엎드려 때를 기다리는 것만이 이 가혹한 시기를 이겨낼 유일한 방법입니다.”
“어차피 침략자들은 구원자님에게 함부로 칼을 들이대지 못할 것입니다.”
“어떻게 확신하시죠?”
“제 눈에는 보입니다.”
코랄 황제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아직 구원자님께서는 저 침략자들에게 필요한 존재이십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쪽 세계에서 무시무시한 존재들이 나타날 예정입니다. 하늘의 감옥에 갇혀 있던 자들이 나타나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 것이니, 침략자들로서는 구원자님의 힘이 필요해서라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할 것입니다.”
그 말이 끝나던 순간.
‘지, 진짜였어?!’
지크는 외계 행성에 있는 코랄 황제가 다른 세계의 일까지 알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지금 코랄 황제가 말하는 이란 천계의 감옥인 에 갇혀 있던 고대의 악마들을 뜻하는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코랄 황제가 스스로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고 말했던 게 결코 거짓말이 아니란 이야기가 되었다.
고대 악마들이 을 탈출했단 소식은 오직 지크만이 아는 비밀이었다.
정상적인 방법, 그러니까 첩보 같은 수단으로 알아내는 게 불가능한 것이다.
“제가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구원자이시여. 저를 믿고, 힘을 보태주셔야 합니다.”
코랄 황제가 간절한 목소리로 지크에게 말했다.
“일단….”
지크가 대답했다.
“하루만 기다려주세요.”
“하루 말씀이십니까?”
“저는 당신을 100퍼센트 신뢰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검증을 해야겠습니다.”
지크가 오스칼이 가진 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간 마우레키온 제국에게 속아 이용을 당했으니, 더는 그런 실수를 반복할 순 없는 법.
코랄 황제를 100퍼센트 신뢰할 수 있는지 거짓말탐지기를 사용해 알아보려는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