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172
1171
지크는 오스칼이 코랄 행성으로 오는 동안 코랄 황제의 거처를 구경하면서 잠시 한가한 시간을 보냈다.
중간계에서 코랄 행성으로 오는 수송선이 12시간마다 한 번씩 있고, 또한 오스칼이 이곳까지 오는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기에 잠시 여유가 생긴 것이다.
덕분에 지크는 로그아웃해서 잠도 좀 자고 용설화와 밥도 먹고, 영화도 한 편 보았다.
그런 뒤 다시 로그인해서 오스칼과 만났다.
“오느라 고생하셨어요, 오스칼 경.”
“아닙니다, 폐하.”
오스칼이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어찌 소신을 부르셨습니까.”
“아, 별 건 아니고요.”
지크가 함께 자리한 코랄 황제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분, 검증 좀 해주실래요?”
“명령,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오스칼은 그렇게 말하고는 를 뽑아 들었다.
“실례가 될지도 모르는데, 검증 과정이니까 이해해주세요. 공격한다거나 무례하게 구는 거 아닙니다.”
지크는 혹시나 코랄 황제가 기분 나빠할까 봐 미리 언질을 해두었다.
“괜찮습니다.”
코랄 황제는 서슬이 시퍼런 칼날이 자신의 목 언저리에 닿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저 미소를 지었다.
‘진짠가?’
지크는 코랄 황제의 의연함과 태연자약함에 그가 진실만을 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냥 믿을 순 없는 법.
‘상대는 외계 행성의 황제야. 방심해선 안 돼. 또 속아서 이용당할 순 없어.’
지크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오스칼을 시켜서 코랄 황제를 검증하게끔 했다.
“당신은 우리를 이용할 생각입니까?”
“아닙니다. 상생을 위한 협력을 원할 뿐, 이용한다는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만약 일이 잘된다면 고대 코랄인들을 앞세워 우리 세계를 침공할 예정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안전장치를 마련해두겠습니다.”
“당신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입니까?”
“우리 종족의 번영과 전쟁 없는 평화를 원합니다.”
오스칼은 지독했다.
거의 3시간 동안이나 코랄 황제에게 온갖 질문을 퍼부어댔고, 때로는 했던 질문을 또 하면서 그를 검증했다.
100퍼센트 진실을 말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도록, 끊임없이 같은 대답이 나오는지 확인했던 것이다.
“폐하, 코랄 황제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검증을 끝낸 오스칼이 지크에게 보고했다.
“그래요?”
“예, 폐하.”
“좋네요.”
지크는 다른 방에서 햄찌와 을 즐기다가 오스칼의 보고를 받고 다시 코랄 황제를 만났다.
코랄 황제는 3시간 동안이나 계속된 검증에 조금은 퀭해 보였다.
안 그래도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아서 건강이 안 좋다고 했으니, 꽤나 피곤했던 모양이었다.
“이제 저를 믿으십니까?”
“예.”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쯤 했으면 안 믿겨도 믿어주는 게 예의겠죠.”
“다행입니다.”
코랄 황제가 웃었다.
“그럼… 제가 가르쳐드리는 대로 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야 어렵지 않지만….”
지크가 망설였다.
암살 대상이었던 코랄 황제가 알고 보니 시한부 인생이었으니,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죽을 운명인 건 맞았다.
하지만 남의 목숨을 손수 끊어준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어차피 제 수명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강제 개화를 사용할 수조차 없는 상태입니다.”
코랄 황제가 미소를 지었다.
이미 삶과 죽음에 초탈한, 오직 자기 종족의 미래만을 생각하는 지도자의 웃음이었다.
***
코랄 황제는 지크에게 어린 코랄인 하나를 소개해주었다.
“제 아들입니다. 제 뒤를 이어 황위에 등극할 아이이기도 합니다.”
코랄 황제의 아들은 아직 성년이 채 되지 않은 청소년으로 보였다.
코랄인들의 수명이 200년 정도 된다는 걸 떠올려 보면, 이제 30~40살쯤 된 어린 코랄인이었다.
“인사드리도록 하여라.”
코랄 황제가 자신의 아들에게 말했다.
“아비를 도와 우리 종족을 구원해주실 구원자님이시다.”
“구원자님을 뵙습니다. 테오도시우스라고 합니다.”
황자(皇子) 테오도시우스가 지크의 앞에 바짝 엎드려 발에 입을 맞추었다.
아버지인 코랄 황제도 지크에게 극도의 예를 갖추니, 아들인 테오도시우스 역시 그에 준하는 예를 갖춘 것이다.
“아, 지크프리트 폰 프로아라고 합니다.”
지크가 테오도시우스를 일으켜주었다.
“많이 배우도록 하여라.”
코랄 황제가 테오도시우스를 향해 말했다.
“훌륭하신 분이시다.”
“예, 아바마마.”
“넌 앞으로 이분을 전적으로 믿고 따르고, 또 의지해야 할 것이다.”
“예, 아바마마. 그리 하겠습니다.”
그 순간.
‘아.’
지크는 테오도시우스 황자를 바라보는 코랄 황제의 눈빛에서 무언가를 읽어내었다.
그건 아들을 향한 걱정이었다.
‘하긴. 엄청난 고초를 겪겠지. 아들이 마우레키온 제국의 볼모가 될 테니까. 얼마나 걱정이 될까.’
볼모 생활이 고달프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
앞으로 수없이 많은 고초를 겪어야 할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빛이란, 그렇듯 걱정에 가득 차 있었다.
“이 아이가 황위에 오르게 되면 잘 부탁드립니다.”
“물론입니다.”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어떻게든 챙기겠습니다. 필요에 따라서는 구출 작전도 고려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구원자이시여.”
테오도시우스는 아버지인 코랄 황제가 자신의 죽음에 대해 지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음에도 크게 동요하는 기색이 없었다.
굳은 표정으로 입을 꽉 닫고 있는 걸 보니, 어지간히도 어른스러운 모양이었다.
하기야, 한 행성의 황자쯤 되면 그 정도는 해야겠지만 말이다.
“그럼, 이제 저를 보내주십시오.”
코랄 황제가 두 팔을 벌렸다.
“폐하! 폐하아아아!”
“폐하아아아아!”
근처에 있던 코랄인들은 일제히 납작 엎드려 울부짖으며 절규했다.
“슬퍼하지 마십시오. 얼마 남지 않은 수명을 우리 종족의 미래를 위해 바치는 일입니다. 그러니 슬퍼 말고, 모두들 물러가도록 하십시오.”
코랄 황제는 의연한 자세로 신하들, 시종들, 그리고 자신의 아들까지도 자리를 뜨게 했다.
“편히 하시면 됩니다.”
코랄 황제가 지크에게 말했다.
“저는 정말로 괜찮습니다. 구원자이시여.”
“그럼….”
지크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편안하게, 빠르게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지크의 말에는 존경심에 담겨 있었다.
황제로서, 한 종족의 우두머리로서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저 숭고한 모습에 인간적으로 존경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갑니다.”
다음 순간.
촤라락!
도(刀) 형태의 가 한 줄기 빗살이 되어 코랄 황제의 목 언저리로 날아들었다.
***
다음 날 오후.
마우레키온 제국군 진영이 발칵 뒤집어졌다.
모두가 놀라다 못해 경악했다.
“폐, 폐하께서 코랄 황제의 수급을 가지고 오셨다!”
“지크프리트 폰 프로아 폐하께서 코랄 황제의 목을 따셨다!”
“코랄의 우두머리를 쓰러뜨리셨다!”
지크가 코랄 황제의 머리를 들고 복귀하자마자 마우레키온 제국군 진영은 그야말로 충격에 휩싸이고 말았다.
코랄 종족의 구심점이자 신앙과도 같은 존재를 암살하는 데 성공하고, 그 증거로 머리를 가져오기까지 했으니 역사에 길이 남을 전공을 이룩한 셈이었다.
물론 믿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크가 일구어내었다는 업적이 너무나 말도 안 되게 대단한 일이기도 했고, 진짜 황제의 머리인지도 확인이 되지 않으니 진실 공방에 휩싸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폐, 폐하아아아!”
“아, 안 돼에에에! 안 돼에에에에에에!”
코랄 황제의 얼굴을 아는 코랄인 포로들이 오열하고, 심지어 자결까지 하는 걸 보고 의혹들은 쏙 들어갔다.
지크가 진짜 코랄 황제의 머리를 베어 가지고 왔다는 게 사실임이 드러나면서, 논란의 여지가 없어지게 된 것이다.
“지크프리트 폰 프로아 폐하! 만세!”
“만세!”
“마우레키온 제국! 만세!”
“만세!”
마우레키온 제국의 장병들은 그런 지크에게 만세를 부르짖으며 열렬히 환호했다.
지크는 이 앞전에도 크고 작은 전투에 참가해서 마우레키온 제국의 장병들로부터 엄청난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그런 지크가 이제는 코랄 황제의 목까지 베어왔으니, 쏟아지는 마우레키온 제국군의 지지란 가히 절대적이었다.
이제는 슈트카르트 황제의 군대가 아닌 지크의 군대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형님 폐하께 코랄 황제의 목을 바치겠습니다. 슈트카르트 황제 폐하! 만세!”
지크는 그 와중에도 중간계에 있을 슈트카르트 황제에게 충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자신이 제국의 전쟁 영웅임과 동시에 충신 중의 충신이란 걸 강하게 어필하기까지 했다.
코랄 황제가 살아생전에 의도한 대로 말이다.
그렇게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 높아진 마우레키온 제국군은 이후에 벌어진 전투에서도 연전연승하며 순조롭게 전쟁을 수행해나갔다.
황제의 죽음으로 사기가 땅에 떨어진 코랄 종족의 군대는 그야말로 오합지졸이었다.
게다가 불멸의 전쟁 영웅인 지크가 앞장서 코랄의 군대를 박살 내주기까지 했으니, 전쟁이 순조로운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1주일이 지났을 때.
“폐하! 코랄 종족의 새로운 황제가 항복을 청해왔다고 합니다!”
사령부에 있던 지크는 기어코 코랄 종족의 항복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코랄 황제와 이야기를 나눈 대로 시나리오가 척척 진행되었던 것이다.
‘코랄 황제의 말이 맞아. 지금의 나는 마우레키온 제국군의 지지까지 받고 있어. 게다가 연옥의 악마들까지 중간계에서 날뛰기 시작하면, 당장 나를 건드리지는 못할 거다.’
지크는 새삼스레 코랄 황제의 선견지명, 정확히는 예지력에 감탄했다.
“폐하, 회담이 이루어지는 곳에 같이 가시겠습니까.”
소식을 듣고 황급히 코랄 행성으로 온 나이델베르크가 지크에게 물었다.
‘너 이 새끼. 니가 이건이랑 붙어먹었다 이거지.’
나이델베르크를 바라보는 지크의 눈빛은 차가웠다.
오스칼은 코랄 행성으로 오면서, 나인테일이 입수한 정보를 지크에게 전해주었다.
그래서 지크는 나이델베르크와 이건의 더러운 거래 내용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넌 딱 두고 봐. 안경잽이처럼 배신하는 놈 같으니.’
지크는 이제는 고전이 된 한국 영화의 명작 의 대사 중 일부를 떠올리며, 나이델베르크를 향해 이를 갈았다.
하지만 티를 낼 순 없는 법.
“예? 굳이 저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요? 하하!”
“폐하께서는 코랄 황제를 제거하신 상징적인 인물이십니다. 어지간하면 참석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이델베르크가 공손하게 고개를 조아리면서, 지크에게 말했다.
“그, 그럴까요? 전 그럼 가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구경이나 하죠.”
“예, 폐하. 함께 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나이델베르크는 지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까맣게 모른 채 코랄 종족과의 회담장으로 향했다.
그런 나이델베르크의 머릿속에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일전에 마우레키온 제국은 회담을 빌미로 함정을 파 놓고 막시무스 집정관을 암살하려던, 그야말로 비열한 공작을 꾸민 적이 있었다.
그런 마우레키온 제국으로서는 이번 회담이 열리는 코랄 종족의 수도까지 가는 게 매우 두려웠으니, 지크와 같은 강자가 함께 가주길 바랐던 것이다.
사실상 보디가드라고나 할까?
‘쫄았네.’
지크는 그런 나이델베르크의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웃었지만, 입을 꾹 닫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 뒤를 따랐다.
이제 지크는 마우레키온 제국을 속이면서, 뒤통수를 거하게 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