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173
1172
“그래서.”
나이델베르크가 새로이 코랄 황제가 된 테오도시우스에게 말했다.
“항복하는 대신에 폐하께서 볼모가 되시겠다는 겁니까?”
“그렇소.”
테오도시우스가 대답했다.
“대신에 우리 종족에 대한 무자비한 학살을 그만 멈춰주시오.”
“흐음.”
“내 그대들에게 볼모로 잡혀있는 한 우리 종족의 반란은 없을 것이오.”
“폐하께서 그리 말씀해주신다면야 믿음이 가긴 하지요.”
나이델베르크는 코랄 종족에게 황제가 어떤 존재인지를 잘 알았기에, 그 말에 충분히 공감했다.
코랄 황제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다면, 마우레키온 제국이 코랄 종족을 통치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기 때문이다.
그게 코랄 종족의 최대 약점이기도 했다.
코랄 종족은 자신들의 황제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신앙을 지녔다.
그래서 외부 세력이 황제를 꼭두각시로 만들거나, 혹은 인질로 삼은 뒤 협박하면 꼼짝없이 따라야 하는 종족적 취약점이 있었던 것이다.
“대신.”
테오도시우스가 덧붙였다.
“저는 여기 이분이 다스리는 국가의 볼모가 되겠습니다.”
테오도시우스가 지크를 가리켰다.
“네?! 저, 저요?!”
지크가 화들짝 놀랐다.
“하, 하지만 저는….”
지크가 우물쭈물 말했다.
“예… 그게 그러니까….”
“당신은 선황이신 제 아버지를 암살한 침략자들의 영웅입니다. 볼모로 잡혀 있더라도, 당신에게 붙잡히고 싶습니다.”
“그건 좀….”
지크가 살짝 질렸다는 듯 말했다.
테오도시우스의 불타는 복수심에 살짝 위축되었다는 듯 말이다.
‘이걸 어떻게 반응해야 하지?’
나이델베르크는 그런 테오도시우스의 요구에 고민했다.
이 전쟁은 마우레키온 제국과 코랄 종족 간의 전쟁.
그러니 마우레키온 제국이 테오도시우스를 잡아놓는 게 옳았다.
그래야 식민지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음은 물론이었다.
“폐하.”
나이델베르크가 테오도시우스에게 말했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폐하께서는 마땅히 본국에서 머무르시며….”
“저는 당신들을 믿을 수 없습니다.”
“예?!”
“당신들은 나의 신하인 막시무스를 비열한 방법으로 살해하려 했습니다.”
“그, 그건….”
“그걸 아는 제가 어떻게 당신들을 믿고 볼모가 되겠습니까? 저는 제 안전을 보장받고 싶습니다.”
“…….”
“저는 코랄 종족의 황제로서, 반드시 생존해 있어야 합니다. 저는 아직 자식이 없고, 아직 결혼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죽으면 황가의 대가 끊깁니다.”
“으음!”
“그러니 저를 당신들의 나라가 아닌 제3국으로 보내주고 안전을 보장해주십시오. 그러면 모든 코랄인들이 당신들의 통제에 잘 따를 것입니다.”
“허허허….”
나이델베르크는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사실 코랄 종족이 통제에만 잘 따라서 노예 노릇만 해준다면, 테오도시우스가 어디에 붙잡혀 있든 그건 알 바가 아니었다.
마우레키온 제국이 원하는 건 코랄 종족을 잘 통제하는 것뿐이었다.
‘막시무스를 죽이겠다고 무리했던 게 크군. 코랄 황제 입장에선 본국을 신뢰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나이델베르크는 고민했다.
‘그런데 하필 지크프리트 폰 프로아 곁에 있고 싶다? 아버지의 복수를 하겠다는 건가? 가까이 있으면서?’
일리 있는 생각이었다.
나이델베르크가 보기에, 코랄 황제는 지크를 증오할 게 분명했다.
물론 따지고 보면 지크는 용병일 뿐이기에, 마우레키온 제국에 대한 증오가 더 클 것이다.
그러나 지크는 선황을 직접적으로 살해한 장본인이었기에, 복수의 대상으로 삼기에는 충분했다.
‘일단 한 몇 개월 프로아 제국에 두고 하는 짓을 지켜봐야겠군. 만약 프로아 제국이 코랄 황제 관리를 제대로 못 하면, 그걸 빌미로 치고 들어갈 수도 있겠지.’
나이델베르크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입을 열었다.
“우선 알겠습니다. 그럼, 폐하의 의지에 따라 프로아 제국에 머무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단, 코랄 종족을 통제하는 건 어디까지나 본 마우레키온 제국입니다. 그러니 머무는 건 프로아 제국에 머무시되, 통제는 우리 마우레키온 제국의 의지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테오도시우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자, 잠깐만요.”
지크가 땀을 삐질 흘리며 끼어들었다.
“그건 제가 좀 불편한데….”
“폐하.”
나이델베르크가 지크에게 말했다.
“이건, 의형이신 슈트카르트 폐하를 돕는 일입니다. 한데 정녕 거절하실 생각이십니까?”
“그건 좀….”
“부탁드립니다. 당분간만이라도 코랄 황제를 맡아주시지요.”
“끄응.”
지크는 일이 자신의 의도대로 잘 흘러가고 있었지만, 괜히 난감한 척 연기를 했다.
‘좋아. 계획대로 되고 있어.’
속으로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이다.
“일단 알겠습니다. 제가 모시죠.”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나이델베르크가 지크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
한편, 중간계에서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 흉흉한 소문이란, 다름 아닌 성웅(聖雄) 지크프리트 폰 프로아 황제에 대한 거였다.
“자네, 그 소식 들었는가?”
“뭘 말인가?”
“그 소식 말일세! 그 소식!”
“그러니까 무슨 소식?”
“지크프리트 폰 프로아 황제가 옆 마을 아낙네와 동침을 했다네.”
“그런가? 그 옆 마을 아낙네가 그리 절세미녀인 모양이지? 거 팔자 폈구먼! 그런 영웅의 성은을 입었으니 이제 프로아 황궁으로 가서 후궁이 될 일만 남았겠구먼!”
중간계의 문화는 현실의 중세시대와 비슷해서, 황족과 동침을 했다는 건 매우 큰 영광이고 복이었다.
게다가 정실부인인 황후는 못 되더라도, 후궁이 되어 황비의 신분을 얻을 수 있었기에 엄청난 신분 상승을 하는 셈이었다.
“이 사람아! 그게 아닐세!”
“음?”
“글쎄 지크프리트 폰 프로아 황제가 말일세! 남편이 있는 아낙을 강제로 겁탈했다고 하네!”
“예끼! 이 사람아! 지금 그걸 믿으라고 하는 소린가? 위대한 영웅이신 분께서 그런 몹쓸 짓을 왜 하는가!”
“진짜라니까 그러네! 지크프리트 폰 프로아 황제가 그렇게 호색한이라고 하네! 아주 사악한 변태가 따로 없대도!”
정작 지크 본인은 코랄 행성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도 뉘르부르크 대륙에서는 지크가 자신의 권위와 무력을 앞세워 성폭행을 저지르고 다닌다는 소문이 도는 중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크프리트 황제한테 인사 한 번 잘못했다가 목이 달아났다고 하더군!”
“그 소문 들었는가? 지크프리트 황제가 술김에 마을 하나를 잿더미로 만들었다고 하네!”
지크가 대륙 곳곳에서 민간인들을 상대로 온갖 패악질을 부렸다는 소문마저도 돌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게이머들이 일으킨 사건·사고도 끊이질 않았다.
게이머들이 힘없는 NPC들을 괴롭히고, 죽이고, 노예로 삼아 팔아먹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
덕분에 게이머들에 대한 NPC들의 적개심과 두려움은 나날이 높아져만 갔다.
본래 NPC들은 다른 세계에서 강림한 게이머들에게 우호적이었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약간의 보상을 주고 도움을 청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
일부 게이머들이 NPC들을 가축만도 못하게 여기며 온갖 범죄를 저지르자, 선량한 게이머들에게까지 그 피해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꺼져!”
“당장 우리 마을에서 나가!”
“죽여 버리자! 모험가 놈들은 모두 죽여야 해!”
NPC들은 자신들의 터전에 게이머들이 나타나면 돌팔매질을 한다거나, 혹은 장정들이 농기구를 들고 벌떼처럼 달려드는 등 적개심을 드러내었다.
더 이상 게이머들을 우호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하기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좋네.”
지크로 변장한 채 온갖 범죄를 저지르던 이건은, NPC들이 게이머들을 점점 더 적대시한단 소식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
“한태성. 온 세상을 네 적으로 만들어줄 거야. 그럼 어떤 기분일까? 그때도 그 멘탈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건은 지크의 반응이 궁금해 미칠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 반응을 볼 수 없었기에, 일단은 꾹 참고 기다리기로 했다.
아무리 이건이라도 그 정도의 인내심은 있었다.
지크가 극한의 스트레스를 느낄 때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목을 조를 생각이었던 것이다.
***
그렇게 지크의 코랄 행성에서의 여행은 끝이 났다.
지크가 새로이 코랄 황제에 등극한 테오도시우스를 프로아 제국으로 데려가는 것으로, 마우레키온 제국의 코랄 행성 원정 역시 막을 내렸다.
더 이상의 전쟁은 없었다.
이제 마우레키온 제국은 코랄 행성을 관리하면서, 노동력과 각종 자원들을 쪽쪽 빼먹기만 하면 되었다.
‘머리 아프네.’
프로아 제국으로 귀환한 지크는 골머리를 싸맸다.
이제 적은 코랄 종족이 아니라, 그간 아군이라고 믿었던 마우레키온 제국이었다.
게다가 에서 탈출한 고대의 악마들까지 곧 활동할 예정이었기에,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지크의 무력이 점점 더 강해졌다는 것.
이번에 로 전직하고 을 얻은 지크는, 가히 적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강력해져 있었다.
그러나 마우레키온 제국은 단순히 개인의 무력이 강하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코랄 행성에서 자원을 쪽쪽 빨아먹고 성장한 마우레키온 제국이 얼마나 강력해질지는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일단 슈트카르트 황제를 만나봐야지.’
지크는 코랄 행성에서의 일을 보고할 겸 슈트카르트 황제를 찾아가기로 했다.
솔직히 꼴도 보기 싫긴 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슈트카르트 황제는 지크를 철저히 속이고 이용한 사람이었다.
비정한 권력자라고나 할까?
과거 자신의 일가친척 모두를 죽이고 황위에 오른 피의 군주의 본성은 결코 지워지지 않았던 것이다.
“폐하.”
그때, 코랄 황제인 테오도시우스가 찾아왔다.
“아, 오셨습니까.”
지크가 테오도시우스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속이 말이 아닐 텐데.’
지크는 테오도시우스가 안쓰러웠다.
평화롭게 살아가던 행성이 침략을 받았고, 전쟁을 치르며 수없이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으며, 그 와중에 아버지인 선대 코랄 황제까지 죽었다.
게다가 행성 전체가 마우레키온 제국의 식민지가 되고, 고향을 떠나 이곳 이역만리 프로아 제국에 인질로 잡혀 있으니 그 착잡함이야 오죽하랴.
“좀 괜찮으세요?”
“저는 괜찮습니다.”
테오도시우스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제 제 동족들은 사악한 침략자들의 지배를 받게 됐는데, 이 정도 고통쯤이야 아무것도 아닐 테지요.”
“아.”
“그 모든 이들의 고통에 비하면, 저 개인의 고통은 아주 일부분 아니겠습니까.”
지크는 선대 코랄 황제에 이어 테오도시우스에게까지 군주로서의 책임감을 느낄 수 있었다.
확실히 달랐다.
종족적인 특성 때문인지, 코랄 황제들의 마음가짐은 인간들과는 180도 달랐다.
자신의 종족을 위해 기꺼이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군주들인 것이다.
“폐하.”
테오도시우스가 지크에게 서류 뭉치를 하나 내밀었다.
“받으십시오.”
“이게·… 뭔가요?”
지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희 코랄 종족의 전투순양함을 제작할 수 있는 설계도입니다.”
그 순간.
“예?!”
지크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코랄 종족의 전투순양함은 성체 드래곤을 상대하는 게 가능할 정도로 강력한 전투력을 지닌 전략병기였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