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179
1178
콸콸콸!
부어지는 포션.
“크윽.”
지크는 햄찌가 생명력 포션을 들이부어 준 덕분에 겨우겨우 생명력을 회복하고, 사망을 피할 수 있었다.
햄찌가 단 1초라도 늦었다면, 생명력이 0이 되어 사망을 피하지 못했을 게 분명했다.
“뀨! 주인 놈아! 좀 괜찮냐! 뀨우!”
“안 괜찮아.”
지크는 일어나지 못했다.
겨우겨우 생명력을 회복하긴 했지만, 스태미나가 다 떨어져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었다.
“으으.”
지크는 괴로워하며 아공간 인벤토리에서 포션을 꺼내 벌컥벌컥 들이켰다.
“뀨우! 주인 놈아! 진짜 죽을 뻔한 거냐! 뀨우!”
“너 아니었으면 죽었어.”
“뀨! 주인 놈 햄찌가 지켜준다! 걱정 마라! 뀨우!”
“고맙다.”
하지만 지크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졌어.’
지크는 자신이 이건과의 대결에서 패배했음을 인정했다.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패배는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지크의 승리였다.
왜?
이건이 먼저 죽었으니까.
그러나 햄찌가 없었다면 지크도 이건을 뒤따라 죽었을 테니, 무승부라고 볼 수도 있었다.
‘압도당한 건 나야. 구단무적이 없었으면 내가 일방적으로 털리다가 죽었을 거야.’
지크는 자신이 이겼다고 정신 승리하지 않았다.
결과?
만족할 수 없었다.
‘다시 붙으면… 솔직히 이길 자신이 없어.’
지크가 이건을 완벽하게 이기기 위해서는 의 레벨이 훨씬 더 높이 올라가야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도 스킬 레벨을 올려서 더 적은 타격 횟수로 적을 즉사시킬 수 있어야 했다.
그리고….
‘흡성대법… 진짜 말도 안 되는 사기 스킬이야.’
지크는 이건이 가진 의 파훼법을 몰랐다.
의 파훼법을 찾기 전까지는 이건을 상대로 깔끔한 승리를 거두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모든 형태의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것으로도 모자라 스킬까지 흡수하고, 또 복사하기까지 하는 상대를 무슨 수로 압도한단 말인가?
게다가 천부적인 게임 재능을 지닌 천재를?
‘더 강해져야 돼.’
지크는 가 된 이후 사실상 첫 패배를 인정하고, 스스로를 더더욱 채찍질하기로 했다.
‘다음번에 싸울 때는 다를 거야. 두고 봐.’
그래도 이번 대결로 얻은 게 없지는 않았다.
우선 이건의 실력을 피부로 확실하게 느꼈고, 그가 어떠한 스킬을 사용하는지도 알았다.
‘주변에 적이든 아군이든 흡수할 만한 뭔가를 둬선 안 돼. 이 자식을 효율적으로 상대하려면 아무도 없는 데서 무조건 일대일로 싸워야 돼. 대규모 집단전은 더더욱 피해야 하고. 모든 걸 가리지 않고 흡수해서 강해질 테니까.’
지크는 생명력을 채우면서 이건과의 대결을 복기해보았다.
싸움이 끝나자마자 스스로를 되짚어보는 것이다.
지크는 녹화해둔 영상을 따로 추출해서 자신과 이건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패배의 원인을 분석해볼 생각이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생명력과 스태미나가 어느 정도 차올라서, 지크는 몸을 일으킬 수가 있었다.
“뭐야.”
지크는 아직 사라지지 않은 이건의 시체를 내려다보면서, 그가 랜덤드랍 아이템을 떨구지 않는 것에 놀랐다.
지크의 근처에서 죽으면 가지고 있는 가장 값비싼 아이템 3개를 떨구어야 정상이었는데, 이건은 예외였던 것이다.
‘사망 페널티를 극복하는 효과라도 있는 건가?’
이상한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검은 왜 부서져 있지?’
이건이 사용하던 대검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진 것도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건이 을 맞고 즉사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사용하던 검이 큰 충격을 받은 건 아니었다.
근데 산산조각으로 깨졌다?
‘내구도가 별로 없었나?’
의문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흡성대법이라는 게 가능하긴 한가? 서로 다른 성질의 에너지들을 마구잡이로 흡수했다간 마나홀이 버티지 못할 텐데?’
지크가 괜히 에너지 자원으로 근원력을 사용하는 게 아니었다.
서로 다른 성질의 에너지들은 계속해서 충돌하기 마련이었고, 그에 따라 마나홀에 엄청난 부담이 가는 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이건이 사용하는 은 그 법칙을 전면 부정하고 있었다.
지크가 가진 상식을 벗어난 것이다.
‘사부님께 여쭤봐야겠다.’
지크는 그렇게 생각하며 햄찌를 돌아보았다.
“가자. 마을 정리하러.”
“뀨! 알겠다!”
그렇게 지크와 이건의 첫 번째 대결은 시원한 결말 없이 무승부로 끝나게 되었다.
***
같은 시각.
“내가… 내가… 졌다고?”
죽음으로 인해 강제 로그아웃을 당한 이건은 캡슐 뚜껑을 열고 나오자마자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시종일관 지크를 압도하다가 으로 끝장내려던 순간에 말도 안 되는 스킬을 맞고 죽어버렸으니, 사기라도 당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얼떨떨함도 잠시.
“감히… 너 같은 하층민 따위가….”
이건의 입에서 분노 섞인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다음 순간.
콰앙!
이건이 옆에 있던 의자를 들어 캡슐을 내리쳤다.
쾅! 콰앙! 쾅!
이건은 진심으로 분노했다.
“이 개 같은! X발! X발! X바아아아아아아알!!!”
이건은 자신이 패배했다고 생각했다.
지크가 뒤따라 죽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먼저 죽은 건 사실이었기에 패배했다고 여긴 것이다.
물론 이건이 지크를 압박하며 압도하던 싸움이긴 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건이 바라던 건 누가 봐도 이겼다고 평가할 만한 깔끔한 승리였지, 이런 찝찝한 결과가 아니었던 것이다.
콰앙! 쾅!
미친 듯이 분노하던 이건은 자신이 사용하는 수십억 원짜리 캡슐을 의자로 부숴버리고 나서야 겨우 진정했다.
자신의 실력에 대해 엄청나게 프라이드가 높은 이건에게 있어 패배란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으므로, 그 분노가 이루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컸다.
그래서일까?
“한태성… 두고 봐라. 다음번에 만날 땐… 주제 파악을 아주 확실하게 시켜줄 테니까….”
지크에 대한 이건의 분노와 증오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이전까지는 약 올리고 가지고 노는 정도의 마음가짐이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달랐다.
지크가 이건의 자부심에 금이 가게 만든 이상, 장난기는 완전히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감히 천민 주제에… 철저히 짓밟고 망가뜨려 주마….”
이건은 지크의 얼굴을 떠올리며, 증오를 불태웠다.
각자 받아들이는 방식은 달랐지만, 지크나 이건이나 싸움의 결과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다음 대결에서는 깔끔한 승리를 거두리라고 다짐하며 투지를 불태우는 것만큼은 똑같았다.
***
태성은 이건과의 싸움 이후 잠시 게임을 접었다.
태성은 게임을 하지 않는 동안 녹화해둔 영상을 끊임없이 돌려보면서, 이건과 자신의 싸움을 되짚으며 분석했다.
이건과의 대결은 태성에게 많은 걸 가르쳐주었다.
게임 BNW의 진 주인공이 되면서 같은 게이머들 중에서는 적수가 없을 정도로 성장했다고 생각했던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건과 같은 천재와 겨뤄보니 그런 자만심은 사라지고, 더욱 노력해서 스스로를 갈고 닦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이번 대결은 게이머 한태성이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더욱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태성과는 다르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와. 진짜 이걸 한 끗 차이로 이기신 겁니까? 형님 진짜 대단하십니다.”
“한태성 너 진짜 대단하다? 니가 이건을 이겨?”
“대단해, 오빠.”
주변 사람들은 태성이 천재 게이머인 이건과의 대결에서 한 끗 차이로 승리했단 사실에 놀라워했다.
그만큼 이건이라는 이름값은 엄청나게 높은 거였다.
지난 10여 년 동안 그 누구에게도 패배를 용납하지 않았던 불패 신화에 비로소 흠집이 난 셈이었으니, 모두가 태성을 대단하다고 여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이건은 해당 영상을 자신의 지튜브 채널에 올리지 않았고, 또한 자신의 추종자들에게도 승패를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승패를 물어본 추종자들은 모두가 블랙을 먹어 두 번 다시 이건의 채널을 시청할 수 없게 되었다.
덕분에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핫이슈] 그 승자는? [V스포츠] 두 사람 모두 침묵… 왜??? [칼럼] 그날의 진실은 무엇인가?심지어 이 이슈에 대한 뉴스 기사들마저 각 포털사이트의 메인에 내걸렸을 정도였다.
– [김또깡] 난 당연히 형이 이겼을 거라고 생각함 ㅇㅇㅇ
– [SY P] 답변 좀….
– [jehyeon ahn] 형! 당연히 형이 이겼지?
– [Eun Nam Hwang] 누가 이겼어?
– [마지막빵떡] 설마 지진 않으셨죠???
태성의 지튜브 채널과 SNS 계정에도 승패를 궁금해 하는 댓글과 메시지가 수만 건이 날아들었다.
태성은 이건과 마찬가지로 침묵을 지켰다.
승패가 워낙 깔끔하지 못해서, 괜히 입을 열어 봤자 논란만 커질 뿐이었기 때문이다.
‘이건도 만족하지 못하겠지. 자기가 이겼다고도 생각하지 않는 거고. 그러니 지튜브 채널에 영상도 안 올리고 조용한 거고.’
태성은 이건도 자신과 엇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침묵을 지키기로 했다.
태성과 이건 두 사람 모두 이 싸움의 결과에 대해서 만족할 수 없었고, 또한 밝혀서 얻을 게 아무것도 없었기에 암묵적인 합의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렇게 전 세계의 게임 팬들이 궁금함에 미쳐갈 무렵.
“가자, 설화야.”
“응, 오빠.”
태성은 용설화와 함께 공항으로 향했다.
머리도 식힐 겸 코랄 행성에서의 여정이 끝나면 유럽 여행을 가자던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그렇게 공항에 도착해서 탑승 수속을 마치고, 태성의 개인 소유인 전용기에 몸을 실으려던 때였다.
“설화야.”
태성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용설화에게 물었다.
“너 그런데 집에 말은 하고 왔어? 생각해 보니까 그걸 못 물어봤네. 2주면 긴 시간인데. 아무리 여행을 가는 거라고는 해도, 부모님이 걱정 안 하셔?”
“걱정 마.”
용설화가 미소를 지었다.
“잘 이야기해두고 왔으니까. 부모님도 허락해주셨어.”
“정말?”
“응.”
“그렇다면 다행이긴 한데….”
태성은 왠지 용설화가 거짓말을 한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야 이 도둑놈아!!! 내 딸을 데리고 어딜 가는 거냐!!! 못 보내!!! 절대로 못 보내!!! 외박은 단 하루도 안 된단 말이다!!!’
생각해 보니 딸바보로 유명한 용태풍이 용설화가 2주 동안 집을 비운다는데 허락해줄 리가 없었다.
그것도 동성 친구들이 아닌 남자친구라면?
‘허락 안 받고 그냥 나온 거 아냐?’
태성이 미심쩍어서 용설화를 힐끔 쳐다볼 때였다.
“자, 잠깐! 내 딸이 저 안쪽에 있다고 몇 번을 말해야 합니까! 표 사겠습니다! 산다고요! 그러니까 좀 들여보내 주십시오!”
저 멀리 탑승 수속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태성이 용설화를 돌아보았다.
“서, 설화야? 저 목소리… 왠지 익숙한 거 같은데?”
“아니야.”
용설화가 딱 잘라 말했다.
“기분 탓이야, 오빠. 기분 탓.”
“으응?”
“어서 가자.”
“아니, 그게 아니라… 왠지 아버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기분 탓이래도.”
용설화가 태성의 손을 잡아끌었다.
“가자, 얼른.”
“진짜 아버님 목소리 같았는데….”
“아니야.”
용설화는 그렇게 말하고는 태성을 질질 끌고 전용기에 탑승해버렸다.
“빨리 이륙해주세요, 빨리.”
그리고는 기장에게 빠른 출발을 요구했다.
덕분에 태성과 용설화가 탄 전용기는 서둘러 출발했고, 이내 곧 유럽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