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18
117
“본좌가 네 녀석이 데리고 온 애송이를 고치는 동안 네 녀석은 돌쇠랑 놀고 있도록 하여라.”
사부가 지크에게 말했다.
“예, 사부님. 그런데 돌쇠가 누굽니까?”
“누구긴. 주제 파악도 못 하는 주제에 감히 본좌의 제자에게 군침을 흘린 놈이지.”
사부가 피식, 하고 코웃음을 흘렸다.
“내 죗값은 톡톡히 치러 주었으니, 앞으로는 그딴 개소리를 입에 올리지 못할 것이다.”
“아, 알겠습니다….”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무인이자 오성천의 일원인 도제 베텔규스가 한낱 ‘돌쇠’로 불리는 곳, 그곳이 바로 사부가 사는 오두막이었다.
“돌쇠는 나무를 하러 갔으니, 아마 곧 돌아올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거기 돌팔이 녀석아.”
사부가 지크와 함께 온 군의관 에런 대위를 불렀다.
“아, 옛!! 어르신!!”
지크가 없는 사이 사부에게 호되게 당했는지, 눈탱이가 밤탱이가 된 에런 대위가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뭔가 사부의 심기를 거스르는 행동을 저지른 후 정신 교육을 받은 게 분명했다.
“네 녀석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으니 수술 도구를 챙겨서 들어오도록 해라. 알겠느냐?”
“예!!”
군의관답지 않게 군기가 바짝 든 에런 대위였다.
“그런데 사부님. 저와 함께 온 여성 모험가는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떠났다.”
“예?”
“갑자기 바쁜 일이 있다면서 급히 떠나더구나. 네 녀석에게는 따로 안부를 전하겠다고 했다.”
“아….”
“왜, 아쉬우냐?”
“인사라도 나눴으면 하는 마음에….”
“계집질할 생각에 수련이나 더하여라.”
“아,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시끄럽다. 본좌는 네 녀석이 데려온 애송이나 고칠 터이니, 가서 돌쇠랑 놀도록 해라. 가자, 돌팔아.”
그렇게 말한 사부는 지크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에런 대위를 데리고 오두막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사부님은 내가 고스란 님과 알고 지내는 게 싫으신 건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든 지크였다.
***
사부가 에런 대위와 함께 카렐을 치료하러 들어간 지 10분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어? 영감님!”
지크가 저 멀리서 지게를 지고 오는 베텔규스를 발견하고는 꾸벅 인사했다.
그런데.
“아이고, 도련님!”
베텔규스가 황급히 지크를 뜯어말렸다.
“어딜 몸종 따위에게 허리를 숙이십니까요? 아니 될 일입니다요!”
“예? 몸종이요?”
“그, 그것이….”
베텔규스가 잔뜩 일그러진, 당장에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얼굴로 작게 속삭였다.
“소인이 어르신의 몸종이 된 지라….”
“…….”
“그러니 도련님께서는 앞으로 소인에게 돌쇠라고 하대를 하시면 됩니다. 하하하….”
말년에는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란 말이 있듯, 시비 한번 잘못 붙었다가 말년에 인생이 제대로 꼬여버린 베텔규스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제가 어떻게 130살짜리 영감님께 돌쇠라고 하대를 합니까?”
“그러셔야 합니다!”
“……!”
“저 좀 살려주십쇼. 소인도 이 나이에 어디 그러고 싶겠습니까요?”
“그, 그건 그렇지만….”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도련님.”
결국, 지크는 그 후로도 한참의 실랑이 끝에 베텔규스에게 ‘돌쇠’라고 부르지만 하대는 하지 않는 것으로 합의를 보게 되었다.
“도련님.”
“예, 돌쇠 어르신.”
“어르신께서 다른 건 몰라도 소인이 가진 기술 중 딱 하나만은 도련님께 가르쳐도 된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한번 배워 보시겠습니까?”
“예? 기술을요?”
“예, 도련님.”
“사부님께서 허락하셨으면 당연히 배워야죠.”
“오! 그럼 소인의 비기를 가르쳐 드리겠습니다요.”
그렇게 지크는 사부의 허락하에 도제 베텔규스의 비기를 배우게 되었다.
“소인이 도련님께 가르칠 기술은 딱 한 가지, 발도술입니다요.”
발도술.
도(刀)를 칼집에서 빠르게 뽑아 적을 일격에 베어버리는 형태의 기술이었다.
“기술 이름은 ‘단칼’이라고 하는데, 아주 간단합니다요. 그저 칼집에서 칼을 빠르게 뽑아 휘두르기만 하면 그게 다입지요. 아, 물론 샤키로라는 녀석이 가진 메긴기요르드라는 마법의 벨트가 있다면 더욱 빠른….”
“이거 말입니까?”
“그, 그걸 어떻게 도련님께서 가지고 계십니까요?”
“그게….”
지크가 샤키로와의 인연에 대해 베텔규스에게 설명해 주었다.
“허허. 샤키로 그 애송이 놈이 그렇게 갈 줄은 몰랐거늘… 나를 빼면 대륙에서 가장 도를 잘 다루는 녀석이었는데….”
샤키로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은 베텔규스가 안타깝다는 듯 탄식했다.
“그래도 녀석의 비기가 도련님께 전해졌으니, 녀석도 그리 원통해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요.”
“부디 그러기를 빕니다.”
“그럼, 지금부터 소인의 비기를 가르쳐 드리겠습니다요.”
베텔규스가 거대한 도를 뽑아들고는 지크에게 자신이 가진 최고의 비기인 스킬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
그날 저녁.
도제 베텔규스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은 지크는 다시 사부와 마주했다.
“다 고쳤다.”
“역시!”
“하지만 녀석의 정신이 깨어나려거든 최소한 2주는 있어야 하고, 몸이 완전히 회복되려거든 적어도 3개월은 필요할 것이니라.”
“그 정도면 되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사부님. 절 받으십시오.”
지크가 사부를 향해 넙죽 절했다.
“껄껄! 뭘 이 정도 가지고! 하나밖에 없는 제자 녀석의 부탁이거늘! 껄껄껄! 그래, 돌쇠 녀석이랑은 잘 놀았느냐?”
“잘 놀았습니다.”
“그 녀석이 약하긴 해도, 딱 그 기술 하나만큼은 그럭저럭 쓸 만하더구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사부님.”
“배려는 무슨. 쓸 만한 게 있으니 그런 것이지. 자, 그럼 이제부터 내 하나밖에 없는 제자의 모험담이나 들어보자꾸나.”
“예!”
그렇게 지크는 사부의 술 시중을 들며 하산 이후 있었던 일들에 대해 아주 상세하게 고해바쳤다.
“네깟 놈이 왕이 되었다고? 허허! 세상은 요지경이로다!”
“천우진이라는 녀석 말이냐? 그 녀석은 고대 비밀 결사의 최종 병기 정도로 설명할 수 있는 놈이다. 그래 봤자 결국에는 네가 이길 테니 기죽을 필요 없느니라.”
“만천화우라. 고대의 기술이지. 돌쇠 놈의 단칼보다 더욱 우월한 기술이니 부지런히 수련토록 하여라.”
“옳거니. 널 괴롭히던 놈의 부하들을 두들겨 팼다, 이 말이렷다?”
사부는 밤새도록 지크의 이야기를 들어가며 즐거워했고, 지크 역시 그런 사부의 반응을 보며 흥겹게 이야기를 이어 나가며 사제지간의 정을 나누었다.
따뜻한 밤이었다.
***
그로부터 일주일 후.
“거침없이 나아가거라, 알겠느냐?”
“예, 사부님.”
지크는 오래간만에 사부로부터 약간의 가르침을 받은 뒤 하산하게 되었다.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앞으로 가야 할 길이 구만리였기에 짧게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애송이 녀석은 곧 깨어날 것이고, 돌쇠 녀석은…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면 하산시키도록 할 터이니 그리 걱정 말도록 하여라. 아, 그리고 말이다. 종종 안부라도 전하도록 해라. 감감무소식이니 영 궁금하지 뭐냐.”
“하하! 앞으로는 꼭 안부 제때 여쭙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어디로 갈 생각이냐?”
“다시 제가 다스리는 영토로 복귀하려고 합니다.”
“좋다. 본좌가 보내주도록 하마.”
사부가 지크를 밀쳤다.
***
“오셨습니까.”
프로아 왕국으로 귀환한 지크를 가장 먼저 맞이한 사람은 근위 기사단의 단장이자 지크의 첫 번째 기사인 오스칼이었다.
“아, 오스칼 경.”
“여정은 편안하셨는지요.”
“딱히 힘든 일은 없었네요. 잘 지냈어요?”
지크가 어전으로 걸음을 옮기며 오스칼에게 물었다.
“특별할 일은 없었습니다. 미켈레 공이 여러모로 고생을 하고 있긴 합니다만….”
“밥값을 확실히 하고 있단 소리네요.”
“예, 전하.”
“좋네요. 두 시간 있다 어전 회의를 열 테니, 그리 이르세요.”
그렇게 지크의 복귀 이후 첫 어전 회의가 열렸다.
하지만 호기롭게 선언한 어전 회의는 그리 순탄치가 않았다.
“이에 본국은 함선과 비행선에 투자하고, 육군은 수를 줄이되 질적 향상을 꾀함으로써… 전하, 전하?”
“…….”
“전하, 주무십니까?”
미켈레가 여러 차례 불렀음에도, 드래곤의 두개골로 만든 왕좌에 앉은 지크는 고개를 푹 떨군 채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뀨우… 해바라기 씨… 먹고 시푸다… 뀨우우우….”
햄찌 역시 그런 지크의 발치에 웅크린 채 잠꼬대를 해대고 있었다.
“전하!”
결국, 보다 못한 오스칼이 지크를 향해 언성을 높였다.
“예?!”
지크가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었다.
“지금은 어전 회의 중입니다! 어찌 수면을 취하시는 겁니까! 수면은 부디 자중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차차.”
“부디 체통을 지켜 주시기를….”
“노, 노력하겠습니다.”
…라고 말은 했지만, 신하들의 보고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지크는 더더욱 깊은 수면의 늪에 빠져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으으. 눈이 감긴다. 버틸 수가 없어. 누가 퀘스트라도 툭 던져줬으면 좋겠다.’
바로 그때였다.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온 것은.
“전하! 천우진이라는 모험가가 전하를 뵙기를 청해 왔사옵니다.”
시종장이 지크에게 고했다.
“그래요?!”
잠이 확 달아난 지크가 옥좌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서 들어오라고 해주세요! 아, 어전 회의는 부득이하게 일찍 종료하겠습니다. 미처 받지 못한 보고는….”
지크의 눈길이 대소신료들을 훑었다.
“미켈레 공과 오스칼 경에게 각각 나누어서 하시길 바랍니다. 흠흠.”
그런 지크의 명령에 미켈레와 오스칼의 표정은 각각 ‘휴. 못 말리겠군.’과 ‘제발 업무에 집중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였다.
***
“어서 와라.”
지크가 천우진을 반겼다.
“너 진짜 반갑다, 야.”
“뭐야. 갑자기 왜 이래?”
천우진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게 있다.”
“꼭 수업 끝난 고등학생 같은 표정인데?”
“티 나냐?”
“완전 티 난다.”
“왕 노릇이 딱히 적성에 안 맞나 보지, 뭐.”
“너 학생 때 공부 못했지?”
“닥쳐.”
“못했네, 못했어.”
“왜 왔냐? 퀘스트라도 주려고 온 거냐?”
지크가 화제를 돌렸다.
‘아픈 데 찌르고 지랄이야.’
학창시절 공부를 별로 잘하지 못했던 게 그리 자랑은 아니지 않은가.
“그래, 퀘스트 좀 주려고 왔다. 제발 전화 좀 받아라. 몇 통을 했는데 한 통도 안 받냐?”
“원래 폰 잘 안 본다.”
“친구 없다고 광고하냐?”
“싸우자는 거냐?”
티격태격.
동갑내기답게, 어느새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고 헐뜯는 관계가 된 지크와 천우진이었다.
“그래서 뭔 퀘스트를 주려고 귀한 걸음을 하셨나, 우리 졸부님?”
“자꾸 빈정대면 나 그냥 간다?”
“가든가.”
이미 어전 회의란 위기를 극복한 지크는 천우진의 이용 가치는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도 딱히 시킬 사람 없어서 온 거면서 센 척은. 아쉬운 소리 하러 온 주제에 배짱 튕기지 마라.”
“어, 어떻게 알았냐?”
천우진이 당황했다.
“니 주변에 고레벨 랭커 많다며? 근데 날 찾은 거면 그 자식들이 바쁘단 소리겠지.”
“으음….”
“뭔데, 말해 봐.”
“그게… 북쪽 해안가에 마사바라는 항구 도시가 있는데, 요즘 그쪽에 해적들이 자주 출몰해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네가 가서 해결 좀 해줘라.”
그렇게 말한 천우진이 지크의 눈앞에 퀘스트에 대한 내용을 띄워 올렸다.
[알림 : 퀘스트 메이커 이 당신에게 퀘스트를 부여합니다!]퀘스트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소란스러운 북쪽 해안가]•분류 : 스페셜 퀘스트
북쪽 해안가의 항구 도시 를 침공해오는 해적들을 소탕하고, 지역 일대의 치안을 안정시켜라.
•진행률 : 0%
•보상 :
– 아우토니카 공방 랜덤 박스 × 10
딱히 어려울 건 없어 보이는 퀘스트였다.
천우진이 지크에게 물었다.
“할래, 말래?”
지크가 대답했다.
“안 해.”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