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2
011
“뭐야!”
멋모르고 지크의 뒤를 쫓아온 앙투아네트는 목적지가 막다른 골목이라는 것에 무척이나 실망했다.
“이게 뭐예욧!!”
앙투아네트가 지크를 향해 빽! 하고 소리쳤다.
“그냥 죽자는 거예요? 네? 하필 도망쳐도….”
지크는 앙투아네트의 투덜거림에 대답하지 않았다.
두두두두두!!
변이 들소 무리가 코앞까지 닥쳐온 상황이었다.
‘장판부터.’
지크가 재빨리 필멸의 진을 전개했다.
우웅!
지크를 중심으로 선홍색 오라가 뿜어져 나와 적들의 방어력을 깎는 디버프 필드가 생성되었다.
– 무어어어!
그때, 변이 들소 한 마리가 지크를 노리고 덤벼들었다.
‘피하고.’
지크가 놀라운 반사 신경을 발휘, 그 공격을 피했다.
콰앙!
박치기에 실패한 변이 들소가 지크가 등지고 있던 언덕 벽면을 들이받았다.
‘반격.’
지크가 그런 변이 들소의 머리통을 향해 강타 스킬을 휘둘렀다.
데미지를 확인할 시간은 없었다.
– 무어어어!
다른 변이 들소가 공격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긴 좁다. 한 번에 두 마리 이상은 못 덤벼들어. 맘 편히 싸울 수 있다.’
이런 좁은 곳에서 머릿수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 지크는 변이 들소 무리가 두렵지 않았다.
‘피하고, 반격하고.’
지크가 두 번째 변이 들소의 공격을 피한 뒤 곤봉을 휘둘렀다.
[95 Attack Damage!]역시나 95의 데미지가 박혔다.
‘딜 로스 보소.’
지크는 데미지의 공백을 느꼈다.
변이 들소의 체력이 1300.
매번 크리티컬이 터진다고 해도, 강타 스킬 없이는 최대 142.5의 데미지밖에 기대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열 방을 때려야만 변이 들소 한 마리를 처치할 수 있는 수치였다.
‘어느 세월에? 팔 빠지겠네.’
변이 들소의 숫자가 어림잡아 30마리는 넘어 보였다.
이 전투를 계속하다간 스태미나(체력)가 떨어져 전투 불능에 빠질 가능성이 높았다.
‘쇠약으로 놈들 체력을 깎자.’
지크는 광역 스킬인 쇠약의 진을 떠올렸다.
우웅!
지크가 쇠약의 진을 전개했다.
[5 True Damage!] [5 True Damage!] [5 True Damage!]쇠약의 진이 변이 들소들의 생명력을 초당 5씩 깎기 시작했다.
‘좋아.’
지크는 쇠약의 진을 통해 변이 들소들의 체력을 깎는 한편, 적절한 회피와 반격을 통해 차근차근 전투를 수행해 나갔다.
‘필멸의 진 레벨이 더 오르면 폭렙도 가능하겠는데? 필멸의 진만 깔아도 잡몹들은 평타 한두 방에 정리될 테니까.’
촉이 왔다.
어떻게 플레이해야 디버프 마스터라는 클래스를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지 감이 잡혔다.
[최강자란 곧 공간을 지배하는 자를 의미하느니. 너를 중심으로 차근차근 공간을 장악해 나가다 보면, 전장 전체를 손아귀에 쥐고 흔들 수가 있게 될 것이니라.]사부의 가르침이 지크의 뇌리를 스쳤다.
99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알짜배기는커녕, 지독한 갈굼과 인격 모독, 그리고 대련을 빙자한 구타만을 일삼았던 사부였다.
그런데 아니었다.
알고 보니, 사부는 충실하게 자신의 가르침을 지크에게 주입시키고 있었다.
무심하게 툭 내뱉는 말이 하나도 버릴 게 없는 주옥과도 같은 명언들이었던 것이다.
‘사부님의 말씀이 옳아. 디버프 마스터는 공간을 지배하는 자야. 그리고 지금 이 장소는 내가 지배하고 있고.’
지크는 사부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변이 들소들과의 전투를 이끌어 나갔다.
전투는 지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변이 들소들은 좁은 곳에서 전혀 힘을 쓰지 못했고, 지크는 물 만난 고기처럼 곤봉을 휘둘러대며 차근차근 적들을 쓰러뜨렸다.
그런데….
[변이 들소 처치에 성공하셨습니다!] [경험치 +180] [변이 들소 처치에 성공하셨습니다!] [경험치 +180] [변이 들소 처치에 성공하셨습니다!] [경험치 +180]경험치가 온전히 들어오지 않았다.
변이 들소가 주는 경험치는 200.
그런데 180의 경험치가 들어오고 있었다.
10퍼센트의 경험치 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
“꺅, 꺄아아악!”
범인은 지크의 곁에서 막대기를 휘두르고 있는 여자였다.
“저리가! 저리 가란 말야!!”
용케도 변이 들소들의 공격을 피해내며 생존해 있는 앙투아네트.
그녀가 지크의 경험치를 갉아먹고 있었다.
쥐꼬리나마 전투에 참여하고 있었기에, 파티 플레이를 하는 것과 동일하게 경험치를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앙투아네트 님께서 변이 들소 처치에 성공하셨습니다!] [경험치 +180]지크가 다 잡아놓아 딸피가 된 변이 들소를 때려눕히기까지 했다.
‘…장난하나.’
지크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무임승차 보소?’
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었다.
변이 들소 떼를 끌고 와 지크를 위험에 빠뜨린 주제에 은근슬쩍 버스를 타다니….
“거기요!”
지크가 앙투아네트를 향해 소리쳤다.
“네?”
“좀 가주실래요? 경험치 훔쳐 먹지 말고?”
“경험치를 훔쳐 먹어요? 내가 언제요?”
앙투아네트가 그게 무슨 개소리냐는 듯 되물었다.
“아니, 같이 싸우고 있는데 이게 훔쳐 먹는 걸로 보이세요?”
“네.”
“뭐라고요?”
“하는 것도 없으면서 같이 싸우긴 뭘 같이 싸워요? 경험치 훔쳐 먹지 말고 좀 가주시죠? 방해만 되니까.”
지크의 말은 사실이었다.
앙투아네트는 들소 떼를 끌고 온 것 외엔 아무것도 한 일이 없었으니까.
“아, 진짜!”
그때, 앙투아네트가 빽! 하고 소리쳤다.
“남자가 쪼잔하게!”
“뭐요?”
“같이 좀 먹으면 뭐가 어때서! 이 치사빵꾸야!”
“…….”
“좀 도와주고 그러면 어디가 덧나냐? 어? 경험치 깎이면 얼마나 깎인다고?”
그 순간.
‘이거 안 되겠네.’
지크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
현재 지크는 경험치에 무척이나 민감한 상태였다.
현실에서의 빚.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고레벨 던전을 누비며 성장하고 있을 그의 적들을 생각하면 1분 1초가 아까웠고, 단 1의 경험치도 아쉬운 상황이었다.
그런 지크에게 무임승차를 한다는 건, 안 그래도 바쁜 사람의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일밖엔 되지 않았다.
‘뿔이랑 가죽도 나눠 달라고 할 테지.’
무일푼인 지크에게 변이 들소의 뿔과 가죽은 훌륭한 골드 공급원이었다.
지크는 단 한 개의 뿔과 한 개의 가죽도 나누어줄 생각이 없었다.
꽈악!
지크가 손에 쥔 곤봉을 세게 움켜쥐었다.
앙투아네트는 쥐새끼처럼 그의 경험치를 갉아먹고 있었고, 사냥이 끝난 후에는 변이 들소의 뿔과 가죽을 탐할 잠재적 약탈자였다.
그렇다면?
빠악!
지크의 곤봉이 앙투아네트의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앙투아네트를 죽이면 업보가 오를 테지만, 상관없었다.
업보는 죽인 대상의 명성과 영향력에 비례해서 상승하는 것, 고작 9레벨의 초보 유저 하나를 죽여 봤자 심각한 사태가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었다.
목격자도 없었고.
“꺅!”
앙투아네트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지, 지금… 뭐 하는 짓….”
“쥐새끼를 잡고 있지.”
“쥐…?”
“내 곳간을 터는 쥐새끼를.”
“지금 나더러… 쥐새끼라는 거야…?”
“쥐새끼지. 0.1인분도 못하는 주제에 경험치를 약탈하는 쥐새끼.”
“야 이 미친놈….”
지크는 그런 앙투아네트의 악다구니에 대꾸하지 않았다.
퍽, 퍼억!
대신에 기계적으로 곤봉을 휘둘러 그녀를 내리쳤을 뿐….
***
앙투아네트의 생명력이 0이 되자 지크의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플레이어 를 처치하셨습니다!] [경험치 +120] [업보가 +1 상승하셨습니다!]120의 경험치.
변이 들소 한 마리보다 못한 수치였지만, 여태 손해 본 경험치를 메꾸기엔 충분한 수치였다.
고작 1 오른 업보는 신경 쓸 가치조차 없었다.
“좋네.”
쥐새끼를 제거한 지크가 냉랭한 미소를 피워 올렸다.
자신의 앞길을 막는 자들에게는 오직 죽음만을 선사하겠다는 강철 같은 의지가 서려 있는 냉소였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지크는 변이 들소 떼와의 전투를 통해 세 번의 레벨 업을 했고, 5레벨에 도달할 수 있었다.
“당분간 근력에 올인. 강타랑 필멸은 일대일 비율로. 쇠약은 조금만.”
지크는 사부의 가르침대로 스킬 포인트를 찍은 뒤 곧바로 변이 들소들의 뿔과 가죽을 하나도 빠짐없이 채취하기 시작했다.
근면, 성실하게.
***
“자, 자네….”
용병 길드 창구 직원인 제리코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 새내기가 맞는 건가?”
“예, 뭐….”
“허… 혼자서 이걸 다 잡았다고?”
“보시다시피.”
“맙소사….”
제리코가 본 지크는 도저히 새내기 같지 않았다.
지크가 가져온 변이 들소들의 뿔과 가죽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아직도 시뻘건 피가 뚝뚝 묻어 나오는 전리품들이….
“허. 자네 정말 보통내기가 아닌 모양이군. 실력이 상당해. 저쪽 세상에서도 한가락 했던 실력자였던 모양이지?”
NPC인 제리코가 말하는 ‘저쪽 세상’이란 현실, 즉 지구를 뜻했다.
“편하신 대로 생각하시죠.”
“으음.”
“여하튼, 자격 심사는….”
“당연히 합격일세!”
제리코가 두말하면 입 아프다는 듯 대답했다.
“여기서 잠시 기다리게. 내 곧 면허증을 발급해올 터이니.”
10분 후.
“자, 여기 있네.”
“감사합니다.”
지크는 용병 길드로부터 정식으로 의뢰를 받을 수 있는 라이센스를 취득할 수 있었다.
[용병 길드 라이센스]•이름 : 지크프리트
•출신 : 이세계 (모험가)
•등급 : 브론즈Ⅰ
•클래스 : 노 클래스 (No class)
위 모험가는 뉘르부르크 대륙 용병 길드로부터 엄격한 심사와 검증을 받은 모험가임을 증명함.
– 뉘르부르크 대륙 용병 길드 비어만 영지 지부장 (인)
그런데 자격증에 적힌 내용에는 오류가 몇 개 존재했다.
첫째는 지크가 노 클래스라는 것이었고, 둘째는 모험가 등급이 브론즈Ⅰ 티어라는 것이 그랬다.
용병 길드의 등급은 브론즈–아이언–실버–골드–플래티넘–다이아몬드–마스터–그랜드마스터로 총 여덟 개가 존재했고, 같은 티어에서도 Ⅲ, Ⅱ, Ⅰ 세 등급으로 나뉘었다.
“티어가 왜 브론즈Ⅰ입니까? 보통 Ⅲ부터 시작할 텐데요.”
NPC인 제리코에게는 플레이어들만의 전유물인 ‘통찰의 룬’이 없었으므로, 지크의 클래스를 알아보는 게 불가능했다.
하지만 라이센스 등급이 브론즈Ⅰ로 시작한다는 건 명백한 오류였다.
“그거야 당연하질 않은가.”
“예?”
“자네가 올린 전공을 보게.”
제리코가 변이 들소들의 뿔과 가죽을 가리켰다.
“이제 갓 모험을 시작한 주제에 변이 들소를 무려 27마리나 잡아 오질 않았나? 그런 자네에게 브론즈Ⅲ 등급을 줄 수는 없지. 암, 그렇고말고.”
“음….”
“우리 용병 길드에서는 앞날이 기대되는 이들에게 후한 대우를 보장한다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앞으로 잘 부탁함세! 훗날 대륙을 뒤흔드는 영웅이 된다면 우리 비어만 지부를 잊지 말게나!”
“하하….”
제리코의 호의에 지크가 쓴웃음을 지었다.
‘대우가 다르구나.’
과거에 이런 대우를 받아본 기억이 없었다.
그런데 디버프 마스터가 되고 나니 라이센스를 취득하는 것조차 너무나 손쉬웠다.
원칙대로라면 브론즈Ⅲ 티어부터 차근차근 심사를 봐야 했을 텐데 말이다.
‘역시 사람은 능력이 있고 봐야 해.’
지크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새삼스레 깨달으며 라이센스를 받아들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