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206
1205
‘넌 아주 고통스럽게 죽일 거다.’
지크는 플레이그를 특별 대우해 줄 생각이었다.
플레이그가 일으킨 역병 사태로 프로아 제국의 백성들이 2만 명 가까이 죽었으니, 그 대가를 아주 혹독하게 치르게 해주려는 것이다.
“하룻강아지 같은 놈.”
플레이그는 지크가 얼마나 화났는지도 모른 채 오히려 자신의 강함을 과시하는 듯했다.
“그냥 모른 척 넘어갔으면 목숨이라고 건졌을 것을.”
“누가? 내가? 풉.”
지크가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피식 코웃음을 쳤다.
“말이 되는 소릴 해야 뭔 대꾸라도 하지.”
“큭큭큭.”
플레이그가 웃었다.
“곧 제발 죽여 달라고 빌게 될 것이다, 어리석은 필멸자여.”
“누가 그렇게 될지는 두고 보면 알겠지.”
지크가 어깨를 으쓱하며 여유를 부렸다.
그도 그럴 것이, 지크는 플레이그가 전혀 두렵지 않았다.
플레이그의 주력 스킬은 다양한 바이러스를 활용한 공격일 게 뻔했다.
하지만 지크는 의 육체를 이룬 상태였기에, 그런 플레이그의 그 어떤 공격에도 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렇다면, 오직 피지컬을 이용한 싸움이 될 터.
지크는 모든 스킬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반면, 플레이그는 주력 스킬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이쯤 되면, 붙어보지 않아도 지크의 압도적인 승리가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네놈에게 끔찍한 죽음을 선사해주마.”
플레이그가 호기롭게 말하며, 시커먼 기류를 뿜어내었다.
무시무시한 흑사병 바이러스가 가득한 안개를 뿜어내어 지크를 감염시키려는 것이다.
스으으!
그렇게 시커먼 기류가 지크를 휘감았다.
“으. 냄새.”
지크는 시커먼 기류에 담긴 퀴퀴한 비린내에 눈살을 찌푸렸다.
이럴 거면 냄새라도 막게 마스크를 쓸 걸, 뒤늦게 후회가 되었다.
“큭큭큭. 네놈은 곧 고통에 몸부림치며, 내 앞에 무릎을 꿇게 될 것이다.”
플레이그는 지크가 감염되었다고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플레이그가 뿌리는 바이러스는 과거 천족들조차 감염되었던 무시무시한 흑사병으로써, 최소한 대천사 정도가 아니라면 저항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플레이그의 예상이 깨지는 데에는 불과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음?’
플레이그는 흑사병 바이러스를 뿜어낸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지크가 쓰러지지 않자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면 쓰러질 때가 됐는데….’
다른 적 같았으면 벌써 피를 뿜어내면서 온몸이 시커멓게 썩어들어가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지크는 무슨 일 있냐는 듯 코를 후비적거리며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좀 강한 놈이라 시간이 걸리는 건가?’
플레이그는 살짝 초조해하면서, 지크가 바이러스에 감염돼 쓰러지길 기다렸다.
하지만 조금 더 시간이 흘렀음에도, 지크는 쓰러지기는커녕 저 멀리 있는 햄찌와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야. 햄찌야. 오늘 끝나고 어디 갈까.”
“뀨! 고대던전이나 돌자! 뀨우!”
“그럴까?”
플레이그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
순간 플레이그는 너무나도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었다.
‘설마 내 바이러스가 통하지 않는 건가?’
그때였다.
“야.”
지크가 플레이그를 향해 넌지시 말을 걸었다.
“뭐 더 없냐?”
“더, 더 없냐고?”
“설마 이게 다야? 어휴.”
지크가 손짓으로 시커먼 기류를 휙휙! 부채질하며 플레이그를 향해 물었다.
“다, 당연히 다가 아니다!”
플레이그는 그렇게 소리치고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바이러스들 중 매우 강력한 것들을 연속적으로 쏟아내어 지크를 공격했다.
[알림: 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알림: 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알림: 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중략).
[알림: 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그럴 때마다 지크의 눈앞에는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단 내용의 메시지가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게 지크가 가진 최대의 장점 중 하나였다.
지크는 마법사 계열 클래스들에게도 천적이었지만, 이렇듯 독이나 바이러스 등의 생화학 공격을 사용하는 클래스들에게도 천적이었다.
마법사들은 지크 앞에서 스킬을 못 쓰고, 생화학 공격을 사용하는 이들은 스킬은 쓸 수 있더라도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했던 것이다.
“마, 말도 안 돼!”
플레이그는 자신의 공격이 하나도 먹혀들지 않자 경악에 찬 비명을 토해내었다.
고대에 온갖 바이러스를 뿌리고 다니며 단기간에 엄청난 인명 피해를 일으켰던 플레이그였지만, 지크에게는 조금 기분 나쁜 연기를 뿌리는 허수아비에 불과했던 것이다.
“밑천이 다 드러난 모양인데.”
지크가 을 빼 들었다.
“할 거 다 했으면, 이제 맞아야지?”
지크가 플레이그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
한편, 천우진은 인공위성을 통해 뉘르부르크 대륙을 관찰하다가 또다시 특이사항을 발견했다.
“뭐지?”
천우진은 마우레키온 제국의 영토 끝자락에 자리한 에 대규모 인원이 모이는 걸 발견하고, 그곳을 집중적으로 감시했다.
그 결과.
“이 미친놈들….”
천우진은 마우레키온 제국의 의도를 알아채고, 기가 차 혀를 내둘렀다.
수만 명의 마법사들이 에 모여 대규모 마법진을 건설하고, 마우레키온 제국의 공병들이 대규모 토목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딱 보아하니 화산을 인위적으로 폭발시킨 후 용암과 화산재가 프로아 제국 쪽으로 흘러가도록 만들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한태성. 넌 진짜 나한테 밥 거하게 사야 돼.”
천우진은 즉시 스킬을 사용해 지크의 위치를 파악하고, 그곳으로 이동했다.
이 사실을 지크에게 알려줘서 프로아 제국이 마우레키온 제국의 테러에 대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것이다.
***
“…또 누굴 패고 있는 거냐.”
지크가 있는 곳으로 현신한 천우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광경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와보니, 지크가 웬 악마 같은 걸 신나게 두들겨 패는 중이었다.
아예 무기도 내려놓고 맨손으로 패고 있는 걸 보면, 상대방을 죽이기보다는 분풀이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게 분명했다.
“뀨! 천우진 왔냐!”
사건 현장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있던 햄찌가 천우진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쟤 또 왜 저러냐?”
천우진이 햄찌에게 물었다.
“뀨! 주인 놈 지금 참교육하는 중이다!”
“으응?”
“저 악마가 사고 쳤다! 그래서 주인 놈이 응징하는 중이다! 뀨!”
햄찌가 천우진에게 그간의 자초지종을 설명해주었다.
“아, 그래? 열 받을 만했네.”
천우진은 얘기를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크의 심정을 이해했다.
천우진은 지크가 백성들을 매우 아낀단 사실을 잘 알았다.
그래서 지크가 이번 전염병 사태를 일으킨 플레이그를 얼마나 증오하는지도 이해했다.
“넌 좀 어떻게 지내냐?”
“뀨! 햄찌도 요즘 주인 놈 따라다니느라 정신없다!”
천우진은 지크가 분풀이를 마칠 때까지 햄찌와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넌 곱게 안 죽일 줄 알아.”
“으악! 제, 제발… 으아아아아악!”
플레이그는 천계의 감옥인 에 붙잡혀있던 악마답지 않게, 무참히 두들겨 맞으며 고통스러워했다.
지크가 죽이지는 않고 계속해서 패고, 패고, 또 패는 바람에 죽지도 못한 채 얻어맞기만 해야 했던 것이다.
심지어, 거의 3시간 동안이나….
“야! 한태성! 거 그만 좀 해!”
천우진은 기다리다가 지쳐서 지크를 향해 소리쳤다.
“어? 너 언제 왔냐?”
지크는 천우진이 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
플레이그를 패는 데 집중하느라 주변을 전혀 살피지 않았던 것이다.
“적당히 하고 끝내라. 할 말 있다. 중요한 거야.”
“뭔데! 말해! 다 들리니까!”
지크는 천우진이 할 말이 있다는 데도 플레이그를 패는 걸 멈추지 않았다.
‘이 악마 같은 놈…!!!’
플레이그는 지크가 천우진과 대화를 나누면서까지 자신을 때리자 눈물을 줄줄 흘렸다.
“지금 그럴 때가 아니라니까! 마우레키온 제국 놈들이 너 X되게 하려고 수작을 부리고 있다고!”
“뭔데?”
“그게 그러니까 말야….”
천우진이 지크에게 마우레키온 제국이 꾸미고 있는 음모에 대해 말해주었다.
“이 새끼들이 진짜! 아오!”
“꾸웩!”
지크는 천우진이 알려준 소식을 듣고서 더욱 치밀어 오른 분노를 플레이그에게 풀었다.
덕분에 플레이그는 지크에게 더더욱 가혹하게 얻어맞아야만 했다.
“그러니까 적당히 패고 그냥 끝내. 그런 잡몹 붙들고 시간 낭비하지 말고.”
“그래야지.”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오. 이 자식들이 자꾸 비열한 방법으로 나를 엿 먹이려고 하네. 개 같은 놈들!”
지크는 매우 화가 났다.
마우레키온 제국의 개 같은 짓거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보다 지크를 더욱 열받게 하는 건 보복할 방법이 마땅치 않단 거였다.
지금으로서는 대놓고 전쟁을 벌일 수도 없고, 마우레키온 제국에게 항의하기도 어려웠던 것이다.
‘나도 무슨 방법을 찾아야지, 열받아서 살겠나.’
지크는 마우레키온 제국에게 어떻게든 티 나지 않게 보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이 자식들을….’
그때였다.
‘잠깐.’
불현듯 지크의 뇌리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 자식을 마우레키온 제국에 풀어놓으면 어떨까?’
플레이그가 지크에게는 속된 말로 X밥이었지만, 대도시에 풀어놓는다면 이만한 생화학 병기가 따로 없을 지경이었다.
플레이그가 마우레키온 제국의 전국을 순회 공연하면서 각종 바이러스를 뿌리고 다닌다면, 엄청난 인명피해가 발생하리라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가 아니던가?
“야.”
지크가 플레이그를 패다 말고 말했다.
“너, 나랑 일 하나 하자.”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플레이그는 지크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며 제안을 해오자 엄청나게 당황했다.
‘이 악마 같은 놈이 도대체 뭐라는 거지?’
몇 시간이고 자신을 죽일 듯 패다가, 이렇듯 갑작스러운 제안을 해오는 이유를 도저히 짐작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냥 별 건 아니고. 나랑 손을 잡자는 거지. 아이고, 꼴이 말이 아니네. 이게 뭐냐? 서로 피곤하게.”
지크가 플레이그를 일으켜주더니, 몸에 묻은 흙먼지를 툭툭 털어주었다.
‘무, 무슨 꿍꿍이인 거지?!’
플레이그는 지크가 갑자기 친절하게 나오자 더더욱 공포에 질렸다.
‘이 악마가 날 어떻게 하려고….’
지크가 뭔가 사악한 술수를 써서, 자신을 더욱 고통스럽게 괴롭히려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너 살고 싶잖아. 그렇지?”
“그, 그건 그렇습니다만….”
“내가 널 죽이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지. 식은 죽 먹기거든. 근데 막상 죽이자니 좀 아까워서.”
“예에…?”
“앞으로 내 말에 절대적으로 복종한다고 맹세하면, 내가 너 살려줄게.”
“그, 그건….”
“소멸되는 것보단 낫잖아? 그거 아냐? 니네 형도 내 손에 죽었어.”
“헉?!”
플레이그는 지크의 말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의 형인 는 무시무시한 4대 재앙 중 하나로써, 모든 질병의 화신이었다.
그 형을 작살 낸 장본인이 눈앞에 있는 이 악마라고 하니, 더욱 큰 공포가 엄습해왔다.
‘진짜 잘못 걸렸구나….’
플레이그는 후회했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지크는 자신이 잡은 먹잇감을 놓치지 않는, 아주 집요하고 악랄한 사냥꾼.
그런 지크가 플레이그를 놓칠 리는 없었고, 그냥 풀어줄 리도 없었다.
플레이그에게는 선택권이랄 게 별로 없었다.
여기서 지크에게 두들겨 맞다가 소멸되든지, 아니면 충성을 맹세하고 협력하든지 양자택일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어떻게 할래? 죽을래, 아니면….”
“추, 충성!”
플레이그가 지크에게 군기가 바짝 든 자세로 경례를 올려붙였다.
결국, 역병을 퍼뜨리는 고대의 악마도 지크의 악랄함에 무릎을 꿇고만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