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208
1207
지크가 떠올린 생각은 다음과 같았다.
1. 마법진을 몰래 수정해서, 화산이 폭발하는 방향을 바꾼다.
2. 용암이 프로아 제국이 아닌 마우레키온 제국으로 흐르게끔, 미리 화산에 균열을 만들어 둔다.
‘만약 성공하면… 화산 폭발의 대재앙은 마우레키온 제국으로 향할 거야.’
물론 쉽지 않은 일이었다.
화산을 인위적으로 폭발시키기 위해 만든 마법진을 남몰래 수정한다는 자체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게 분명했다.
또한, 뿜어져 나온 용암이 마우레키온 제국으로 향하게 하려거든 대공사가 필요했다.
종합적으로 정리하자면, 으로 침투해서 몰래 마법진을 수정하고 용암이 마우레키온 제국 쪽으로 흐르도록 만드는 대공사가 필요했던 것이다.
‘일단 의견을 모아보자.’
지크는 자신이 떠올린 방법을 실현시킬 수 있을지, 대소신료들의 의견을 한번 들어보기로 했다.
덕분에 대소신료들은 오밤중에 지크의 부름을 받고 황급히 입궁했고, 비상대책회의에 참석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지금은 프로아 제국의 영토 절반이 불바다가 될지도 모르는, 정말이지 위급한 상황이었다.
오밤중이든 대낮이든 할 것 없이 비상대책회의가 소집되면 만사 제쳐놓고 달려와야 할 때인 것이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지크는 자신의 생각을 대소신료들에게 전달하고, 의견을 물었다.
“아주 불가능한 작전은 아닙니다.”
프로아 제국의 황실 궁정마법사인 데시마토 공작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화산을 인위적으로 폭발시키는 마법진은 그렇게까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단지 그 규모가 워낙에 크고, 마법진을 발동시키는 데 필요한 마나의 양이 엄청날 뿐입니다.”
“그럼 안 들키고 마법진을 수정하는 건요?”
“그것 역시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단, 이 마법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화산의 폭발 방향을 유도하는 좌표가 적힌 부분일 것입니다. 그 부분만 수정하면 될 텐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니만큼 고위급 마법사들과 호위 병력들이 지키고 있을 게 분명합니다.”
“그렇군요.”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
뒤이어 크반트가 발언했다.
크반트는 최근 전설의 대장장이 헤르베르트의 미완성 유작을 제작하는 작업에 들어가서, 꼴이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국가비상사태이니만큼, 프로아 제국의 핵심적인 인물로서 회의에 참석한 거였다.
“용암이 마우레키온 제국 쪽으로 향하게 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듯합니다.”
“어?! 정말요?!”
“예, 폐하. 저희 드워프들은 광산의 민족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드워프들은 최고의 예술가들이기도 했지만, 그 전에 최고의 광부들이었다.
종족 자체가 깊은 산속에 살면서 광산을 건설하고, 거기서 각종 금속이나 보석을 채굴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야금술과 세공술이 발달한 지금의 드워프들이 된 거였다.
즉, 드워프들의 근본은 어디까지나 땅과 산을 파먹고 사는 광부들인 것이다.
“한국인은 배달의 민족이고, 드워프들은 광산의 민족이죠.”
“예?”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크는 크반트가 자신의 농담을 알아듣지 못하자 괜히 무안해져서 말을 돌렸다.
물론 모두가 못 알아들은 건 아니었다.
“풉.”
“미친놈ㅋㅋㅋㅋ 배민이랰ㅋㅋㅋ.”
한국인 게이머인 승구와 천우진은 웃었다.
“뀨! 그렇다! 한국인 배달 좋아한다! 뀨우!”
한국인 게이머들이 하는 이야기를 자주 주워듣곤 하는 햄찌도 지크의 드립을 이해하고 좋아해 주었다.
‘그래, 니들밖에 없다.’
지크는 자신의 실없는 농담에 웃어주는 햄찌, 승구, 천우진에게 고마워하며 크반트에게 말했다.
“그럼 드워프들과 우리 공병들이 용두산에 침투해서, 화산이 폭발했을 때 용암이 마우레키온 제국 쪽으로 흐르도록 할 수 있습니까?”
“충분히 가능합니다.”
크반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작업자들이 안전하게 침투할 경로가 필요하고, 광산 입구와 그 일대에 철저한 보안이 필요합니다.”
“그게 어려운 일이겠네요.”
“그렇습니다, 폐하.”
“잘 알겠습니다.”
지크는 자신이 떠올린 작전이 실행 가능하긴 하다는 대답을 듣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거 잘만 하면 어떻게 할 수 있겠는데….’
현재 에는 거의 7만 명이 넘는 인원이 모여서 작업 중이었다.
그렇다는 말은?
‘슬쩍 끼어들어서 마법진의 좌표를 바꾸는 것도 불가능은 아닐 거 같은데….’
인원이 많으면, 끼어들기가 더욱 쉬운 법.
오히려 소수 인원들 사이에 끼어드는 게 더욱 어려운 법이었다.
‘나랑 프로아 포스 대원들이 광산 입구 쪽을 장악해서 작업을 진행하게 한 다음에… 나랑 데시마토 공작이 마우레키온 제국 쪽으로 슥 끼어든다면….’
지크는 이 작전이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크는 적들을 를 만들어서 노예로 삼는 게 가능했다.
슬쩍슬쩍 의 숫자를 늘려간다면, 좌표가 그려진 지역을 장악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합시다, 이 작전.”
지크가 말했다.
“어차피 다른 방법이 없어요. 이거라도 해야 합니다.”
“폐하의 말씀을 지지합니다.”
미켈레가 나서서 고개를 조아렸다.
“폐하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폐하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폐하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나머지 대소신료들 역시 지크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이 작전에 동의했다.
물론 위험하고, 어려우며, 또 무모한 작전이었다.
하지만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는 이상 해야만 했다.
대소신료들은 이럴 때일수록 지크를 믿어야 한다는 걸 경험으로써 알고 있었던 것이다.
***
한편, 마우레키온 제국에서는 프로아 제국이 을 알아챘다는 걸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천우진이 소유한 인공위성의 존재를 아는 건 오직 지크와 몇몇 동료들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슈트카르트 황제는 작전이 사전에 간파된 줄도 모른 채 나이델베르크와 밀담을 나누고 있었다.
“잘 진행되고 있나?”
“예, 폐하.”
나이델베르크가 고개를 조아렸다.
“약 2주 후에는 마법진 발동 준비가 끝날 것이옵니다.”
“좋군.”
“진행 상황은 계속해서 보고를 드리겠사옵니다.”
“특이사항이 있을 때만 보고하라. 어차피 본국의 영토 안에서 벌이는 공작인데, 딱히 변수가 있을 것 같지는 않군.”
슈트카르트 황제의 말은 사실이었다.
현재 에는 마법사들과 공병들 7만 명뿐 아니라, 마우레키온 제국의 육군 제3군단까지 배치되어 있었다.
프로아 제국군이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쳐들어온다고 해도, 절대로 뚫지 못할 방어선을 구축해놓은 것이다.
“아, 그리고.”
슈트카르트 황제가 덧붙였다.
“고대던전에 도전하는 모험가들에게 더욱 큰 보상을 내걸어라.”
“예?”
“고대던전은 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잠재적인 위험 요소가 아닌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아직도 150개나 남았다. 최대한 빨리 본국의 영토 내에 있는 모든 고대던전을 제거해야 본국의 정복 활동에도 여유가 생길 테지.”
그게 현재 마우레키온 제국이 꼼짝도 못 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였다.
지크 자체도 부담스럽긴 했지만, 섣불리 전쟁을 일으켰다가 때마침 영토 안에 있는 고대던전들이 폭주하기라도 하면?
끝이었다.
제아무리 세계 최강대국인 마우레키온 제국이라 할지라도 프로아 제국과의 전쟁을 수행하는 동시에 고대던전의 폭주에 대응한다는 건 무리였다.
즉, 고대던전이야말로 마우레키온 제국으로부터 프로아 제국을 지켜주는 최고의 안전 장치였던 것이다.
“예, 폐하.”
나이델베르크가 슈트카르트 황제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모험가들에 대한 보상을 아주 크게 늘려서, 현재 활동 중인 강한 모험가들이 모두 본국의 영토 안에 있는 고대던전에 도전하게끔 만들겠사옵니다.”
“좋다. 시행하라. 예산이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모험가들을 최대한 많이 유치할 수 있도록.”
“명령 받들어 모시겠나이다.”
그렇게 나이델베르크는 슈트카르트 황제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어전을 나섰다.
***
지크가 제안한 작전은 라는 이름하에 시작되었다.
작전에는 200명의 대원들, 1,000명의 드워프 광부들, 그리고 500명의 노동전위대 대원들이 동원되었다.
거기다 지크와 데시마토, 그리고 프로아 제국의 마법사들까지 50명도 함께했다.
총 1,750명이 투입된 이 작전은, 달빛 한 점 없는 야간에 시작되었다.
산기슭 주변에 마우레키온 제국의 육군 제3군단이 철옹성을 만들어놓고 있었기에, 몰래 침투하기 위해서는 어두컴컴한 심야 시간이 적합했던 것이다.
“보자….”
프로아 제국의 국경 근처에 도착한 지크는, 천우진이 건네준 자료를 토대로 마우레키온 제국군의 위치를 파악했다.
천우진은 인공위성을 통해 주변을 아주 상세하게 들여다보고 있어서, 마우레키온 제국의 병력배치를 다 알고 있었다.
“갑시다.”
지크는 미리 파둔 땅굴을 통해 국경을 넘고 주변의 산기슭에 도착했다.
그런 뒤 마우레키온 제국군의 방어와 경계가 상대적으로 허술한 지역으로 침투했다.
“다들 여기서 대기하세요.”
지크는 전방에 마우레키온 제국군의 초소를 발견하고, 혼자 움직였다.
‘죽여선 안 돼. 제압해야 돼.’
만약 죽인다?
몇 시간이면 마우레키온 제국군에서 침입자들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대규모 수색 작전에 나설 게 분명했다.
의 핵심은 마우레키온 제국군에게 들키지 않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요란한 타격 작전을 벌여서는 안 되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적들을 제압한 후 로 만들어서 협력하도록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그렇게 도착한 마우레키온 제국군의 초소.
“특이사항 보이나?”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그렇다고 방심해선 안 된다. 아직 근무 시간이 1시간이나 남았으니, 더 집중해서 주변을 경계할 수 있도록.”
“예, 병장님.”
초소를 지키는 마우레키온 제국군에게 근무 태만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인 모양이었다.
‘역시 마우레키온 제국.’
지크는 마우레키온 제국군 병사들이 바짝 군기가 들어 있는 걸 보며, 속으로 감탄했다.
저런 말단 병사들조차 경계 근무에 한 점 흐트러짐도 없이 임하는 걸 보면서, 마우레키온 제국군의 수준이 얼마나 높은지를 체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감탄은 거기까지.
‘미안하지만, 길을 좀 내줘야겠어.’
지크는 날개를 펴고 초소 위쪽으로 날아가 지붕 위에 아주 살포시 내려앉았다.
그런 뒤 초소를 순간적으로 기습해서, 경계 근무를 서던 병사 둘을 눈 깜짝할 사이에 제압해 기절시켰다.
소리?
거의 들리지 않았다.
퍽! 퍽! 하는 타격음만 살짝 울렸을 뿐, 귀신도 울고 갈 만한 기습이었다.
스으으!
지크는 기절한 병사 둘에게 방사능 미생물들을 주입했다.
“주인님을 뵙습니다.”
“주인님을 뵙습니다.”
뒤이어 로 다시 태어난 마우레키온 제국군 병사들이 지크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노예의 예를 취했다.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계속 근무해.”
“예, 주인님이시여.”
“예, 주인님이시여.”
들은 지크의 명령에 충실히 따랐고, 덕분에 지크가 이끌고 온 프로아 제국 사람들은 무사히 해당 지역을 통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침투 지점까지 거쳐야 하는 초소가 9개나 더 있었다.
마치 거미줄처럼 짜인 방어선을 뚫고 에 침투하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크는 밤새도록 그 9개의 초소들을 하나하나 공략하면서, 침투 작전을 계속해나갔다.
‘두고 봐. 이 비열한 짓거리를 고스란히 돌려줄 테니까.’
마우레키온 제국에 보복할 걸 생각하니, 피곤한 줄도 몰랐다.
짧으면 1년, 길어도 2년 안에 두 제국 중 하나는 멸망해야 했으므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