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210
1209
칭호를 획득한 지크는 계속해서 고도를 높였고, 이내 곧 화장실 바로 밑에 도착했다.
그런데.
뿌우우우웅!
하필 아까 오물을 떨어뜨렸던 마법사가 아직 볼일을 끝마치지 못했는지, 방귀 소리가 들려왔다.
야심한 밤이라서 그런지, 소리가 천둥인 것처럼 크게 들렸다.
‘죽이고… 싶다.’
지크는 볼일을 보고 있는 마법사를 습격해서 저 벼랑 끝으로 추락시켜버리고 싶은 걸 꾸욱 참았다.
지금 저 마법사를 공격했다간 침투 자체가 들킬 우려가 있었기에, 참아야 했다.
“으으! 속이 시원~ 하구먼~!”
그렇게 마법사가 볼일을 마치고 돌아간 후.
“아, 그냥 게임 접을까.”
지크는 조금 전 그 마법사의 똥X를 본 것 같아서, 눈을 질끈 감고는 진심으로 게임을 접을까 고민했다.
게임 속 세상에서 모험을 즐기며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지크라지만, 이렇게 더럽고 불쾌한 광경을 보는 것만큼은 사양하고 싶었던 것이다.
‘참자, 참아.’
지크는 꾹 참고 주변에 인기척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성질 같았으면 이런 더러운 작전 따위, 애초에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 작전에 프로아 제국의 흥망성쇠가 달려 있었기에, 지크는 자신의 불쾌함을 감당할 수가 있었다.
똥을 맞을 뻔하고, 늙은 마법사의 엉덩이를 목격하는 대신 프로아 제국이 무사할 수 있다면 지크는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었다.
그게 군주로서 국가와 국민들을 대신해 짊어져야 할 책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으. 속 안 좋아.’
물론 그런 책임감과는 별개로, 비위가 상하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지크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자 화장실 바닥을 살짝 뚫었다.
구멍이 워낙에 좁아서 지크가 통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뒤 화장실 위로 기어 올라가서 구멍을 메꾸고, 팔과 다리를 대자로 쭉 편 채로 천장에 달라붙었다.
“뀨! 주인 놈아! 자세가 두꺼비 같다!”
“야 이.”
지크가 햄찌에게 눈을 부라렸다.
“지금 기분 별로니까 놀리지 마라.”
“뀨우?”
“살다 살다 이제는 화장실 천장에 붙어있어야 하네. 아오.”
“뀨! 주인 놈 멍청하다! 그냥 서 있다가 누가 오면 천장에 다시 붙으면 되는 거 아니냐! 뀨우!”
“아? 생각해 보니까 그러네?”
지크는 햄찌의 말을 듣고 천장에서 내려왔다.
햄찌의 말대로, 마법사가 화장실을 이용할 때만 위에 붙어있으면 되지 굳이 계속해서 천장에 붙어있을 이유가 없었다.
“대신 귀 쫑긋 잘 세우고 있어야 한다! 뀨우! 안 그럼 누가 오는지 모를 수 있다! 뀨우!”
“나도 알아, 인마.”
청각이 예민한 지크와 햄찌가 누군가 접근해 오는 걸 모를 리 없었으므로, 그냥 조심하잔 차원에서 한 이야기였다.
“하. 여기서 얼마나 기다려야 되나.”
“뀨우! 지금 야심한 밤이니까 내일 아침은 되어야지 않겠냐! 뀨우!”
“그렇겠지.”
그렇게 지크는 조악하게 만들어진 간이 화장실 속에서 누군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다행히도, 그런대로 참을 만했다.
화장실 바닥이 똥통이 아닌 천 길 낭떠러지라서, 심한 악취까지는 안 났던 것이다.
물론 구멍 주변으로 오물이 묻어 있어서 악취가 아주 없진 않았지만, 이만하면 못 참겠단 수준은 아니었다.
‘지금이 새벽 2시. 아침 일찍 일어나서 화장실에 온다고 해도… 7시. 5시간은 기다려야 하는데. 그냥 로그아웃할까.’
하지만 로그아웃을 해도 문제였다.
다시 로그인했을 때 누군가 화장실을 이용하고 있다면, 갑자기 강림한 지크를 보고 엄청나게 놀라 소리를 지를 게 분명했다.
‘일단 버텨보자. 다들 아침에 화장실 쓰겠지. 어쩌면 잠결에 쉬가 마려워서 오는 사람도 있을 테고.’
지크는 그런 생각으로, 동이 터 올 무렵까지 화장실에서 대기했다.
그러나 동이 다 트도록 화장실을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 졸린데….’
그렇게 지크의 눈이 감길 무렵.
저벅저벅!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
휙!
지크는 졸다 말고 번개처럼 솟구쳐 화장실 천장에 들러붙었다.
덜컥.
뒤이어 화장실 문이 열리고, 늙은 마법사가 들어와 치렁치렁한 로브를 젖혔다.
그리고는 주섬주섬 허리끈을 풀더니, 지퍼 대신 달린 단추를 풀고는….
‘안 돼!’
지크는 자신의 안구를 보호하기 위해 속으로 비명을 지르면서, 황급히 뚝! 떨어져 내려 늙은 마법사의 등 뒤를 점령했다.
“흡!”
그런 뒤 늙은 마법사의 입을 틀어막고 서둘러 방사능 미생물들을 주입했다.
“끅… 끄어어억… 그르르륵…!”
노마법사는 지크의 갑작스러운 기습에 미처 대처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제압당한 채 방사능 미생물들을 주입받았다.
그로부터 약 1분 뒤.
“주인님을 뵙습니다.”
가 된 노마법사가 지크의 앞에 무릎을 꿇으려고 했다.
“하지 마.”
지크는 노마법사가 노예의 예를 취하지 못하도록 제지했다.
화장실이 워낙에 좁아서, 무릎 꿇을 공간조차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넌 가서 아무렇지 않은 척 임무에 집중해. 여기서 있었던 일은 비밀이야. 알겠지.”
“예, 주인이시여.”
노마법사가 지크의 지시에 따라 화장실을 나섰다.
‘4명 남았다.’
지크는 나머지 4명의 마법사들을 모조리 로 만들 생각으로, 계속 화장실에서 대기했다.
‘졸리다, 졸려.’
눈이 감겼지만, 지크는 악착같이 참았다.
모든 사람들은 화장실을 사용하기 마련.
나머지 네 명 역시도 오늘 안에 화장실을 찾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지크의 예상은 옳았다.
지크는 그날 저녁 7시를 기점으로 나머지 네 명의 마법사들 중 세 명을 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제… 하나 남았다.’
남은 마법사는 딱 한 명.
‘빨리 와라, 빨리.’
지크는 그가 빨리 화장실을 찾기를 기대하면서, 쏟아지는 졸음을 애써 참았다.
벌써 24시간이 넘게 로그인하고 있는 중이라 피로가 극에 달했지만, 마지막 남은 한 명을 로 만들어야겠단 생각에 악착같이 참았다.
그렇게 밤 11시가 되었을 때.
“이 자식은 도대체 언제 화장실에 오는 거야!”
지크는 마지막 한 명이 끝끝내 화장실을 찾지 않자 분통을 터뜨렸다.
졸려 죽겠는데, 마지막 한 명이 안 오니 화딱지가 난 것이다.
“뀨우. 주인 놈아. 그냥 가서 자라.”
“뭐?”
“변비일 수도 있지 않냐.”
“아무리 변비라도 그렇지, 어떻게 사람이 소변도 안 봐?”
“물을 안 마셔서 그럴 수도 있다! 뀨우!”
“그, 그런가?”
“뀨! 주인 놈 다녀와라! 어차피 시간 많다! 뀨우!”
“하긴….”
작전 완료까지 남은 시간은 앞으로 9일.
급할 건 없었으니, 좀 쉬고 와도 될 것 같았다.
‘내가 로그인했을 때 남은 한 명이랑 마주치지만 않으면 되겠지.’
지크는 그런 생각으로, 일단 로그아웃했다.
거의 30시간에 가깝게 안 잤더니, 한계에 부딪혔던 것이다.
***
한편, 프로아 제국의 드워프들과 노동전위대 대원들 역시 맡은 바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해내고 있었다.
그들은 산 중턱에 광산 입구를 만들어내었고, 무시무시한 속도로 땅굴을 파고들고 있었다.
작업 속도는 불가사의하게 빨랐다.
‘아니. 도대체 뭐야?’
이 작전에 참가한 승구는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이 그저 놀라웠다.
그도 그럴 것이, 드워프들이 땅굴을 파는 건 마술에 가까웠다.
본래 땅을 파면, 파낸 흙이 산더미처럼 나오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드워프들의 삽질에선, 할 때마다 흙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마술이 계속되었다.
덕분에 땅굴을 아무리 깊게 파고 들어가도, 흙을 광산 밖으로 퍼내야 하는 일은 없었다.
그 비결은 드워프들이 사용하는 삽이었다.
드워프들은 땅을 파낸 후 나오는 흙을 치우기가 귀찮아서, 삽자루 끝에 흙을 담는 아공간 인벤토리가 달린 마법의 삽을 사용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드워프들이 사용하는 곡괭이 역시 암석을 너무나도 쉽게 부쉈고, 깨진 돌덩어리들을 감쪽같이 없애주었다.
다른 이들 같았으면 대규모 토목 공사와 함께 땅굴을 파면서 나온 부산물들인, 엄청난 양의 흙과 돌덩어리들을 치워가면서 작업해야 했겠지만, 태생이 광부인 드워프들에게는 그럴 일이 없었다.
게다가 드워프들이 사용하는 마법의 폭약 또한 매우 성능이 뛰어나서, 단단한 암석을 두부처럼 뚫고 들어가 정밀한 폭파를 해냈다.
‘이래서 드워프들이 광산의 민족이라는 거구나.’
승구는 드워프들이 작업하는 걸 보며 과연 명불허전이라고 생각했다.
드워프들은 고집이 세고, 또 영악하지가 못해서 그렇지 이런 면에서는 그 어떤 종족도 따라올 수 없는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
로그아웃한 태성은 그대로 곯아떨어졌고, 장장 14시간 동안이나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30시간 이상 잠을 못 잤더니, 말 그대로 기절해버린 것이다.
“오빠, 이제 일어나.”
“으음….”
“오빠.”
“5분… 5분만 더….”
“잘 때 자더라도, 일어나서 밥 먹고 다시 자. 빈속에 이렇게 오래 자면 속 버려. 건강에도 안 좋고.”
“끄응….”
태성은 용설화가 흔들어 깨우자 겨우 몸을 일으켰다.
“팔다리 쭉쭉 펴고.”
“끙.”
“이리 와 세수하자. 코 흥.”
“흥!”
“얼굴 닦고. 이리 와. 간단하게 차려놨어.”
용설화는 마치 엄마처럼 태성의 스트레칭을 도와주고, 세수를 시켜주고, 심지어 밥까지 차려주었다.
식단도 갓 잠에서 깬 태성이 부담스럽지 않게 먹을 수 있는 부드럽고 자극이 적은 음식들로 짜여있었다.
태성을 향한 진심 어리고 깊은 사랑이 없인 불가능한 행동이었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돼. 나 너무 민폐야.”
태성은 그런 용설화의 챙김에 고맙고 행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나도 미안했다.
“내가 애도 아니고.”
“애 같으니까 그렇지.”
“으응?”
“남자친구가 30시간 넘게 게임만 하다가 기절했는데, 여자친구 입장에서 걱정이 안 되겠어?”
“그, 그야….”
“고생했어. 요즘 많이 바쁘지?”
용설화는 태성을 혼내기는커녕, 오히려 격려해주고 다독여주었다.
‘진짜 너무 사랑스러운 여자친구네….’
그때.
“오빠.”
용설화가 태성에게 말했다.
“으응?”
“우리 엄마가 오빠 보고 싶어 하셔.”
“……!”
“다음 주에 시간 어때…?”
“되지! 당연히 되지!”
태성은 용설화의 제안을 냉큼 받아들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어쩌면 미래의 장모님이 보고 싶어 하신다는데 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던가?
“정말?”
“그럼….”
태성이 조심스레 말했다.
“어머님 만나 뵙고 나서… 우리 집에도 인사 갈래?”
“나야 너무 좋지!”
용설화는 내심 바라던 걸 태성이 제안해주자 너무나도 기뻤다.
태성을 만나는 용설화의 마음가짐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고, 또 진심이었다.
태성과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기도 낳고 알콩달콩 행복하게 잘 사는 게 용설화의 인생 목표 중 하나였던 것이다.
“그럼 우리 그러자. 다음 주에 양가 부모님 찾아뵙기로.”
“응!”
그렇게 태성과 용설화는 서로의 부모님을 함께 만나 뵙고 인사를 드리기로 약속했다.
‘좋네.’
태성은 행복했다.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나만 잘하기도 힘든 세상이었다.
그런데, 태성은 게임으로 성공했다.
그거로도 모자라 이제는 현실에서도 승리자가 되려 하고 있었다.
세계 최고의 프로게이머에 등극했을뿐더러, 용설화와 같은 훌륭한 여성을 미래의 배우자로 맞이했다.
일과 사랑.
그 잡기 어렵다는 두 가지를 다 거머쥔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