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215
1214
“어???”
지크는 황족이 한 명 더 살아있단 이야기에 화들짝 놀랐다.
슈트카르트 황제는 즉위하는 과정에서 황가(皇家)인 포스테리오레 가문의 피를 이은 사람을 모두 죽였다.
형제자매뿐 아니라 일가친척, 심지어 외척 세력까지도 모조리 죽여 없앴다.
아이린 황녀만 빼고.
그런데 아직 살아 있는 황족이 있다니, 놀랄 만한 일이었다.
“도대체 누군데? 또 다른 사생아? 아니면 먼 친척?”
“아뇨.”
나인테일이 고개를 저었다.
“선황과 황후 사이에 막내아들이 있었다고 해요.”
“뭐?! 선황과 황후 사이에 나온 막내아들이면… 정통성 면에서는 진짜배기잖아?”
“그렇죠. 슈트카르트 황제는 비벼볼 수조차 없는 고귀한 혈통이죠.”
슈트카르트 황제는 선황의 적자가 아니었다.
태생 자체가 후궁도 아닌, 그저 선황의 성은을 입었던 어느 시골 여인의 뱃속에서 태어난 서자에 불과했다.
선황의 자식들 중 황위 계승 서열이 거의 꼴찌였던 것이다.
그러나 선황과 황후 사이에서 태어난 막내아들은 달랐다.
황후의 아들이라면 황위 계승 서열이 높은 건 두말하면 잔소리였고, 황족들이 다 죽어버린 지금 정통성과 혈통 부분에서는 누구도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슈트카르트 황제조차도 비벼볼 수 없는, 대제국 마우레키온의 정당한 계승자 자격이 있는 것이다.
“당시 선황은 황자들의 난을 바라보면서 곧 태어날 아기를 걱정했고, 황후의 임신 사실을 숨겼다고 해요.”
“다 큰 자식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건 참겠는데, 갓난아기까지 죽는 건 못 봐주겠다는 건가?”
“그런 셈이죠.”
나인테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황자의 난이 슈트카르트 황제의 승리로 끝날 기미가 보였으니, 더더욱 그랬겠죠. 당시 선황은 이미 슈트카르트 황제의 손에 목이 날아가기 직전이었어요.”
“어휴.”
“그래서 선황은 뱃속 아이의 존재를 숨겼고, 출산 후 비밀리에 황궁 밖으로 보내졌죠.”
“그래서?”
“그 아이는 신분상 존재가 드러나게 되면 무조건 죽을 테니, 철저히 숨겨졌어요. 스스로가 황족인지도 모르게요. 구걸지존 어르신이 몰래 그 아이를 돌보고, 후원해주고 계셨죠.”
“근데 구걸지존 어르신이 돌아가셨으니, 이제 그 아이를 지켜주고 후원해줄 사람이 없겠네?”
“맞아요.”
“근데 그냥 내버려 두면 안 돼?”
지크가 살짝 고민하다가 말했다.
“걔 입장에서는 그냥 아무것도 모른 채 살던 대로 사는 게 좋을걸? 그냥 슬쩍 후원금이나 보내주는 게 나을 것 같아.”
“물론 그렇겠죠.”
나인테일이 말했다.
“하지만 아니에요.”
“으응?”
“마우레키온 제국의 정보국에서 그 아이의 존재를 알아차린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구걸지존 어르신의 유언장에 대해 폐하께 여쭤본 거고요.”
“헐….”
“마우레키온 제국은 집요하죠. 특히나 정보국은 더더욱 집요해요. 한 번 냄새를 맡은 이상, 시체라도 발견하기 전까지는 절대 놓지 않을 거예요. 그 아이가 발견되는 건 시간문제에 불과하죠.”
“쩝….”
“어차피 곧 죽게 될 아이예요. 아, 아이라기엔 나이가 너무 많긴 하네요. 그 후로 21년이나 지났으니, 이제는 청년이 되어 있겠죠.”
“그래서? 우리가 구해주자고?”
“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나도 사람이라 불쌍하긴 한데, 괜히 그 친구 구하려다가 우리까지 피 볼 수도 있잖아.”
“물론 그렇긴 한데… 그 아이를 데리고 있으면 반드시 쓰임새가 있을 거예요.”
“어떤…?”
“어차피 본국은 마우레키온 제국과 전쟁을 치러야 해요.”
“그렇지.”
“하지만 그 전에 마우레키온 제국을 흔들고, 찢어놔야겠죠.”
“그것도 맞지. 그냥 붙기엔 너무 큰 상대니까.”
“예컨대, 나중에 마우레키온 제국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전국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겠죠?”
“아!”
지크는 나인테일의 말뜻을 한 번에 알아들었다.
마우레키온 제국이 무너지기 시작했을 때, 황가의 혈통을 지닌 황족은 전략적으로 엄청난 가치를 지닌다.
왜?
정당한 혈통을 지닌 군벌이 황위 계승권에 대한 대의명분을 획득하게 될 테니까.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자산이에요. 슈트카르트 황제의 정통성을 흔들어 놓을 수도 있으니까요.”
“이런저런 이유로 일단은 데리고 있자?”
“맞아요.”
“흠.”
지크는 잠시 고민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래, 뭐. 일단 불쌍하니까 구해주고 보자.”
“여기요.”
나인테일이 을 일부 해석해서 지크에게 건네주었다.
“여기로 가시면 돼요.”
“그래.”
그렇게 지크는 마우레키온 제국의 마지막 남은 황족을 찾아 떠나는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
황가의 마지막 생존자의 이름은 카이포스 폰 포스테리오레.
그는 현재 대륙 남부에 자리한 작은 나라인 의 어느 시골 영지에서 약초꾼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산이나 들에 자생하는 각종 식물, 버섯 등을 채집해서 시장에 내다 팔며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정보에 따르면, 딱히 약초를 채집할 수 없을 때에는 장작도 패다가 내다 판다고 했다.
‘찢어지게 가난한가 보네.’
그런 카이포스를 찾아 즉시 으로 향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신분은 철저하게 숨겼다.
마우레키온 제국의 정보국은 알게 모르게 지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는데, 특히나 대외활동을 할 때면 어김없이 꼬리가 붙고는 했다.
물론 과거에는 그런 신경을 안 써도 되었다.
마우레키온 제국과의 사이가 좋았을뿐더러, 누가 훔쳐보고 있단 생각도 못 했고, 봐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지크 입장에선 자신의 갈 길을 가는 것뿐이니, 굳이 예민하게 굴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특히나 자칫 역적으로 몰릴 수도 있는 작전이니만큼, 지크는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숨겨야 했다.
그래서 입고 있던 장비와 무기를 다 벗고 를 착용해 얼굴까지 바꾸었다.
대륙을 여행하는 흔한 모험가로 위장한 것이다.
지크는 카이포스 폰 포스테리오레가 살고 있다는 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그를 찾아 나섰다.
그런데.
‘뭐지?’
지크는 영지의 풍경이 어딘가 모르게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왜 아무도 없어?’
제아무리 시골 영지라지만,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게 이상했다.
게다가 주변 풍경을 보니 공간이 어딘가 모르게 일그러지고, 얼룩져 보였다.
‘설마.’
지크의 뇌리에 그 생각이 스친 순간.
현재 위치를 알리는 알림창이 떠올랐다.
‘아, 진짜.’
지크는 그제야 사태를 파악하고 인상을 와락 구겼다.
알고 보니 이곳 는 고대던전과 융합된 모양이었다.
“뀨우? 주인 놈아! 무슨 일이냐!”
지크의 주머니 안에서 자고 있던 햄찌가 고개를 삐죽 내밀고 물었다.
“카이포스 폰 포스테리오레란 애를 찾으러 왔는데, 하필 여기가 던전이랑 융합이 되어버렸네. 쩝.”
“뀨우?”
“고대던전에서 약초꾼을 어떻게 찾아. 으으.”
지크가 괴로워했다.
“죽어버렸으면 곤란하잖아. 어휴. 평범한 약초꾼이 고대던전에서 어떻게 살아남아? 스쳐도 골로 갈 텐데.”
“뀨! 주인 놈아! 적당히 찾아보자! 뀨우! 기왕 온 거 고대던전도 클리어하면 되지 않냐! 겸사겸사 성장도 한다고 생각해라! 뀨!”
“그래야지. 별수 있나.”
그렇게 지크는 카이포스 폰 포스테리오레를 찾을 겸, 레벨 업도 할 겸 공략에 나섰다.
***
카이포스를 찾아 나선 길.
“그나저나 그 친구도 인생이 참 고되네. 황족 중의 황족으로 태어난 거면 금수저가 아니라 다이아수저잖아.”
“뀨! 그렇다!”
“근데 태어나자마자 죽을 뻔하고, 평생 자기 신분도 모르고 살다니. 하여간 권력이란 게 무서운 거라니까?”
“뀨우! 출생의 비밀이다! 비밀! 뀨우우우!”
“출생의… 비밀?”
“뀨! 그렇다! 약초꾼으로 살던 내가 알고 보니 황족?! 이런 거 아니냐! 뀨우!”
“너 막장 드라마 좋아하냐?”
“뀨! 그렇다! 요즘 수도에서 막장 스토리 연극이 유행이다! 뀨우! 매주 빵빵 터진다!”
“…….”
“뀨우! 주인 놈 그 연극 봤냐!”
“뭐?”
“옥상궁전이라는 연극 재밌다! 뀨우! 귀족 부부들끼리 서로 이혼하고 결혼하고 아주 난리도 아니다!”
“너나 많이~ 보세요~”
지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주변을 돌아보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쿵!
지크는 갑자기 무언가에 세게 부딪혔고,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으. 뭐야.”
지크는 얼얼한 이마를 붙들고 몸을 일으켰다.
“뭐, 뭐지?”
“뀨! 주인 놈아! 왜 혼자 넘어지고 그러냐!”
“아니.”
지크가 인상을 찌푸리고는 말했다.
“뭐에 부딪힌 거지? 누가 공격이라도 했나?”
하지만 주변에 딱히 적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뭐지.’
지크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다시 몸을 일으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이번에도 결과는 똑같았다.
쿵!
이번에는 지크의 얼굴이 무언가에 부딪쳐 고개가 뒤로 확! 하고 꺾였다.
“뭐, 뭐야! 으윽!”
“뀨! 주인 놈아! 코에서 피난다! 피!”
“도대체 뭐냐고!”
지크는 화가 나서 씩씩거리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눈앞에 아무것도 없는, 그야말로 허공에 주먹을 내질렀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방어막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결과.
푸욱!
공간이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웬 아름드리나무 하나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왜 여기 나무가 있어…?”
지크는 방어막이 아닌 나무가 나타나자 황당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뀨! 주인 놈아! 봐라!”
그때, 햄찌가 주변을 가리켰다.
“어?”
지크는 갑자기 주변의 풍경이 물감 섞이듯 일그러지고 뒤틀리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뀨! 주인 놈아! 이곳 시야가 완전 뒤엉켜 있다! 뀨우! 눈에 보이는 거랑 실제 공간이 아예 다르다!”
“그래?”
“뀨! 이것 봐라!”
햄찌가 보란 듯 담벼락을 툭툭 쳤다.
휙, 휘익!
그러자 햄찌의 앞발이 담벼락을 쑥 통과했다.
담벼락처럼 보였던 곳은 사실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이었던 것이다.
“어우야.”
지크가 혀를 내둘렀다.
“이 정도면 몬스터가 필요 없겠는데?”
“뀨우?”
“가만 내버려 두면 돌아다니다가 알아서 뇌진탕 같은 걸로 죽지 않을까?”
“뀨! 그럴 수도 있다!”
“젠장. 뭐 이리 까다로워.”
지크는 그렇게 말하며 을 켜서 항목에 라고 입력해보았다.
띠링!
뒤이어 알림창이 떠올랐다.
[알림: 를 찾았습니다!]그러자 길을 안내해주는 초록색 화살표가 떠올랐다.
“화살표 따라가면 되지. 가자, 햄찌야.”
“뀨!”
은 시공간이 뒤엉킨, 과거와 미래, 현재가 뒤섞인 공간에서도 정확하게 길을 찾아주는 아이템.
단언컨대, 이렇듯 길을 찾기 힘든 필드에서는 이만한 길잡이가 없었다.
그러나 초록색 화살표를 따라가는 것 자체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으악!”
“뀨우우우!”
지크와 햄찌는 초록색 화살표를 따라 걷다가, 갑자기 바닥이 훅! 하고 꺼져서 그대로 우당탕!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지형지물 자체가 눈에 보이는 것과 실제가 너무나도 달라서, 아무리 화살표가 있다고 한들 움직이는 것조차 어려웠던 것이다.
“으… 내 꼬리뼈….”
지크가 엉덩이를 문지르며 고통스러워할 때였다.
쒜엑!
갑자기 지크의 코앞으로 시퍼런 칼날이 날아들었다.
기습.
적이 나타난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