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218
1217
카이포스는 지크의 응급조치 덕분에 위기를 넘겼다.
지크가 상처를 소독하고, 꿰매고, 포션을 부어주고, 붕대까지 감아줬다.
“도대체 누구신지….”
“누구냐고?”
지크가 쓰고 있던 를 벗어 자신의 본래 얼굴을 드러내었다.
“……!”
카이포스는 그런 지크의 얼굴을 한눈에 알아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미 지크의 얼굴은 을 통해 알려질 대로 알려져서, 삼척동자도 알아보는 수준이었다.
아무리 시골 깡촌에서 약초꾼으로 살아가던 사람일지라도, 지크의 얼굴쯤은 알았던 것이다.
“지, 지크프리트 폰 프로아 폐하?”
“정답.”
“화, 황제 폐하를….”
카이포스는 평생을 약초꾼으로 살아와서 예법에 대해 잘 몰랐기에, 지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조차 잘 모르는 듯했다.
“아아, 됐고.”
지크가 카이포스에게 손을 휘휘 저으며 됐단 제스처를 보냈다.
“할 줄도 모르는 궁중 예법 굳이 할 필요 없어.”
“하, 하지만….”
“됐다니까.”
지크는 그렇게 말하고는 카이포스를 일으켜주었다.
“그나저나 너 운 좋다? 여기서 안 죽고 용케 살아남았네?”
“예, 뭐….”
카이포스가 대답했다.
“어떻게든 살려고 발버둥 치긴 했습니다만….”
“이제 걱정 안 해도 돼. 내가 구해주러 왔으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카이포스가 지크에게 꾸벅 인사했다.
“그런데… 왜 저를 구해주러 오신 겁니까? 저는 폐하께 기도를 올린 적이 없습니다. 게다가 일개 약초꾼인 저를 어째서 폐하 같은 분이 찾아오셨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렇겠지.”
지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인간이 왜 날 구해주러 왔나, 궁금하지?”
“그, 그렇게까지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큭큭.”
지크는 한 번 웃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카이포스에게 말했다.
“그냥 간단해. 니 출생의 비밀 때문에 온 거야.”
“예? 추, 출생의 비밀 말씀이십니까?”
“응.”
“저는 그냥 가난한 화전민의 아들로 태어난….”
“아니.”
지크가 고개를 저었다.
“넌 고귀한 혈통을 지닌 사람이야.”
“……?”
“보통 고귀한 게 아니지. 넌 황족이거든. 그것도 마우레키온 제국의 황가인 포스테리오레 가문의 피를 이은 황족.”
“그럴 리 없습니다.”
하지만 카이포스는 지크의 말을 믿지 않았다.
“제가 무슨 황족입니까? 저를 놀리시는 것 같은데….”
“과연 그럴까?”
지크가 갑자기 카이포스를 끌어당기고 를 뒤집어썼다.
“폐, 폐하?”
당황한 카이포스.
“쉿. 조용.”
지크가 카이포스에게 주의를 주었다.
“자, 봐봐.”
지크가 손가락을 뻗어 저 멀리 모퉁이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마우레키온 제국의 기사들이 눈이 시뻘게진 채 주변을 수색하고 있었다.
“역적 카이포스는 약초꾼 요한으로 위장해 숨어 살고 있었으니,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 시체라도 찾아가는 게 우리의 임무다.”
“주변을 잘 살펴라.”
지크가 카이포스를 돌아보았다.
“봤지? 다 너 잡으러 온 사람들이야. 넌 잘 모르겠지만, 넌 사실 마우레키온 제국의 황족이야. 정확히는 선황과 황후 사이에서 태어난 막내아들이지.”
“마, 말도 안 됩니다….”
“믿기 힘들겠지. 하지만 사실이야. 가끔 널 후원해주러 오셨던 분 기억나냐? 구걸지존 어르신?”
“아! 그 어르신이라면 기억이 납니다!”
“그분도 사실 황족이고, 니 먼 친척이야. 너가 슈트카르트 황제에게 죽임을 당할까 봐 몰래 지켜주고 계셨던 거다. 하지만 그분이 전사하시면서 널 보호하던 정보망에 구멍이 생겼고, 이렇듯 마우레키온 제국에서 쫓아온 거야.”
“구걸지존 어르신이 돌아가셨습니까?”
“명예롭게 가셨어.”
“어르신….”
카이포스는 자신이 황족이란 사실보다 구걸지존의 죽음에 더욱 슬퍼하고,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다.
‘평생 약초꾼으로 살아서 그런지 감성적이네. 이런 애도 권력 맛을 보면 괴물이 되겠지? 어휴.’
지크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카이포스를 잡아끌었다.
“아무튼, 설명은 차차 해줄 테니까 일단 가자. 여기 있으면 개죽음밖에 더 하겠냐?”
“…….”
“얼른.”
지크는 출생의 비밀과 구걸지존 어르신의 죽음을 전해 듣고 혼란스러워하는 카이포스를 거의 끌고 가다시피 하면서 을 나섰다.
***
을 빠져나오는 건 쉬웠다.
과 이 조합되니 이동이 너무 쉽고 빨라서, 매우 안전하게 빠져나오는 게 가능했던 것이다.
“햄찌야.”
지크가 햄찌를 돌아보았다.
“이 친구 데리고 복귀해. 할 수 있지?”
“뀨?”
햄찌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주인 놈 집에 안 가냐? 뀨?”
“난 좀 볼일이 있어서.”
지크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뀨우?”
“안에 있는 애들이랑 좀 놀다 가려고.”
“뀨! 주인 놈! 이건 엿 먹일 생각이냐! 뀨우!”
“당연하지.”
지크가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는 듯 대답했다.
“이 좋은 기회를 왜 그냥 놓치냐? 한판 붙긴 좀 그러니까, 엿이라도 먹여줘야지.”
“뀨! 알겠다! 그럼 이 친구 햄찌가 데려간다! 뀨우!”
“그래, 고마워.”
지크는 햄찌가 부탁을 들어주자 카이포스를 돌아보았다.
“내 친구 따라가. 가면, 평생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야.”
“하, 하지만….”
“너 어차피 평범하게는 못 살아. 앞으로 어딜 가든 추적자들이 따라붙을 거고, 결국엔 마우레키온 제국 정보국으로 끌려가서 고문받다가 공개처형이나 당하겠지.”
“…….”
“걱정 말고, 일단 가.”
“아, 알겠습니다.”
“나중에 보자.”
지크는 햄찌와 카이포스를 보내고는 다시 에 입장했다.
그런 뒤 이건과 마우레키온 제국의 기사들을 뒤쫓았다.
이건과 마우레키온 제국의 기사들은 카이포스가 이미 구출된 지도 모른 채 을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큭큭. 멍청한 놈들.’
지크는 그들을 비웃으며, 조용히 뒤를 밟았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길잡이를 나한테 준 게 니가 한 일생일대의 실수지.’
지크는 과거 이건이 자신에게 를 빌려주었던 걸 떠올렸다.
는 총 3개의 아이템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당시 지크는 과 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건이 를 빌려주면서 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지크는 이 을 통해 온갖 위기 상황을 극복하며, 성장할 수 있었다.
즉, 지크가 여기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건의 실수도 한 몫을 단단히 했던 것이다.
‘자. 보자.’
지크는 을 통해 이건의 뒤를 집중적으로 밟으며, 그 뒤를 계속해서 따라다녔다.
그로부터 몇 시간이 지난 후.
이건은 카이포스를 찾는 걸 포기했는지, 보스 몬스터가 있는 지역으로 이동했다.
‘포기한 건가? 아니면 보스를 처치해서 마을을 정상적으로 돌려놓은 다음에 카이포스를 찾으려는 걸까?’
정확한 의도는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 건 이건이 의 보스 몬스터와 매우 가까워지고 있단 거였다.
보스 몬스터는 란 이름을 지니고 있었는데, 이름만 봐도 시력을 완전히 무력화시키는 능력을 가진 게 분명했다.
물론 스킬을 터득한 지크는 를 손쉽게 상대하는 게 가능할 터였다.
‘어떻게 싸울까?’
지크는 이건이 를 어떻게 상대하는지, 숨어서 한번 지켜보기로 했다.
지크는 로 몸을 덮고 있어서 숨어 있다가 발각당할 염려는 전혀 없었다.
그래서 운동 경기를 시청하는 기분으로 이건과 의 대결을 지켜보았다.
***
이건은 과연 놀라운 피지컬의 소유자였다.
‘말도 안 돼! 이걸 감으로 피한다고?’
지크는 이건이 를 본능에 의지해서 상대하는 걸 보고 경악했다.
이건은 지크와는 다르게 같은 걸 가지고 있지 않은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의 움직임은 놀라웠다.
오직 감각에 의지해 싸우면서도 와 대등한 싸움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괴물이네….’
지크는 이건의 스펙과 감각의 발달 정도, 그리고 임기응변에 혀를 내둘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우웅!
이건은 검을 매개체로 해 을 끌어올려서 가 가진 에너지들을 모조리 빨아들여 자신을 강화시키고 있었다.
그만큼 딜도 엄청나게 셌다.
[착시의 아카라초]•생명력 : ■■■□□□□□□□
‘그렇다 이거지.’
지크는 이건이 를 상대하는 동안 조용히 을 움켜쥐었다.
‘죽음의 한 방은 에너지가 너무 커. 안 돼. 접근하기도 전에 들킬 거다.’
지크는 이건을 기습할 생각이었다.
기습해서, 이건을 죽이고 랜덤드랍 아이템을 챙긴다.
그런 뒤 이건이 거의 다 처치해놓은 보스 몬스터를 마무리한다면?
두근두근!
지크는 너무 신이 나서 벌써부터 흥분이 되었다.
그러나 지크는 희열을 만끽하는 건 잠시 뒤로 미뤄두고, 다시 냉정을 되찾았다.
‘조심해야 돼.’
이건을 기습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건은 오직 감각의 힘과 전투 경험, 그리고 임기응변만으로도 보스 몬스터인 를 상대하는 괴물이었다.
그런 이건을 기습하려면 차분해야 했고, 요란해서는 안 되었다.
‘침착하자.’
지크는 심장박동을 최대한 줄이고 이건의 근처로 서서히 접근했다.
하지만 너무 가까이 가지는 않았다.
이건이 사용하는 은 주변의 모든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마치 블랙홀과도 같은 스킬.
너무 가까이 가면 지크 역시 에너지 자원인 근원력을 빨릴 테고, 눈치 빠른 이건이 그걸 놓칠 리 없었다.
‘한 번에 빠르게 가는 거다.’
지크는 조용히 타이밍을 기다리다가 기회가 보이자 빠른 속도로 이건의 뒤를 노렸다.
‘지금.’
지크가 순식간에 이건의 뒤로 접근했다.
그리고는 을 연거푸 일곱 번 찔렀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이건이 반응할 틈도 없이 의 타격 횟수 일곱 번을 찔러 넣은 것이다.
“……!”
이건은 그런 지크의 기습에 미처 뒤를 돌아보지도 못하고 제자리에 우뚝 멈췄다.
그런 이건의 두 눈은 너무나도 놀라 크게 떠져 있었고, 심장은 갑작스러운 놀람으로 인해 쿵쾅쿵쾅 두방망이질을 쳤다.
마치 공포영화를 보다가 놀란 것처럼, 갑작스러운 기습에 심박수가 급격하게 올랐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떤 X새끼가….”
이건은 그 말, 아니 그 유언을 남기고 허물어졌다.
마지막 순간, 자신을 기습한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려고 고개를 돌렸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지크는 를 입고 있어서 이건의 눈으로는 확인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응. 잘 가고. 큭큭큭.”
지크는 이건을 뒤통수쳤단 생각에 몸을 파르르! 떨며 전율했다.
숙적이나 다름없는 적을 이렇듯 비열한 기습으로 죽이니, 기분이 아주 째질 듯 좋았던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툭, 툭, 툭, 툭, 툭!
이건은 죽으면서 랜덤드랍 아이템으로 엄청나게 값비싼 것들을 다수 떨구었다.
그리고 그 아이템들은 대부분 높게 강화된 검들이었다.
[알림: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알림: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알림: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알림: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알림: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매개체로 사용되는 검들이니만큼, 단 한 자루에도 수백억 원을 호가하는 고강 아이템들이었던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