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220
1219
“모험가 베오울프.”
슈트카르트 황제가 이건에게 물었다.
“그대에게 이 사태를 해결할 방안이 있나?”
“예, 폐하.”
“어떤 방안인가?”
“현재 제국 내에 돌고 있는 각종 전염병은 결코 자연적으로 발생한 게 아닙니다.”
“그럼… 적국의 생화학 공격인가?”
여기서 사용한 이란 단어는 은연중에 프로아 제국이라는 뜻을 담아내고 있었다.
“그건 잘 모릅니다.”
이건이 대답했다.
“물론 적국에 의한 테러일 수도 있겠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아닐 것입니다.”
“그럼?”
“이토록 다양한 전염병이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창궐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란 걸 아시겠지요.”
“그렇다.”
“그러나 세계의 그 어떤 국가도 이렇듯 다양한 전염병을 동시다발적으로 살포할 수 있는 생화학 기술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겁니다. 당장 마우레키온 제국에서도 이런 생화학 테러는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그것 또한 맞다.”
“그렇다면.”
이건이 말했다.
“이 사태의 원인은 폭주한 고대던전에서 튀어나온 악마적 존재의 소행일 게 분명합니다.”
“으음!”
“그리고 이 사태는 누군가가 그 악마적 존재에게 사주하여 부추겼을 가능성이 매우 농후합니다.”
“그렇군. 그 악마적 존재를 부추긴 게….”
“사실 중요하지 않겠지요. 어차피 그 악마적 존재에게 물어본다고 해도, 제대로 된 대답을 들을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애초에 이런 일을 사주받지도 않았을 테니 말입니다.”
“그렇겠군.”
“그러니 중요한 건 이번 질병 사태를 일으킨 악마적 존재를 찾고, 그를 처치해서 치료제를 얻는 것뿐입니다.”
놀랍게도, 이건은 이 사태의 원인부터 해결 방법까지를 모조리 꿰뚫고 있었다.
게임 짬밥이 짬밥이다 보니, 굳이 알아보지 않더라도 대략적인 자초지종을 금세 알아차릴 정도의 통찰력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이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나?”
“예, 폐하.”
이건이 고개를 조아렸다.
“100퍼센트 확신할 수는 없지만, 매우 높은 확률로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을 겁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짐은 그대에게 매우 큰 포상을 내릴 것이다. 원하는 게 무엇인지, 말만 하라.”
“폐하.”
이건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허면, 제게 군권의 일부분을 내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군권의 일부분을…?”
슈트카르트 황제는 솔직히 좀 놀랐다.
군권이란 군대를 통솔할 수 있는 권력으로써, 황제의 특권이었다.
물론 때에 따라서는 유능한 지휘관에게 군권을 쥐여 줘서 전쟁을 수행하게끔 했지만 말이다.
“어째서 군권을 원하는가?”
“아시다시피, 프로아 제국은 저의 적입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세력이 없습니다. 그러니 군권의 일부분을 제게 맡겨주신다면, 훗날 프로아 제국과의 전쟁에서 폐하의 군대를 이끌고 참전하고 싶습니다.”
“그런 이유라면 못 내어줄 것도 없을 것이다.”
슈트카르트 황제는 이건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본국의 육군은 총 5개의 야전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만약 이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한다면, 그중 하나의 야전군 사령관 자리에 그대를 임명하겠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이건이 슈트카르트 황제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반드시 임무를 완수해 제국을 구원해 보이겠습니다.”
“아, 그런데.”
슈트카르트 황제가 뭔가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이건에게 물었다.
“그대는 사악한 비밀결사를 이끌며 세계를 파괴하려 했던 자다. 그런 그대가 왜 세계를 위해 이바지하려 하는 것인가.”
“제가 세계를 파괴하려 했던 건 사악한 비밀결사의 정신지배 때문이었습니다.”
이건이 거짓말했다.
“하지만 모든 사건이 끝나고, 비로소 정신을 되찾았습니다.”
“그렇군.”
“물론 그렇다고 제가 영웅인 건 아닙니다. 저는 단지 지크프리트 폰 프로아를 증오할 뿐이고, 그를 파멸시키고 싶을 뿐입니다.”
“그대의 뜻, 잘 알겠다.”
슈트카르트 황제가 알겠다는 듯 대답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슈트카르트 황제는 이건을 믿지 않았다.
어차피 이건도 지크와 프로아 제국을 멸망시킨 뒤에 제거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
프로아 제국은 마우레키온 제국이 각종 사건·사고로 휘청대는 사이 빠르게 국력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엄청난 국방비를 투자해 군대를 양성하는 한편 코랄 종족의 기술력과 을 접목시킨, 차세대 전략병기를 비밀리에 제작하고 있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미켈레는 틈만 나면 주변국들을 방문해 반 마우레키온 제국 진영 간의 동맹을 공고히 다져나가는 외교 전략을 펼쳤다.
마우레키온 제국이 프로아 제국을 멸망시킨다면, 나머지 주변국들의 운명이야 뻔했다.
알아서 항복하거나, 혹은 마우레키온 제국군에 짓밟히거나.
뭐가 되었든 세계는 마우레키온 제국의 손아귀에 들어갈 것이었으므로, 주변국들로서는 프로아 제국을 중심으로 똘똘 뭉치는 수밖에 없었다.
굳이 그게 아니라도 혈맹 관계인 국가가 엄청나게 많았고, 전쟁이 벌어지면 그들 모두 앞다투어 프로아 제국 편에 설 테니 말이다.
지크는 그러는 사이 스스로의 성장에 집중했다.
결국 믿을 건 자신의 무력뿐이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았기에, 고대던전들을 격파하며 레벨 업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지크는 1주일이란 짧은 시간 동안 무려 10개의 고대던전을 격파하는 기염을 토했고, 8레벨을 올리는 쾌거를 이루었다.
하루 한 개도 아니고, 그 이상을 클리어하면서 그야말로 폭풍 성장을 한 것이다.
그 와중에 해당 영상을 편집해 만든 매드 무비를 에 업로드함으로써 팬들을 즐겁게 하고, 수익까지 창출해내었다.
거기까진 좋았다.
하지만 지크에게도 한계란 명백했다.
“으. 피곤해.”
고대던전을 클리어하고 복귀한 지크가 피곤에 찌들어 옥좌에 털썩! 주저앉았을 때였다.
“폐하! 남부지방에서 고대던전이 폭주하고 있다고 하옵니다!”
전령이 황급히 어전으로 뛰어 들어와 지크에게 보고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폐하! 동부지방에서 고대던전이 폭주했다고 하옵니다!”
“폐하! 큰일 났사옵니다! 미처 알려지지 않았던 고대던전이 폭주했다고 하옵니다!”
그 순간.
‘이거 몰카인가?’
지크는 누군가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고대던전 3개가 한꺼번에 폭주한 건 믿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
생각해 보라.
고대던전 하나가 폭주하면 어떠한 일이 벌어지는지.
당장 마우레키온 제국만 해도 2개의 고대던전이 폭주한 결과 국토의 10분의 1이 파괴되고, 전국 각지에서 전염병이 창궐해 나라가 개판이 되지 않았던가?
그런데 고대던전 3개가 한꺼번에 폭주했다?
프로아 제국이 눈 깜짝할 사이에 멸망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아.”
지크는 몰려오는 피로감에 얼굴을 감싸 쥐며 괴로워했다.
지금 당장 뛰어나가 봤자 이미 엎질러진 물일 테고, 결국 덮쳐올 재앙이 더 심각해지기 전에 막는 방법밖엔 없었다.
문제는 지크의 몸이 하나뿐이란 점이었다.
지크가 제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여기저기서 터지는 사건들을 동시다발적으로 해결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크가 무슨 손오공도 아니고, 분신술을 사용할 수도 없지 않은가.
“가자, 햄찌야.”
지크는 너무나도 피곤했지만, 일단은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천근만근 옥좌에서 몸을 일으켰다.
“뀨우… 주인 놈아… 안 쉬냐….”
“누군 안 쉬고 싶겠냐.”
지크가 퀭한 얼굴로 대꾸했다.
“근데 별수 있냐. 나 아니면 해결할 사람이 없는데.”
“뀨우….”
“오늘 잠은 다 잤네.”
결국, 지크는 로그아웃하려다 말고 어전을 나서 고대던전이 폭주했다는 곳으로 향했다.
“뀨! 주인 놈아! 그러다 진짜 과로로 죽는다! 어쩌려고 그러냐! 뀨우!”
“난들 방법이 있겠냐.”
“뀨! 이게 다 마우레키온 제국 때문이다! 뀨우!”
“응?”
지크는 워프 게이트에 오르기 전 햄찌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대던전들이 폭주한 게 마우레키온 제국 탓이라고? 그건 아닌 거 같은데?”
“뀨! 왜 아니냐!”
“엥? 고대던전 폭주가 걔네 잘못은 아니지. 아무리 서로 적이라고 해도, 그 정도 구분은 해야 되는 거 아니냐?”
“뀨! 그렇지 않다!”
햄찌가 도리질을 쳤다.
“주인 놈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뀨!”
“내가 뭘.”
“뀨! 주인 놈이 왜 바쁜지 아냐! 뀨우! 그건 마우레키온 제국 때문이다! 마우레키온 제국이 모험가들한테 돈 많이 줘서 다 그쪽으로 갔다! 우리나라 지켜줄 모험가 그래서 없는 거다!”
“아.”
지크는 그제야 프로아 제국 내 고대던전들이 별 인기가 없는 이유를 깨달았다.
물론 프로아 제국에서도 보상을 내걸긴 했지만, 마우레키온 제국이 내건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수준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당연히 게이머들은 프로아가 아닌 마우레키온 제국의 고대던전들에 우선적으로 도전했다.
비록 클리어하지 못했더라도 도전했다는 것에 엄청난 보상을 주기에, 자연스레 마우레키온 제국으로 향한 것이다.
“캬악! 퉤!”
지크가 더럽다는 듯 침을 탁! 뱉었다.
“더러운 자본주의 세상 같으니!”
“뀨우?”
“돈 없는 놈 서러워서 살겠나. 하아.”
당연한 말이었지만, 지크가 가난한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프로아 제국에 도둑놈들이 많아서도 아니었다.
마우레키온 제국과 국력, 특히나 경제력 차이가 너무 커서 벌어진 일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서러운 건 어쩔 수 없는 일인지라, 지크는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워프 게이트에 올랐다.
‘두고 보자. 조만간 큰 거 한 방 먹여줄 테니.’
최근 지크는 마우레키온 제국을 떠받치는 기둥 중 하나인 다수의 마법사들을 깡그리 몰살시킬 궁리를 하는 중이었다.
을 통째로 무너뜨려서, 마우레키온 제국 마법사들의 씨를 말려버릴 셈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폭주한 고대던전에서 튀어나온 악마적 존재들을 막는 게 더욱 급선무였다.
이러한 상황이 현재 평화 유지에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마우레키온 제국이나 프로아 제국이나 자국 내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들을 처리하느라 군사적인 충돌을 벌일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
지크는 우선 동쪽으로 향했다.
동쪽에는 비옥한 토지를 보유한 에스파드리유 지방이 있어서, 반드시 지켜내야만 했다.
프로아 제국에서 생산되는 식량의 60퍼센트가 에스파드리유 지방에서 나오기에, 우선적으로 발걸음한 것이다.
그러나 야심한 밤 에스파드리유 지방은 매우 고요했다.
드넓게 펼쳐진 평야에는 푸릇푸릇한 밀들이 밤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어디냐.’
지크는 고대던전의 폭주로 인해 나타난 악마적 존재가 어디 있는지 주변을 살폈지만, 딱히 뭐가 보이지는 않았다.
‘설마 벌써 고대던전을 빠져나와서 도망가버린 건가?’
그때.
윙~ 위잉~
지크의 귓가에 곤충의 날갯짓 비슷한 소리가 들려왔다.
‘또 파리가 꼬이나?’
지크는 그 소리가 자신의 주변을 맴돌곤 하는 파리 떼들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크의 주변에는 때때로 똥파리 떼들이 꼬이곤 해서, 그런 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윙~ 위잉~~
처음에는 파리 떼들이 나는 것 같았던 소리가 점점 더 커지는가 싶더니, 이내 곧 벌떼가 움직이는 듯한 소리가 났다.
붕~ 부우우웅~!!!
지크는 걷다가 벌집이라도 건드린 게 아닌가 싶어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딱히 보이는 건 없었다.
‘뭐지?’
지크가 고개를 갸웃거릴 무렵.
“뀨, 뀨우?!”
햄찌가 화들짝 놀랐다.
“뭔데?”
지크가 햄찌에게 물었다.
“주, 주인 놈아! 저, 저기 봐라! 뀨우!”
햄찌가 저 멀리 밤하늘을 가리켰다.
“으응?”
지크는 햄찌가 가리킨 곳으로 무심코 눈길을 돌렸다.
“……!”
그리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붕- 부우우웅-!!!
왜냐하면, 그곳에는 수십억 마리는 족히 될 것 같은 메뚜기 떼들이 안 그래도 어두운 밤하늘을 더욱 새카맣게 물들이며 평야를 덮쳐오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