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24
123
“아, 그리고. 따로 먹는 보양식이 있으면 좀 가르쳐주게.”
“그런 거 안 먹는데요?”
“허허. 사람 참. 치사하게 이러긴가?”
“제가 뭘 치사하게 굴었다고 그러십니까?”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게. 아무리 타고난 정력가라도 밤새 열한 명의 영애들을 보내버릴 정도면 뭔가 특별한 비법이 있지 않겠는가? 이 형은 동생의 그 지치지 않는 정력의 비밀을 알고 싶은 걸세. 그러지 말고 가르쳐 주게나. 으응?”
“없다니까 그러시네.”
“허! 사람 참! 이리 정이 없어서야! 콩 한 쪽도 나눠 먹는다는데, 그까짓 보양식 좀 알려주면 어디가 덧나는 겐가? 혼자만 즐기면 다야? 응?”
“후우.”
지크가 억울함에 치를 떨며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숨을 골랐다.
“형님께 가르쳐드릴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더는 묻지 말아주십쇼.”
“치사하군.”
“예, 저 치사합니다. 영업 비밀이라서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크흠! 거, 섭서업~ 하구먼.”
지크는 라이언베르트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결국, 라이언베르트는 지크에게 비법(?)을 묻는 대신에 화제를 돌려야만 했다.
“그래, 스칼렛 그 아이는 어떻던가? 내 사위가 될 생각은 없는 겐가?”
“없습니다. 제가 원래 좀 나쁜 남자라서 말입니다, 형님.”
어차피 바닥까지 추락해버린 이미지, 될 대로 되라는 듯 대꾸하는 지크였다.
“사랑 같은 거 안 합니다.”
“남자 그 자체로군.”
“예?”
“큰일 할 남자에게 사랑은 때때로 큰 걸림돌로 작용하곤 하지. 암, 그렇고말고. 동생은 젊은 나이에 남자의 인생에 대한 진리를 깨우쳤구먼.”
이쯤 되면 지크가 왕궁 한가운데에서 대놓고 똥을 싸재껴도 칭송을 받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동생의 뜻은 잘 알겠네. 더는 권유하지 않겠네.”
“가,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동생이 부탁했던 처자의 행방을 찾았네. 내 그 해병대원에게 보상금을 두둑이 챙겨주었으니 아무 걱정 말게.”
“감사합니다, 형님.”
그러자 퀘스트가 클리어되었다는 알림창이 떠올랐다.
‘다행이다. 오스칼 경의 여동생을 찾아서.’
지크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
“그런데 말입니다, 형님.”
지크가 라이언베르트에게 물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여쭤봐도 됩니까?”
“궁금한 것?”
“그게….”
지크가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묻고 싶은 말이 뭔가, 나의 의형제여.”
라이언베르트가 진중한 왕의 모습으로 지크에게 물었다.
“왜 노르드족의 평판을 깎아 먹어 가면서까지 명분도 없는 전쟁과 노략질을 하고 계시는 겁니까? 저는 그게 궁금합니다.”
“크흠.”
“대답해 주시기 곤란한 질문이시라면….”
“아닐세.”
라이언베르트가 손사래를 쳤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동생은 내 형제이니 대답을 해주어야겠지.”
“감사합니다.”
“확실히 이번 전쟁에 우리 노르드족에게 명분 같은 건 존재하지 않네.”
“왜 그런 전쟁을 일으키신 겁니까? 어젯밤 연회에서 듣자 하니 일주일 후에 대규모 해상 침공을 준비 중이시라던데요. 그 정도면 완전히 전면전 아닙니까?”
“그건… 우리가 이 땅에서는 더 이상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이라네.”
“예?”
“혹한의 불사왕이 부활했네.”
“혹한의 불사왕이요?”
그때였다.
[알림 : 스페셜 연계 퀘스트인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알림창이 떠올랐다.
[옛이야기]•분류 : 스페셜 연계 퀘스트 3
노르드족의 왕 라이언베르트로부터 옛 이야기를 들어라.
•진행률 : 0%
이놈의 연계 퀘스트가 도대체 어디까지 이어질지가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
지금으로부터 300년 전.
노르드족은 총 다섯 개의 세력으로 나뉘어 파들란 섬의 패권을 놓고 내전을 벌이고 있었다.
오늘날 이라 부르는 그 내전은 수백 년 동안이나 계속된 피 튀기는 대혈전이었으며, 복수가 복수를 낳는 무한의 수레바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뉘르부르크 대륙으로부터 도망쳐 온 사악한 흑마법사가 파들란 섬 북쪽에 자리를 잡았고, 이후 그 사악한 흑마법사는 마족과의 계약을 통해 라는 언데드 계열 몬스터 중에서도 최상급에 해당하는 존재로 거듭났다.
이후 네크로리치는 자신을 내쫓은 대륙에 복수하기에 앞서 자신의 세력을 만들고자 파들란 섬을 먼저 장악하기로 했고, 스스로를 이라 칭한 뒤 노르드족 정벌에 나섰다.
그렇게 시작된 노르드족과 불사왕의 전쟁은 무려 10년 동안이나 계속되었고, 당대 오성천의 일원이었던 이 맹활약을 함으로써 전쟁은 노르드족의 승리로 끝을 맺었다.
“불사왕과의 전쟁은 다섯 개 세력으로 나뉘어 있던 우리 노르드족을 통합시켜 주었고, 우리는 더 이상 동족상잔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로 결의했다네.”
“그런 일이 있었군요.”
“배울 게 많은 시대였지. 전쟁을 신성시하고 강자를 우대하는 우리 노르드족의 문화는 다 그때 생겨난 것이지.”
지크는 그제야 노르드족의 문화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알림 : 스페셜 연계 퀘스트인 퀘스트를 클리어하셨습니다!]라이언베르트가 말을 이었다.
“그런데 6개월 전부터 북쪽에 뭔가 심상치 않은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하더니, 한 달 전 불사왕이 부활하고 말았다네.”
“좀 이상한데요? 병력을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마사바를 공격하시는 게?”
“우리 노르드족은 불사왕과 싸우지 않을 걸세.”
“예? 용맹한 노르드족이 싸움을 피한다고요?”
“우린 바보가 아닐세. 300년 전 불사왕과의 전쟁 당시 대륙의 그 어느 국가도 우릴 도와주지 않았네. 오히려 몇몇 국가는 불사왕이 몰락한 직후 우리 영토를 노리고 쳐들어오기도 했지. 불사왕이라는 악마를 만들어낸 건 대륙인데, 피는 무고한 우리 노르드족만이 흘렸던 게야.”
“더러운 얘기네요.”
알 것 같았다.
‘똥은 지들이 싸질러 놓고 강 건너 불구경이나 했단 거잖아. 나중에는 뒤통수까지 치고?’
아아, 인간이란 이 얼마나 간사한가?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테지. 불사왕과 싸워 보았자 우리는 얻을 것이 없네. 또 우리의 피만 흐를 테고, 아무도 우릴 도와주지 않겠지. 승리를 거둔다고 해도 대륙 각국의 침공을 염려해야 할 테고.”
“그래서 마사바를 상대로 대규모 침공을 계획하고 계신 거였습니까? 파들란 섬을 버리고 대륙으로의 진출을 위해서?”
“맞췄네.”
라이언베르트가 순순히 지크의 말에 긍정했다.
“우린 이 혹독한 추위와 척박한 땅을 등지고, 대륙으로 진출할 계획이네.”
“본진을 아예 옮기실 생각이시군요.”
“과거의 일을 되풀이하느니 그편이 낫다고 생각했네. 게다가 불사왕에게는 죽은 자를 부리는 권능이 있지.”
“노르드족으로서는 달가운 상대가 아니겠습니다. 언데드 몬스터로 되살아나 불사왕의 병사가 되는 건 명예롭지 못한 죽음일 테니까요.”
“정확하네. 치욕스러운 일이지.”
그때.
[알림 : 스페셜 연계 퀘스트 이 발생했습니다!]또다시 연계 퀘스트가 발동되었다.
[패기 넘치는 제안]당신은 대륙에서 온 젊은 강자이자 노르드족의 왕 라이언베르트의 의형제로서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할 수 있습니다.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골라 향후 행보를 결정하세요!
– 1. 좋습니다, 형님. 제가 노르드족의 대륙 진출을 돕겠습니다.
– 2. 형님. 대륙 진출도 좋지만, 침략전쟁을 통해 삶의 터전을 옮기는 건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불사왕을 한번 막아 보겠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선택의 시간이었다.
***
지크는 고민했다.
‘이거 맘 같아선 형님이 대륙 진출을 하는 걸 돕고 싶은데….’
300년 전 노르드족을 외면했던 대륙 각국에 인과응보를 맛보게 해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또 쉬운 문제만은 아니었다.
대륙 각국은 용병 길드와의 연계를 통해 수없이 많은 모험가들과 결탁하고 있었다.
만약 지크가 노르드족을 돕게 되면, 지크의 입장도 난처해질 거라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게다가 노르드족이 엄청나게 강하기는 했지만, 대륙 각국들은 모험가들이라는 변수를 지니고 있었다.
만약 불사의 존재인 모험가들이 노르드족과의 전쟁에 대규모로 참전한다면?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장담컨대 노르드족으로서도 그리 쉬운 전쟁은 아닐 게 분명했다.
‘이건 아냐. 노르드족이 대륙으로 진출을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는 곤란해. 어떻게든 불사왕을 막는 게 우선이야.’
그렇게 결론을 내린 지크가 라이언베르트를 돌아보았다.
“형님.”
“말하게.”
“제가 노르드족의 대륙 진출을 돕겠습니다.”
하지만 지크의 말은 생각과는 정반대였다.
“음?!”
지크의 뜻밖의 발언에 라이언베르트의 눈이 커졌다.
“자네가 우리의 대륙 진출을 돕겠다고?”
“예.”
“그, 그게 정말인가? 그건 자네로서도 쉽지 않은 선택일 텐데?”
“제 앞에 계시는 분은 제 형님이십니다. 당연히 도와야죠.”
“허! 동생은 정말로 남자로군! 의리가 있어, 의리가! 의형제를 맺은 지 고작 하루 만에 그런 큰 결정을 내려주다니!”
“대신 이 동생의 얘기를 좀 들어주시겠습니까?”
“무슨 부탁인가! 말만 하게!”
“이틀만 시간을 주시면, 제가 형님이 만족할만한 전략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으음!”
“만족하실 겁니다.”
“그럼세! 내 그리하지!”
라이언베르트가 지크의 제안을 수락했다.
[알림 : 연계 퀘스트 을 클리어하셨습니다!]***
라이언베르트의 어전을 나선 지크는 곧바로 통신 장비가 있는 곳으로 가 프로아 왕국에 있는 국무대신 미켈레와 통화했다.
“미켈레.”
– 예, 전하.
“여기로 좀 와라.”
– 무슨 일이십니까?
“그게 말야….”
지크가 현재 노르드족이 처한 상황과 북부의 정세에 대해 미켈레에게 설명해 주고, 라이언베르트에게 어떻게 말했는지도 이야기해 주었다.
– 잘하셨습니다.
미켈레가 지크를 칭찬했다.
– 그럼 전하께서는 노르드족으로 하여금 불사왕에게 길을 터주게끔 하시고, 불사왕과 대륙 간에 전면전이 벌어지도록 유도하실 생각이십니다. 맞습니까?
“오? 어떻게 알았어?”
과연 미켈레는 지크의 생각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었다.
– 척하면 척입니다.
“되겠어?”
– 될 겁니다. 지금 바로 워프 게이트를 타고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기다릴게.”
– 예, 전하.
미켈레와의 통신이 끊겼다.
‘뭔가가 더 필요해.’
하지만 지크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형님뿐 아니라 노르드족 전체를 내 생각대로 움직이려면 뭔가 임팩트 있는 게 필요해. 상징적인 무언가가 있어야 저들을 설득할 수 있어. 뭐가 필요할까. 뭐가 있어야 노르드족 전체를 내 생각대로 이끌 수 있을까?’
고민해 보았지만, 답은 역시 하나였다.
‘역시 무력이야. 노르드족은 극강을 추구하는 전투 민족이야. 강자가 필요해. 그들을 순식간에 매료시킬 만한 강자가.’
하지만 그런 강함을 갖추기란 지금의 지크에게는 역부족인 일이었다.
지크는 아직 노르드족 전체를 움직일 만한 성장을 이룩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든든한 백을 좀 써야겠지? 이럴 때 부려 먹지 언제 부려 먹는담?”
지크가 혼잣말했다.
때마침 딱 떠오르는 사람이 한 명 있었기 때문이다.
지크가 부담 없이 부려 먹는 게 가능한 강자가.
“저기요!”
지크가 자신의 숙소 밖 시녀를 불렀다.
“예, 지크프리트 왕이시여.”
“노르드족에도 워프 게이트랑 비행선이 있죠?”
“물론입니다.”
“쿤룬산까지 갈 테니까 워프 게이트랑 비행선 한 대만 준비해 주세요. 아, 복수의 피눈물이란 이름의 브랜디도 한 병 구해주시고요.”
지크는 다시 쿤룬산으로 가기로 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