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252
1251
“이 계약서들로 진행해 봐.”
“예, 폐하.”
마왕들은 지크가 내던진 계약서를 읽어보았다.
내용을 확인한 그들의 반응은 별로 좋지 않았다.
“흠.”
“부하들이 썩 좋아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이건 좀….”
마왕들은 계약서를 읽어보고는 난처한 기색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크가 내민 계약서는 영혼을 담보로 건 게 아니었다.
프로아 제국군과 마족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매우 공평한 내용이었다.
문제는 마족들이 강해지기 위해서는 영혼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마족들의 성장 메커니즘은 인간과 계약을 맺은 뒤 소원을 들어주고, 나중에 그 영혼을 빼앗아 흡수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계약을 맺은 상대방 측에서 영혼을 제공하지 않으면, 마족 입장에서는 계약의 필요성 자체를 못 느끼는 게 당연했다.
“폐하, 부하들이 이 계약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거 열정페이 아닙니까?”
“부하들을 설득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마왕들이 난처한 기색을 내비쳤다.
지크가 제아무리 존경을 한 몸에 받는 대마왕이라고 한들, 이 계약서로 마족들을 설득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바보들아.”
지크가 마왕들에게 답답하다는 듯 이야기했다.
“어차피 전쟁이 터지면 싸울 거고, 그러면 죽인 적들의 영혼을 흡수하면 되잖아. 말이 계약이지, 이건 파병이라고. 어렵게 인간들과 계약을 맺어서 영혼 하나 얻는 것보다, 전쟁터에서 영혼 에너지를 흡수하는 게 낫지 않아? 질보다는 양이야! 양!”
계약을 통해 빼앗은 영혼은 그 에너지가 엄청나게 크다.
반대로, 전쟁터에서 획득 가능한 영혼 에너지는 순도가 낮고 에너지의 양이 적다.
굳이 비율로 따지자면 100대 1 정도로 영혼의 순도가 훨씬 높았다.
하지만 영혼은 하나 얻기도 힘든 반면에, 영혼 에너지는 얻기가 매우 쉬웠다.
전쟁터를 구르다 보면 영혼 에너지 100개를 얻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앗?!”
“하, 하긴….”
“대마왕 폐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마왕들은 그제야 지크의 말을 알아듣고, 이 계약 내용이 꽤 괜찮다는 데 동의했다.
“지금부터.”
지크가 선언했다.
“파병 인원 많이 모아오는 마왕한테 마력 나눠준다.”
그 순간.
“……!”
“……!”
“……!”
마왕들이 눈을 번쩍 떴다.
대마왕인 지크가 마족들의 주요 에너지 자원인 마력을 나누어준다?
이는 곧 더 강력한 마왕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걸 의미했다.
마계 서열 순위가 뒤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왜?
대마왕의 마력은 가장 순도 높은 에너지 자원으로써, 그 힘이 정말이지 대단했으니까.
흡수한 영혼을 최종적으로 가공한 형태가 마력이었으니, 영혼보다 더 꿀 같은 보상인 것이다.
“뭘 눈치들을 봐? 빨리 튀어 나가서 파병 인원 채워 와.”
지크가 말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왕들이 호다닥! 하고 회의실을 뛰쳐나갔다.
다른 마왕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단 1분 1초라도 빨리 모병을 실시하려는 것이다.
“자식들.”
지크가 미소를 지었다.
“거 되게 단순하네.”
마족들을 움직이는 건 매우 간단했다.
마족들은 더 강해질 수 있는 기회를 주면, 그에 따라 움직였다.
약육강식.
오직 강함만을 목표로 움직이는 종족이니만큼, 다루기가 매우 쉬웠던 것이다.
‘그럼 이제 천계로 가볼까?’
지크는 즉시 마계를 떠나 천계로 향했다.
그리고는 미카엘을 만나 프로아 제국군과 천족이 맺게 될 계약서를 내밀었다.
“이, 이게… 무슨 내용입니까?”
“보면 몰라요?”
지크가 그걸 질문이라고 하느냐는 듯 되물었다.
“천족들이 파병을 오는 내용이죠.”
“하지만 이건 너무 파격적이라….”
미카엘은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천족, 마족, 인간이 전우조를 이뤄 전쟁을 수행한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이게 가능할지… 솔직히 저는 모르겠습니다. 형제자매들이 거부감을….”
“거부감이 중요해요?”
“예…?”
“세계 평화를 지키는 일이고, 세 종족의 화합을 위한 일인데.”
“그, 그건…!”
“창세기 이후에 수만 년 동안 반목하던 세 종족이 하나가 된다. 이거 엄청난 거 아닙니까? 천족의 모토가 뭡니까? 세계 평화! 행복! 사랑! 소망! 뭐 그런 거 아입니까!”
“마, 맞습니다….”
“고결한 천족들이 거부감을 이유로 이런 기회를 발로 차버리진 않을 거라고 믿을게요. 마족들은 벌써 모병에 들어갔는데, 천족들에게는 그런 배포가 없나 보네요.”
“아닙니다!”
미카엘이 강하게 부정했다.
“이건 오히려 저희 천족들이 꿈꾸는 일입니다!”
마족들이 이 전무후무한 계약서에 먼저 서명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자 천족으로서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럼 해요. 파병 인원 모아서 데려오세요.”
지크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흐흐.’
천족들 역시 마족들만큼이나 다루기가 쉬웠다.
대의명분, 정의, 사랑, 화합, 우정 등등 뭔가 긍정적인 것들을 내세운다면 천족들은 기꺼이 따랐다.
마족과는 다르게, 천족들은 지극히 이타적인 종족이라서 명분을 앞세워 슬슬 구슬리면 자신들의 손해고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럼 저 갑니다?”
“알겠습니다. 곧 파병 인원을 모아서 보내드리겠습니다.”
결국, 미카엘은 지크의 달콤한 감언이설에 넘어가 천족들의 파병 결정을 내렸다.
***
그로부터 며칠 후.
프로아 제국에 새로운 문화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프로아 제국군을 중심으로 마족, 그리고 천족이 계약을 맺으면서 3인 1조의 전우조들이 탄생했던 것이다.
그들은 처음에 꽤나 서먹했다.
프로아 제국군의 입장에서, 천족들과 마족들은 모두 두려운 존재들이었다.
또한, 마족과 천족은 서로 매우 싫어했기에 사이가 극히 나빴다.
그러다 보니 막상 전우조로 맺어졌음에도, 말 한마디 오가는 것조차 어려웠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는 점차 달라졌다.
지크가 국가적 차원에서 이라는 행사를 진행하면서, 세 종족은 서로 친해졌다.
이란 매우 간단한 행사였다.
프로아 제국군으로 하여금 자신과 계약을 맺은 천족, 그리고 마족을 집에 초대해서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게 전부였다.
‘잘들 하고 있나?’
지크는 신분을 숨긴 채 프로아 제국군들의 집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분위기가 어떤지 살펴보았다.
“아이고, 잘들 오셨소. 마족 양반은 남자답게 잘생기셨구려. 천족 양반은 너무 아름다워서 귀공자 같소. 어서들 들어오시구려. 우리 집에 온 걸 환영한다오.”
프로아 제국군 병사의 노모(老母)가 쭈뼛쭈뼛 문 앞에 서 있던 마족과 천족을 집 안으로 안내했다.
“우리 아들은 뒷마당에서 고기를 굽고 있다오. 우리 나으리들 오신다고 특별히 준비했으니, 맛이 없더라도 들어들 주시구랴.”
지크는 노모가 손님들을 맞이한 집을 조금 더 훔쳐보았다.
“잘 오셨습니다. 차린 건 없지만, 부디 맛있게 드셔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프로아 제국군 병사가 천족과 마족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여기는 제 어머니이시고, 그리고 이쪽은 제 아내와 딸입니다. 이쪽은 저와 계약을 맺은 마족 할피스 씨, 그리고 천족 후아렐 씨입니다. 인사들 나누시지요.”
쭉 지켜보니 행사는 꽤나 잘 진행되었다.
함께 식사를 하면서 어색한 분위기가 많이 풀어지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오가면서 말문이 트였던 것이다.
물론 모두가 그러지는 않았다.
“쯧쯧. 식사 예절 한번 형편없군. 마족이라 그런지 교양이 없어.”
“뭐? 샌님 같은 놈이 뚫린 입이라고!”
천족과 마족이 서로 대립하면서, 분위기가 험악한 집도 분명히 있기는 했다.
하지만 대마왕인 지크와 대천사장인 미카엘의 엄명이 있었기에,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지는 않았다.
천족과 마족이 서로 으르렁거리며 신경전을 하면, 중간에서 인간인 프로아 제국군 병사가 진땀을 뻘뻘 흘리며 말리는 그림이 많이 나왔다.
‘저러다가 정드는 거지, 뭐.’
지크는 저들의 사이가 곧 좋아질 거라고 확신했다.
서로의 문화, 신념, 성격 등이 다르더라도 마우레키온 제국이라는 공통의 적을 상대하면서 동고동락하다 보면 금세 관계가 깊어질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프로아 제국은 역사상 유례없는 조합인 인간, 천족, 마족의 연합군을 결성하면서 마우레키온 제국과의 전쟁을 준비했다.
곧 다가올 최후의 전쟁에 본격적으로 대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프로아 제국은 지크의 활약으로 인해 마법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하는 중이었다.
지크가 가져온 수백만 권의 마도서들이 모두 프로아 제국에 흡수되면서, 프로아 제국의 마법 수준이 엄청나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은 효과를 보기 힘들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효과가 나타날 터.
‘두고 보자. 조금만 기다려.’
지크는 지금쯤 열이 잔뜩 받았을 슈트카르트 황제를 떠올리며 냉혹한 미소를 지었다.
***
다음 날 아침.
“베르단디 보러 가야지.”
지크는 아침 일찍 로그인해 사랑하는 딸 베르단디를 보러 갔다.
오늘의 일과를 시작하기 전 베르단디를 보고, 브륜힐트와도 시간을 좀 보내려는 것이다.
그런데.
“뭐지…?”
지크는 주변이 어두운 걸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로그인을 잘못했나?”
지크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아직 동이 트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임 속 프로아 제국과 현실의 대한민국은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이 똑같았다.
현실에서 해가 뜨면 프로아 제국에서도 해가 뜨고, 현실에서 밤이 되면 프로아 제국도 밤이었던 것이다.
지크는 일찍 일어나 운동을 마치고, 샤워를 한 뒤 닭가슴살 샐러드와 커피를 한 잔 마셨다.
그런 뒤 9시쯤 로그인했으니, 프로아 제국도 동이 텄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프로아 제국은 아직 밤이었다.
시간이 오전 9시였음에도 말이다.
‘내가 시간을 잘못 봤나? 하긴. 그럴 수도 있지.’
지크는 자신이 새벽에 일어나서 시간을 헷갈린 줄 알았다.
워낙에 자고 일어나는 시간이 불규칙하기도 했고, 오늘은 밖에 나가보지 않아서 밤인지 낮인지 헷갈렸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뀨! 주인 놈아!”
그때, 햄찌가 쪼르르 달려와 지크에게 소리쳤다.
“큰일 났다! 주인 놈아! 뀨우!”
“으응…?”
“해가 안 뜬다! 뀨우!”
“뭐?”
“뀨우! 아침 됐는데 해가 안 뜬다! 해 어디 간 거냐! 뀨우!”
“그게 뭔 소리야….”
“지금 오전 9시인데 아직도 해가 안 보인다! 뀨우! 먹구름 낀 것도 아니다! 뀨! 그냥 해가 안 뜨는 거다! 뀨우!”
“그, 그럴 수도 있어…?”
지크는 햄찌가 뭔 소리를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해가 안 뜬다니?
이게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인가?
“뀨! 진짜다! 해 진짜 안 떴다! 뀨우!”
“에이. 그럴 리가. 그냥 날이 흐린 거겠지.”
“캬악! 아니다! 주인 놈 햄찌 말 왜 안 믿냐! 뀨우!”
“내가 확인해 본다?”
“뀨우?”
“딱 기다려.”
지크는 그렇게 말하고는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구름을 뚫고 올라가 보면, 진짜 해가 안 뜬 건지 그냥 날이 흐린 건지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뭐, 뭐야.”
지크는 구름을 뚫고 대기권을 돌파할 때까지도 해가 보이지 않자 무척이나 당황했다.
이쯤 올라왔으면 태양이 보여야 정상인데,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던 것이다.
‘태양이… 사라질 수도 있나?’
만약 그런 거라면, 중간계는 끝장이었다.
태양이 사라진 이상 행성에 열이 공급되지 않으니, 곧 빙하기가 들이닥쳐 온 세상이 얼어붙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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