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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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성은 경호실장의 말을 듣고 즉시 호텔로 향했고, 그곳에서 게임 BNW의 개발사이자 유통사인 의 부회장인 오펜하이머를 만났다.
‘저 사람이… 오펜하이머 부회장.’
큰 체구에 회색 슈트로 빈틈없이 몸을 감싼 중년의 백인 남성.
오펜하이머는 의 공식 채널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였다.
“안녕하십니까, 태성 선수.”
통역기를 착용한 오펜하이머가 태성에게 넌지시 말을 건넸다.
가상현실게임이 보편화된 시대.
언어의 장벽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아, 예.”
태성이 오펜하이머가 내민 손을 맞잡고 악수했다.
“반갑습니다. 한태성이라고 합니다.”
“앉으시죠.”
“네.”
“담배 피우십니까?”
“아뇨.”
“한 대 피워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태성은 비흡연자였지만, 딱히 흡연자와 자리하는 걸 불편해하지 않는 타입이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오펜하이머는 태성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최고급 시가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댕겼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오펜하이머가 태성을 바라보며 말했다.
“제가 태성 선수를 만나고자 한 이유는, 최근 벌어진 사태 때문입니다.”
“아.”
“본사의 방침은 잘 아시다시피, 게임에 관여하지 않는 것입니다.”
“잘 알고 있죠.”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지한 대로, 본사는 이번 사태에 개입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아니, 정확히는….”
뒤이어 오펜하이머의 입에서 충격적인 진실이 흘러나왔다.
“게임 BNW에는 운영진이 개입하는 기능 같은 게 없습니다.”
“예?!”
“BNW는 애초에 개발 단계에서부터 회사가 개입할 수 없도록 만들어진 게임입니다. 그렇기에 운영자가 강제로 개입해서 뭔가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저 중요 정보를 모니터링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 그랬군요.”
태성은 그제야 에서 그동안 왜 게임에 개입하지 않았는지 깨달았다.
개입하지 않은 게 아니라, 애초에 못 했던 것일 줄이야….
“사실 이번에도 원칙대로 대응하려고 했습니다만, 이번 사건은 조금 다릅니다.”
“뭐가 다르단 거죠?”
“집단소송은 회사 입장에서 매우 피곤한 일입니다. 이번 사태로 인해 주가가 떨어지고 있어, 주주들의 원성이 대단히 높습니다.”
“음…?”
“특히나 이번 사태는 법적으로 개인의 재산권 침해를 걸고넘어지고 있어서, 치열한 법정 다툼이 예고됩니다. 그래서 본사는….”
오펜하이머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태성 선수에게 도움을 청하고자 합니다.”
“어떤… 도움을 말씀하시는 거죠?”
“만약 게이머들에게 걸린 정신지배를 풀어주신다면, 그에 따른 보상을 하겠습니다.”
오펜하이머가 준비해온 계약서를 태성에게 내밀었다.
“본사의 일정 지분을 드리고, 나아가….”
“……?”
“훗날 서비스가 종료된다고 해도, 태성 선수는 게임을 즐기실 수 있도록 조치해드리겠습니다.”
“……!”
태성은 오펜하이머의 제안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태성의 궁극적인 목표는 BNW가 서비스를 종료하더라도 계속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개인적으로 소장하는 것.
그 이유 때문에 안 그래도 의 주식을 사들이고 있지 않았던가?
“덧붙여서, 원하신다면 본사의 임원으로 현재 개발 중인 게임에 참여시켜드릴 수도 있습니다.”
“와, 와우….”
“이 일을 계기로 본사의 이용약관을 수정하고, 게이머들에게 사전 고지를 날릴 예정입니다. 하지만 그전에 이미 벌어진 사건에 대해선… 도저히 법정 공방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누군가 나서서 이 사태를 해결해줘야 할 텐데, 태성 선수 외엔 인물이 안 보입니다. 후우.”
오펜하이머는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프다는 듯, 시가 연기를 천장으로 훅! 하고 내뱉으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태성 선수는 이 게임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십니다. 그러니 본사의 제안을….”
“하겠습니다.”
태성이 냉큼 대답했다.
“못 할 게 있나요?”
“정말이십니까?”
“예, 당연하죠.”
주식도 받고, 게임도 개인소장하고, 나아가 회사의 임원이 된다?
꿩 먹고 알 먹고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격이었다.
어차피 마우레키온 제국과 끝장을 봐야 하기에, 제안을 받아들이고 말고 할 것도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오펜하이머 역시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예?”
“계약서에도 쓰여 있다시피, 전쟁에서 이기신다면 게이머들의 캐릭터에 대한 통제권은 돌려주셔야 합니다.”
말인즉슨, 태성이 안테나를 장악하더라도 게이머들을 조종해서 노예처럼 부리지는 말란 이야기였다.
“그거라면 걱정 마시죠.”
“좋습니다.”
“계약서는 제 법률대리인들을 통해서 검토한 뒤에 연락드릴게요.”
“태성 선수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계약서입니다. 얼마든지 검토하셔도 좋습니다.”
그렇게 태성은 의 부회장 오펜하이머로부터 계약서를 받아들고, 호텔을 나섰다.
***
다음 날.
로그인한 지크는 즉시 마우레키온 제국과의 국경 근처로 이동했고, 그곳에서 나이델베르크를 만났다.
반란을 일으킨 나이델베르크는 마우레키온 제국과 프로아 제국의 국경 근처를 장악하고, 농성 중인 상황이었다.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폐하.”
다시 만난 나이델베르크는 예전과는 다르게 극도로 공손했다.
‘으. 이 간사한 노친네.’
지크는 그런 나이델베르크의 180도 달라진 태도를 보고, 인상을 와락 구겼다.
슈트카르트 황제의 충실한 개였을 때는 그렇게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자세를 보이더니, 처지가 달라지자마자 이렇듯 비굴한 모습을 보이는 게 너무나도 얄미웠던 것이다.
“무슨 일인데 날 보자고 했어?”
지크가 나이델베르크의 옥좌에 슥 엉덩이를 붙이며 말했다.
“예, 폐하.”
나이델베르크가 말했다.
“아시다시피, 저는 마우레키온 제국에 반기를 들고 반란을 일으킨 입장이옵니다.”
“그래서?”
“그리고 폐하께서는 마우레키온 제국과 대립하고 계시고, 곧 대규모 전면전을 치를 예정이십니다.”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저와 동맹을 맺으신다면, 앞으로 마우레키온 제국과의 전쟁에서….”
나이델베르크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매우 간단했다.
마우레키온 제국이라는 공동의 적을 두었으니, 함께 싸우자는 이야기였다.
“그러니 폐하께서도 저와의 해묵은 감정은 내려놓으시고, 마우레키온 제국을 상대하는 데 집중하심이 어떻겠습니까?”
“흠.”
“마우레키온 제국은 폐하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적입니다. 어쩌면 마우레키온 제국을 뺀 모두가 힘을 합쳐도 어쩔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폐하, 좋든 싫든 지금은….”
나이델베르크가 지크를 설득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그 교활하고 간사한 혓바닥을 놀리려던 때였다.
퍽!
지크의 주먹이 나이델베르크의 안면에 틀어박혔다.
“커헉!”
날아가는 나이델베르크.
“……!”
“……!”
“……!”
그 광경을 지켜보던 마우레키온 제국의 반란군 기사들은, 너무나도 놀랐다.
설마 지크가 나이델베르크를 패버릴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퍽! 퍼억!
지크는 쓰러진 나이델베르크를 향해 무자비한 발길질을 퍼부으며, 그간 쌓였던 분노를 토해내었다.
나이델베르크의 간악한 계략 때문에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했던 지크가 아니던가?
전략적 동맹?
씨알도 먹히지 않을 소리였다.
“어, 어떻게 합니까? 막습니까?”
“나이델베르크 대공 각하께서 당하시는데….”
기사들은 자신들의 실질적 지도자인 나이델베르크가 무차별적인 구타를 당하고 있음에도, 섣불리 나서지를 못했다.
왜?
아무도 지크를 막을 자신이 없었으니까.
그 누가 지크를 막겠는가?
일인 군단의 무력을 지닌 위대한 그랜드 마스터를 상대로 검을 뽑을 머저리는 이곳에 없었다.
“너 때문에.”
“크악!”
“내가 얼마나.”
“컥!”
“고생했는지.”
“아아아아악!”
“알아?!”
“사, 살려… 으아아아아악!”
나이델베르크는 70살이나 먹은 노인이었지만, 지크는 인정사정없었다.
노인이고 나발이고,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노인이라고 봐줄 생각도 없었을뿐더러, 나이델베르크의 죄는 너무나도 컸다.
프로아 제국의 3분의 1 이상을 초토화시킬 계략을 몇 번이나 꾸미고, 슈트카르트 황제가 지크를 속이고 이용해먹는 데 한몫을 단단히 한 인물이 바로 나이델베르크였다.
“이, 이러시면… 크윽… 동맹이….”
“동맹?”
지크가 나이델베르크를 비웃었다.
“X까.”
“……!”
“너 같은 새끼랑 동맹 안 맺어. 어차피 뒤통수칠 게 뻔한데, 내가 미쳤다고 동맹을 맺겠냐?”
“커헉!”
“그리고.”
지크가 섬뜩한 미소를 지으면서 덧붙였다.
“내가 너 아니면 동맹 못 맺을 줄 알아?”
지크가 그렇게 말하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지금부터 여기는 내가 접수한다. 항복할 사람은 항복해. 프로아 제국으로 받아준다. 항복 안 할 사람들은… 버텨 봐. 어떻게 되는지 보게.”
지크가 으름장을 놓았다.
“……!”
“……!”
지켜보던 반란군 수뇌부들은 지크의 협박성 짙은 경고에 아무런 말도 못 했다.
어차피 마우레키온 제국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킨 그들 입장에서는, 동맹을 맺으나 항복을 하나 그게 그거였다.
그냥 프로아 제국에 붙는 편이 차라리 목숨을 부지하기에 유리했던 것이다.
“이 새끼 내가 데려간다. 불만 있는 사람?”
지크가 다시 물었다.
“…….”
“…….”
“…….”
역시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 판국인데, 나이델베르크 따위 뭐가 중요하겠는가?
어차피 마우레키온 제국 반란군에서 바지사장(?)으로 옹립한 인물에 불과한데.
“넌 곱게 못 죽을 줄 알아.”
지크는 그렇게 말하고는, 나이델베르크의 뒷덜미를 움켜쥔 뒤 워프 게이트로 향했다.
프로아 제국으로 끌고 가서 그 무시무시하다는 에 처넣어 죽을 때까지 노동을 시킬 생각이었던 것이다.
***
나이델베르크를 에 잡아넣고, 반란군을 접수한 지크는 프로아 제국에 머무르지 않았다.
시간이 없었다.
대규모 전면전은 하루가 다르게 다가오고 있었고, 이제 1주일이면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이럴 때일수록 발 빠르게 움직여야 했던 것이다.
‘이제는 어쩔 수 없어.’
지크는 대규모 전면전이 시작되면,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 10대 재앙의 권능을 사용하려 했다.
마우레키온 제국군이 이도 저도 못 하도록 빈집털이를 할 계획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마우레키온 제국이 을 이용해 고레벨 게이머들을 지배해버린 이상, 그 작전을 사용하기란 불가능했다.
미리 을 풀어서 마우레키온 제국을 휘저어 놓아야 고레벨 게이머들의 전력이 어느 정도 분산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걸로 반격이다.’
그래서 지크는 햄찌와 함께 워프 게이트를 타고, 마우레키온 제국의 영토로 향했다.
그런 뒤 마우레키온 제국의 동, 서, 남, 북으로 돌면서 10대 재앙들을 모두 풀어놓기 시작했다.
‘흐흐. 어디 X 돼 봐라.’
지크는 10대 재앙을 모두 풀어놓은 뒤 프로아 제국으로 복귀하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단 하나만 들이닥쳐도 세계의 절반 이상을 초토화시키는 게 가능한 재앙들을 무려 10개나, 그것도 한꺼번에 풀어놓았으니 마우레키온 제국이 얼마나 뒤흔들릴지는 불 보듯 뻔했던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