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ff Master RAW novel - Chapter 127
126
“안녕하십니까, 페르난데스 의장 각하. 저는 노르드족의 외교관 자격으로 온 미켈레라고 합니다.”
미켈레가 자신을 소개했다.
“노르드족의 외교관?”
3국 연합의 의장이자 에르마테스 왕국의 국왕 페르난데스가 퉁명스레 대꾸했다.
“그게 무슨 헛소리냐? 노르드족은 이미 멸망했을 텐데?”
“죄송한 말씀이오나, 페르난데스 의장 각하. 우리 노르드족은 아주 건재합니다.”
“건재하다?”
“물론입니다. 우리 노르드족의 전력은 현재 100퍼센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지? 불사왕이 노르드족의 영토를 그냥 지나쳤을 리….”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 순간.
“……!”
“……!”
“……!”
3국 연합의 수뇌부들의 표정에 경악이 서렸다.
맙소사!
길을 열어주다니!
그 호전적인 노르드족이 과거 피 튀기는 전쟁을 벌였던 불사왕과 휴전 협정을 맺고, 길을 터주기까지 했단 말인가?
불사왕은 그걸 또 그냥 지나치고?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나? 사악한 네크로리치가 죽음의 군대를 이끌고 남하하는데, 그걸 그냥 내버려 두었다는….”
“그러시는 귀 연합은 300년 전에 무얼 하셨습니까?”
“……!”
“우리에게는 귀 연합의 안위를 위해 피를 대신 흘려줄 이유가 없습니다.”
“그, 그건!”
그렇게 말하는 미켈레의 얼굴은 평소의 그 앳되고 선선한 관료의 모습이 아니었다.
씨익-
말려 올라간 입꼬리.
그리고 비웃음이 잔뜩 들어간 눈꼬리.
지금의 미켈레는 그야말로 ‘썩은 미소’를 지으며 3국 연합의 수뇌부들을 조롱하고 있었다.
“가, 감히! 어디다 대고 그런 망발을!”
“그 입, 닥쳐 주시길 바랍니다. 구역질이 나서 말입니다.”
미켈레의 입에서 독설이 터져 나왔다.
“본 외교관은 통보를 하러 온 거지 협상이나 동맹을 제안하러 온 게 아닙니다.”
“이… 이이… 어린놈이 이 무슨 말 같지도 않은 개소리를…!!”
“이틀 드리지요.”
미켈레가 딱 잘라 말했다.
“이틀 안에 귀 연합의 영토 20퍼센트와 향후 10년간 매년 2톤의 금을 조공으로 바치겠다는 협정서에 사인하시면, 온정을 베풀어 드리지요.”
“하! 이 미친 애송이가 어디서 그따위 말 같지도 않은…!!”
“이틀 드린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말한 미켈레가 휘적휘적 3국 연합의 회의실을 나서려 했다.
“저놈을 잡아라! 잡아서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그 시체는….”
“의장 각하! 안 됩니다! 지금 저자를 죽이면 노르드족은 결단코 본 연합을 도와주지 않을 것입니다!”
옴므타운 출신의 지략가 ‘세드엥’이 나서 페르난데스 의장을 뜯어말렸다.
“지금 저자를 죽이면 본 연합에는 미래가 없사옵니다! 참으셔야 할 때이옵니다!”
“하, 하지만…!!”
“이보게, 미켈레라고 했나?”
세드엥이 미켈레를 향해 물었다.
“어쩌자고 이런 제안을 해오는 것인가? 본 연합이 멸망하면 그대들이라고 무사할 것 같은가? 불사왕은 사악한 언데드 몬스터일세! 다음 타깃이 그대들이라는 걸 어찌 모르는가!”
“그걸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까?”
미켈레가 피식 웃었다.
“그걸 알면서도 우리와 연합할 생각은 하지 않고, 이런 말도 안 되는 불평등 조약을 내세우는가! 이건 어리석은 짓일세! 결국에는 다 함께 죽을….”
“귀 연합이 먼저 죽을 테지요.”
“……!”
“우리를 상대로 치킨 게임 같은 걸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먼저 죽는 건 귀 연합이니까. 그럼, 이만.”
그렇게 말한 미켈레가 피식- 냉소를 흘리고는 3국 연합의 회의실을 나섰다.
누구도 미켈레를 막아서지 못했고, 그렇게 치킨 게임은 시작되었다.
노르드족 진영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치킨 게임이.
***
“언니!”
금발의 미소녀가 오스칼의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노르드족에게 납치되었다던 오스칼의 여동생이었다.
“프랑수와!”
오스칼이 자신의 여동생을 꼭 안아주었다.
“괜찮은 거니? 어디 다친 데는 없고?”
“언니이이! 흐아아아앙!”
“괜찮아, 괜찮아. 언니가 왔잖니. 이제 다 괜찮단다.”
여동생을 다독여주는 오스칼은 모습은 지크가 평소에 보던 ‘FM기사’ 오스칼이 아니라, 그저 상냥하고 자상한 언니일 뿐이었다.
‘오스칼 경한테도 저런 모습이 있었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사실 오스칼은 어린 시절 소문난 말괄량이에다 골목대장이었다고 했다.
“껄껄! 자매 상봉이라니! 훈훈하구먼!”
라이언베르트가 오스칼과 프랑수와 자매의 상봉을 지켜보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참. 동생은 걱정 말게. 우리는 납치한 여자라 할지라도 강제로 범하지 않으니 말일세.”
“멋지십니다.”
“전쟁 범죄는 군대를 좀먹는 불필요한 암세포일 뿐이지.”
이쯤 되면 노르드족 전사들을 이라 표현해도 좋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동생. 협상은 어떻게 된 건가? 벌써 3일이 지나지 않았는가?”
“지금쯤 미켈레가 알아서 잘하고 있을 겁니다. 머리가 굉장히 잘 돌아가는 친구거든요. 지금쯤 3국 연합을 아주 농락하고 있을 겁니다.”
“그으래?”
“제가 괜히 국무대신을 시켰겠습니까? 맘 편히 계십쇼. 300년 전의 빚은 톡톡히 받아 내드릴 테니까요.”
“알겠네. 내 동생을 믿음세.”
라이언베르트가 세상만사 걱정이란 게 없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왜?
‘동생이 있어 참 든든~하구먼!’
지크가 곁에 있었으니까.
***
미켈레가 3국 연합에 방문한 지 3일 후.
불사왕의 공세를 버티다 못한 3국 연합은 결국 노르드족이 제안한 불평등 조약을 수용하기로 하고, 미켈레를 불렀다.
그러나….
“영토 30퍼센트에 매년 금 4톤. 후우.”
회의실 탁자 위에 다리를 올려 꼰 미켈레가 담배 연기를 훅! 하고 뿜어내며 말했다.
지금의 미켈레는 외교관이 아닌 시장 상인들을 상대로 보호비를 뜯어내려는 3류 양아치일 뿐이었다.
“이보게! 그게 무슨 말인가! 영토 30퍼센트에 금 4톤이라니! 처음 요구했던 조건과 다르지 않은가!”
세드엥이 항의했다.
“연체료입니다.”
“여, 연체료?!”
“약속한 날짜로부터 하루가 더 지났습니다. 연체료가 붙는 게 당연한 거 아닙니까?”
“그 무슨 폭리란 말인가! 아무리 유리한 입장이라도 그렇지, 이건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최소한의 상도덕은….”
“자정까지.”
미켈레는 세드엥의 항의를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책상 위에 담배를 비벼 끄고는 회의실을 쌩~ 하고 떠나버렸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었다.
“어쩌자고! 그걸 다 주자고?”
“그냥 같이 뒈져!”
“일단 살아야 할 거 아냐!”
“야 이 답답한 새끼들아! 그걸 주고 나면 우리는 뭐 먹고 사냐!”
“어디다 대고 삿대질이야!”
밤새도록 갑론을박, 설전, 난투극 따위를 벌이던 3국 연합의 수뇌부들은 결국 미켈레의 요구 조건을 수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미켈레에게는 인정사정이라는 게 없었다.
“영토 40퍼센트에 매년 금 5톤. 거기에 D등급 마정석 1,000개 추가합니다. 우리 연체료가 좀 비쌉니다. 300년이나 묵었으니 비쌀 만도 하겠지요.”
미켈레가 과거 3국 연합이 저질렀던 비열한 행위를 들먹이며 수뇌부들을 조롱했다.
“이이…!! 도저히 못 참겠다! 그래! 같이 죽자, 죽자!”
참다못한 페르난데스 의장이 배짱을 튕겼다.
그러나 미켈레의 배짱이 더 컸다.
“영토 50퍼센트에 매년 금 10톤. 거기에 D등급 마정석은 아예 광산 째로 내놓으십시오. 아, 이건 연체료가 아니고 괘씸비라고 내가 기분이 나빠서 붙인 추가 요금입니다.”
“죽여 버리겠다, 이 양아치 같은 새끼! 내 불사왕에게 죽더라도 네놈부터 죽이고….”
“죽이시죠.”
그렇게 말한 미켈레가 품속에서 단검을 꺼내 탁자 위에 탁! 하고 올려놓았다.
“영토 50퍼센트에 향후 10년간 매년 금 10톤. 거기에 D등급 마정석 광산까지. 이 담뱃불이 꺼질 때까지 결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안 그럼 제가 먼저 자살해버릴 테니까.”
자살 폭탄 테러도 아닌 무려 ‘자살 협박 테러’였다.
***
담뱃불이 꺼지기 직전.
“협정서… 여기 있네….”
페르난데스는 자신의 서명과 3국 연합의 인장이 새겨진 를 들고 미켈레의 앞에 섰다.
미켈레는 아무런 말 없이 협정서에 자신의 서명과 노르드족의 인장을 새겨 넣었다.
뒤이어 대반전이 일어났다.
“고생하셨습니다, 페르난데스 의장 각하. 그간 범했던 결례와 무례를 부디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담배를 뻑뻑 피워대며 3류 양아치처럼 굴던 미켈레가 돌연 정중하고 몸가짐으로 외교적 예법에 따른 인사를 선보인 것이다.
“…….”
“…….”
“…….”
미켈레의 180도 달라진 모습에 3국 연합의 수뇌부들은 그만 넋이 나가버리고 말았다.
“자네, 정녕 무서운 자로구먼.”
세드엥이 미켈레를 향해 혀를 내둘렀다.
“연기를 했군. 본 연합의 자존심을 긁어 놓음으로써 제안을 빨리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그래야 협정서의 값이 더 올라갈 테니까요.”
미켈레가 희게 웃으며 대답했다.
“외교관이란 무릇 국익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치욕도 마다하지 않는 법 아니겠습니까?”
“역사에 길이 남을 외교로구먼. 시정잡배들의 거래 방식을 국가 대 국가의 거래에 적용하다니.”
“국가 대 국가의 거래라고 시정잡배들의 거래와 뭐가 다를 게 있겠습니까? 거래는 거래일 뿐이지요.”
“노르드족이 부럽군. 자네와 같이 뛰어난 지략가를 보유하고 있으니 말일세.”
“아닙니다.”
“아니라?”
“저는 노르드족의 신하가 아닙니다.”
“그럼 누구의 신하인가?”
“저는 프로아 왕국의 국무대신으로, 프로아의 국왕이신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 전하의 신하입니다.”
그 말을 남긴 미켈레가 3국 연합의 회의장을 나섰다.
“지크프리트 반 프로아라…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자이기에 저런 유능한 관료를 신하로 두고 있단 말인가….”
세드엥이 미켈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혼잣말했다.
***
같은 시각.
“지금부터 불사왕에 대한 총공격에 들어가겠습니다.”
미켈레로부터 거래가 끝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지크는 곧장 군사 회의를 소집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지크가 군사 회의를 소집한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노르드족의 왕인 라이언베르트가 특별히 이번 건에 한해서만 지크를 총사령관으로 임명했기 때문이다.
“전 병력, 출정합니다.”
지크의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노르드족 해군 기지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백 척의 쾌속정들과 군함들이 일제히 물살을 가르며 대륙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세 시간 후.
[이 비열한 노르드족 놈들이…!!]불사왕은 자신의 군대 후방을 공격하는 노르드족 군대의 존재를 감지하고, 분개했다.
[전 병력!! 후방으로!!]불사왕이 자신의 손에 쥔 마검(魔劍)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
전투가 시작되었다.
노르드족의 3만 정예 해병대원들과 불사왕의 5만 언데드 몬스터들이 맞붙었을 때, 전투의 승패는 당연히 불사왕의 죽음의 군대에게로 돌아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각각 1만 명씩 총 세 개의 편대로 나뉜 노르드족의 군대는 불사왕의 군대 정중앙을 순식간에 무너뜨리고, 불사왕의 코앞까지 진격해가는 기염을 토했다.
[이런 빌어먹을! 그 망할 놈의 마스터가 나섰는가!]불사왕은 자신의 진영 정중앙을 휘젓는 존재가 마스터인 도제 베텔규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불사왕의 생각은 이내 곧 깨어지고 말았다.
노르드족 진영의 정중앙에는 마스터가 존재하지 않았다.
“앞으로, 앞으로!!”
단지 디버프 필드를 전개한 지크가 노르드족 해병대원들을 이끌고 불사 군단의 언데드 병사들을 무참히 도륙 내고 있을 뿐….
즉, 지금 불사 군단의 중앙을 무너뜨린 장본인은 도제 베텔규스가 아니라 디버프 필드를 앞세운 지크였던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